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6장 – 길을 준비하는 자 (4)

랜덤 이미지

눈물을 마시는 새 : 6장 – 길을 준비하는 자 (4)



꽤 긴 시간이 지난 다음 휘장 너머에서 가냘픈 당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래간만이군. 케이건.”

보늬 당주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단순히 나이를 먹은 것 때문이 아니라 격렬한 흥분 때문임이 분명했다. 케이건은 깍지 낀 두 손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휘장을 향해 말했다.

“그렇군요.”

“왜 미리 말하지 않은 거지? 나를 놀래 주려고 한 거야?”

“아니요.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살아계신 것을 보니 기쁘군요.”

“아아, 그래. 너무 오래 살았구나. 백 살이라니. 오히려 내 잘못이구나. 용을 데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미리 짐작했어야 하는 건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파름 산의 그 땡초들이 이번엔 너에게 용을 찾아오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 것 아니냐? 그리고 너는 언제나처럼 그 말도 안 되는 임무를 성공시켰고.”

“그렇지 않습니다. 이 용은 여기 있는 륜이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쥬타기 대선사가 제게 요청한 것은 륜을 대사원으로 데려다줄 길잡이의 일이었습니다.”

“그 애가 용인이냐? 아직까지 용인이 남아 있었던가?”

“군령자가 아니라면 세상에 용인은 더 없을 겁니다. 륜은 개화한 용화를 우연히 발견한 겁니다.”

“놀라운 일이구나.”

그리고 당주는 침묵했다. 휘장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은 빗소리뿐이었다. 케이건은 잠자코 기다렸다.

다시 긴 시간이 지난 후 보늬 당주가 말했다.

“네가 길잡이라고 했더냐?”

“그렇습니다.”

“그럼 요술쟁이와 대적자도 있는 것이냐? 그 도깨비불을 보니 그럴 법도 하다만.”

“그렇습니다. 도깨비와 레콘이 있습니다. 체구가 커서 올라오진 못했습니다만.”

“셋이 하나를 상대하니, 그렇다면 그 륜이라는 애는 나가겠구나.”

륜은 놀라며 케이건을 보았다. 케이건은 별 어조의 변화 없이 말했다.

“예.”

“나가들은 목소리가 참 예쁘지. 그 요스비라는 애도 그랬어.”

요스비의 이름이 들린 순간 륜은 자리에서 일어날 뻔했다. 륜은 케이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케이건은 그에겐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휘장만 바라보았다. 륜은 청력에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며 휘장 쪽을 돌아보았다. 보늬 당주는 계속 말했다.

“네가 요스비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던 것이 기억나는구나. 가장 호의적으로 평가하더라도 요스비는 겨우 음치 소리를 면할 정도였지. 하지만 목소리는 정말 예뻤어.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애의 노래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

륜은 더 참지 못하고 외쳤다.

“제 아버님을 아십니까, 당주님?”

케이건이 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휘장 뒤에서는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라고? 네가 요스비의 딸이냐? 하지만 나가는 아버지를 모를 텐데.”

륜은 케이건이 자신을 제지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몸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케이건은 그를 지그시 바라볼 뿐 아무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륜은 휘장을 향해 말했다.

“저는 아들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주님은 정말 제 아버님을 아십니까?”

“아들이라. 놀랍구나. 네가 말하는 사람과 내가 아는 사람이 같은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한 번 만났다. 과거 내 요새에 온 적이 있지. 객기도 그런 객기가 없었다. 추위 때문에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서 케이건에게 업힌 채 여기까지 왔단다. 나는 그 애가 꼭 죽는 줄 알았어. 하지만 케이건이 나가는 쉽게 죽지 않는다고 가르쳐줬지. 그러고 보니 너는 불편해 보이지 않는구나? 혹 나가가 드디어 날씨까지도 정복했느냐?”

“아니요. 도깨비가 제 몸에 불을 붙여 주었습니다. 빛은 없고 열만 있는 그런 불입니다. 그런데 제 아버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어떤 사람이었냐고 물었느냐? 마치 요스비가 과거의 인물인 것처럼 말하는구나.”

보늬 당주의 질문에 케이건은 움찔하며 륜을 바라보았다. 륜은 아스화리탈을 안은 채 일어났다. 얼굴을 가리는 천을 거칠게 잡아당겨 얼굴을 드러낸 륜은 케이건을 바라보며 당주의 질문에 대답했다.

“제 아버님은 돌아가셨습니다. 11년 전, 제가 열한 살이었을 때.”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