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6장 – 길을 준비하는 자 (3)
시구리아트 관문 요새의 관문은 형태상 관문이라기보다는 수평 동굴에 가깝다. 그것은 높이가 수십 미터, 폭이 100미터에 가까운 자연 암벽을 관통하여 만들어진 동굴이었다. 동굴의 양쪽 입구는 각자 육중한 철문으로 막혀 있었다. 동굴의 위쪽, 자연 암벽 윗부분에 요새가 건설되어 있었다.
시구리아트 유료 도로의 최악의 난관이라 할 수 있는 이 거대한 암벽을 해결하기 위해 최초의 당주가 사용한 방법은 줄사다리였다. 그때 당주의 요새는 석벽 위에 있는 오두막이었고, 당주는 돈을 받은 다음 여행자들에게 줄사다리를 내려 주었다. 그런 식으로 돈을 번 다음 당주는 승강기를 만들었고, 마침내 암벽을 뚫었다. 그리고 동굴 양쪽 입구에 통행료를 받기 위한 징수소를 설치했다. 그 안에서 징수원들이 그들의 당주로부터 받은 요금표에 의거하여 여행자들에게 통행료를 받았다. 정확한 요금표가 있었기에 여행자들과 징수원들 사이에 언쟁이 일어나는 일은 별로 없었고, 따라서 징수원들은 그 임무에 대체적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멀리서 폭풍우가 다가오고 있는 그날 오후, 징수원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임무에 대한 회의를 느껴야 했다.
“빨랑빨랑 통과시키지 못하겠냐!”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티나한의 성질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징수소의 우두머리인 징수소장은 창문을 통해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들이 가진 요금표로는 도저히……… 이런 예외적인 상황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요새로 질문하러 올라갔던 사람이 돌아올 것입니다.”
징수소장은 정말이지 울고 싶다고 생각했다. 인간과 레콘의 통행료는 그의 요금표에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그리고 징수소장은 평소에 잘 들여다보지 않았던 부분에서 고맙게도 도깨비에 대한 항목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딱정벌레에 대해 명시하고 있는 부분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물며 용이라니? 만약 어깨에 용을 앉히고 있는 자가 인간이 아니라 나가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징수소장은 정말 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륜은 방풍복으로 몸을 가리고 얼굴 또한 천으로 감추고 있었다. 그 목소리와 체구 때문에 징수소장과 징수원들은 륜이 인간 여자일 거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징수소 바깥 벽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는, 레콘을 겨냥한 것이 분명한 경고문 <등반 적발 시 살수(水)함.>을 읽던 비형이 의아해하며 질문했다.
“도깨비는 있는데 왜 딱정벌레는 없는 거죠?”
징수소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이보세요. 딱정벌레가 없다면 도깨비도 걸어서 여기를 통과해야겠지만, 딱정벌레가 있다면 당연히 날아서 산맥을 넘지 않겠습니까? 내가 오히려 묻고 싶군요. 당신은 딱정벌레가 있는데 왜 걸어서 넘으려는 거죠?”
“아, 일행들 중에 날 수 없는 자가 있어서요. 그럼 아마도 말에 대한 항목은 있겠군요? 말과 같은 요금을 받으면 안 됩니까?”
“그걸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징수소장의 간곡한 부탁은 티나한의 맹렬한 호통에 지워지고 말았다.
“젠장, 폭풍이 오고 있잖아! 기다리라는 소리는 저 폭풍에게 해!”
티나한의 외침에는 숨길 수 없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결국 보다 못한 케이건이 징수소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면 안 되겠냐고 제안했다. 징수소 안에 통행료가 보관되어 있기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징수소장은 어쩔 수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바깥에서 본 징수소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안쪽은 꽤 넓었다. 방 전체 공간의 반이 바위를 파내어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큰 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티나한의 철창은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다. 결국 티나한은 철창을 밖에 세워두어야 했다. 그리고 비형 또한 나늬를 밖에 놓아두었다.
징수소 안에는 징수소장과 징수원들이 일하는 탁자와 의자들이 몇 놓여 있었지만 언제나처럼 티나한에게 맞는 의자는 없었다. 티나한은 비를 피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다는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케이건은 간단한 눈짓을 보내어 티나한을 조금 움직이게 했다. 케이건의 의도를 깨달은 티나한은 륜 앞으로 움직여 징수원들의 눈으로부터 륜을 가렸다. 한편 비형은 벽에 붙어 있는 커다란 요금표를 들여다보며 재미있어 했다.
“오! 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는 건지 알겠군요. 노새와 말과 나귀도 각자 다른 요금을 받는군요? 이렇게 꼼꼼하게 만들어져 있는 요금표에 왜 딱정벌레가 없는 거죠?”
“어제까지 나는 그걸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소. 하지만 지금은 나 역시 대단히 궁금하군. 아마 요새에 있는 대요금표에는 있을지도 모르겠소. 그런데 저 용은 도대체 어디서 발견한 겁니까? 저거 진짜 용입니까?”
비형은 허둥거리며 케이건을 돌아보았다. 그때 케이건이 예견했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수백만 개의 낟알을 한꺼번에 까부르는 듯한 소리와 함께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먼 곳의 산봉우리들은 물의 장막에 지워졌고 가까운 곳에 있던 산마루들만이 희미한 윤곽으로 떠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던 륜은 아예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자마자 티나한이 깃털을 사정없이 부풀렸기 때문이다. 징수소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호흡이 곤란해지는 기분까지도 느꼈다.
쏟아지는 빗줄기 때문에 징수소 안이 어두워졌다. 징수원 한 명이 등잔을 꺼내 놓자 비형이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비형의 손에서 불로 이루어진 나비가 나타나 나풀거리며 등잔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사람들이 호흡까지 멈춘 채 바라보는 가운데 나비는 등잔에 내려앉아 조용히 날개를 접었다. 다음 순간 접힌 날개는 그대로 불꽃이 되었다. 징수소장과 징수원들은 감탄사를 토했다.
창문 밖으로 쏟아지는 비를 보던 케이건은 탁자 한켠에 있는 주전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좀 마셔도 되겠소?”
“그건 물이나 차가 아닙니다.”
“뭔지 알고 있소.”
징수소장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러라고 했다. 케이건은 옆에 있던 넓적한 대접에 주전자의 내용물을 따랐다. 맑고 은근한 빛을 띠는 액체가 콸콸 쏟아졌다. 케이건은 대접 가득히 따른 다음 그것을 한 모금 마시고는 티나한에게 건네었다.
“마시고 비형에게 돌리시오. 륜에겐 주지 말고.”
티나한은 어리둥절해하다가 부리를 열고 한 모금 정도를 흘려 넣었다. 곧 티나한은 그것이 부드러운 맛의 술임을 깨달았다. 티나한이 쩝쩝거리며 그것을 마시는 동안 케이건은 징수소장에게 말했다.
“통행자들은 통행료 앞에 평등하지 않소? 이제는 옛날 일이지만, 당신들은 왕이라도 통행료를 내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게 했잖소. 나는 당신들이 저 권능왕에 대해 ‘인간 성인 남자, 은편 열 닢’이라고 말해 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소. 주퀘도 사르마크도 당신들의 규칙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징수소장은 자신들의 역사를 들으며 기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케이건은 부드럽게 말을 맺었다.
“우리는 저 용에 대해 당신들이 제시하는 통행료를 지불할 뜻을 이미 밝혔고, 따라서 저 용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당신들에게 결례는 되지 않을 거라 믿소.”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물론 우리는 통행료만 지불한다면 당신들이 누구든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건 마음에 드십니까?”
“좋은 아르히군요.”
케이건의 말에 티나한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게 아르히군! 말젖으로 만드는 거 아냐?”
“염소젖이나 양젖으로 만들지. ……………그런데 돌리라고 하지 않았소?”
티나한은 눈을 끔뻑거리며 대접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비어 있었고 비형은 부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티나한이 겸연쩍은 투로 뭐라 말하기 전에 징수소장이 또 다른 대접에 아르히를 따라서 비형에게 건네었다.
“아르히를 아신다면 당연히 대접해야지요. 그런데 저 분은 술을 안 드십니까?”
징수소장이 가리킨 것은 티나한 뒤에 있는 륜이었다. 케이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몸이 좋지 않아서. 결례를 용서하시오. 그리고 티나한. 그거 조심하는 편이 좋을 거요. 자리에 앉을 땐 어린 소녀도 마실 수 있는 술이지만 자리에서 일어날 땐 판막음 장사의 다리도 잡아채는 술이오.”
티나한은 케이건의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주전자에 손을 뻗었다.
“술에 취하는 레콘 봤냐?”
케이건은 그저 고개만 약간 갸웃해 보였다. 그때 바위로 통하는 문이 열렸다. 그리고 조금 전 요새에 질문하러 갔던 징수원이 손에 등롱을 든 채 나타났다. 징수원은 일행이 징수소 안에 들어와 있는 모습을 보고 약간 놀란 듯했지만 곧 징수소장에게 보고했다.
“용을 직접 보시고 통행료를 책정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징수소장은 당황하여 말했다.
“대요금표에도 없었단 말이냐?”
“대요금표는 보지 못했습니다. 보좌관께서 왜 대요금표를 열람하려는 건지 물으시기에 대답해 드렸더니 그 용을 볼 수 있겠냐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크기가 작으니 가능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데리고 올라오라고 하시더군요.”
징수소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케이건은 가볍게 목례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올라가 봐야겠군.”
그러나 간단한 건축학적 문제가 그들의 보좌관 접견을 어려운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징수소에서 요새로 통하는 통로는 인간에게 별 무리가 없는 높이였지만 비형에겐 머리를 숙이지 않고서는 지나갈 수 없는 높이였다. 당연히 티나한은 들어갈 수도 없었다. (티나한에겐 계단 크기도 맞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비형과 티나한은 징수소에 남게 되었다. 비형은 징수원의 등롱을 보더니 고개를 약간 가로젓고는 작은 도깨비불 하나를 만들어 케이건에게 건네었다. 케이건은 그것을 왼쪽 어깨의 보호대에 붙였다.
그리고 케이건과 륜은 징수원의 안내를 받아 요새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중간중간 옆으로 통하는 길이 있었다. 그것들은 요새의 창고나 다른 공간으로 통하는 듯했다. 하지만 징수원은 멈춤 없이 올라가기만 했다. 바깥에선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암벽 속을 걸어가는 그들은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가끔 통풍구나 창문 같은 것이 나타났을 때만이 바깥의 빗소리가 성큼 다가왔다. 케이건은 시구리아트 산맥의 산폭풍이 본격적으로 거세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한없이 어둠 속을 걸어가던 그들 앞에서 갑작스럽게 계단이 끝났다. 그곳에는 커다란 문이 있었다.
그들을 안내했던 징수원은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한 다음 계단을 도로 내려갔다. 륜은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케이건은 륜의 어깨에 앉아 있는 아스화리탈을 한번 쳐다보고는 커다란 문을 밀었다.
밝은 빛과 빗소리가 갑작스럽게 그들에게 밀려왔다.
륜은 자신들이 넓은 방 안으로 들어섰음을 깨달았다. 방은 폭이 10미터, 길이가 20미터쯤 되는 직사각형 모양이었고 그들이 들어선 문 왼쪽으로 두 개의 문이 더 있었다. 가운데 있는 문은 대단히 커서 레콘이나 도깨비도 통과할 수 있을 듯했다. 그리고 좌우의 벽에도 몇 개의 문이 있었다. 그들의 맞은편, 직사각형의 끝부분에는 발코니 같은 것이 있는 듯했다. 확신할 수 없는 것이, 거대한 휘장이 방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륜은 휘장 너머에서 쏟아지는 빛을 보고 그곳이 밖으로 노출된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륜은 휘장 아래로 보이는 계단을 보고는 휘장 너머의 공간이 방의 다른 부분보다 약간 높으리라고 생각했다.
방 가운데는 긴 탁자가 놓여 있었다. 꽤 많은 의자들이 있었지만 지금 그곳에는 머리가 약간 벗겨진, 보좌관일 거라 짐작되는 노인 한 명만이 탁자 왼쪽에 앉아 있었다. 케이건은 탁자를 향해 걸어갔고 륜 또한 약간 늦게 뒤따라 걸어갔다. 노인은 케이건의 어깨에 붙은 도깨비불을 보고는 흥미롭다는 듯이 웃고는 탁자의 오른쪽을 가리켜 보였다. 의미가 분명한 손짓이었기에 륜과 케이건은 노인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륜과 케이건이 자리를 잡자 남자는 다시 탁자를 내려다보았다. 륜은 그곳에 있는 것을 보고 약간 놀랐다. 탁자 위에는 가로 세로가 모두 1미터는 됨직한 금속판들이 몇 장씩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금속판의 가장자리에는 가죽이 덧대어져 있었고 그 넓은 면에는 음각된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륜은 그것이 금속판으로 만들어진 책임을 깨달았다. 케이건과 륜이 말없이 바라보는 가운데 남자는 거대한, 그리고 무거울 것이 분명한 금속판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책장은 쇠고리에 의해 고정되어 있었고 노인이 힘겹게 책장을 넘기자 가죽 테두리에도 불구하고 꽤 요란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노인은 별로 놀라지도 않은 채 그 넓은 책장에 빼곡하게 적혀 있는 글씨들을 읽어 내려갔다.
긴 시간이 지난 후, 노인은 다시 책장을 넘겼다. 와장창!
케이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끈기 있게 기다렸지만 륜은 주의가 산만해지는 것을 느꼈다. 탁자 위를 둘러보던 륜은 금속 책 옆에 놓여 있는 필기도구와 겹쳐 쌓인 천을 연상시키는 것을 발견했다. 잠시 그것을 바라보던 륜은 곧 그것이 니름으로만 듣던 도깨비지(紙)임을 깨닫고는 언짢은 기분을 느꼈다. 마치 나무의 시체를 보는 기분이 들었기에 륜은 고개를 돌려 휘장을 바라보았다.
륜의 눈에 뭔가 뜨거운 것이 들어왔다. 륜은 주의 깊게 휘장 너머를 바라보았다. 곧 륜은 어떤 더운 피의 사람이 의자에 반쯤 누운 자세로 옆모습을 보이며 앉아 있음을 깨달았다. 비 오는 모습을 보고 있는 걸까? 하지만 한없이 우울하기만 한 그런 광경을 뭣하러? 륜이 불신자들의 눈에는 비 오는 모습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시간이 조금 지난 후였다.
그때 노인이 입을 열었다.
“여기 있군.”
왜소한 몸에 어울리지 않는 우렁찬 목소리였다. 륜은 노인을 돌아보았다. 노인은 금속판 한 부분을 가리켰다. 글자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는 다른 책장들에 비해 노인이 가리킨 책장에는 글자가 몇 개 되지 않았다. 노인은 그 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
“딱정벌레. 은편 열다섯 닢을 받는다.”
케이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용은?”
“기다리시오.”
그리고 노인은 다시 금속판을 넘기기 시작했다.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륜이 다시 주의력을 잃어갈 때쯤 노인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있군.”
륜은 엉겁결에 자세를 바로 했다. 노인은 륜 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용. 배를 끌며 이동하고 성질이 고약한 것에 대해서는 금편 열 닢을 받는다. 땅을 파헤치며 이동하고 유쾌한 것에 대해서는 금편 백 닢을 받는다.”
륜이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케이건이 담담하게 말했다.
“전반적으로 비싸군요.”
“배를 끌거나 땅을 파헤치며 이동하면 도로가 손상되니까.”
“그렇다면 날아다니는 것에 대해서는?”
“거기에 대해서는 이 대요금표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리고 만약 당신이 말하는 대로 그 용이 날 수 있다면 적절한 통행료를 책정한 다음 새로운 항목을 기입할 거요. 이 대요금표는 그런 식으로 작성되어 왔으니까. 그 용은 날 수 있소?”
노인의 설명을 들으며 륜은 지금껏 배를 끌며 이동하는 용과 땅을 파헤치며 이동하는 용이 시구리아트 유료 도로를 통과했나 보다고 생각했다. 케이건은 륜을 돌아보며 말했다.
“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려.”
륜은 자신의 왼팔에 감긴 아스화리탈의 꼬리를 떼어냈다. 하지만 아스화리탈은 그런 동작을 귀찮아했고, 오히려 륜의 오른손까지 감아버렸다. 륜은 아스화리탈의 꼬리에 포박된 채 한동안 쩔쩔매다가 겨우 아스화리탈의 몸을 두 손으로 쥘 수 있었다. 아스화리탈은 내키지 않는 듯 륜의 손 안에서 버둥거렸다. 륜은 될 대로 되라는 기분으로 아스화리탈을 위로 집어던졌다.
아스화리탈은 고집스럽게 날개를 펴지 않았다. 용은 던져진 자세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고 륜은 기겁하며 아스화리탈을 받아내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노인이 무뚝뚝한 어투로 말했다.
“산맥 건너편까지 던질 수 있다면 비행으로 인정하겠소.”
륜은 비늘이 떨어져 나갈 만큼 부끄럽다고 생각하며 아스화리탈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아스화리탈은 륜의 품에 누운 채 긴 꼬리로 륜의 상체를 감으며 놀고 있었다. 케이건은 그런 아스화리탈을 보다가 왼쪽 어깨로 손을 가져갔다.
케이건은 왼쪽 어깨에 붙여 두었던 도깨비불을 떼어냈다. 그것을 오른손에 쥔 케이건은 아스화리탈의 눈앞에서 천천히 흔들었다. 잠시 후, 륜은 아스화리탈이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그 도깨비불을 따라 눈동자를 굴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도깨비불을 흔들던 케이건은 갑자기 그것을 위로 휙 집어던졌다.
아스화리탈이 위로 화라락 날아올랐다.
아스화리탈은 네 다리를 이용하여 도깨비불을 움켜쥐고는 자랑스럽게 방 안을 날아다녔다. 대단히 빠른 속도였고 그래서 아스화리탈을 바라보던 륜과 노인은 목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케이건은 담담하게 말했다.
“날고 있지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요금표 옆에 있는 도깨비지와 붓을 집어 들었다. 노인은 도깨비지 위에 글을 쓰며 근엄하게 말했다.
“용. 날 수 있으며 하는 짓이 새끼 고양이만큼이나 유치한 경우.”
륜은 다시 비늘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고 생각했다. 노인은 거기까지 써놓은 다음 붓을 벼루에 내려놓고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당주님께서 통행료를 책정하실 거요. 대요금표에 새 항목을 더하는 것은 참 오래간만의 일이군.”
케이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보좌관이었군요.”
“그렇소. 잠시 기다리시오.”
륜은 휘장 너머에 있는 사람이 당주일 거라 짐작했다. 그의 짐작대로 자리에서 일어난 보좌관은 휘장을 들어 올리고는 그 뒤로 걸어갔다. 케이건과 륜은 잠시 기다렸다. 그동안 아스화리탈은 다시 륜의 품으로 날아왔다. 륜은 도깨비불을 케이건에게 돌려주려 했지만 아스화리탈이 내놓지 않았다. 케이건은 내버려 두라는 눈짓을 했다.
휘장 너머에서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빗소리와 휘장 때문에 케이건도 그 소리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조금 후 케이건이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주님! 일어나십시오!”
케이건은 당주가 낮잠을 자고 있었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휘장 너머를 볼 수 있었던 륜은 반쯤 누워 있던 사람이 일어나 앉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잠시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다가 휘장이 걷혀졌다.
륜의 예상대로 휘장 너머는 밖을 향해 노출된 발코니였다. 몇 개의 기둥으로 천장을 받치고 있을 뿐 외풍이 그대로 들이닥치는 구조였지만 바람은 별로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도 외풍이 없는 위치에 만든 발코니인 듯했다. 폭우처럼 퍼붓는 비 또한 안으로 들이치지는 않았다. 아마도 발코니 위쪽에 돌출된 부분이 있는 듯했다.
발코니 가운데는 옆으로 놓인 의자가 있었다. 의자에는 조그마한 노부인이 앉아 있었다. 무릎에는 모포 같은 것을 덮고 있었고 조그마한 몸은 의자에 파묻히다시피 했다. 노부인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고 있었기에 케이건과 륜은 그 뒤통수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조금 후 노부인은 고개를 방 안쪽을 향해 돌렸다.
상대적으로 밝은 위치에 있었기에 노부인은 방 안을 잘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륜의 품에 안긴 채 도깨비불을 가지고 노는 아스화리탈의 모습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노부인은 노인 특유의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정말 용이군. 어린 용이야.”
륜은 노부인의 목소리가 왜 떨리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가답게 늙은 여인에게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러나 곧 자신이 나가가 아닌 인간으로 행세하고 있음을 떠올리며 멈칫했다. 노부인은 자글자글한 눈 주름을 더욱 깊게 만들며 다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가까이 오너라. 좀 자세히 봐야겠구나.”
륜은 케이건을 돌아보았다. 케이건은 의자에서 일어나 발코니를 향해 걸어갔다. 륜은 아스화리탈을 안아 올리며 그를 따랐다. 두 사람이 계단 앞에 서자 노부인은 다시 말했다.
“계단을 올라오거라.”
륜과 케이건은 발코니에 올라서서 노부인을 내려다보았다. 노부인은 아스화리탈을 보며 감탄했다.
“놀라워. 정말 신기하게 생겼구나. 나도 이 나이 먹도록 한 번도 용을 본 적이 없단다. 아직까지 세상에 용이 남아 있었다니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야.”
보좌관보다는 훨씬 정서적인 반응을 보이는 노부인을 보며 륜은 얼굴을 가린 천 뒤에서 미소 지었다. 가까이서 본 노부인은 이가 모두 빠져 턱 부분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노부인이 속삭이듯 말하는 것도 아마 시원찮은 발음을 감춰 보기 위해서인 듯했다. 정수리에서 대충 묶여 있는 거미줄 같은 머리카락 또한 윤기를 잃은 지 오래였다. 다만 쪼글쪼글한 얼굴 가운데 눈만은 묘하게도 풍부한 감정을 담아 보이고 있었다. 그토록 나이를 먹은 사람이 아직까지도 넘치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로.
노부인이 륜의 얼굴로 고개를 옮겼다.
“그런데 너는 왜 얼굴을 가리고 있느냐?”
륜은 당황하며 말했다.
“저, 얼굴이 너무 흉해서 그렇습니다.”
“오호. 정말 예쁜 목소리로 지저귀는구나. 그 억양은 도무지 어느 지방의 것인지 모르겠네. 어쩐지 낯설지는 않지만. 그런데 얼굴이 흉하다고? 상처라도 입은 모양이구나. 정말 안됐다. 하지만 그 용이 너를 따른다면 용 또한 예쁘게 자랄 테지. 정말 긴 세월 만에 발견된 용이니 꼭 예쁘게 키워야 한다. 그런데 네 이름은 뭐지?”
“륜 페이라고 합니다.”
“여자애 이름으론 조금 이상하구나. 나는 보늬라고 한단다. 나늬의 언니 말이야. 내 아버지가 그런 거창한 이름을 지어 줄 때는, 아무리 귀여운 딸내미라도 백 살을 먹으면 이렇게 폭삭 늙을 거라는, 정말 당연한 생각을 못했던 걸 게야. 그러니 듣는 사람조차 부끄러워지는 이름은 관두고 그냥 당주님이라고 부르거라.”
륜은 다시 미소 지었다. 보늬 당주 또한 웃으며 케이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케이건을 바라보던 당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너는 낯이 익구나? 내가 알던 아이가 아닌지 모르겠구나. 이름이 뭐지?”
륜은 케이건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케이건의 표정이 약간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얼굴은 비통한 듯하기도 하고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하다. 처음 보는 케이건의 그런 얼굴에 륜은 꽤 놀랐다. 케이건은 나직하게 말했다.
“케이건 드라카입니다.”
보늬 당주는 그 이름을 몇 번 되뇌었다.
갑자기 당주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당주는 마치 발작이라도 일으킬 듯 몸을 떨었고 그러자 무표정하게 서 있던 보좌관이 당황하며 허리를 숙였다.
“당주님?”
그러나 당주는 보좌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이 케이건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갑자기 당주는 놀랄 정도로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내려가!”
그 조그맣고 늙은 몸에서 나오는 목소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거친 목소리였다. 당주는 의자 위에서 몸을 들썩거리며 외쳤다.
“내려가!”
케이건은 묵묵히 몸을 돌려 발코니에서 내려왔다. 어쩔 줄 몰라 하던 륜이 황급히 케이건을 따라 내려가자 당주는 보좌관을 향해 외쳤다.
“휘장을 쳐!”
보좌관은 황급히 휘장을 쳤다. 그 모습을 보던 륜은 케이건을 돌아보았다. 케이건은 의자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의자에 앉은 케이건은 륜을 향해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륜은 의자에 앉았다. 그는 케이건에게 물어볼 것이 많았지만 케이건은 깍지 낀 두 손으로 이마를 받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듯이 앉아 있었다. 그래서 륜은 아스화리탈을 꼭 끌어안으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아스화리탈 또한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듯 도깨비불을 내려놓은 채 얌전히 륜의 무릎에 앉았다. 륜은 그 도깨비불을 집어 탁자 위에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