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6장 – 길을 준비하는 자 (8)
비형은 웃옷을 벗은 모습으로 방 안에 뛰어들어 륜을 꽤 당황하게 하며 외쳤다.
“그녀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들으셨습니까?”
케이건은 바라기를 손질하던 손을 멈춘 채 비형을 바라보았다.
“그녀라니, 암살자?”
“예! 지금 관문 앞에 있다고 합니다! 안 믿어지시죠?”
다음 순간 륜과 티나한이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일반적인 상황하에서는 두 사람의 키 차이 때문에 결코 일어날 리 없는 경우였지만, 두 사람은 같은 창문을 향해 머리를 디밀었기 때문에 그런 황당한 꼴을 겪게 되었다. 티나한은 머리를 쓸어만질 겨를도 없이 휘청거리는 륜을 황급히 붙잡아야 했다. 그래서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 수 있었던 것은 케이건이었다.
케이건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얼굴을 구겼다.
“정말이군. 그녀야.”
짧게 관찰을 끝낸 케이건은 륜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며 뒤로 물러났다. 비형은 입을 틈도 없어서 손에 들고 달려온 웃옷을 다시 입으며 질문했다.
“어떻게 하죠?”
“난감하오. 모든 유료 도로당의 규칙은 똑같소. 통행자는 통행료 앞에 평등하오. 그 규칙에 예외가 되는 것은 전염병 환자 정도일 거요. 따라서 그녀는 적합한 통행료를 지불하면 얼마든지 요새로 들어설 수 있소. 그런데 아직 바깥에는 비가 오고 있군.”
티나한이 갑자기 천장을 쏘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케이건은 티나한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게다가 한 가지 규칙이 더 있는데, 도로에서는 여행자들끼리 싸워선 안 되오. 이러니 그녀를 습격할 수도 없군.”
창밖을 내다보던 륜은 그 말에 질린 표정으로 케이건을 돌아보았다. 케이건은 도로 자리에 앉은 다음 바라기를 쥐어 올리며 말했다.
“비가 그친 다음 산맥 반대편에서 아무래도 그녀와 결판을 봐야겠소.”
륜은 비늘을 부딪치며 말했다.
“결판을 본다는 것은 무슨 뜻이죠?”
“죽이는 건 반대할 테지?”
“당연하죠! 만일 결판이라는 것이 그런 거라면…”
“다리를 자른 다음 보늬 당주에게 맡겨 놓고 가겠다. 너를 하인샤 대사원으로 데려다줄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을 거다.”
비형은 당황했고, 륜이 안도하는 모습을 보고는 더욱 당황했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가장 당황하고 있는 사람은 비형이 아니었다. 대요금표를 조회하기 위해 올라갔던 징수원을 애타게 기다리던 징수소장은 사모 페이가 꺼내 놓은 말에 완전히 미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두억시니라고 했습니까?”
“그래. 두억시니에겐 통행료를 얼마나 받지?”
“……당신 두억시니입니까?”
“그건 아냐. 하지만 내 뒤를 따라 3,000명쯤 되는 두억시니들이 오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걸 알아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말해 주는 거야.”
뜻 모를 소리를 내지르는 징수소장을 보며 사모는 잠시 그의 핏줄에 두억시니의 혈통이 흐르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해 보았다.
잠시 후 대요금표를 조회하러 갔던 징수원이 돌아왔다. 놀랍게도 징수원은 대호와 나가의 요금을 알아왔다. 징수소장은 그 사실에 감사하면서도 도대체 대요금표에 없는 것이 뭔지 의심했다. 그러나 징수소장은 사모 페이의 통과를 허락하지 않았다. 징수소장은 엄숙하게 보이려 애쓰면서 말했다.
“당신이 나가이기에 통과시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 두억시니들이 당신을 쫓는 거라면, 당신은 다른 통행인들에게 위험이 될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당신과 그 두억시니들과의 관계를 명확히 해 주지 않는 이상은 당신을 통과시킬 수 없습니다.”
“네 말은 옳군. 그 두억시니들은 확실히 나를 뒤쫓는 것 같아. 하지만 그 두억시니들은 두 개의 도시를 그냥 지나쳤어. 이제 와서 다른 자들에게 해를 끼칠 것 같지는 않은데.”
“확신할 수 있습니까?”
물론 사모는 두억시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미안하지만 그럴 수가 없군.”
“그렇다면 당신의 통과를 허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도로를 이용하는 것 또한 불허합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십시오.”
“그럴 수 없다면?”
“이 요새에는 300명의 당원들이 있습니다. 당신의 그 대호라도 300명의 당원들에게 당할 수는 없을 겁니다.”
사모는 장난스럽게 질문했다.
“확신할 수 있어?”
안타깝게도 징수소장은 확신할 수 없었다. 그 300명의 당원들 중에서 대호를 보고도 도망치지 않을 사람을 찾아내기도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 징수소장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다행히도 사모는 징수소장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았다.
“너희들의 도로 이외에 다른 부분 중에서 대호가 산맥을 넘을 수 있는 곳이 있을까? 그 정도는 가르쳐 줘도 좋을 것 같은데.”
“그 대호는 얼마나 높이 뛸 수 있습니까?”
“남쪽에 큰 담을 가진 도시가 있었어. 그 도시의 인간들은 대호가 절대로 자신들의 담을 넘을 수 없다고 주장하던데.”
징수소장은 경악했다.
“그, 그 대호가 자보로 성벽을 넘었단 말입니까?”
“내가 도와줘서 넘었어. 혼자서는 넘지 못했을 거야. 좀 부족하던데.”
징수소장은 도대체 어떻게 대호의 도약을 도왔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묻는 것은 포기했다. 징수소장은 도로왕의 옛길이 있던 곳을 몇 군데 가르쳐 주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 길들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곳곳이 무너지고 길이 끊어져서 그렇습니다. 레콘들도 지나가길 꺼리는 곳이니 그 대호에게도 좀 버거울 거라 생각됩니다만.”
“레콘도 지나갈 수 없단 말이야? 그렇다면 곤란한데. 혹 이 근처에 왕독수리가 살아?”
“왕독수리요? 그런 건 없습니다.”
마루나래를 돌려보내고 왕독수리를 정신 억압할까 했던 사모는 그 생각을 포기해야 했다.
“산맥을 옆으로 돌아가려면 얼마나 걸리지?”
“두 달은 걸릴 겁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유료 도로로 장사할 수 있는 거죠.”
사모는 난감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마루나래가 빨리 달려 준다 하더라도 두 달이나 뒤쳐져서는 륜을 따라잡는 것이 대단히 힘들어질 것이다.
‘그 도깨비가 륜에게 계속 불을 붙여 준다면 륜은 추위에 고통받지는 않겠지. 좀 더 시간을 두고 쫓아가도 륜을 고통 속에 방치하는 일은 아닐 거야. 그렇다면 천천히 추적할까? 그러나 그 도깨비가 계속 륜을 보살펴 줄까?’
사모는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문득 사모는 륜이 이곳을 지나갔다면 징수소장이 보았을 테고, 그러면 륜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보았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계속 물어봐서 미안한데, 내 앞에 다른 나가가 지나갔지?”
“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황하던 사모는 곧 륜이 모습을 감추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잘 생각해 봐. 얼굴을 감추고…… 그래. 나와 비슷한 목소리를 내던 자가 없었어?”
징수소장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며칠 동안 그들의 요새에 머물고 있던 미성(美聲)의 여인을 떠올렸다. 여자라고 믿었을 뿐, 얼굴을 확인한 적은 없었다. 징수소장의 말을 들은 사모는 놀라며 외쳤다.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그, 그런데요.”
사모는 쉬크톨을 뽑아들었다.
징수소장과 징수원들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사모는 그들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쉬크톨을 위로 들어 올렸다. 요새를 겨냥한 사모는 분명한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륜은 그곳에 있었다.
사모는 쉬크톨을 아래로 내렸다.
“나오라고 해.”
“예?”
“그 자를 밖으로 나오라고 전해! 나는 그를 추적해서 이곳까지 왔어. 빨리!”
징수소장은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나 입을 열기 전, 징수소장은 유료 도로당의 당원이 준수해야 할 의무를 떠올릴 수 있었다. 부하 징수원에게 명령을 내리기 전 징수소장은 창문 너머로 사모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누구라 하더라도 적절한 통행료를 지불한 이상 그녀는 우리의 손님입니다. 당신의 말은 전하겠지만, 만약 그녀가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녀를 내어 드릴 수 없습니다.”
“그녀가 아니라 그야. 그는 내 남동생이야.”
“남동생・・・・・・ 이요? 그렇다면 그 자도…….”
“그래. 나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