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6장 – 길을 준비하는 자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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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6장 – 길을 준비하는 자 (14)


우레 소리를 닮은 ‘쿠르르르’ 하는 소리에 티나한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분명 무거운 물체가 빠른 속력으로 구르고 있는 소리였다. 그리고 잠시 후 창밖으로 시구리아트 산맥의 폭풍보다 더 거센 기세로 돌멩이들이 떨어져 내렸다. 티나한은 재빨리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두억시니들의 머리 바로 위로 떨어진 돌들은 두억시니의 살점을 으깨고 뼈를 부수었다. 소름 끼치는 비명과 함께 두억시니들은 뒤로 물러나려 발버둥 쳤다. 하지만 삼천이나 되는 대규모의 인원이 밀집하여 있었기 때문에 뒤로 물러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시 묵직한 소리가 울린 다음 허둥거리는 두억시니들의 머리 위로 또다시 돌멩이의 벼락이 쏟아져 내렸다. 티나한은 감탄했다.

“위쪽에 투석구들이 배치되어 있군!”

티나한의 추측대로였다. 요새 상층부에는 바깥과 완전히 격리된 긴 방이 있었다. 그 안에서는 투석수라 불리는 자들이 방의 벽면에 있는 구멍들을 통해 방 안에 쌓여 있던 돌들을 굴려 넣고 있었다. 궤도를 따라 가속하며 굴러내린 돌들은 허공에 해방되자마자 가공할 살육 무기가 되어 두억시니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두억시니들은 악다구니를 쓰며 가까스로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낙석은 겨우 시작 신호에 불과했다. 두억시니들이 낙석의 궤도에서 물러나자마자 무수한 쇠뇌들이 요새에서 뿜어져 나왔다. 바깥에서 요새를 본 적이 있는 티나한은 도대체 어느 구멍에서 그 많은 쇠뇌들이 발사되는 건지 의아하게 여겼다. 포악한 화살들이 두억시니들의 무리를 덮치자 거친 비명과 말을 이룰 수 없는 함성들이 산맥을 진동시켰다. 티나한은 한껏 흥분하여 방안을 돌아보았다. 전사의 고양된 투쟁심을 표현하려던 티나한은, 그러나 동료들의 우울한 얼굴을 보며 움찔했다.

륜은 사모 페이에 대한 생각을 하며 멍하니 아스화리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비형은 바깥에서 들려오는 비명들을 듣지 않겠다는 듯이 자신의 귀를 틀어 막은 채 창에서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케이건은 손에 모포를 든 채 걸어오고 있었다. 티나한의 눈을 마주 보며 케이건은 모포를 살짝 들어 올려 보였다.

“창문을 막고 싶은데. 더 볼 거요?”

“창문을 왜?”

케이건은 턱으로 비형의 등을 가리켜 보였다. 티나한은 창문 앞에서 비켜섰고 그러자 케이건은 모포를 뭉쳐 창문을 틀어 막았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날카롭고 처절한 소리가 한결 줄어들었다. 비형은 고개를 돌려 케이건 쪽을 보고는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건은 문 앞으로 걸어가 자리를 잡으며 말했다.

“모두들 자도록 하시오.”

“너는 안 잘 거야?”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고, 게다가 암살자가 이 요새 안에 있소. 그녀는 이 안에서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데 동의했지마는 조심해 두는 쪽이 좋을 것 같소.”

무섭고도 소름 끼치는 밤이었다. 시구리아트 관문 요새는 도로 여행자들에겐 든든한 쉼터일지 모르지만 적으로 규정한 상대에게는 흉포하기 짝이 없는 돌의 야수였다. 그러나 두억시니들 또한 한치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전투는 관문 요새의 초반 우위에도 불구하고 장기전으로 바뀌었다. 케이건은 밤새도록 통로를 뛰어다니는 당원들의 발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새벽이 가까워왔을 때 케이건은 또 다른 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두억시니들이 돌을 집어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쇠뇌의 사거리 바깥에서 던지는 것이라 위협적일 정도로 큰 돌은 던지지 못하는 듯했지만 돌이 요새와 부딪히며 일으키는 진동음은 바위 속에 있는 그들을 불안하게 하기엔 충분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티나한은 흉한 욕짓거리를 중얼거리며 창가로 다가가 모포를 잡아 뽑았다. 빗소리와 함께 전투의 소음이 방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티나한은 부리를 딱 부딪친 다음 말했다.

“자갈을 던지고 있군, 제기랄 것들!”

투덜거리던 티나한은 갑자기 손을 얼굴 앞으로 들어 올렸다. 케이건은 창문을 통해 날아든 것이 티나한의 손아귀에 붙잡히는 것을 보았다. 아울러 ‘퍽!’ 하는 소리도, 티나한은 손바닥을 폈고 거기엔 돌멩이가 붙잡혀 있었다. 케이건은 인간의 주먹만 한 돌을 보고는 자갈이라기엔 좀 크다고 생각했다. 티나한은 벼슬을 곤두세웠다.

“얼씨구!”

그리고 티나한은 두억시니들에게 돌을 도로 던지려 했다. 그러나 창문은 그런 짓을 하기엔 너무 좁았다. 티나한은 씨근거리며 돌을 그냥 창밖에 내 버린 다음 모포로 창을 틀어 막았다.

“젠장. 잠깼다. 케이건. 내가 망을 볼 테니 자도록 해.”

케이건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케이건은 쉴 팔자가 되지 못했다. 하늘빛이 보다 밝아 올 때 밖에서 잠긴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티나한이 깨우기도 전에 케이건은 일어나 앉았고 바라기까지 당겨 쥐었다. 티나한도 긴장하며 문을 바라보았다. 문이 열리며 나타난 것은 한 손에 검을, 다른 손에는 등롱을 든 당원이었다.

“케이건 드라카. 당주님께서 당신들을 부르셨습니다.”

“당신들? 우리 모두 말이오?”

“그렇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그리고 두 사람은 비형과 륜을 깨웠다. 이미 륜이 나가임이 밝혀졌지만 케이건은 륜에게 방풍복과 천을 착용하도록 명령했다. 긴장하고 있을 것이 뻔한 요새 내의 당원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시간을 조금 소비한 다음, 그들은 참을성 있게 기다리던 당원의 안내를 받아 걸어갔다.

요새 내를 걸어가며 일행은 전투 중이라는 분위기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곳곳에서 당원들이 다급한 얼굴을 한 채 달리고 있었고 쇠뇌나 음식, 혹은 돌 상자 등을 나르는 인원들도 볼 수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 투구를 자꾸만 매만지는 손길, 그리고 딱딱하게 굳은 채 주위의 소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얼굴들. 전투의 열기는 후끈할 정도였다. 그러나 비형은 그 굳어 있는 얼굴들에서 요새에 대한 그들의 신뢰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륜은 온몸을 가리고 있었지만 당원들이 자꾸만 흘끔거리는 것을 느끼며 불안해했다. 하지만 비형은 그들이 륜의 어깨에 앉아 있는 아스화리탈을 바라보는 것임을 설명해 주었다.

당주의 방 앞에도 무장한 당원들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일행을 안내한 당원은 그들에게 일행을 인계한 다음 돌아갔다. 무장 경비병들은 문을 열어 주기 전 일행의 무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내놓고 들어가셔야겠습니다.”

티나한은 부리를 부딪쳤지만 케이건은 그런 시간조차도 낭비하지 않았다. 문을 벌컥 밀어 버리는 케이건의 모습에 경비병들은 당황하여 검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케이건은 그들 쪽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안쪽을 향해 말했다.

“내 검과 함께 들어갈 수 없다면 돌아가겠소.”

방 안에서 보좌관의 딱딱한 음성이 들려왔다.

“함께 들어오시오. 어차피 레콘은 무기가 있으나 마나 위험하긴 마찬가지겠지.”

케이건은 경비병들에게 ‘들었지? 하는 표정을 지어 주는 일까지도 생략했다. 그냥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케이건의 모습을 보며 경비병들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티나한은 그런 표정을 지었고, 그래서 경비병들은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마지막으로 들어선 비형이 문을 닫았다. 전에 이곳에 와 본 륜은 자신들이 가운데 있는 커다란 문으로 들어왔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일행은 탁자를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는 몇 명의 고위 당원들과 함께 보좌관이 앉아 있었다. 휘장이 쳐진 것을 본 륜은 그 뒤에 보늬 당주가 있으리라 짐작했다. 가까이 있던 고위 당원 하나가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일행은 의자에 앉았다. 물론 티나한은 그냥 바닥에 앉았다. 아무도 자기 소개를 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리고 보좌관 역시 그럴 마음은 없는 듯 곧장 케이건에게 말했다.

“상황이 상황이니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것을 용서하시오. 여러분들이 저 두억시니에 대해 아는 것을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소.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케이건은 보좌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어젯밤 전투 시작 시에 물어봤다면 모르겠지만, 왜 이런 이상한 시간에 묻는 거요?”

“비가 그치고 있소.”

티나한은 그 말에 반가운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하품을 하던 비형은 의아한 표정으로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보좌관은 차분하게 설명했다.

“해가 뜰 때쯤엔 완전히 멎을 것 같소. 그럼 당신들은 떠나겠지. 그래서 떠나기 전에 묻기 위해 이런 이상한 시간에 당신을 불러온 거요.”

비형과 륜은 깜짝 놀랐다. 비형이 먼저 말했다.

“어, 떠나도 되는 겁니까?”

“무슨 말이오?”

“그러니까, 어,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들을 쫓아온 두억시니들을 당신들에게 떠넘기고 그냥 떠나도 되는 겁니까?”

비형의 질문에 몇몇 당원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말은 없었지만 그들의 얼굴은 비형의 말에 찬성한다고 외치는 듯했다. 하지만 보좌관은 냉엄하게 말했다.

“그럼 당신이 저 신을 잃은 자들을 태워 주겠소?”

비형은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절할 것 같았다. 창백해진 도깨비를 본 보좌관은 약간 부드러운 표정으로 — 그래 봐야 강철 같던 얼굴이 돌멩이 같은 얼굴로 바뀐 정도였지만 — 말했다.

“당신들이 등 뒤에 두억시니가 아니라 성난 하늘치를 끌고 왔다 하더라도 통행료를 받은 이상 당신들은 우리 도로의 여행자요. 그리고 우리는 도로의 여행자를 보호하는 유료 도로당이오. 당신들은 그냥 떠나도 무방하오. 다만 선의를 베풀어 정보를 제공해 주면 감사하겠소.”

륜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니……, 그래도 도리상 그건…..”

“그것이 당의 규칙이고 당이 지금껏 지켜 온 방식이오.”

보좌관은 륜뿐만이 아닌 모든 사람을 향하듯이 말했다. 비형의 말에 동조하던 당원들은 묵직한 한숨을 내쉬며 탁자를 바라보았고 륜은 천 속에서 입을 다물었다. 보좌관은 자신의 말이 끼친 영향을 주의 깊게 살피듯 탁자를 둘러보고 나서 다시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케이건은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제공할 것이 없소.”

당원들이 실망과 분노를 담은 채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사후 강직을 시체가 죽음을 표현하기 위해 추는 춤으로 볼 수 있겠소? 주전자 부리에서 솟아오르는 수증기는 불의 뜨거움에 대한 물의 고발이오? 어떤 시적 감성은 그런 설명에서 만족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당신들의 싸움에 요구되는 것은 보다 산문적인 설명일 거요. 그리고 나는 두억시니에 대해 그런 종류의 설명을 제공할 능력이 없소. 두억시니에겐 법칙이 없소.”

“제안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시단 말이오?”

“물론 있소.”

륜은 케이건의 당연하다는 듯한 표현에 놀랐다. 그는 케이건이 이들에게 제안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상상할 수 없었다. 비형과 티나한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그들은 케이건을 돌아보았다. 보좌관은 찌르는 듯한 눈빛으로 케이건을 보며 질문했다.

“삼가 들려 주길 바라오. 그게 뭐요?”

“우리가 떠난 뒤 관문을 개방할 것을 제안하오. 그 두억시니들이 우리를 쫓아온 거라면, 관문을 통과하여 우리를 계속 추적할 거요. 간단히 말해서 그냥 지나가게 해 주라는 제안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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