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6장 – 길을 준비하는 자 (2)
과거, 험준한 시구리아트 산맥에는 남북을 잇는 많은 통로가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스스로를 극과 극을 연결하는 자라 불렀지만 사람들에게는 도로왕이라 불릴 때가 더 많았던 극연왕의 4대 경이(驚異) 중 하나로 꼽힐 만큼 훌륭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그 통로들은 보살피는 세심한 손길이 사라지자 모두 잡초와 낙석, 흙더미 아래로 사라졌다. 시구리아트 산맥을 휘감아 도는 폭풍은 모든 인위적인 것들에겐 끔찍한 재앙이었다.
그 모든 길이 사라진 오늘날, 시구리아트 산맥을 넘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시구리아트 유료 도로가 그것이다. 륜은 단지 거기에 있는 땅을 걸어가는 것에 대해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개념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 산적이나 강도 아니에요?”
“산적과는 다르죠. 산적은 돈을 내지 않으면 죽이고서라도 돈을 받지만 유료 도로당(有料道路黨)은 돈을 내지 않으면 통과시키지 않을 뿐이죠. 다르잖아요?”
“같은 것 같은데요.”
“예? 뭐가 같죠?”
“돈을 내면 통과한다는 것이 똑같잖아요.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있는 땅을 가지고 불로소득을 버는 건 마찬가지……”
“아, 이런. 그걸 설명하지 않았군요. 산적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지만 유료 도로당은 일을 해요. 길 주변에 우물도 파고 위험한 동물도 쫓아내고 환자가 생기거나 하면 관문 요새에서 치료를 받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숙박비를 내면 음식과 잠자리도 제공하고. 물론 길이 망가지거나 하면 보수하는 건 당연하겠지요?”
“그렇다면 이해가 되는군요. 하지만 왜 저런 통행료를…… 참…… 맛있어 보이는.”
풀을 뜯는 산양을 보며 말하던 륜은 그만 이상하게 말을 맺고 말았다. 바위 위에 드러누워 있던 케이건은 눈도 뜨지 않은 채 말했다.
“이건 안 된다. 륜.”
“아, 배고프다는 거 아니에요. 그냥 맛있어 보인다고요.”
케이건은 슈라도스에서 산양 세 마리를 구입했다. 티나한은 그 막대한 지출에 또다시 놀랐지만 케이건은 시구리아트 유료 도로에서는 사냥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시구리아트 산맥 안으로 들어선 후 그들은 두 마리의 산양을 먹어치웠다. 륜이 한 마리를 삼켰고 나머지 세 사람이 한 마리를 구워 먹었다. 케이건은 남은 한 마리가 통행료라고 설명했고 지금 그 산양은 오래간만에 나타난 초지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산양 한 마리면 우리들의 통행료가 대충 해결될 거다. 물론 희망사항이긴 하지만.”
“돈으로 지불하면 안 되나요?”
“그래도 되지만 시구리아트 유료 도로당원들은 산양 연모자 지용의 통행료를 정확히 책정할 수 없더라도 산양을 보면 좋아하며 통과시켜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산양 고기를 좋아하는 정도로 연모자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건 무슨 뜻이죠?”
“산양을 숭배하거든.”
“예?”
“진부한 전설이야. 그 당원들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산맥 건너편에서 산양을 치고 있던 제1대 당주가 어느 날 잃어버린 산양을 따라가다가 산맥을 넘는 길을 우연히 발견했다더군. 그래서 그들은 산양을 숭배해. 내 생각엔 그냥 이 높은 지역에서 키울 수 있는 드문 짐승이라서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륜은 높은 지역이라는 말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장 끈질긴 나무가 그 옹고집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한 비틀리고 메마른 모습으로 멈춰버린 곳보다 더 높은 곳에서, 회록색 풀잎들은 열린 하늘을 바라보며 가냘프게 서 있었다. 산비탈을 타고 바람이 치솟을 때마다 풀잎은 성품 어진 짐승의 털처럼 물결쳤다. 풀들이 갈라질 때마다 드러나는 백악질의 바위. 저 산비탈 아래에서 휘감아 도는, 구름이 되다만 것 같은 농무. 그곳은 산들이 그들만의 심원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곳이었다. 키보렌의 밀림에 익숙한 륜의 눈에 그것은 퍽이나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그때 하늘 저편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형과 륜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바위 위에 누워 있던 케이건이 만류했다.
“앉아 있으시오. 비탈이 급하오.”
그래서 두 사람은 도로 앉았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하늘 저편에서부터 날아온 것은 나늬였다. 그리고 그 위에는 세 배로 부푼 티나한이 앉아 있었다. 물론 털이 부풀었을 뿐 무게가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륜과 비형의 눈에는 나늬가 대단히 힘겨워 보였다. 나늬가 가까이 옴에 따라 날갯짓 바람이 산비탈을 사정없이 때렸다. 비형과 륜은 케이건이 왜 앉아 있으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늬는 풀잎과 먼지를 잔뜩 날려 올리며 내려앉았다. 티나한은 진저리를 치며 내려서서는 나늬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바람이 좀 잦아든 것을 확인한 비형이 조심스럽게 일어나 말했다.
“역시 안 되던가요?”
티나한은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나늬만을 쏘아보았다. 비형이 한번 더 질문하자 티나한은 뒤로 홱 돌아섰다.
“비형! 제대로 명령한 거 맞아?”
“물론이고 틀림없고 확실한데, 왜 그런 의심을 하시죠?”
“젠장. 300미터 남겨 놓고 돌아왔단 말이다!”
륜은 어설프게 웃으며 저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시구리아트 산맥의 준령들을 스치듯 하며 날아가는 그러나 실제 고도는 훨씬 높을 것이다.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 하늘치였다.
먼 하늘을 날아가는 하늘치의 장대한 모습을 보자마자 딱정벌레 타는 법을 속성 교육하라고 강요하기 시작한 티나한을 위해 비형은 나늬에게 수화를 건네었다. 나늬는 다른 모든 딱정벌레와 마찬가지로 하늘치에게 다가가는 것을 거부했다. 비형은 그 사실을 티나한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티나한은 ‘긴 동행의 나날이 있었으니 어쩌면 저 겁쟁이 딱정벌레의 가슴에도 나의 뜨거운 용기가 전달되었을지 모른다. 혹은 오늘이 나늬 미치는 날일지도.’라는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려 비형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나늬는 비형의 지시에 따라 티나한을 태우고 날아올랐다.
그러나 나늬는 300미터까지 접근한 다음, 티나한의 모든 협박과 애원에도 불구하고 그냥 돌아와 버렸다. 자신의 비행 과정을 설명한 티나한은 씨근거리며 외쳤다.
“젠장. 내 말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것 같더군. 그 수화로 다시 지시해!”
“그래도 안 될 텐데요?”
“아냐. 300미터가 저 녀석의 한계라면, 이번에는 하늘치의 등 위쪽 300미터 상공까지 접근하라고 해! 뛰어내리겠어!”
“……뭐, 케이건이 그랬던 것처럼 겉날개 접고 활공하면 뛰어내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쇳덩이 같은 당신이라도 300미터에서 추락하면 몸이 성키 어려울 텐데요?”
“죽어도 하늘치의 등에서 죽겠다!”
륜이 열렬하게 박수를 쳤다. 비형과 티나한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륜을 돌아보았다. 륜은 당황하여 두 손을 슬그머니 등 뒤로 돌렸다.
“저, 당신들은 뭔가 감동적인 일을 보면 이렇게 하지 않나요?”
갑자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티나한은 비형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비형은 웃고 있지 않았다. 륜과 티나한은 그 사실에 의아해하다가 문득 등골이 오싹해지는 (륜의 경우에는 비늘이 곤두서는) 기분을 느끼며 조금 떨어진 바위 위를 돌아보았다.
케이건이 웃고 있었다.
세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딱정벌레 나늬와 륜의 어깨에 앉아 있던 아스화리탈까지도 현실의 갈피 사이로 우주적 공포가 얼핏 드러난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넋을 잃고 바라보는 다른 일행을 깨닫지 못한 채 케이건은 즐거운 듯이 말했다.
“요스비. 당신 정말 재미있는…….”
말꼬리가 사그라들었다.
케이건은 지금까지와 똑같은 자세로 누워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비형과 티나한은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륜은 기대감 어린 어투로 말했다.
“제 아버님을 생각하고 계셨던 모양이군요. 당신 같은 철혈도 아버지에겐 웃음을 보였던 겁니까?”
케이건은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글쎄. 이만 출발합시다.”
케이건의 말에 륜은 다시 불만을 느꼈지만 비형은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비형의 불길한 예감은 안타깝게도 정확하게 현실로 나타났다. 케이건은 하루하고 반나절을 걸었다. 험준한 산맥 위에서의 휴식 없는 장시간 행군. 실로 살인적이었다. 티나한이 철창을 땅에 질질 끌게 되고, 놀랍게도 그 사실에 별로 신경 쓰지 않게 될 정도로. 마침내 멀리 시구리아트 관문 요새가 나타났을 때 일행은 선 채로 졸도할 지경이 되어 있었다. 후들거리는 무릎에 손을 짚은 채 헐떡이고 있는 륜에게 걸어온 케이건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응.”
륜은 살의라는 것이 그토록 쉽게 형성되는 감정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그러나 케이건이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생각해보려는 목적만으로 그런 살인적인 행군을 감행한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항의할 여력이 있던 티나한이 벼슬을 떨며 말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걸은 거야? 응? 내 말은 그러니까…….”
“하늘을 보니 폭풍우가 닥칠 것 같았소. 그래서 걸음을 서두르는 편이 좋을 거라 판단했소.”
“……더 빨리 걸었어야 했다는 거야!”
티나한은 그렇게 얼버무렸고 륜은 살의를 잊었고 비형은 개방된 산 위에서 폭풍우에 노출된 레콘을 못 보게 된 것을 아쉬워했다. 그리고 일행은, 그때부터는 티나한의 재촉을 받아가며 관문 요새를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