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6장 – 길을 준비하는 자 (5)
빗줄기가 바위를 때리며 사방으로 암흑을 뿌렸다. 물론 사모 페이가 가진 나가의 눈에 보이는 광경이다.
물은 열을 삼킨다. 비통하기까지 한 불투명을 바라보며 사모 페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루나래의 옆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녀는 후줄근하게 젖어 있었고, 정신적으로는 곤혹스러운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산비탈 아래쪽, 급류 저편에 있는 두억시니들을 보며 어떤 기분을 느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인간들의 도시들을 지나쳐 왔구나.>
불신자들은 슈라도스라 부르지만 사모에겐 그저 인간들의 도시인 곳을 지나칠 무렵, 사모는 두억시니의 무리들이 자신을 추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두억시니들은 자보로도, 슈라도스도 공격하지 않았다. 그저 경악한 인간들의 눈앞을 지나쳐 왔을 뿐이다.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민하던 사모는 그냥 안도하기로 했다. 불신자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모는 인간과 두억시니를 놓고 볼 땐 인간에게로 감정이 기울 수밖에 없었다. 키탈저 사냥꾼들이 멸망하기 전에도 이미 대확장 전쟁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것은 나가가 승리한 전쟁이었다. 수백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사모는 인간에 대한 증오를 느끼기 어려웠다.
하지만 사모는 두억시니들에 대해서도 증오를 느낄 수 없었다.
<하늘 아래에 그 처참한 모습을 보여야 할 만큼 중요한 이유가 있었더냐?>
두억시니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비 때문에 갑자기 불어난 계곡물을 건너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산비탈에서 튀어나온 바위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며 사모는 깊은 슬픔을 느꼈다. 첫 번째로 물에 뛰어든 두억시니들이 급류에 휩쓸려 간 이후로 두억시니들은 물에 뛰어드는 것을 삼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내놓은 해결책은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었다. 두억시니들은 강물을 갈라서 길을 내려 하고 있었다.
의미 없는 노성을 토하며 두억시니들은 끊임없이 두 손으로, 혹 손이 없을 경우에는 입으로 물을 머금어 강물을 ‘파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같은 부피의 흙에 대해서라면 소용이 있었을 그 방법도 거세게 흐르는 급류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었다. 두억시니들은 아무리 퍼내어도 줄어들지 않는 강물에 난처해하고 분노했다.
그러나 두억시니는 그 짓을 멈추지 않았다. 수백의 두억시니가 강변에 몰려서서 강물을 퍼내고 있었고 그보다 많은 두억시니들이 그들의 배후에서 의미를 빚지 못하는 단어들로 주위를 소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무익한 목적에 바쳐진 과도한 노고가 자아내는 것은 웃음이나 슬픔뿐이다. 사모의 경우에는 슬픔이었다. 사모는 쇼자인테쉬크톨에 묶여 있는 그들 남매의 운명도 저 두억시니들의 모습 앞에서는 비탄을 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사모는 모든 정신을 열어젖히며 닐렀다.
<제발 그 짓 그만둬!>
그러나 두억시니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사모는 갑작스럽게 깨달았다. 니름을 토해 내던 그 유해의 뱀과 달리 두억시니들은 그녀의 니름을 듣지 못했다. 사모는 마루나래의 갈기를 움켜쥐며 개념을 전달했다.
마루나래가 포효했다.
거대한 야수의 호통에 산맥이 전율했다. 그리고 사모는 기대했던 광경을 보게 되었다. 두억시니들은 강물을 퍼내는 동작을 중단한 채 건너편 산비탈을 올려다보았다. 사모는 목청껏 외쳤다.
“그 짓을 멈춰라! 제발! 그쯤이면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 만하지 않느냐!”
쏟아지는 비 속에서 두억시니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사모는 자신의 목소리가 메아리 되어 돌아오는 것을 들었다.
침묵한 채 바라보던 두억시니들이 갑자기 비명처럼 외치기 시작했다.
“크낙새 뿌리 무침? 파란 냄새 삼각형!”
“팔짝 뛰는 토끼색 칠한 재채기 세 쌍만 던져!”
그리고 두억시니들은 더욱 처절한 열정으로 강물을 퍼내었다. 사모는 결국 그 슬픈 모습에서 몸을 돌려 버렸다. 그리고 사모는 오른손으로 마루나래의 갈기를 움켜쥔 채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요스비가 죽었다고 했느냐?”
케이건의 질문에 륜은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건은 다시 질문했다.
“11년 전에?”
“네.”
“어떻게……… 어떻게!”
외침과 함께 케이건은 두 주먹으로 탁자를 내려쳤다. 대요금표의 금속판들이 진동하고 쌓여 있던 도깨비지가 탁자 위로 미끄러졌다. 륜은 그런 격렬한 감정의 노출에 놀라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나가가 어떻게 그런 나이에 죽을 수 있다는 말이냐! 여자들이 그를 태워 죽이기라도 했다는 말이냐?”
“심장 파괴였습니다.”
“심장 파괴?”
설명하려던 륜은 문득 케이건의 어조가 조금 이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케이건은 심장 파괴가 무엇인지 묻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륜을 놀라게 했다. 아무리 나가에 대해 잘 아는 케이건이라도 나가들조차 잘 알지 못하는 심장 파괴에 대해서까지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뒤이은 케이건의 질문은 륜을 경악하게 했다.
“너희 수호자들이 그를 죽였다는 거냐?”
“어, 어떻게? 어떻게 심장 파괴에 대해 알고 있는 거죠?”
“빌어먹을, 내 질문에 대답해! 수호자들이 요스비를 죽인 거냐!”
“아니, 우리들 사이에서도 그건 비밀인데……”
“빨리 말해!”
“그래요!”
륜은 온몸의 비늘을 일시에 곤두세우며 외쳤다. 몸을 덮고 있던 방풍복이 빈사의 동물처럼 경련했다. 놀란 아스화리탈이 그의 품에서 날아올랐지만 륜은 신경 쓰지 않은 채 외쳤다.
“그래요, 수호자들이 제 아버님을 죽였어요! 나가들에게 불사를 주는 자들이 죽음을 줬다고요! 죽음과 우리의 거리를 그토록 벌려 놓았던 자들이 스스로 만든 죽음을 아버님에게 건네었어요!”
케이건의 얼굴이 암석처럼 변했다. 그 얼굴을 향해 륜은 절규하듯 외쳤다.
“거룩한 제단 위에 놓고 선별된 절구 공이로 으깨었을까요? 아니면 땅에 내던진 다음 더러워질 자신의 발을 동정하며 짓밟았을까요? 제기랄, 그들이 그랬어요! 예! 수호자들이 제 아버님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호자가 되는 것도, 심장을 적출하는 것도 거부했습니다. 제 눈앞에서 죽어간 아버지가………..”
“그만해.”
“예?”
“그만하라고. 요스비가 죽었다는 사실만 확인하면 된다. 네 이야기는 묻지 않았다.”
륜은 비늘을 곤두세웠다.
케이건은 륜이 요스비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그는 요스비의 죽음에 대해 슬픔을 공유하는 것을 거절한 것이다. 케이건은 륜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륜은 케이건에게 보호받을 것이다. 케이건은 모든 수단을 다해 륜을 하인샤 대사원까지 데려갈 것이다.
케이건이 그러기로 했기 때문이다.
무의식 중에 탁자를 짚은 륜의 손에 무엇이 와 닿았다. 륜은 그것이 도깨비지임을 깨닫고는 끔찍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륜은 그것을 옆으로 쳐내었다. 나무를 으깨어 만든 하얀 종이들이 방안을 나부꼈다.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니름으로 구성된 비명을 내지르며 륜은 방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그리고 자신이 들어선 문을 통과해 나갔다.
의자에서 일어서려던 케이건은 방 안을 맴돌던 아스화리탈이 륜의 뒤를 따르는 모습을 보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휘장 너머에서 빗소리에 묻어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지 못 하오.”
케이건은 천천히 휘장을 돌아보았다.
“무엇이 싫으시다는 겁니까?”
“조금도 변함없는 그의 모양이.”
“저는 원래 이랬습니다.”
“그 말이 아니오. 네가 이제 왜 한 가지인 그의 젊은 모양 말이오.”
당주의 말을 이해한 케이건은 입을 다물었다. 당주는 계속하여 아라짓 어로 말했다.
“그대를 원망치 아니하오. 서러움이 이 늙은 계집의 유일한 벗이었소. 하나 그를 만나니 그만없던 젊은 날이 새로이오.”
“저도 기억합니다.”
휘장 저편이 다시 조용해졌다. 케이건은 거센 빗소리를 들으며 기다렸다.
“슬픔 놀이 같았네. 하나 늙어 놀며 늙었소. 이제 다 지나간 날을 슬퍼한들 무의미한 일이지만.”
“당신은 위대한 당주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빗소리 사이로 한숨 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가느다란 속삭임이 들렸다. 케이건은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잠시 후 보늬 당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니 한숨이오. 아직 아리따운 맹수여.”
케이건은 자리에서 일어나 휘장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휘장은 걷혀지지 않았다. 케이건은 그대로 서서 기다렸다.
휘장 한 부분이 천천히 솟아올랐다. 손이 그 뒤에 있었다. 떨리며 다가온 손은 잠시 후 케이건의 얼굴에 닿았다. 움찔하던 손은, 그러나 잠시 후 케이건의 얼굴을 천천히 더듬었다.
케이건은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