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7장 – 여신의 신랑 (2)
대지는 이곳에 이르러 산과 강과 호수 같은 것을 빚어내던 창의성을 모두 잃어버리고 좌절에 빠져버린 듯하다. 산이나 숲 그 어느 것도 없었지만 지평선 또한 보이지 않는다. 완만하게 넘실대며 계속되는 구릉 때문이다. 바람은 턱없이 낮아 보이는 하늘에서 구름을 마름질하고 구릉의 사면을 덮은 억새들을 거슬러 황야의 애가를 노래 부르게 하고 있었다.
구릉 위에 선 케이건은 묵묵히 남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등 뒤에선 티나한이 땅에 드러누워 있었다. 그리고 륜은 아스화리탈의 꼬리를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 케이건은 그들에게 완전히 쉴 것을 명령했다.
잠시 후 남쪽 하늘에서 딱정벌레가 나타났다. 굉음과 함께 날아온 딱정벌레는 억새들을 춤추게 하며 땅에 내려섰다. 나늬의 등에서 뛰어내린 비형은 케이건에게 곧장 걸어왔다. 티나한이 일어나 앉았고 륜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 시간쯤 후엔 우리를 따라잡을 것 같군요. 두억시니들은 그보다 좀 뒤쳐져 있지만, 세 시간 안에 이곳까지 도달할 테고요. 어떻게 하죠?”
“두 시간 여유면 충분하오. 매복했다가 사모와 마루나래를 잡도록 합시다.”
비형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저, 그녀가 정말 팔을 잘라서 휘둘러대면 어쩌죠?”
“자기 팔을 자르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소. 게다가 오른손으로 자를 수 있는 건 왼팔인데, 오른손에 쉬크톨을 쥐고 있다면 잘린 왼팔을 어느 손으로 주워 들겠소? 쉬크톨을 버리고 왼팔을 주워 들려고 해도 눈이 가려진 상태이니 역시 불가능한 일이오. 걱정하지 않아도 좋소.”
륜이 다가서며 말했다.
“케이건. 분명히 해두어야겠는데요.”
“쉬크톨을 쥘 수 없도록 손만 자르겠다. 그리고 하인샤 대사원으로 데리고 가겠어. 약속한다.”
“누님은 눈이 가려져도 쉽지 않은 상대일 거예요.”
“싸울 생각은 없다.”
“싸우지 않아요?”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 티나한. 비형이 사모와 대호의 눈을 가리면 당신 철창으로 사모의 모피를 벗겨내시오. 7미터니 거리는 충분하오. 그 후 사모가 기절할 때까지 기다린 다음 이미 말했던 처치를 한 후 그녀를 싣고 이틀만 걸어가면 하인샤 대사원이오. 흑사자 모피는 륜에게 입히고 비형 당신이 그녀에게 아주 낮은 온도의 도깨비불, 그러니까 간신히 의식을 유지할 정도의 도깨비불을 붙여주면 이틀 동안 그녀를 호송하는 것도 크게 어렵지는 않을 거요.”
“세 시간 뒤에 도착할 두억시니들은 어떻게 하지요?”
“그들은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소. 하지만 그들이 정말 나가와 도깨비, 레콘, 딱정벌레로 이루어진 무리를 추적하고 있는 거라면 대사원에서 우리가 해산해 버리면 그만일 거요. 그러면 그 불쌍한 자들은 목표를 상실하게 되는 거지. 그래서 그들이 다시 남쪽으로 돌아가 버린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거요.”
륜과 티나한, 그리고 비형은 케이건의 계획에서 어떤 위험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들은 입을 모아 계획의 완전성과 안전성을 칭찬했다.
그리고 세 시간 후, 그들은 계획을 완전히 포기했다.
사모 페이는 앞쪽 하늘에서 나타나 그녀를 정찰하고 돌아간 딱정벌레를 놓치지 않았다. 사모는 준비된 함정으로 뛰어드는 괴벽을 부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케이건은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할 거라는 것까지 예견했으나 뒤에서 두억시니들이 추적하고 있으니 속도를 늦추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모는 케이건이 그런 생각을 할 거라는 것까지 예견한 다음 과감하게 멈춰 섰다.
‘나가, 도깨비, 레콘, 딱정벌레로 이루어진 무리를 쫓고 있어. 나가와 대호가 아니야.’
마루나래는 그런 사모의 결정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툴툴거렸고, 두어 시간 후 저 멀리서 두억시니들의 냄새가 다가오자 그런 투덜거림의 강도를 더욱 높였다. 사모 또한 쉬크톨을 뽑아들지 않을 수 없었다.
평원을 뒤덮으며 다가온 두억시니들은 그녀와 마루나래를 발견하자 속도를 늦추었다. 거리를 백 미터쯤 남겨 둔 곳에서 두억시니들은 완전히 멈춰 섰다. 그리고 시구리아트 유료 도로에서 나섰던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가 앞으로 걸어왔다. 마루나래의 등 위에 앉아 있었기에 사모는 두억시니의 얼굴을 거의 비슷한 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마지막 순간, 사모는 쉬크톨을 도로 꽂아 넣었다.
사모는 두 손으로 마루나래의 머리를 누른 채 두억시니를 조용히 응시했다. 마루나래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앞발의 발톱을 곤두세웠다. 사모는 계속 마루나래를 달래며 두억시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머리가 둘이라 양쪽을 번갈아 보아야 했고, 결국 사모는 가운데 달려 있는 오른손을 바라보기로 했다.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는 사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서로를 돌아보았다.
“나가 태운 대호.”
“대호 탄 나가.”
긴장된 순간이었지만 사모는 이 상반된, 하지만 똑같은 해석에 잠시 미소 지었다. 두억시니의 두 머리는 서로를 향해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머리들은 다시 사모를 바라보고는 서로를 돌아보았다.
“나가 태운 대호!”
“대호탄 나가!”
사모는 저러다가 싸우겠다는 약간 한가한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싸운다 해도 어느 팔이 어느 머리의 편을 들지 알 수 없었고, 따라서 한가한 생각은 곧 복잡한 고민거리로 발전했다. 사모가 그런 불필요한 상념을 떨쳐버렸을 때 두억시니 또한 그런 토론이 무익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는 그녀의 옆을 지나쳐 걸어갔다.
사모는 상당한 긴장감을 맛보며 다음에 일어날 일을 기다렸다. 두억시니들은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를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사모의 주위를 지나쳐 달렸다. 마루나래는 거리에 들어오는 모든 두억시니를 후려치고 싶어 안달했다. 온 힘을 다해 마루나래를 진정시키며 사모는 천천히 뒤로 돌았다. 그리고 두억시니들 틈에 섞여 달렸다. 두억시니들은 그런 사모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마루나래도 조금씩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사모와 마루나래는 3,000명의 두억시니들과 그들이 일으키는 먼지 속에 몸을 감춘 채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