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6장 – 길을 준비하는 자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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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6장 – 길을 준비하는 자 (9)


사모의 말에 징수소장은 더 이상 입 섞어 말하기도 싫다는 기분을 느꼈다. 징수소장은 급히 부하에게 명령했다.

사모의 말을 전해 들은 륜은 비늘을 곤두세운 채 케이건을 돌아보았다. 케이건은 징수원에게 조금 있다가 대답해 주겠다고 말한 다음 징수원을 돌려보냈다. 륜을 흘끔거리던 징수원은 다른 일행에게도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를 보낸 다음 방을 떠났다. 징수원이 떠나자마자 륜은 케이건에게 질문했다.

“어떻게 하죠?”

“곤란하군. 지금 나가서 그녀의 다리를 썰어 버리면 간단한 일이지만,”

비형과 륜은 급히 숨을 들이켰다.

“이곳에서 싸움을 일으키면 당원들이 우리를 용납하지 않을 텐데. 비 오는 산속으로 쫓겨나갈 수는 없고.”

티나한이 가볍게 부풀어 올랐다. 륜은 불평하듯 말했다.

“케이건. 당신 우리 누님을 너무 얕보는 거 아닙니까? 마치 우리 누님이 다리를 베어 가도록 협조하기라도 할 것처럼..”

“비형이 여기서 보고 있다가 대호와 네 누나의 눈에 불을 붙이면 돼. 그 다음에 눈이 먼 그녀의 다리를 썰면 되지.”

륜은 할 말 없다는 심정이 되었고 비형은 계속되는 ‘썬다’는 말에 얼굴이 노랗게 변했다. 케이건은 조금 고민하다가 말했다.

“아무리 대호가 있다 해도 이 요새를 상대로 어떻게 할 수는 없을 테니, 일단은 그냥 이곳에서 버티자. 당은 통행료를 지불한 손님인 우리를 보호해 줄 거다.”

케이건의 판단은 옳았다. 그의 말을 전해 들은 징수소장은 사모에게 륜을 내어 줄 수 없다고 선언했다. 사모는 쉬크톨을 움켜쥔 채 징수소 안으로 난입할 방법이 없는지 고민했다. 하지만 하나뿐인 창문은 너무 작았고 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다. 그리고 철문은 성난 레콘이라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튼튼해 보였다.

사모는 마루나래와 함께 뒤로 물러났다. 만약 이곳에 통행자들이 많다면, 언젠가 문을 열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태의 추이는 사모의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맹위를 떨치고 있는 폭풍 때문에 시구리아트 산맥을 넘으려는 여행자는 아무도 없었다. 밤이 될 때까지 관문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사모는 어떤 여행자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녀를 쫓아내기 위해 당원들이 나오지도 않았다. 대호 때문에 밖으로 나오려는 당원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과 한 요새의 그런 침묵의 대치는 한밤중이 되었을 때 느닷없이 해소되었다.

한밤중, 허기를 느낀 사모는 마루나래 또한 배가 고플 거라 생각하고는 사냥을 명령했다. 마루나래는 시구리아트 산맥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사냥을 한 다음 사모를 위해 살아 있는 동물 하나를 잡아 왔다. 그런데 사모가 막 그것을 삼키려 했을 때 요새 쪽에서 찢어지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그만둬!”

사모는 깜짝 놀라며 손에 쥐었던 산양을 내려놓았다. 그 산양은 마루나래가 다리를 으스러뜨렸기 때문에 반항하지도 못했다. 사모는 요새를 멍하니 바라보았고 요새에선 다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산양인가!”

“어, 그런데?”

“안 돼! 먹지 마! 제발 그러지 마!”

사모는 완전히 당황해 버렸다. 그리고 몇 분 후 자다가 일어난 케이건 또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산양 인질극이라고?”

케이건은 졸음을 쫓아내기 위해 눈 주위를 문지르며 말했다. 당원들은 문 밖에서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렇소!”

문 앞은 티나한이 막고 있었기에 아무도 방 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케이건은 일단 사태가 다급하지는 않다는 판단하에 천천히 옷을 챙겨 입으며 말했다.

“당신들이 산양을 숭상하는 것은 알지만, 당신들 또한 산양을 먹기도 하잖소.”

“산 채로 먹지는 않소! 우리 눈앞에서 그런 끔찍한 꼴을 용납할 수는 없소! 만일 그대로 놔두면 산양의 저주가 우리에게 내릴 거요!”

책임자인 듯한 당원의 외침에 다른 당원들 또한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물론 티나한 때문에 케이건은 아무도 볼 수 없었다. 옷을 다 입은 케이건은 우울한 표정으로 창문을 향해 걸어갔다. 창문 밖 먼 곳에 있는 사모를, 케이건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귀를 기울이자 빗줄기 사이로 구슬픈 산양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요새의 다른 사람들도 그 울음소리로 산양을 판별했을 것이다. 케이건은 사모가 어디쯤에 있는지 찾아보기 위해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동안에도 문밖의 당원들은 흥분한 투로 외쳤다. 멋모르고 산양을 사냥했던 당원이 갑자기 벼랑에서 실족사했다느니, 삶에게 공격당하는 산양을 구하지 않았던 당원이 벼락에 맞아 죽었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두서없이 오가고 있는 듯했다. 케이건은 거론되는 재난들이 산맥 위에 그 터전을 두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맞닥뜨릴 수 있는 것들이라고 지적하지는 않았다. 소용이 없을 것을 짐작하기 때문이다. 케이건은 계속 사모를 찾아보며 말했다.

“산양이 저주를 내린다면, 당신들이 아니라 저 나가에게 내리지 않겠소?”

“그렇지 않소! 산양은 뻔히 보면서도 구하지 않은 우리의 죄를 물을 거요! 안 봤으면 모르지만 본 이상은 구해야 돼!”

케이건은 결국 포기했다.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사모를 찾아내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케이건은 손짓으로 륜을 불렀다.

“네 누나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떤 모습인지 말해다오.”

륜은 창가로 걸어가 말했다.

“큰 것은 대호일 테고 둥그스름한 것은…… 모피를 입으신 누님이군요. 그 앞에 놓여 있는 건 산양일 테고. 그런데 이상하군요. 그냥 누워 있을 뿐 도망치지를 않는군요? 정신 억압이라도…… 아, 다리를 다친 모양입니다.”

케이건은 방 바깥까지 들리도록 크게 말했다.

“저 산양은 이미 구하기 어렵소. 대호가 산양의 다리를 부수어 가져온 모양이오. 하긴 그래야만 산 채로 가져올 수 있었겠지.”

문밖의 소음이 약간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곧이어 더 큰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제대로 장례를 치러 줘야 해! 그래야 화를 피할 수 있어! 나가의 뱃속에 들어가면 장례를 치러 줄 수 없어!”

케이건은 한숨을 내쉬었고 륜은 이 요새로 오기 전에 자신도 산양 한 마리를 삼켰음을 고백했다간 맞아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륜은 빗줄기 사이로 멀리 보이는 열들을 발견했다. 륜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빗줄기 사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륜은 경악했다. 산비탈을 따라 올라오고 있는 열은 수천 개였다. 륜은 다급하게 외쳤다.

“케이건! 뭔가 아주아주 많은 숫자의 열들이 다가오고 있는데요?”

“뭐라고 생각되는데?”

“아직은 거리가 너무 멀어서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숫자가 너무 많아요.”

케이건은 고민하다가 비형에게 손짓했다.

“산 아래쪽으로 도깨비불 하나 던져 보시오. 충분히 크고 밝은 걸로. 그리고 티나한. 당신이 보시오.”

비형은 케이건의 지시대로 했다. 환한 도깨비불이 날아가면서 놀란 사모와 대호의 모습이 잠깐 비춰졌다. 그러나 도깨비불은 그들을 지나쳐 산 아래쪽으로 다가갔다. 문 앞에 있던 티나한은 당원들을 잠시 노려보다가 사납게 웃어 주었다.

“방 안으로 들어오는 놈에겐 뽀뽀해 준다. 알겠지?”

레콘의 부리에 입맞춤당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당원들을 얼어붙게 만든 다음 티나한은 바람처럼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도깨비불에 의해 비추어진 것을 바라보았다. 티나한은 벼슬을 곤두세웠다.

“제기랄, 두억시니다! 수천 마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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