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6장 – 길을 준비하는 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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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6장 – 길을 준비하는 자 (10)


요새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도깨비불을 바라보며 사모는 몸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그 도깨비불은 그녀와 마루나래의 머리를 지나쳐 그대로 도로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사모는 의아해하며 그 도깨비불을 좇았고, 도로 아래쪽에서 다가오는 수천의 열원을 발견했다. 사모의 몸에서 비늘이 맹렬하게 부딪쳤다.

사모는 재빨리 발아래에 놓여 있던 산양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마루나래의 등 위에 올라탔다. 거의 순식간에 철문 앞에 도달한 사모는 요새를 향해 외쳤다.

“열어 줘! 두억시니들이 오고 있어!”

“그 두억시니가 너를 쫓아온 거라면, 들여보내 줄 수 없다!”

사모는 분노하며 두 손으로 산양을 높이 치켜들었다.

“열지 않으면 이 산양의 목을 따서 그 피를 너희 철문에 뿌리며 저주하겠다!”

협박을 하면서도 사모는 과연 이런 허튼소리가 소용이 있을지 의심했다. 그러나 요새에서는 반가운 대답이 들려왔다.

“안 돼! 그러지 마!”

사모는 반가워해야 할지 측은심을 느껴야 될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대답은 바로 튀어나왔다.

“그럼 문 열어!”

요새 안에서 소란스러운 소음들이 들려왔다. 사모는 짐작하지 못했지만 신비감 가득한 그녀의 목소리는 유료 도로당의 당원들에게 그 목소리에 의해 내려지는 저주는 반드시 실현되고 말 것이라는 확신을 주고 있었다. 결국 잠시 후 소란스러운 외침과 거부의 고함 속에서도 철문이 천천히 열렸다.

마루나래는 그대로 동굴 안으로 뛰어들었다.

긴 동굴 안쪽은 벽에 걸려 있는 여러 개의 횃불에 의해 밝혀져 있었다. 사모는 그 횃불에 언짢은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마루나래는 창을 든 채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수십 명의 당원을 발견했다.

포위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마루나래는 큰 몸을 흔들어 물을 털어냈다. 당원들은 갑자기 물벼락을 맞고는 성난 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곧 그들의 얼굴이 굳었다. 마루나래가 들리지 않는 울음을 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원들은 왜 갑자기 몸이 아플 정도로 떨리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당황하며 허리를 뒤로 뺐다. 마루나래는 거의 마귀 같은 얼굴이 되어 한층 낮고 사납게 울었다. 결국 몇몇 당원들이 오줌을 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자신이나 주위에 있는 사람들 모두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사모는 바지를 적시는 뜨거운 열을 볼 수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은 채 말했다.

“문을 닫아야 할 텐데.”

당원들 중 몇몇이 화들짝 놀라며 철문을 바라보았다. 마루나래가 뛰어들자 놀란 당원들은 문을 열어 둔 채 물러났었다. 사모는 마루나래를 조금 걸어가게 했고 그러자 용기 있는 당원들 몇몇이 그녀의 뒤에서 문을 닫았다. 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동굴 안을 울렸다.

사모는 갇혔다는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주위의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당원들도 이 사태를 호전시킬 – 혹은 악화시킬 – 대안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사모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침묵의 창날에 포위당해 있어야 했다. 결국 사모가 입을 열었다.

“두억시니들을 퇴치할 거야?”

당원들을 지휘하고 있던 우두머리는 사모의 말에 갑자기 자신들이 이렇게 침묵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산양을 내놔!”

“너희들이 산양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건 내 친구가 잡은 건데. 어째서 사냥꾼의 전리품을 내놓으라고 하는 거지?”

“이곳은 우리 도로다!”

“너희들이 관리하는 도로에는 너희들의 책임과 권리가 있겠지만, 이 산 전체에도 그런 권리가 있는 거야? 분명 마루나래는 도로에서 산양을 잡아 온 것은 아닌데.”

우두머리는 마루나래라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때 당원들의 등 뒤에서 약간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산마루의 나래면, 산의 흰 날개, 산운(山雲)이군. 상당히 푹신한 이름이군.”

당원들은 그 해석에 감탄하며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돌아보았다. 그들이 바라보는 곳을 본 사모는 동굴 좌우로 몇 개의 통로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들은 모두 위쪽을 향하는 계단이었다. 그리고 그중 한 계단 앞쪽에서 사모는 인간과 도깨비의 모습을 발견했다. 사모는 인간의 얼굴을 보기에 앞서 등에 있는 괴상한 쌍신검만 보고도 이미 상대가 누군지 깨달았다.

“실제로 푹신해. 달릴 땐 구름 탄 기분이야. 하지만 산운은 우레와 번개라는 두 개의 송곳니를 품고 있지. 나가 살육자.”

“그럴듯하군. 암살자.”

“륜은 어디에 있지, 나가 살육자?”

“위쪽에 레콘 티나한과 함께 있다. 그 두억시니들은 어떻게 된 거지, 암살자?”

“사모 페이.”

“케이건 드라카.”

“전에 만났던 그 높은 담을 가진 도시 외곽에서 두억시니들을 발견했어. 케이건.”

“그 도시라면 자보로라고 한다. 페이.”

사모와 케이건은 똑같은 판단을 내렸다. 즉, 수천의 두억시니들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누가 더 화를 낼 수 있는가를 견주는 행위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창을 든 당원들과 비형, 그리고 사모를 태우고 있는 마루나래까지도 담담하면서도 신속한 두 사람의 대화에 당황했다.

“자보로라는 그 도시에 경고를 해 준 다음 그곳을 지나쳐 또 하나의 도시를 지나쳤어. 그 도시에도 경고를 해 줄까 했어. 그런데 두억시니들은 계속 나만 따라오더군.”

“그 피라미드에서부터 따라온 것인가. 두억시니들에게 뭔가 화날 일을 했나?”

“내가 오히려 그렇게 묻고 싶은데. 내가 발견했을 때 너희들은 그 기괴한 괴물과 싸우고 있었어.”

케이건은 비형을 살짝 돌아보았고 비형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건은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너를 쫓아온 것이 아니라 우리를 쫓아온 것일 수도 있군. 니름을 나눌 수 있었나?”

“전혀.”

“의도를 확인할 방법은 몸으로 부딪쳐 보는 수단밖에 없는 것이군. 비형. 쪽문을 열고 몇 사람 내보내시오.”

사모와 케이건의 거의 최면 효과까지도 일으키는 담담한 대화에 빠져들어 있던 비형은 조금 후에야 깜짝 놀라며 말했다.

“몇 사람을 내보내라니오?”

“환영을 만들어 보란 말이오. 킴을 제외한 세 명의 선민 종족. 대호, 딱정벌레, 모두 다섯.”

“대호는 제외해도 돼. 그 피라미드에서는 없었으니까.”

케이건의 명령과 그에 덧붙여진 사모의 부연은 너무도 자연스럽다는 이유로 비형을 꽤나 혼란스럽게 했다. 물론 당원들도 그러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말이 척척 맞는 두 사람이 연인이거나 남매일지도 모른다는, 눈에 보이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는 가설을 나누는 자들마저 있었다. 비형 또한 그런 가설에 참여해서 종족 개념을 붕괴시키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데 일조하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자제력을 되찾은 다음 도깨비불을 만들어 내었다. 비형이 만들어 낸 도깨비불은 그 모습이 석양빛이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도깨비와 나가, 레콘, 그리고 나늬와 매우 흡사했다. 당원들은 감탄했다. 하지만 사모는 체온이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케이건은 그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환영을 다듬을 시간은 없었다. 케이건은 바라기를 뽑아 든 다음 비형에게 말했다.

“내 주위를 따르게 하시오.”

비형은 질문할 기회를 잃었다. 사모가 먼저 말했기 때문이다.

“함께 나갈 생각이야? 위험할 텐데.”

“괜찮아. 다만, 내가 나간 다음 난동을 부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면 좋겠는데. 페이. 이곳에서는 여행자의 안전을 위해 무력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사모는 잠시 케이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금지 조항이 아닌 명예를 위해 약속하지. 케이건.”

케이건은 두 번 확인하지도 않고 쪽문을 향해 걸어갔다. 비형은 황급히 도깨비불을 걸어가게 했다. 당원들은 자신들의 요새에서 주도권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수 없었고, 그럴 의지도 별로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구경꾼의 역할에 충실하기로 했다.

케이건은 도깨비불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두억시니들은 이미 요새에서 500미터 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케이건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혀를 한 번 찬 다음 달리기 시작했다. 쪽문을 열어 둔 채 바라보던 비형은 황급히 도깨비불들을 달리게 했다. 그 동작은 제법 훌륭했지만, 발아래에서 물을 튕겨 올리며 달리는 케이건과 달리 도깨비불은 아무런 물방울도 튕기지 못했다.

두억시니들은 앞쪽에서 달려오는 도깨비불과 케이건을 보자 걸어오는 속도를 늦추었다. 케이건은 적당한 거리에 도달하자 역시 걸음을 늦추며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좌우를 둘러본 케이건은 불로 이루어진 레콘과 도깨비, 나가, 딱정벌레가 자신을 잘 따르고 있음을 확인했다. 젖은 도로 위에 그들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기묘하게 비치고 있었다. 케이건은 입속으로 무의미한 말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어둠 속의 밝은 그림자.

케이건과 두억시니들은 거의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비형이 조금 전에 던져 둔 도깨비불은 그들의 머리 위에 떠서 빛을 뿌리고 있었다. 그 빛을 받아 빗물에 젖은 두억시니들이 번들거렸다. 어깨와 이마를 때리는 빗줄기 속에서 눈을 가늘게 뜬 케이건은 두억시니들의 모습을 면밀히 관찰했다. 그리고 케이건은 사모가 연민 때문에 깨닫지 못했던 두억시니들의 특징을 냉정하게 찾아내었다.

‘기능적인 모습들이군.’

많은 두억시니들이, 비록 그 형태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지만 대칭형을 이루고 있었다. 대칭형은 모든 활동에 있어 비대칭보다 유리하다. 케이건은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 거의 티나한에 필적할 만한 거대한 체구의 두억시니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두억시니의 머리는 두 개였고 양쪽 어깨에 달려 있었다. 목 위, 일반적으로 머리가 있어야 할 위치에는 오른손이 하나 붙어 있었다. 케이건은 보통 생식기가 있어야 할 부분에서 왼손을 찾아내었다. 두 개의 팔 끝에는 머리카락처럼 생긴 털이 잔뜩 나 있어 마치 붓처럼 보였고 두 개의 다리는 새처럼 역관절을 이루며 뒤로 꺾여 있었다. 발끝에는 발가락이 있었지만, 그것은 불가사리처럼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두억시니의 양쪽 머리 중 왼쪽 머리가 먼저 말했다.

“나가.”

뒤이어 오른쪽 머리가 말했다.

“도깨비.”

다시 왼쪽 머리.

“레콘.”

오른쪽 머리.

“딱정벌레.”

‘인간도 있는데.’라고 말해 주는 대신 케이건은 빗물을 타고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는 확인이라도 하듯 말했다.

“나가.”

“도깨비.”

“레콘.”

“딱정벌레.”

두억시니의 두 머리는 서로를 돌아보고는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꽤 정신 사나운 장면이라 생각하며 케이건은 잠시 한숨을 쉬었다. 자신을 긍정하는군.

다음 순간 두억시니의 오른팔이 위로 치솟았다.

잠깐 동안 케이건은 사태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러나 빗물이 엉뚱한 방향에서 날아와 얼굴을 때리자 케이건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두억시니는 오른팔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있는 힘껏 올려쳤던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늘어난 그 오른손은 케이건의 왼쪽에 있던 레콘 모양의 도깨비불을 아래에서부터 자른 다음 원래 길이로 줄어들며 위로 치솟았던 것이다.

케이건은 그것을 하나도 볼 수 없었다. 땅에 고여 있던 물이 그 공격에 휘말려 솟아오르지 않았다면 케이건은 두억시니가 그냥 팔을 들어 올린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케이건은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바라기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두억시니는 다시 두 개의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두억시니는 두 팔을 동시에 휘둘렀다.

긴장하고 있던 케이건은 가까스로 자신의 가설이 맞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잔영뿐이었지만 두억시니의 두 팔은 분명히 순간적으로 늘어나며 케이건의 왼쪽에 있는 레콘과 오른쪽에 있는 나가를 휩쓸고 돌아갔다. 마치 늘어나는 채찍 같았다. 그리고 케이건은 그것이 완전히 돌아가기 직전 붓처럼 생긴 털들 사이로 오릭스의 뿔같이 생긴 것이 안으로 사라지는 것도 목격했다.

‘팔이 늘어나는 것이 아냐. 팔 안쪽에 들어 있던 긴 뿔이 팔을 휘두를 때마다 튀어나왔다가 들어가는 거다.’

요새 쪽에서 비명 같은 것이 들려왔다. 좀 멀리 떨어져 있던 자들은 케이건보다 더 잘 볼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케이건은 누가 가장 정확하게 보았는지 알 수 있었다.

“도망쳐 케이-건!”

하지만 케이건은 도망치지 않았다. 두 번의 공격이 모두 무위로 돌아간 상황에 대해 두억시니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하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케이건은 머릿속으로 두억시니들이 분명 ‘인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되새겼다.

그러나 케이건은 곧 그 결심을 포기했다. 두억시니의 두 개의 머리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냄새.”

“맡자.”

오른쪽 머리가 대답을 끝냈을 때 케이건은 이미 요새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말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는 도주였다. 케이건은 ‘나가와 도깨비와 레콘과 딱정벌레’의 냄새가 어디서 날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후 두억시니도 그 냄새가 어디서 나는지 알게 되었다. 멀어지는 냄새를 향해 두억시니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로 삼천의 두억시니가 괴성을 내지르며 달렸다.

“사랑은 착한 뼈다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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