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6장 – 길을 준비하는 자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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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6장 – 길을 준비하는 자 (19)


며칠 동안 내린 비는 시구리아트 산맥의 무른 표면을 씻어내렸다. 흐르는 진흙은 계곡물을 온통 흐려 놓았다. 가인의 손수건을 허공에 흔들면 바람의 눈물이 배어날 것 같은 습기 찬 공기 속에서 산개구리는 황홀경을 느끼며 꽉꽉댄다. 그 울음소리가 젖은 나뭇잎들이 켜켜이 쌓인 계곡을 요란하게 울린다.

아마도 그 개구리는 갑자기 날아온 두억시니의 손에 붙잡힐 때까지 황홀함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두억시니는 개구리를 삼키려 했다. 약간의 문제가 없었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입 대신 코로 개구리를 삼키려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같은. 숨이 콱 막힌 두억시니는 요란하게 재채기를 하고 말았다. 코에서 튀어나온 개구리는 계곡의 흙탕물 속에 빠졌다. 퐁당.

두억시니는 자신의 개구리를 뺏어 먹은 흙탕물에 대해 격분했다.

“기름칠 한 평화! 애국자 잡탕 딸국질!”

분노를 더 참을 수 없었던 두억시니는 두 팔을 위로 치켜올렸다. 손가락은 모두 열 개였으며 동시에 쉰 개였다. 거대한 손에 달린 손가락들이 모두 팔이었기 때문이다. 바람직하게도 오른손에는 다섯 개의 오른팔들이, 왼손에는 다섯 개의 왼팔들이 달려 있었다. 두 손(혹은 열 개의 손을 높이 든 두억시니는 그것으로 계곡물을 후려쳤다. 흙탕물이 요란하게 튀어 올라 두억시니를 덮쳤다. 엉겁결에 눈을 감았지만 미처 감지 못한 세 개의 눈에 물이 스며들었다. 기겁한 두억시니는 켁켁거리며 계곡 위로 줄행랑쳤다.

동료 두억시니들에게 ‘개구리를 훔쳐 먹고 화가 나면 상대방의 눈을 핥는 혐오스러운 괴수’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전달하려던 그 두억시니는, 다른 두억시니들이 모두 한쪽 방향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두억시니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동료들과 정반대 방향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독립심이 강한 두억시니였거나 전후 관계에 대한 개념이 약간 민망한 수준인 두억시니였던 듯하다. 그 방면에서 별로 신통한 것을 발견하지 못한 두억시니는 어리둥절해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시구리아트 관문 요새의 철문이 열리고 있었다. 쪽문이 아닌, 거대한 철문 자체가 열렸다. 두억시니들은 긴장한 채 드러난 거대한 동굴을 바라보았다. 그때 그 안의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가 걸어 나왔다. 눈이 상당히 좋은 두억시니가 그것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여보!”

어떤 두억시니도 그 말에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리고 관문을 걸어 나온 자도 별로 신경 쓰진 않았다. 잠깐 웃기는 했지만, 웃음을 멈춘 사모 페이는 마루나래의 목털을 움켜쥔 채 두억시니들을 바라보았다. 도로와 그 양쪽의 땅을 다 뒤덮다시피 하고 있었고 뒤쪽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마루나래는 가볍게 긴장한 듯 어깨털을 곤두세웠다. 사모는 마루나래를 달래듯 그 뻣뻣하게 선 털을 어루만졌다. 하늘이 푸르렀다.

마루나래가 갑자기 온 산맥을 쩌르릉 울리게 하는 포효를 토해 내었다. 두억시니들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 아닌 말들을 외쳐 대었다. 메아리로 변한 포효도 사그라들 무렵, 마루나래는 갑자기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 관문을 향해 줄달음질쳤다. 그 순간 두억시니들은 괴성을 지르며 마루나래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어젯밤 내내 날아오던 쇠뇌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은 것이 분명했다.

쇠뇌는 날아오지 않았다.

관문을 통과한 두억시니들은 반대편 관문이 열려 있음을 깨달았다. 관성이 그들을 내몰았고 두억시니들은 주저 없이 동굴을 빠져나갔다. 반대편 문으로 나온 두억시니들은 저 아래쪽 길을 달려가고 있는 마루나래를 발견했다. 어쩐지 신이 난 것 같은 괴성을 지르며 두억시니들은 계속 마루나래의 뒤를 따라 달렸다. 삼천의 두억시니가 동굴을 지나가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통로는 계속 열려 있었다. 마침내 육중한 몸에 비해 다리가 좀 짧아서 달음박질이 느린 두억시니가 마지막으로 관문을 통과한 다음 철문은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철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시구리아트 유료 도로당의 당주 보좌관은 당일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사모 페이는 두억시니들의 통행료를 지불한 다음 그들을 유인하며 관문을 통과하였다. 신을 잃은 그들 두억시니들에게 신의 가호를 바랄 수는 없으니, 나는 사모 페이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의 어진 마음이 저 가엾은 자들을 긍휼히 여기길 바란다.’

붓을 내려놓은 보좌관은 일지가 마르도록 그것을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휘장을 향해 걸어갔다. 휘장 너머로 건너간 보좌관은 보늬 당주를 내려다보았다. 보늬 당주는 조그마한 몸을 의자에 파묻듯이 한 채 잠들어 있었다. 그 감긴 눈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보좌관은 목소리를 들었다.

“갔나?”

보늬 당주는 눈을 감은 채 말하고 있었다. 보좌관은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갔습니다.”

보좌관은 사모 페이와 두억시니들이 떠났다는 의미로 대답했다. 하지만 당주의 질문은 그것이 아니었다.

“이제 다시는 그를 만날 수 없겠지.”

보좌관은 당주가 말한 것이 다른 사람임을 깨달았다.

“아마도, 그렇겠지요.”

보늬 당주는 침묵했다. 보좌관은 가만히 기다렸다.

“만약, 내가 군령의 일부가 된다면…….”

“소용이 없을 겁니다. 당주님.”

보늬 당주는 눈을 떠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보좌관은 무거운 얼굴로 당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절대로 소용이 없습니다. 당주님.”

“그럴까?”

“길은 방랑자가 흘렸던 눈물을 기억할 수 있지만, 그러나 방랑자를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길을 준비한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케이. 속상하지 않니?”

보좌관은 웃었다. 잔잔한 웃음이었다.

“어머니. 제 나이 이제 일흔여덟 살입니다. 열여덟 살 시절은 60년 전에 지나갔습니다.”

보늬 당주는 놀란 표정으로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당주는 가냘픈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렇구나. 내가 백 살이라는 걸 까먹다 보니 네 나이마저도 잊어 먹었구나. 하지만 그래도 묻고 싶구나. 어미란 그렇게 미련한 것이다. 누구보다도 자식 속을 잘 안다고 자부하지만, 꼭 자식 속을 물어보고 확인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것 또한 어미라는 것이다. 그러니 물어보는 것을 용서하여라. 정말 괜찮은 거니?”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어머니.”

“네 아버지는 절대로 나와 너를 버린 것이 아니란다.”

“예. 그는 버릴 수도 없었습니다.”

“무슨 말이냐?”

“어머니. 그는 어머니와 저를 가졌던 적이 없습니다. 가지지 않은 것은 버릴 수도 없습니다. 그는 유료 도로당의 규칙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더군요. 우리들이 두억시니와의 투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뻔한데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보늬 당주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비가 그친 하늘에서는 푸른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보늬 당주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케이 보좌관은 모포를 끌어당겨 어머니의 몸을 덮었다. 그가 몸을 돌리기 전 당주가 낮게 말했다.

“두억시니들에 대한 공격 준비는 어떻게 되었느냐?”

흔들리던 감정의 흔적은 사라지고 보늬 당주는 다시 시구리아트 유료 도로당의 당주로 돌아와 있었다. 당의 문제를 묻는 그녀에게 보좌관은 간결하게 보고했다.

“공격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두억시니는 관문을 통과했습니다.”

“어떻게 말이냐?”

“말씀드렸던 나가 아가씨 기억하십니까? 대호를 탄 아가씨 말입니다. 그녀가 두억시니들의 통행료를 지불했습니다. 그리고 두억시니들을 유인하며 이곳을 지나갔습니다.”

보늬 당주는 눈을 떠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놀람이 가득 서려 있었다.

“설마 네가 그것을 제안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 그녀 자신이 그것을 제안했다는 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놀라운 여인이구나.”

보좌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나 같은 여인이었습니다.”

당주는 놀란 미소를 지으며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네가 나가의 미모를 구별할 수 있느냐? 네 말대로 정말 나늬처럼 아름답다면 알아볼 수도 있겠지만.”

보좌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어머니도 수십 년 만에 처음 보는 미소를 지어 보여 당주를 다시금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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