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6장 – 길을 준비하는 자 (11)
케이건은 제때 쪽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케이건이 뛰어들자마자 비형과 당원들은 황급히 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그들은 철문 뒤에서 숨소리까지 죽인 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잠시 후 철문을 두드리는 굉음이 들려왔다. 그 소리는 그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고 동굴 안에 있는 터라 대단한 진동음이 사람들을 강타했다. 사람들은 모두 귀를 틀어 막았다. 심지어 사모 페이까지도 황당한 표정으로 귀를 막았다. 굉음 속에서 케이건은 악쓰듯이 말했다.
“비형! 문을 가열하시오!”
“네? 뭐라고요?”
“문을 가열하라고!”
“어, 그러면 다칠 텐데요?”
케이건은 손 대자마자 타 죽을 정도로 가열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비인도적이어서가 아니라 비형이 받아들일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물이 끓을 정도로! 그 정도면 손을 댈 엄두는 못 내겠지. 철문이니까 쉽잖소!”
비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몇 개의 뜨거운 도깨비불을 만들어 철문에 붙였다. 사모는 철문의 색채가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밖에서 비명이 들려오며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귀를 막고 있던 손을 떼며 한숨을 내쉬었고 비형은 철문에 붙여 두었던 도깨비불을 얼른 없애 버렸다. 케이건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비형을 질타하지는 않았다.
“좀 있다 식으면 다시 붙이시오.”
그리고 당원들을 돌아본 케이건은 그들이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어 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계속되는 비일상적인 상황들에 미처 대응하지 못하던 당원들은 상황이 조금 진정되자 비로소 그곳이 그들의 요새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케이건이 요새를 보호하고 있음은 분명했지만, 그 과정에서 케이건은 당의 양해나 협조를 조금도 구하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행동했다. 그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을 지휘하고 있던 우두머리는 그런 자신의 심사를 명확하게 반영하는 표정을 지은 채 케이건에게 말했다.
“이제 와서야 소개한다는 것이 좀 우습긴 하지만, 나는 하르체 도빈이라고 하오. 어쩌실 작정이오?”
케이건은 조용히 되물었다.
“케이건 드라카요. 어쩔 작정이냐니, 무슨 말이오?”
“당신이 모든 상황을 다 통제하는 것처럼 보이니 묻는 거요. 설마 이제 와서 ‘여긴 당신들 요새니 당신들이 알아서 하라’라고 하지는 않으시겠죠? 바깥의 두억시니들은 어떻게 처리하고 저 산양을 쥐고 있는 나가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좀 지시해 주겠소?”
케이건은 무표정하게 하르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르체는 케이건이 자신의 말 속에 숨어 있는 뼈를 못 알아들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때 케이건은 하르체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런 표정도 없이 하르체를 바라보며, 케이건은 그 말에 대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고심했다. 하지만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나는 길잡이인데.’
케이건은 길잡이였다. 그리고 시구리아트 유료 도로당에 체류 중인 여행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케이건은 후자까지 고려하고 있지는 않았다.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될 때, 케이건은 ‘다른 것을 모두 거부하면서 자신에게 규정해 두었던 길잡이의 역할’만을 충실히 수행했다. 케이건은 그런 자신의 행동이 이곳의 주인인 당원들을 소외시키는 것이었음을 아주 힘들게 깨달았다. 무표정한 얼굴 뒤에서 케이건은 비명을 질렀다.
‘한 번에 하나씩만 요구해, 제발! 둘, 셋은 안 돼. 생각해 두지 않았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생각해 두지 않은 역할은 할 수 없어! 길잡이로 행동하면서 동시에 너희들의 손님으로 행동하라고? 불가능해!’
“하르체.”
갑자기 들려온 신비로운 목소리에 모든 이의 시선이 돌아갔다. 마루나래의 등 위에서 사모는 차분하게 말했다.
“부탁받지도 않고서 도와준 이에게 왜 도와줬냐고 따질 것까지는 없지 않을까. 물론 그것을 참견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도와준 것까지 참견이라고 하지는 않을 텐데.”
비형은 그것을 그날 저녁 일어난 가장 놀라운 사건으로 꼽았다. 두억시니의 출몰조차도 사모 페이가 케이건을 거든 것에 비하면 시시한 사건으로 여겨졌다. 케이건 또한 놀란 눈으로 사모를 바라보았다. 하르체는 사모의 목소리에 약간 몽롱한 기분까지도 느꼈다가 황급히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당신은 조용히 하시지! 지금 당신의 입장은 분명히 불법 침입자야.”
“당신들이 문을 열어 주었지.”
“그 산양으로 협박했잖아! 그리고 저 두억시니들을 끌고 온 것도 당신이고!”
당원들은 그 말에 새로이 분노를 불태우며 사모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사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두억시니들이 누구를 쫓아왔는지는 조금 전에 확실해진 것 같은데. 공격하기 전, 그 괴상한 두억시니는 도깨비불을 관찰하는 것 같더군. 그리고 뭐라고 말도 하는 것 같던데, 나는 듣지 못했어. 그 두억시니가 뭐라고 했는지 말해 줄 사람 없어?”
케이건이 무의식중에 대답했다.
“나가, 도깨비, 레콘, 딱정벌레.”
사모와 비형, 그리고 당원들이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케이건은 다시 말했다.
“나가, 도깨비, 레콘, 딱정벌레라고 말했다. 그리고 공격했다.”
“그랬나. 그렇다면 저 두억시니들이 나가, 도깨비, 레콘, 딱정벌레로 구성된 일행을 추적해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지나치게 대담한 추리일까?”
케이건의 고개가 홱 돌았다. 갑자기 케이건의 시선을 받게 된 비형은 당황했다.
“말하시오. 그들과 싸운 이유가 뭐라고 했소?”
“예? 어, 말씀드렸잖습니까? 그 유해의 뱀은 우리가 두억시니의 신을 죽였다고 말했, 아니, 닐렀습니다. 어, 그러고 보니 그 정도 이유라면 이곳까지 쫓아올 정도의 이유가 되긴 하겠군요?”
사모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곳에 있었고, 비슷한 니름을 들었어. ‘그 괴수는 너희들이 또 신을 죽이게 내버려 두진 않겠다’고 닐렀어.”
케이건은 비형과 사모를 번갈아 쳐다보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전대 미문의 누명이로군. 살신 누명이라니.”
당주 보좌관은 웃지도 않으며 말했다.
“정리하겠으니 들어 주시오. 당신들은 두억시니로부터 그들의 신을 죽였다는 혐의를 받았소. 그리고 그 때문에 화가 난 두억시니들이 이곳까지 당신들을 추적한 거요. 그렇다면 이제 내가 당신들에게 정말로 두억시니의 신을 죽였냐고 물어야 되는 거요?”
불행히도 비형은 보좌관의 질문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지하게 대답했다.
“발뺌하려는 건 아닌데요, 보좌관님. 그때는 밤이었고 너무 어두워서 확신할 수가 없군요. 우리는 보통 밤에 신을 죽이거든요. 낮에는 좀 뭣하잖아요?”
케이건은 한숨을 내쉬었고 사모는 미소를 지었다. 보좌관은 덩치 큰 도깨비를 날카롭게 쏘아보다가 다시 철문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부터 그 철문은 고요했다. 두억시니들은 철문이 쉽게 식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보좌관은 케이건을 보며 말했다.
“당신들의 용은 저 두억시니들을 쫓아 버릴 수 있을 거요. 불을 토할 줄 알 테니. 그렇지요?”
“당신도 이미 봐서 알겠지만 그 용은 말을 알아듣지 못하오. 성격은 어린애 같고. 륜이 위험에 처하면 도우려고 나서지만, 그런 식의 명령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소.”
“시도해 주시면 고맙겠소.”
케이건은 사모를 흘끔 바라보고는 말했다.
“저 나가가 있는 곳에 륜을 내려오게 할 수는 없소. 하르체. 당신들 중 한 명을 보내 줬으면 좋겠는데.”
하르체는 그렇게 했다. 당원 한 명이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사모는 그 당원이 어느 계단으로 올라가는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때 보좌관이 사모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당신. 그 산양을 계속 들고 있을 거요?”
“나도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게 내 안전의 담보물인 것 같아서.”
“뭣하러 그걸 잡았소?”
“먹으려고.”
“그럼 드시오.”
하르체와 다른 당원들이 분노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보좌관은 차분하게 말했다.
“곧 죽을 것 같군. 당신들은 산 것만 먹지 않소?”
사모는 고개를 약간 갸웃한 채 보좌관을 보다가 말했다.
“이걸 먹은 후에도 내 안전을 보장할 거야?”
“은편 일흔다섯 닢 내면.”
“……뭐라고?”
“두억시니가 당신을 따라온 것이 아니라면, 당신을 도로 통행자로 인정하는 것에 대한 문제는 한 가지밖에 없소. 아직 통행료가 수령되지 않았다는 거지. 대요금표에 따르면 나가의 통행료는 은편 열 닢이오. 그리고 대호는 열다섯 닢.”
“그런데 왜 일흔다섯 닢이지?”
“우리 도로에서 무단으로 사냥했을 경우의 벌금이 쉰 닢이오. 덫이나 활 등의 수렵 도구가 여행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으므로 사냥은 금지되어 있소.”
사모는 미소 지으며 금편 하나를 내밀었다. 북쪽에서 사용되는 것과 형태가 약간 다른 금편을 본 보좌관은 무게를 재어 보고 나서 거슬러 주겠다고 말했다. 사모는 불만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저 없이 산양을 집어삼켰다. 당원들의 얼굴이 파랗게 변했고 비형은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보좌관은 산양 한 마리가 그대로 입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보면서도 태연하게 말했다.
“차후에 이 도로를 이용할 때는 미리 길 양식을 준비하도록 하시오. 벌금을 내고 사냥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곤란하오.”
당원들이 불평 어린 표정을 지으면서도 감히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 못하는 것을 본 사모는 보좌관의 권위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상당히 높을 거라 생각했다.
“주의하지. 이제 나는 당신들에게 보호받을 수 있는 손님이야?”
“그렇소. 그리고 손님답게 무력 사용은 삼가시오.”
“아차. 그런 책임도 있나 보군.”
사모는 당했다는 몸짓을 과장되게 취해 보였다. 하지만 보좌관은 여전히 웃음기 없는 얼굴로 말했다.
“그렇소. 당신네들 사이에 어떤 불편한 관계가 있나 본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 관계는 이 도로를 떠난 다음 해소하시오. 그것은 유료 도로당의 규칙이고, 고대의 왕들도 그 규칙은 존중했소. 그래서 왕의 죄인이라도 유료 도로 상에서는 무력으로 체포하지 못했소.”
사모는 고대의 왕들이 그 규칙을 존중했다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보좌관의 사리에 맞는 언동은 존중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비형이 엉뚱한 말을 꺼내었다.
“왕들도 못 하는 게 많았군요?”
케이건은 비형을 돌아보았다. 비형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보로에서 당신이 그러셨죠. 고대의 왕들도 사원의 봉문은 건드리지 않았다고. 그리고 보좌관님은 왕들이 유료 도로에서 죄인을 무력으로 체포할 수 없었다고 하시는군요. 그렇다면 왕이 못 하는 일이 꽤 많았나 보군요? 왕은 뭐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 아닌가요?”
“제왕병 환자들은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선지자나 키타타 자보로 같은 이들이 뭐든 제멋대로 하려는 망나니를 그렇게 원할 것 같지는 않소. 비형.”
비형은 입을 벌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당원의 말을 전해 들은 륜은 난감한 표정으로 아스화리탈을 바라보았다. 케이건은 도깨비불 하나로 아스화리탈을 마음대로 조종했지만 륜은 그런 기지를 이끌어낼 수 없었다. 팔짱을 낀 채 바라보는 티나한의 눈초리를 거북하게 느끼며 륜은 아스화리탈을 들어 올렸다. 아스화리탈은 륜의 두 손에 몸을 맡긴 채 긴 머리와 네 다리, 그리고 꼬리와 날개까지 축 늘어뜨렸다.
“죽은 척은 관두고 내 말 좀 들어 봐. 저 두억시니들을 쫓아낼 수 있어?”
아스화리탈은 륜의 목소리에 반응했지만 무슨 말인지는 도통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고개만 좌우로 까딱거리는 어린 용을 보며 륜은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티나한이 결국 참견하고 나섰다. 륜은 티나한이 내놓은 의견에 거의 울고 싶은 기분까지도 느꼈지만 다른 의견을 내놓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그 의견을 따랐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스화리탈은 멍한 눈으로 티나한의 혼신을 다한 두억시니 연기와 륜의 처절하기까지 한 용 연기를 감상해야 했다.
“나는 사나운 두억시니다. 우워어어. 나는 정말 사납다.”
“내 불을 받아라. 후우우우. 내 불을………….”
‘잠깐. 저는 꼬리가 없는데요?’
‘발이라도 올려.’
륜은 울먹거릴 듯한 얼굴로 왼발을 얼굴 앞에 올렸다. 두 팔을 날개처럼 펼친 채 오른발로만 서서 비틀거리는 륜의 모습은 실로 가관이었다. 륜은 처참한 기분 속에서 자신의 왼발에 입김을 불었다.
“자. 내 불을 받아라. 후우우우. 정말 뜨겁지?”
“으아아, 뜨겁다. 너무너무 뜨겁다.”
티나한이 방바닥을 구르며 고통스러워하는 것으로 장대한 연기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륜과 티나한은 아스화리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넋이 나간 듯한 아스화리탈의 모습을 보고는 작게 속삭였다.
‘통하는 것 같지?’
‘솔직히 대답해도 돼요?’
‘하지 마. 한 번 더 해 보자.’
“나는 진짜진짜 사나운 두억시니다……………..”
두 사람이 두 번 더 같은 연기를 반복한 후에도 아스화리탈은 멍한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티나한은 최소한 관심을 잃지는 않은 것을 보니 뭔가 감동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고 륜은 아스화리탈이 너무 기가 막혀 그러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하지만 똑같은 짓을 반복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륜은 아스화리탈을 안아 올린 다음 창가로 걸어갔다.
“제발 우리가 했던 대로 해 줘. 부탁이야!”
그리고 륜은 창밖으로 아스화리탈을 던지듯 날려 보냈다. 두 사람이 아스화리탈에게 뭔가 감동을 준 것은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아스화리탈이 불에 타며 괴로워하는 티나한의 박력 넘치는 연기를 그대로 재연해 보였을 리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