눈물을 마시는 새 : 5장 – 철혈(鐵血) (9)
성루 위에 뛰어오른 비형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묻지 않은 채 곧장 도깨비불 두 개를 만들어 밤하늘로 집어던졌다. 그 때문에 비형은 티나한에게 꽤나 싫은 소리를 듣게 되었다. 하지만 티나한도 비형의 도깨비불 아래에 드러난 광경에서 눈을 떼진 못했다.
성문에 별로 떨어지지도 않은 곳이었다. 집채만 한 대호는 땅에 배를 댄 채 엎드려 있었다. 마치 편안히 잠이라도 자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대호의 입에서는 위엄왕의 몸이 튀어나와 있었다. 반듯이 누워 있는 위엄왕의 목 아래는 모두 보였지만, 그 머리는 대호의 입 속에 들어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시체를 깨물고 있다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감상이었다. 하지만 그의 떨리는 손과 발을 본 티나한은 위엄왕이 살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살아 있군. 목만 끼어 있는 거야.”
비형은 이 무시무시한 단두대에 끼어 있는 위엄왕을 동정했다. 지금 대호의 입 속에 들어가 있는 위엄왕은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목을 누르는 이빨의 감촉과 얼굴을 적셔오는 대호의 뜨거운 침이 위엄왕을 끝없는 공포로 몰아가고 있을 것이다. 비형은 입을 가린 채 신음했다.
티나한은 암살자를 찾아보려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처음 얼마 동안 륜도 사모가 어디 있는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얼마 후 륜은 대호의 몸 일부분이 약간 더 뜨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륜은 그곳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륜이 어떤 흐릿한 윤곽을 그려보고 있을 때 케이건이 말했다.
“사모로군.”
륜과 비형, 티나한은 놀란 표정으로 사모를 바라보았다. 사모는 팔짱을 꼈다.
“사모, 흑사자 말이오. 흑사자 모피로군. 저기, 대호의 어깨 사이에 누워 있소. 줄무늬와 구분하기 어렵겠지만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을 거요. 저것 덕분에 이곳까지 왔군.”
티나한도 곧 사모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사모는 륜의 모습에 넋이 나간 성루 위의 사람들에게 사모가 어떻게 위엄왕을 잡아갔는지 질문했다. 사람들의 설명을 들은 일행은 크게 놀랐다. 사모는 사모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익히 알고 있었던 거지만, 네 누나는 정말 만만치 않은 인물 이군. 대호를 받칠 생각을 하다니. 몸이 끊어지지 않은 것이 행운일 텐데. 흑사자 모피는 또 어디서 구한 거지?”
륜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닐렀다.
<사모!>
대호의 검은 줄무늬 일부가 꿈틀했다. 그것은 스르르 일어나 대호의 몸에서 돌출되더니 검은 혹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 검은 혹이 좌우로 갈라지며 그 안쪽에서 사모 페이의 얼굴이 나왔다. 사모는 륜을 향해 닐렀다.
<륜.>
륜은 반가움에 비늘을 곤두세웠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나가의 니름이었다. 륜은 그제야 자신이 대화에 굶주려 있음을 깨달았다. 말을 나눌 상대는 많았지만, 좀더 잘 듣기 위해 언제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나눠야 하는 말은 륜에게 자연스럽지 않았다. 물론 편안하지도 않았고. 똑바로 앉은 사모는 대호의 머리 너머로 위엄왕을 보곤 빙긋 웃었다.
<이 불신자는 자신을 위엄왕이라고 부르더군. 자기를 뭐라 부르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겠지만, 난 이 자를 본 이후로 이 자의 위엄이라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난감한 입장에 처해 있어. 그래서 그 호칭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을 이 자가 이해해 줬으면 좋겠는데.>
륜은 울 것 같은 얼굴로 웃었다.
<그는 인간입니다. 매일매일 죽을까 봐 두려워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나가다운 위엄을 바라긴 어렵겠지요.>
사모는 잠시 정신을 닫았다가 다시 닐렀다.
<너도 그랬니?>
<네?>
<너도 매일매일 죽을까 봐 무서웠니? 나 때문에?>
륜은 뭐라 대답할 수 없었다. 사모는 차분하게 닐렀다.
<불쌍한 내 동생.>
<저는 괜찮습니다. 사모, 동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고 정성을 다해 저를 지켜줬습니다. 저는 누님을 걱정했습니다. 그 피라미드 속에 누님을 남겨두고 떠났을 때는 너무도 무서웠습니다.>
사모는 다시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