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6장 – 길을 준비하는 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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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6장 – 길을 준비하는 자 (1)


우리는 길을 준비한다. -유료 도로당원의 맹세.


길을 준비하는 자

화리트 마케로우는 닐렀다.

<어두워, 어두워, 어두워.>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정신이 그에게 다가왔다. 폭력에 노출된 연약한 짐승처럼 화리트의 정신이 오그라들었다. 화리트에게 다가온 자는 친절하게 권했다.

<그러면 밖으로 나오면 되잖나.>

<꺼져. 갈로텍.>

<그곳이 마음에 들지는 않을 텐데.>

<좋아해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화리트는 숲속에 갇혀 있었다. 그 숲의 나무들은 긴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기억이 기억을 덮어 만들어낸 음영’, ‘경험했지만 인지하지 못했던 경험’, ‘자신을 망각해 버린 망각’, 기타 등등. 그 속에서 화리트는 무한히 떠돌았다. 화리트가 나무들을 스칠 때마다 왜곡된 추억들이 이슬처럼 떨어져 내렸다.

갈로텍이 닐렀다.

<고난이 없다면 노력도 값을 잃겠지. 이건 어때? 라호친 지방에 살았던 인간의 기억이야.>

<라호친이 뭐지?>

<아, 날이 충분히 맑으면 세계의 북쪽 끝도 볼 수 있다는 농담이 따라 다니는 북녘땅이야. 잔인한 눈보라와 거대한 빙하로 유명하지.>

이제 더 이상 비늘이 없었지만 화리트는 비늘이 곤두서는 기분을 느꼈다. 잠시 후 매서운 추위의 기억이 화리트의 숲속으로 몰아쳤다. 화리트는 괴로워하다가 기절했다.

사실 기절했다고 느꼈을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 기절은 적극적이다. 그것을 알기에 갈로텍은 크게 웃으며 닐렀다.

<오, 화리트, 웃기는 형제여.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건 기절이 아니라 기만이야.>

화리트도 그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화리트는 다른 것도 깨달았다.

<이건 어떠냐?>

화리트는 자신이 죽었던 순간을 기억해낸 다음 그것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갈로텍은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화리트는 맹포하게 닐렀다.

<너는 죽어본 적이 없겠지! 이것이 죽음이다!>

그러나 화리트는 곧 엄청난 후회를 맛보아야 했다. 갈로텍은 군령자다. 그 속엔 수많은 죽은 자들이 있다. 갈로텍은 그 사망의 기억들을 다 끌어모아 화리트를 후려쳤다.

화리트는 절규하며 숲의 가장 어두운 부분으로 도망쳤다. 화리트를 제압하기 위해서였지만, 그 때문에 갈로텍도 수많은 죽음을 직시해야 했다. 갈로텍은 더 이상 그 기억들을 다룰 수 없었다. 그래서 갈로텍은 그 기억들을 영들에게 돌려준 다음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랐다. 전면에 나서 있던 영과 자리를 바꾸며 갈로텍은 생각했다.

‘맙소사. 군령자들이 왜 이 짓을 계속하는 건지 알겠군.’

그리고 갈로텍은 자신 또한 그 짓을 하게 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서둘러 그런 생각을 떨쳐내려 했지만 그런 의도적인 사고가 더욱 갈로텍으로 하여금 그 생각에 달라붙게 만들었다. 그때 그의 내부에서 어떤 영이 그의 입술을 움직였다.

“그럴 수도 있지. 갈로텍.”

갈로텍은 잠시 그 말투가 누구의 것인지 고민했다. 곧 어떤 이름이 떠올랐다.

“주퀘도? 오래간만이군요. 꽤 오랫동안 잠들어 계셨죠.”

“그랬지. 아까 그 꼬마는 뭐지? 죽은 과거들 사이에 숨어 있어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꽤 어린 애였던 것 같던데.”

“최근에 죽은 나가입니다. 제가 그 영을 받아들였죠.”

“그런가. 그런데 그 애를 왜 겁주고 있었지? 한번 죽었던 애니까 그런 짓을 당해도 견딜 수 있었지만, 만일 똑같은 일을 내가 너에게 한다면…..”

“관둬요!”

갈로텍이 소스라치며 외쳤다. 주퀘도는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갈로텍.”

“예?”

“갈로텍.”

“왜 그래요?”

“그날이 오면, 너도 결국 다음 사람을 찾게 될 거야.”

“천만에! 당신들을 받아들일 때 분명히 말했듯이, 죽을 때가 되면 나는 죽을 겁니다. 당신들은 거기에 동의했어요.”

“아, 그 맹세. 자주 들어봤지. 너도 했었나?”

이 노골적인 야유에 갈로텍은 비늘 부딪히는 소리를 내었다. 주퀘도는 낄낄 웃었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그 괴상한 소리에 갈로텍은 불쾌감을 느꼈다. 웃는 것을 좋아하는 그였지만 주퀘도가 그의 목을 이용하여 내는 웃음소리는 끔찍했다.

“부탁인데 웃는 걸 좀 자제해 주면 안 되겠어요? 난 그 소리가 싫어요.”

“나도 싫어. 나가의 몸으론 웃기가 힘들어. 그라쉐의 몸이 좋았는데.”

“그라쉐?”

“그 친구는 같은 레콘도 감탄할 정도로 큰 레콘이었어. 만나본 적 없나?”

“없어요. 우리 안에 확실히 있습니까?”

“있어. 그라쉐도 비슷한 말을 했지. 우리가 들어가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죽을 때가 되면 그냥 죽을 텐데 그래도 좋다면 들어오라고 대답하더군. 우리는 좋을 대로 하라고 했지. 그라쉐의 몸에 있을 때 우리는 참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 그 무지막지한 녀석의 무기는 50킬로그램짜리 철추가 달린 철퇴였지. 그걸로 소를 한번 내려친 적이 있는데 가죽만 남더군. 뼈는 몸속에서 가루가 되다시피 했어. 정말 멋진 나날이었지. 그 녀석의 몸으로 웃을 때는 정말 돌개바람이 일어날 정도였어.”

주퀘도는 레콘의 몸에 있을 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잠시 침묵했다. 갈로텍은 잠자코 기다렸다. 주퀘도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 그 강하고 멋진 그라쉐가 늙어서 죽을 때가 가까워지자 어떻게 했는 줄 알아? 그 우악스러운 철퇴로 인간 한 명을 협박해서 강제로 전령(傳靈)했지. 그걸 가리켜 영적 강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인간의 몸은 그라쉐를 짜증 나게 했지. 요즘 들어 잠만 자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르지. 이봐. 갈로텍. 그 친구를 위해 다음 몸으로는 레콘을 골라보면 어떨까?”

“주퀘도. 여러 번 말했지만 나는 그냥 죽을 겁니다. 여신께 갈 거라고요. 나는 신명을 받은 수호자입니다.”

갈로텍은 엄숙하게 선언했지만 주퀘도는 그를 비웃었다.

“아, 우리들 중엔 스님도 한 분 있지. 소개시켜 줄까?”

“그만하고 내려가세요!”

주퀘도는 다시 낄낄거리더니 의식의 아래로 내려갔다. 갈로텍은 의자에 몸을 길게 누인 채 불쾌감을 억누르려 애썼다.

갈로텍은 평생 동안 노력해도 얻기 힘든 지식을 단번에 얻을 수 있다는 이유로 군령자를 받아들인 자신의 결정에 후회를 가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받아들일 영들 중에 주퀘도라는 저 괴팍한 인간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갈로텍은 한 번 더 생각해 봤을지도 모른다. 주퀘도의 말은, 진실이었기에 더욱 불쾌한 종류의 것이었다. 갈로텍은 자신의 영과 다른 군령들을 받아들일 자를 찾아 헤매는 늙은 자신의 모습을 충분히 그려볼 수 있었다.

<결코 그렇게 되진 않아!>

갈로텍은 불가능이라는 이름의 야수에게 자신의 의지를 먹잇감으로 던져준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모든 이들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목이 잘린 누이의 식도에 살아 있는 동물을 쑤셔 넣으며 2년 만에 그녀의 머리를 재생시킨 이후로, 갈로텍은 불가능을 결코 인정해 본 적이 없었다. 되살아난 누이가 자신의 목을 잘랐던 인간에 대한 증오밖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괴물이 되었다는 사실은 갈로텍에게 슬픔은 주었지만 좌절은 주지 않았다.

<다시 그 녀석을 만나봐야겠군.>

갈로텍은 화리트를 찾아 자신 속으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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