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7장 – 여신의 신랑 (1)
수호자들을 가리키는 ‘여신의 신랑’이라는 칭호는, 혼인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나가의 사회를 놓고 볼 때 매우 기이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나가의 여인은 한 명의 남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 동물과 다름없는 재생산 방식을 선택하고 있는 나가의 사회에서, 이 ‘신랑’이라는 혼인 제도를 연상케 하는 단어의 의미는 무엇일까? 물론 그 의미는 우리의 혼인 제도와 같다. 여신의 신랑이라는 칭호는 그들 수호자들이 다른 여인이 아닌 단 한 명의 여인인 발자국 없는 여신에게만 충실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렇다면 나가 사회에서 이들 수호자 집단은 동물적인 동료들에 비해 고등한 자들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우리의 혼인 제도가 나가들의 난혼보다 고등한 방식이라 믿는 것은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자기중심적인 태도다. 때론 우리를 불쾌하게 만들곤 하는 논리적 탐구는 아쉽게도 우리의 혼인 제도가 나가의 난혼보다 별로 우월할 것이 없음을 증명해 준다.
사람들은 동물보다 훨씬 성장이 느리다. 따라서 사람의 여자들은 성장이 빠른 동물들의 암컷에 비해 육아에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이것이 여자와 미숙한 자손 양자에게 위험한 투자임은 자명하다. 혼인 제도는 수컷에게 이 위험을 분담하게 하는 제도다. 즉 먹이를 구해 오고 적대적 환경에 맞서 투쟁하는 등의 역할을 남자가 담당함으로써 보다 안전한 재생산을 피하려는 제도가 우리의 혼인 제도다. 이것은 이를 테면 어미와 새끼라는 기본적인 가족 구조에 수컷이 편입된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나가들의 경우는 수컷이 담당할 역할을 사회적 체계가 대신하고 있다. 심장 적출법에 의해 나가 여자들은 자손을 충분히 보호할 만큼 강력해졌으며 그들의 땅 한계선 이남에서 나가에게 불리한 거의 모든 요소를 일소했다. 그 시점에서 나가 남자들은 자신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 이상 가족의 기본 구조인 암컷 어미와 새끼의 관계에 수컷이 끼어들 자리가 남지 않게 된 것이다. 역할이 감소되면 권력도 감소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나가의 사회는 여성이 지배한다. 나는 ‘여신의 신랑’이라는 호칭에는 암컷 어미와 새끼의 관계에서 추방되자 더 크고 더 위대한 것에 편입되고자 몸부림치는 나가 남자들의 슬픈 소속 욕구가 반영되어 있지 않나 추측한다.
그러니 이 때려죽이고 싶도록 사랑스러운 손자 녀석아. 네게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그 ‘남성미’를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면, 우리 사회가 아직 남자들에게 ‘남성미에 대한 찬사와 존경’이라는 웃기는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남자들에게 수컷 역할을 맡겨야 할 만큼 원시적이라는 사실에 고마워하도록 해라!
-독설가로 유명했던 우슬라 사르마크 부인이 혈기방장한 손자에게 들려준 애정 어린 충고 中.
여신의 신랑
페니나 시에도가 마침내 설계도를 받아들였지만, 갈로텍은 도무지 안심할 수 없었다.
나가의 대장장이가 다 그렇듯이 페니나 시에도는 자신의 천직에 한탄하는 걸로 낮을 보내고 남자들에게 굽실거려야 한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뜨리며 밤을 소모하는 여자였다. 나가들에게 있어 나무를 태워야 일할 수 있는 대장장이나 그릇장이 등의 일에 대해 장인의 자부심을 논하는 것은 웃음거리도 되지 못한다. 그런 생산 활동의 필요성을 의심하는 나가는 없지만, 대장장이나 그릇장이 앞에서 흠칫하지 않는 나가 또한 거의 없는 형편이다.
페니나의 대장장이다운 비굴한 태도는 갈로텍을 언짢게 했다. 절대로 여자답다고 할 수 없는 모습인데다 할 바를 다했다. 우연히 되겠지’라고 말하는 노기 하수언의 당당한 태도에 익숙한 갈로텍은 그 모습을 더욱 견디기 어려웠다. 자신도 모르게 갈로텍은 딱딱하게 닐렀다.
<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이걸 만들 수 있다고 닐러줄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이것이 정말로 필요합니다. 시에도.>
페니나는 비늘을 곤두세웠다.
<저를 그 이름으로 니르지 마세요. 신성한 분이여.>
<좋습니다. 페니나.>
갈로텍은 거북함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이걸 만들 수 없다면 그냥 만들 수 없다고 닐러주면 됩니다. 저로서는 그 편이 더 기쁠 것 같으니까.>
<만들 수 있어요. 신비하기까지 한 물건이지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신의 신랑께서는…………, 이런 무례한 질문을 제발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대장장이의 일에 대단한 소질이 있으신 것 같군요. 어떻게 이런 것을 설계하셨지요?>
버럭 화를 내려던 갈로텍은 바로 그것이 페니나 시에도가 원하는 것임을 깨닫고는 분노를 억눌렀다. 갈로텍은 부드럽게 닐렀다.
<잘 설계되었습니까?>
<네? 예. 수십 년 동안 이 일을 해 온 분의 솜씨 같습니다.>
페니나는 한 번 더 갈로텍을 격동시키려 했지만 갈로텍은 부드럽게 대처했다.
<초심자의 운이겠지요.>
페니나는 자신의 의도 대장간 일 같은 천박한 일에 소질이 있다는 식의 농으로 여신의 신랑을 격노하게 함으로써 작은 쾌감을 맛보려 했던가 들켰음을 간파했다. 페니나는 어리석은 여자는 아니었다. 그녀는 더 이상 허튼 시도를 하지 않았고 그래서 대화는 사무적으로 진행되었다. 페니나는 사흘 내에 물건을 완성시키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런 다짐에 놀라지 않는 갈로텍을 잠시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절대로 사흘 내에 만들 수 없는 물건이었지만 설계도가 워낙 완벽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페니나는 갈로텍이 그런 상황까지 예견할 정도로 기계 설계에 능하거나 설계도의 제작자가 다른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페니나는 둘 중 어느 것이 사실일지에 대해 고민하는 대신 대금에 대한 절충을 시작했다. 대금이 결정된 후 갈로텍은 선불을 지불했다. 그리고 갈로텍은 방 한쪽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페니나를 배웅해 드리게.>
페니나 시에도를 데려왔던 남자는 천한 대장장이를 위해 32층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올 생각은 없었다. 따라서 남자는 계단까지만 페니나를 안내한 다음 다시 갈로텍의 방으로 돌아왔다. 갈로텍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빙긋 웃었다.
<그로스. 저렇게 남자 같은 여자가 정말 하텐그라쥬 최고의 대장장이인가? 굽실거리는 꼴이라니, 발이라도 핥을 것 같더군. 차라리 비아스 마케로우 쪽이 훨씬 여자답던데.>
그로스는 비늘을 곤두세우며 신음했다.
<그래. 여자답지. 우리를 사랑하는 건지 죽이려는 건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음탕한 니름은 관둬. 그로스.>
<음탕한? 그런 생각 따위 하고 싶지도 않아. 지금 나는 험악한 노동 환경에 대해 투덜거리고 있는 것일 뿐이야. 그녀는 한 명이고 우리는 다섯인데, 젠장. 지금 마케로우 가문에서 죽어가는 얼굴을 하고 있는 건 그녀가 아니라 우리 다섯 명이야. 비아스 마케로우는 우리를 다 죽여서라도 아기를 가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 같아. 내가 오늘 대장장이 건 때문에 나와야 한다고 닐렀더니 다른 네 사람이 나를 죽일 듯이 쏘아봤다고 니르면 믿을 수 있겠어?>
<그로스, 충분히 음탕하게 들려. 그만두지 않으면 화를 내겠어.>
<그러면 이렇게 니르지. 언제쯤이면 그 짓을 그만둘 수 있겠나?>
<그런 질문이라면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대답할 수 있군. 물건이 완성된 후 설치와 시험, 그리고 조작법에 익숙해질 시간을 생각한다면 대충 대엿새 정도면 충분할 거야.>
그로스는 흥분했다.
<대엿새?>
<그래. 그 이상은 걸리지 않을 거라고 보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군. 대여섯 새 후에………. 우리가 여신…….>
<제발 부탁이니 흥분은 가라앉혀. 그로스, 비아스는 영리해. 자네들 다섯 명이 덤벼도 상대가 안 될 만큼. 그러니 그녀에게 어떤 내색도 해선 안 돼.>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아니, 자신하지 마. 지금부터 내가 내릴 명령을 들으면 그렇게 자신할 수 없을걸. 자네들은 이제 그녀의 이름을 알아내야 해.>
그로스는 잠깐 놀랐다가 곧 실망한 표정으로 갈로텍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물리적으로는 정확한 방향이 아니지만, 상징적으로는 꽤 정확한 방향이다.
<그 꼬마를 설득하지 못한 모양이군.>
<그러니 명령하는 거잖아.>
<쉬운 일이 아니야.>
<알아.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야.>
그로스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몇 시간 후, 스바치도 어깨를 늘어뜨렸다. 장소는 비슷하지만 고도는 다른 곳에서 수호자 세리스마는 그런 스바치를 보며 침울하게 닐렀다.
<심장 파괴를 비밀로 해야 하는 이유들 중 가장 질 낮은 것이지. 그걸 그렇게 사적인 목적에 사용하려는 사람들도 생길 테니까.>
<카린돌은 필사적입니다. 비아스가 가주가 되는 날이 자신의 사망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겉모습은 침착하고 이지적으로 보이지만, 그 논리는 적출 공포증에 빠진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설득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비아스 마케로우에 대해 자네보다는 더 잘 아는 것일 수도 있지. 그런 황당한 이유로 남동생을 베어 죽이고 그 일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수호자를 토막 낸 살육이야. 나는 카린돌의 심정이 이해되는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장 파괴를 어떻게 그런 일에 쓰겠나.>
<요청이 묵살되면 그녀는 그걸 고발할 텐데요.>
<설득하게. 그녀는 지금 공포 때문에 기본적인 산술을 못하고 있어.>
<무슨 니름이십니까?>
<비아스가 지금 당장 잉태한다 해도 그 자손이 장성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게다가 그것이 남자라면 어느 정도 자라난 다음 다시 잉태해야겠지. 비아스가 확고한 가주 계승자로 낙점되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거야. 소메로 마케로우는 그 안에 분명히 잉태할 수 있어.>
스바치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두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왜 이런 일에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살신이 일어날 판국인데 서로를 죽이려 드는 추잡한 자매 사이에 끼여서 옴짝달싹할 수 없다니. 제 꼴이 너무 우습습니다. 사람다운 일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없잖나? 남은 건 하인샤 대사원에서 맡아야 할 부분이야. 자네는 가서 카린돌을 진정시키게. 그것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야. 사람다운 일이고.>
<제가 지금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사람다운 일은 비아스에게 벌을 내리는 겁니다!>
세리스마는 슬픈 눈으로 스바치를 바라보았다. 스바치는 자신이 카린돌에게 동의하고 있음을 더 이상 세리스마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숨기지 못했다.
<카린돌은 핑계거리가 필요하니 닐러준다는 식으로 정의를 거론했지만 그게 사실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비아스의 죄에 대해 어떤 처벌도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녀 때문에 고통받은 자들이 몇입니까? 목숨을 잃은 화리트와 수호자 유벡스, 누명을 뒤집어쓴 륜 페이, 그 때문에 동생을 죽여야 할 처지에 빠진 사모 페이, 그 사실을 모두 간파했다는 이유로 목숨의 위협을 당하는 카린돌 마케로우. 다섯 명입니다. 비아스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나가라는 숲에서 사악한 연기를 내뿜으며 타고 있는 불씨입니다. 지금 그걸 꺼버리지 않으면 장차 거대한 산불이 숲을 덮칠 겁니다. 그녀의 심장을 파괴하십시오!>
세리스마는 거부의 눈으로 스바치를 바라보며 닐렀다.
<스바치. 우리는 심판자가 아니야. 심장 파괴 또한 심판의 수단이 아니고.>
<이건 심판이 아니라 자기 구제입니다. 그녀 같은 자가 가주가 된다면 나가 사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우리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벌레 먹은 부위를 도려내야 한다고 닐러드리는 겁니다. 우리는 살신을 저지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살인은 저지할 수 없는 겁니까? 비아스를 놔두는 것은 살인 행위입니다!>
<그만하게. 스바치. 내가 자네에게 불필요한 의심을 품게 되기 전에.>
<의심이라니요?>
<나는 자네가 카린돌에게 매료되었음을 지적하는 영광을 누리고 싶지 않군.>
스바치는 비늘을 부딪치며 세리스마를 바라보았다. 세리스마는 그런 스바치를 바라보며 냉정하게 닐렀다.
<그렇지 않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나는 살인 행위를 저지하기 위해서 살인해야 한다는 식의 그 니름 같지도 않은 논리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추측해야 하지?>
스바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리스마는 옷자락을 가다듬으며 닐렀다.
<그녀는 자네를 이용할 뿐이야, 스바치.>
<수호자님과 마찬가지로, 저도 모든 나가들에게 이용당하길 원했기에 지금의 제가 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 자네가 봉사해야 하는 대상은 모든 나가야. 스바치. 카린돌 마케로우가 아니야. 그녀를 안심시키는 것이 모든 나가를 위한 올바른 선택이야. 그녀에게 부화뇌동하여 비아스를 혐오하게 되는 것은 결코 모든 나가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닐세. 가서, 그녀를 설득하게.>
스바치는 무겁게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