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6장 – 길을 준비하는 자 (15)
마루나래는 방바닥에 옆구리를 대고 두 다리는 제멋대로 뻗은 채 잠들어 있었다. 거대한 코끼리 무리를 추적하는 꿈이라도 꾸는 건지, 마루나래는 계속해서 그르릉거리고 이를 갈고 앞발을 꿈틀거렸다. 꿈속 세계에서는 코끼리의 두개골을 깨어 버리는 일격일 것이 분명한 그 앞발의 꿈틀거림도 현실의 사모에겐 별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사모 페이는 두 팔로 머리를 받치고 흑사자 모피로 하반신을 덮은 채 마루나래의 옆구리에 누워 있으면서도 불안은 느끼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살벌한 침대에 누운 채 사모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밖의 광경도 만만찮게 살벌했다. 새벽이 다가옴에 따라 조금씩 밝아 오는 하늘은 이따금씩 쇠뇌로 절단되곤 했다. 빠른 속력의 쇠뇌는 공기와의 마찰로 달아올랐기 때문에 사모에겐 뚜렷하게 보였다. 사모는 그 쇠뇌들이 어디에 꽂힐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가끔 반대 방향에서 날아오르는 돌멩이들이 보였을 때 사모는 안도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어 사모는 지금껏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바보같이 다리는 왜 만들어 주었을까.’
사모는 허무에 봉헌된 의식 같은 그 무의미한 노동을 견딜 수 없었다. 한때 지성이 있었고 아름다움을 느꼈고 도덕이 무엇일지 고민했을 자들이 자신의 가치를 무한히 전락시키고 있는 모습은 그녀에게 참기 힘든 고통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사모가 자신의 고통을 베어 내듯 나무를 베었기에 두억시니들은 이곳까지 왔다. 그리고 도로를 만드는 인간들과 격심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물론 밤새도록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은 쇠뇌와 돌멩이였고 그나마도 지금은 충분한 거리를 둔 채 상대편의 의지를 시험하듯 간헐적으로 쇠뇌와 돌멩이를 주고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모에겐 생전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사모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은 유료 도로당의 사람을 보는 관점이었다.
이곳에서는 사람을 사람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모든 요소가 무시되고 있었다. 여행자의 품성과 지성과 감성 따위는 유료 도로당에게 조금도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오로지 여행자가 통행료를 지불하느냐 지불하지 않느냐의 이분법만이 존재했다. 사람에 대한 가장 큰 모욕일 수 있는 그 장면에서, 그러나 사모는 동시에 정반대의 의미도 발견했다. 여행자의 외모와 종족과 고향 같은, 어떤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본질적으로 사람다움과는 별 관련이 없는 것들 또한 유료 도로당의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다.
보좌관은 말했다. ‘저 두억시니들은 통행료 안 냈다.’
사모는 그 말을 뒤집어 보았다. ‘통행료를 내면 저들은 여행자다.’
케이건의 제안에 놀란 것은 그의 동료들뿐만이 아니었다. 당원들 또한 이 대담한 제안에 경악하여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보좌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제안이 될 수 없소.”
보좌관의 말에 당원들은 당황했다. 보좌관은 엄격한 얼굴로 말했다.
“용감한 제안이라는 것은 인정하겠지만 그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소. 그건 우리로 하여금 도로 사용자의 안전을 무시하라는 말이잖소.”
“우리가 산맥 반대편에 도달한 것이 분명한 시점에 관문을 개방하면 되잖소?”
“도로를 떠난 다음에?”
“그렇소. 그 시점에선 우리는 더 이상 도로 사용자가 아니지요. 설마 도로를 떠난 다음에도 우리를 보호해야 하는 건 아닐 텐데.”
“물론 그렇소. 당신들이 도로를 떠난다면 그 다음엔 당신들에 대해 우리가 신경 쓸 것은 아무것도 없소. 그렇더라도 문제는 남아 있소.”
“어떤 문제요?”
“우리가 그냥 관문을 열어 준다면 두억시니들에게 도로의 무임 사용을 허용하는 것이 되오.”
“두억시니들은 요금 징수의 대상이 될 수 없소. 보좌관.”
“우리 도로를 이용하는데?”
“당신들이 지금도 당신들의 도로 위를 흐르고 있는 빗물에게 통행료를 징수하는 건 아니잖소.”
탁자 주위의 당원들이 낮은 탄성을 질렀다. 부리를 꽉 다문 채 대화를 듣고 있던 티나한 또한 케이건을 거들고 나섰다.
“케이건의 말이 옳다.”
당원들은 티나한을 바라보았다. 티나한은 수염볏을 쓰다듬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는, 아니, 최소한 나는 내 고민거리를 당신들에게 떠넘기고 싶지 않아. 그 두억시니들이 나를 쫓아온 거라면 그건 나와 내 철창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당신들이 통행료를 받은 것 때문에 우리를 보호하고 싶다면, 케이건의 말대로 우리가 도로를 떠날 때까지 보호하면 되겠지. 그 다음에 두억시니를 통과시켜.”
티나한의 말이 끝나자 비형 또한 말했다.
“그러세요. 보좌관님. 조금 전에 케이건이 빗물에게는 통행료를 징수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는데, 제 생각도 그래요. 저렇게 규칙이 없는 자들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쏟아지는 빗물과 마찬가지잖아요. 두억시니들이 통행료를 내지 않고 지나간다 해서 당신들의 규칙이 침해되는 건 아닌 것 같은데요?”
당원들의 눈이 자연스럽게 륜에게 옮겨왔다. 마치 당신이 말할 차례 아니냐는 듯이 바라보는 당원들의 눈에 륜은 잠시 당황했다. 왼팔에 감긴 아스화리탈의 꼬리를 쓰다듬으며 륜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보좌관님. 두억시니들은 신을 잃었지요. 그 자들에게는 규칙도 법칙도 없습니다. 저 두억시니들을 공격한다고 해서 저들이 대가를 지불하고 도로를 이용한다는 당신들의 규칙을 이해하게 될 것 같지도 않군요. 나쁜 짓을 한 어린이를 체벌하는 건, 그게 나쁜 짓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아무리 가르쳐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때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마도 케이건은 그런 뜻에서 빗물이라고 말한 것 같군요. 빗물에게 여기 내려라, 저기로 흘러라 하는 식으로 규칙을 가르칠 수는 없잖습니까.”
탁자 주위의 고위 당원들은 만족한 얼굴이 되었다. 그중 한 사람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 분들의 말이 옳은 듯합니다. 이 분들은 지금 훌륭한 처신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자신들의 문제는 자신들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시면서도 우리가 우리의 규칙을 포기할 필요도 없도록 하셨지요. 우리가 그 제안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 분들의 자존심과 배려의 마음을 모욕하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보좌관은 고위 당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칠푼디.”
“예. 보좌관님.”
“나는 이토록 오만한 자들의 자존심을 별로 존중하고 싶진 않소.”
탁자 주위로 당황과 놀람, 그리고 분노가 차례로 지나갔다. 비형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고 티나한은 벼슬을 꼿꼿이 세운 채 보좌관을 노려보았다. 그 눈초리의 예리함이라는 것이 시선으로 보좌관을 찔러 죽일 것 같았다. 당원들도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거나 놀란 표정으로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칠푼디라 불린 당원은 약간 더듬거리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자들에게는 누구를 통행료 징수 대상으로 보고 누구를 징수 면제 대상으로 봐야 하는지 우리에게 지시할 권한 같은 것이 없소. 칠푼디.”
칠푼디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 말은 정확히 케이건 일행을 향하고 있었다. 케이건은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보좌관을 응시했다. 보좌관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에게 여행자란 여행자같이 생긴 자들이 아니오. 칠푼디. 여행자가 무엇인지 말해 주겠소?”
칠푼디의 얼굴에 당혹의 기색이 떠올랐다. 보좌관은 그런 그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칠푼디의 얼굴에 떠올랐던 표정이 차례로 다른 당원들의 얼굴에도 떠올랐다. 그것은 자각의 표정이었다.
칠푼디가 말했다.
“여행자란 자신의 목적을 위해 길을 걷는 자들입니다.”
“그럼 우리 유료 도로당은 무엇인지 말해 주겠소?”
“우리는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를 위해?”
“자신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보좌관은 천천히 케이건에게 고개를 돌렸다.
“케이건 드라카. 저 두억시니들은 목적 없이 쏟아져 아무렇게나 흐르는 흙탕물이 아니오. 당신들을 쫓는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소.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목적을 찾아 길을 걷기로 결심한 사람들을 위해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오. 그 목적이 무엇이든 상관없소. 우리는 그들의 목적이나 꿈을 평가할 수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 의지를 통행료로 확인하오. 통행료를 내지 않으면 우리가 준비한 길을 걸을 수 없소. 그들은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거요. 이건 말이오, 케이건. 완전히 저 두억시니들과 우리의 문제요. 저 두억시니들이 당신들을 쫓는다고 해서 마치 크게 배려해 준다는 듯이 그냥 통과시키느니 말라느니 말할 권리가 당신네들에겐 없소. 그것은 참견이오. 그것도 오만한.”
케이건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제안할 것이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