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6장 – 길을 준비하는 자 (13)
노기 하수언은 우수한 도깨비 대장장이였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하수언 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나이 열다섯이 되었을 때 이미 하수언 지방 최고의 대장장이로 손꼽혔다. 노기가 특히 장기로 삼았던 것은 기계 장치 분야였다. 그는 자신의 재주로 동료 도깨비들을 즐겁게 할 움직이는 인형이나 장난감 등을 만들어 내었다. 노기가 만들어 낸 걸작들 중에서는 특히 강철 딱정벌레가 유명하다. 그 딱정벌레는, 비록 그의 야심 찬 시도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딱정벌레는 볼품사납게 걸어 다녔고 사람들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으며 한밤중에 죽은 자라도 일어날 것 같은 괴성을 질러 귀먹은 도깨비를 제외한 모든 도깨비들을 잠자리에서 뛰쳐나오게 만드는 등의 사랑스러운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수천 개의 톱니바퀴와 지렛대, 도르래, 그리고 노기가 불어넣은 도깨비불 몇 개가 이루어 낸 기적이었다. 그 누구도 그 작동 원리를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도 질문할 생각을 못했지만 노기 자신도 알지 못하는 듯했다. 그 증거로 노기는 무수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딱정벌레를 만들지 않았다. 물론 도깨비들은 우연의 주관 하에 어쩌다가 만들어 낸 작품이라 해서 그 딱정벌레를 폄하하지는 않았다. 도깨비들의 속담을 따르자면 ‘길에서 돈을 주우려면 최소한 발아래는 살펴야 하는’ 것이다. 같은 속담이 노기에게 적용된다면 ‘우연히 강철 딱정벌레를 만들어 내었다면 최소한 뭔가를 만들어 낼 생각은 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노기는 그만이 ‘우연히’ 만들어 낼 수 있는 재미있는 창작품들을 남기다가 나이 예순이 되었을 때 생에 작별을 고했다. 그가 죽은 이후로 도깨비들은 결코 그런 ‘우연의 장난감’들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도깨비들이 옳았던 것이다. 행운도 그걸 찾아다니는 사람에게 깃드는 것이다. 뒤집어 말한다면, 행운이 노력하는 자의 위대함을 깎아내리지는 않는다는 말도 된다. 그래서 도깨비들은 노기의 강철 딱정벌레를 우연의 소치로 치부해 폄하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알고 있던 갈로텍은, 그래서 눈앞에 놓인 도면을 보며 머리를 싸매어야 했다. 갈로텍은 노기 하수인이 “나는 할 바를 다 했어. 어쩌면 우연히 작동할지도 모르지.”라고 말한 것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갈로텍은 자신 속에서 노기를 불러내어 확인하고 싶었지만 워낙 오래간만에 의식의 전면으로 나섰던 그 도깨비 대장장이는 피로감 때문인지 깊은 잠에 빠져들어 갈로텍의 계속된 소환에 불응했다. 물론 갈로텍에게는 복잡한 기계의 설계도를 쉽게 읽어 내는 능력 같은 것은 없었다. 도면을 바라보며 고심하던 갈로텍은 결국 소용이 없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다시 노기를 불렀다.
소용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상황이 더 나빠졌다. 갈로텍의 부름에 대답한 것은 그가 전혀 달가워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게 뭐야? 무슨 설계도 같은데?”
“주퀘도. 당신을 부르지는 않았는데요.”
주퀘도는 갈로텍의 항의를 무시하며 갈로텍의 입술을 움직였다.
“노기 하수언이 그린 건가? 그에게 뭘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당신이 알 바 아니잖습니까.”
“노기도 짜증스러웠겠군. 금속판에 철필로 도면을 그려야 했으니. 게다가 너희들처럼 불을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자들도 만들 수 있게 설계하려면 몇 배나 힘들었을 텐데.”
갈로텍은 놀랐다. 주퀘도가 말한 것은 노기가 투덜거렸던 말 그대로였다. 문득 갈로텍은 주퀘도가 생전에 거장으로 불렸던 사람임을 떠올렸다. 비록 성격이 전혀 다른 분야의 거장이긴 했지만, 어쩌면 거장은 다른 거장의 솜씨를 알아볼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갈로텍을 흥분하게 했다.
갈로텍은 주퀘도가 신경 쓰지 않던 왼손을 움직여 탁자에 있던 물그릇을 들어 금속판 위에 부었다. 주퀘도는 갈로텍이 무슨 짓을 하는지 보겠다는 듯이 뒤로 물러나 몸을 쓰게 해 주었다. 갈로텍은 수건을 들어 금속판을 닦았다. 그러자 예리한 철필에 의해 그어진 부분에 물기가 남았다. 물은 열을 삼킨다. 주퀘도는 나가의 시력을 통해 금속판 위에 선명한 도면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갈로텍은 다시 뒤로 물러나며 주퀘도를 앞에 내세웠다.
“주퀘도 보입니까?”
“이런, 멍청한 질문을. 눈은 네 거잖아. 네가 보이면 나도 당연히 볼 수 있어. 재미있는 도면이군.”
“이게 제대로 작동하겠습니까?”
“오오!”
“예? 왜 그러시죠?”
“작동하는 거였구나.”
갈로텍은 주퀘도를 한 대 때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자기 자신을 때리지 않고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분을 억눌러야 했지만, 주퀘도는 갈로텍이 싫어하는 웃음소리를 몇 번 터뜨린 다음 말했다.
“상당히 복잡한데. 너희 대장장이들이 이걸 만들 수 있을까? 인간 대장장이들도 도깨비 방식으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어. 아마 최후의 대장장이도 도깨비 방식으로는 못 만들걸.”
“불을 자유자재로 쓸 수 없는 사람도 만들 수 있게 설계해 달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습니다. 노기도 알아들었고요.”
“그렇다면 다행이군. 그런데 이건 도대체 뭐지……. 이러면 내부의 온도가 떨어지는 건가?”
갈로텍은 깜짝 놀랐다.
“주, 주퀘도! 이 도면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여기 노기가 끄적거려 놓았는데. ‘두 기체가 혼합되면 내부 온도가 하강한다.’ “
갈로텍은 자신의 얼굴을 한 대 때리는 행위에 대해 심사숙고하기 시작했다. 그런 갈로텍의 고민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주퀘도는 흥미롭다는 듯이 도면을 들여다보았다.
“대충 보건대 대단한 물건인가 보군. 나야 도저히 이치를 모르겠다만, 아무래도 이건 내부를 차갑게 만드는 장치인 것 같은데? 그런데 왜 이런 복잡한 물건이 필요하지? 뭔가를 차갑게 만들려면 그냥 커다란 물통과 그 속에 가득 든 물만 있으면 되는 거잖아.”
“당신 고향을 기준으로 생각하지 말아요. 여긴 하텐그라쥬입니다. 금속통에 넣어 둔 물은 금방 뜨뜻해집니다.”
“그러면 서늘한 동굴 속에 넣어 두거나 땅속에 묻으면 되잖아.”
“그럴 수 있으면 저도 그랬을 겁니다. 그런 방법을 쓸 수가 없기 때문에 이런 걸 부탁한 거죠.”
“너희들 수호자들이 여자들 몰래 마실 찬 술을 보관해 두려는 건가?”
“우리에겐 그 술이라는 정신을 좀먹는 음료가 없어요. 젠장. 도와줄 것이 없다면 좀 내려가시죠? 죽은 지 그렇게 오래되었는데 왜 그렇게 활기찬 거죠?”
“자고 싶지 않아. 갈로텍.”
“왜 자고 싶지 않은데요?”
“못된 꿈을 꿨어. 잠들기보다는, 네가 말하는 그 정신을 좀먹는 음료를 마시고 싶군.”
어이없어 하던 갈로텍은 문득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담고 있는 불편한 심리를 깨달았다. 갈로텍은 조심스럽게 입을 움직였다.
“무슨 꿈을 꿨습니까?”
“전투의 꿈이었어.”
“전투야 당신의 인생이었잖습니까.”
“특별했던 전투가 하나 있지.”
갈로텍은 이해했다. 거장의 자존심에 남겨진 그 무서운 상처는 평생 그를 괴롭힌 것으로도 모자라 죽은 후에도 거장을 괴롭히고 있었다.
“시구리아트 유료 도로당과의 전투군요.”
주퀘도는 침묵했다. 갈로텍은 잠시 입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지만 그걸 이용해서 꺼낼 만한 말은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래서 갈로텍은 잠시 후 주퀘도가 갑자기 입을 움직였을 때 차라리 안도감을 느꼈다.
“5개월 동안 죽어 간 병사가 1만 명이었어! 1만 명이 죽었는데도 난 그 빌어먹을 요새에 어떤 결정적인 타격도 줄 수 없었어. 결국 은편 열 닢을 내야 했지. 그게 내 자존심의 값이었어. 그리고 내가 지불해야 했던 전쟁 배상금이었고, 제기랄, 그 악당들은 차라리 내 목을 요구했어야 했어! 은편 열 닢이라니, 사악하기 짝이 없는 놈들 같으니!”
갈로텍은 주퀘도가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정신적인 한숨을 내쉰 다음, 갈로텍은 의식의 배후로 조금 물러나 자리 잡았다. 그리고 왕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제왕병자, 혹은 죽음의 거장이라 불렸던 인간의 추억을 경청했다. 수십 번째 듣는다는 내색은 하지 않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