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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8장 – 열독 (1)


마침내 키탈저 사냥꾼들은 자보로에 대호 별비를 바칠 수 있었다. 하지만 별비를 받아야 할 무라 마립간은 이미 타계한 지 오래였다. 키탈저 사냥꾼들이 3대에 걸쳐 별비에게 도전하는 동안 자보로의 마립간 역시 두 번 바뀌었다. 그들이 별비를 바쳤을 때 자보로를 지배하고 있는 자는 하모리 마립간이었다. 하모리 마립간은 별비를 바치러 온 사냥꾼들이 소년 소녀들을 대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아해했다. 그리고 마립간은 별비의 파헤쳐진 복부를 보며 더욱 놀랐다.

“무라 마립간께서는 그대들에게 별비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건 완전한 별비가 아니군. 속에 있던 것은 어떻게 되었지?”

사냥꾼들의 우두머리는 대답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지?”

그러자 우두머리는 말없이 데리고 온 소년 소녀를 가리켰다.

“저들의 배 속에 있습니다.”

하모리 마립간은 겨우 키탈저 사냥꾼들의 복수를 떠올렸다. 하지만 마립간은 소녀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저 소녀도 별비의 간을 씹어 먹었단 말인가?”

우두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 애는 우리 모두의 딸입니다.”

– 펜조일의 <별비와 키탈저 사냥꾼>


열독(熱毒)

“뱀을 풀어 놓겠습니다.”

오레놀은 뱀 단지를 조심스럽게 기울였다. 단지 안에서부터 요동을 치고 있던 뱀들은 빠르게 방바닥에 쏟아졌다. 티나한은 팔짱을 낀 채 뱀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이리저리 방황하던 뱀들은 곧 부자연스러운, 작위적인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발 없는 몸들이 저 먼 곳 냉혹의 도시에서 보내어진 의미를 움직임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쥬타기 대선사가 그것을 읽었다.

“간절히 희망하며 묻겠습니다. 륜 페이가 귀측에 도달했습니까? 만약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긍정이라면 뱀 한 마리를 붙잡아 단지 안에 집어넣으시오. 만일 부정이라면 뱀들을 그냥 내버려 두시오.”

티나한이 뱀 한 마리를 향해 무심히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케이건이 그 손을 툭 쳤다. 티나한은 케이건을 돌아보았다.

“그건 독사요.”

티나한은 당황하여 손을 잡아당겼고 엉덩이도 조금 잡아당겼다. 케이건은 바닥을 잘 살핀 다음 독사가 아닌 뱀을 조심스럽게 집어들어 단지 안에 집어넣었다. 뱀들이 다시 꿈틀거렸다.

“도착했나. 축하한다. 륜 페이에게 감사를. 구출대에게도. 준비는 끝났나? 대답이 긍정이라면 뱀 한 마리를 단지 안에 집어넣어라.”

티나한은 어이없다는 듯이 대선사를 바라보았다.

“왜 갑자기 말투가 바뀌냐?”

“뱀 한 마리가 줄어서 그렇소.”

케이건은 뱀을 집어들지 않았다. 일찍이 륜이 발자국 없는 여신을 부를 장소로 준비해 두었던 철혈암이 마루나래와 케이건의 싸움에 의해 박살이 났기에 다시 처음부터 준비를 해야 했다. 그 외에도 그들이 거론하고 싶지 않은 문제가 몇 가지 더 있었다. 한참 후 뱀들이 사어를 그렸다.

“문제가 있는 모양이군. 사흘 내로 준비가 끝날 수 있다면 뱀을 넣어라. 사흘 후 다시 연락하겠다. 대답이 부정이라면 엿새 후에 연락하겠다.”

사어를 읽던 대선사는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케이건은 팔짱을 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곳에 있던 누구도 준비가 사흘 안에 끝날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던 뱀들이 다시 빠르게 움직였다.

“계획은 계속 유효한가?”

케이건은 뱀 한 마리를 집어들어 단지 안에 집어넣었다. 덕분에 사어는 더욱 축약되었다.

“다행. 이해. 문제 해결 희망. 엿새 후 재연락. 최선 노력 경주 요망. 반복. 최선 노력 경주 요망.”

오레놀이 단지를 기울였다. 뱀들이 단지 안으로 들어가자 오레놀은 그 뚜껑을 단단히 닫았다. 그리고 네 사람은 조금 전에 들었던 말을 생각해 보며 잠시 침묵했다. 오레놀이 그 침묵을 부담스러워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쪽에서 초조해하는 것 같군요.”

오레놀이 원한 것이 침묵의 배제였다면 그것은 실패했다. 다른 세 사람은 더 큰 침묵을 만들어내며 눈을 내리깔았다. 대선사가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철혈암이 파괴되어 유감이군. 케이건. 상심이 크겠군.”

티나한은 어리둥절하여 대선사를 바라보았다. 그 말은 케이건이 대선사에게 해야 할 말이었다. 티나한의 의문을 깨달은 대선사는 짤막하게 설명했다.

“철혈암은 케이건이 사원에 시주한 거요.”

티나한은 놀라며 마음속으로 ‘케이건 갑부설’을 되새겼다. 케이건은 무심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원한 건물은 없습니다. 어쨌든 다른 장소가 필요한데,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오레놀이 대답했다.

“장소를 준비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습니다. 앞서 철혈암을 준비했던 행자들이 비운암<飛雲庵>에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비운암은 철혈암만큼 외진 곳에 있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조용한 곳입니다.”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는 말이겠지요.”

케이건의 말에 오레놀과 쥬타기 대선사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티나한은 벼슬을 뻣뻣하게 세웠다. 티나한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 놈들 어떻게 할 수 없어, 대선사?”

“티나한. 하인샤 대사원에 찾아드는 손님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문제는 전적으로 주지인 라샤린 선사가 결정할 문제요.”

“이 사원의 주지야 그 라샤린이라는 중인지 모르겠지만 중들 중에서 제일 높은 건 너잖아? 네가 라샤린에게 좀 제안할 수 있는 문제 아니야?”

쥬타기 대선사는 그냥 웃었다. 티나한의 언사가 무례함이 아닌 순진함에서 나온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오레놀 대덕이 대선사를 대신하여 알기 쉽게 설명했다.

“말씀하신 대로 종단의 대표자인 대선사님께서는 종단에 관련된 문제라면 그런 제안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들은 종단 외부의 분들입니다. 따라서 그 자들에 대한 처리는 완전히 이 사원의 대표자인 라샤린 선사의 권한입니다. 그리고 제안을 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라샤린 선사께서도 그 자들에 대해 언짢아 하시는 눈치인 것 같더군요.”

“그럼 라샤린은 그 자들을 쫓아내지 않고 뭐 하는 거야?”

“봉문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사원은 오가는 이를 막거나 붙잡거나 하지 않습니다. 고작해야 승려들의 수행 생활을 방해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것 정도가 가능할까요. 지금 그 자들이 무학당<舞鶴堂> 쪽으로 접근하는 것을 삼가는 것도 쥬타기 선사님이 모든 영향력을 다 동원하신 덕분에 가능한 일입니다. 혹은 선사님이 즐기시는 거친 표현법을 따른다면 머리를 물어뜯을 듯이 화를 낸 덕분이라고 할까요.”

오레놀은 승려가 그런 표현을 쓰니 재미있지 않냐는 듯이 웃으며 케이건과 티나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웃음을 감추었다. 그의 앞에 있는 두 남자 중 한 명은 레콘이었고 다른 한 명은 대호와 맞선 인간이었다. 그들은 정말 ‘거친’ 자들이었고, 오레놀이 쓴 표현에 별로 감동받지도 않았다. 오레놀의 무안함을 무마시키려는 듯 쥬타기 대선사가 가볍게 맞장구를 쳤다.

“라샤린 선사는 정말 투사지. 산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제왕 병자가 되어 세상을 휩쓸고 돌아다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다 들 정도요. 라샤린 선사는 그 자들이 무학당에 한 발도 못 디디도록 할 거요. 어떻게든 빨리 륜을 설득해 주길 부탁하겠소. 여러분들은 그와 고락을 같이하신 분들이니 나나 오레놀보다 나을 거요.”

티나한은 한숨을 내쉬었고 케이건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오레놀과 케이건, 그리고 티나한은 대선사의 방을 나왔다. 오레놀은 뱀 단지를 보관해 두러 갔고 티나한은 툇마루에 기대어 두었던 철창을 집어들었다. 케이건은 텃밭 쪽으로 걸어갔다. 텃밭 끄트머리에 선 케이건은 묵묵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곁으로 다가선 티나한은 케이건이 보는 방향을 보고는 부리를 딱! 소리 나게 부딪쳤다.

계곡의 깨끗한 물 주위로 차일이 쳐 있었다. 차일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로 보아 보지 않아도 뻔했다. 차일 앞쪽에는 넓은 풀밭이 있었고 그곳에는 수십 명의 인간들이 몰려서 씨름판을 벌이고 있었다.

승려들의 수행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경내에서 떨어진 곳에 씨름판을 벌인 것은 일견 갸륵한 정성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이 있는 계곡은 무학당에 인접한 장소였다. 케이건과 티나한이 바라보는 가운데도 몇몇 행자들과 수좌들이 분개한 듯 차일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지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티나한은 벼슬을 딱딱하게 치켜세웠다.

“내 저것들을 그냥!”

티나한은 당장이라도 계곡을 향해 뛰어내려갈 기세였다. 케이건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놔두시오. 저 자들과 싸움이라도 벌이면 대선사에게 면목이 없소.”

“저 자식들이 무학당 훔쳐보려고 저기에 판 벌인 것이 뻔하잖나!”

“거기에 대해서는 좋은 해결책이 있소.”

잠시 후, 계곡에서 씨름을 즐기던 이들은 갑자기 그것을 중단해야겠다고 결정했다. 그들이 씨름을 충분히 즐겼다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고 느닷없이 들려온 대호의 포효에 깊은 감동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더 중요한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황망히 차일과 음식을 챙겨 계곡을 떠났다.

마루나래를 울부짖게 하기 위해 위협적으로 다가섰던 티나한은 뒤로 훌쩍 뛰어 빠져나왔다. 마루나래는 머리를 잔뜩 낮추고 어깨털을 빳빳하게 곤두세운 채 티나한을 노려보았다. 티나한은 웃으며 두 손을 내저었고,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꽤 호의적으로 보일 거라 믿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기 어려웠고, 마루나래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마루나래는 티나한이 무학당의 마당 반대편까지 물러난 다음에야 겨우 긴장을 조금 풀었다.

마당 반대편으로 물러난 티나한은 마루나래의 뒤편에 있는 두억시니들을 향해 외쳤다.

“야, 쌍대가리. 그 고양이 겁 안나냐?”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가 티나한을 돌아보았다.

“대호 사모 친구.”

“사모 우리 지휘자.”

두억시니들에게 사모는 아직도 그들의 지휘자였다. 사모가 마지막으로 내린 명령은 ‘저 인간과 레콘을 붙잡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억시니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사모의 다음 지시를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모는 다음 지시를 내려줄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두억시니들은 사모가 무학당에 옮겨진 이래로 계속 다음 지시를 내려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사모가 아무런 지시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티나한은 두억시니들이 영원히 무학당 앞을 지키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며 케이건을 돌아보았다. 케이건은 마당 한편에 있는 나무에 기대어 선 채 조용히 무학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실로 철옹성이라 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무학당의 축대 앞은 거대한 대호가 수문장이나 된다는 듯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축대 위에는 여러 군데가 상했지만 여전히 무시무시한 두억시니들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지붕 위에는 아스화리탈이 걸터앉아 있었다. 케이건은 접근하는 자들에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해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아스화리탈을 제외한다면 케이건은 무학당을 지키고 있는 자들 전부와 악연을 가지고 있다. 물론 마루나래가 자신의 찢어진 귀를 들이댄다면 케이건은 지금도 몸을 움직일 때마다 머리끝이 곤두서게 만드는 등의 상처를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억시니들은 하늘치를 유인하여 그들을 깔아뭉갠 케이건에 대해 결코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케이건은 그 행위에 대해 변호할 말도 그럴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륜과 사모는 바로 그런 자들의 보호를 받으며 무학당 안에 있었다. 그 놀라운 경비자들을 둘러보던 티나한은 문득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저 대호 말이야. 사모가 정신을 잃었는데 아직도 사모를 지키고 있네? 정신 억압이라는 건 반 죽은 상태가 되어도 통하는 거야?”

케이건은 잠시 티나한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이제야 그걸 깨달은 거냐고 물어도 될 법하지만, 케이건은 그러지 않았다. 대신 차분하게 설명했다.

“마루나래는 정신 억압 때문에 사모를 따르는 것이 아닐 거요. 륜은 키보렌에서 사모가 대단찮은 정신 억압자라고 했소. 대호를 억압할 정도는 되지 못할 거요.”

“그러면 어떻게 된 거야?”

“대호 스스로가 원해서 사모를 따른 걸 거요.”

“뭣 때문에?”

“그건 알 수 없소.”

티나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호를 바라보았다.

그때 방문이 열리며 륜이 걸어 나왔다.

케이건과 티나한은 긴장하며 륜을 바라보았다. 그날 밤 사모와 륜을 황급히 무학당에 옮겨 놓은 후로 그들은 거의 보름 만에 륜의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륜은 사모의 흑사자 모피를 걸치고 있었다. 마루 가운데 선 륜은 잠깐 동안 공황에 빠진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치 이곳이 어디인지,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몸짓이었다. 그러나 륜은 곧 케이건과 티나한을 목격했고 정신을 차린 듯했다. 륜은 축대로 내려왔다.

지붕 위에 있던 아스화리탈이 륜의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두억시니들과 마루나래는 륜을 흘끔 바라보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더 이상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았다. 륜이 케이건을 향해 걸어오는 동안 그를 따라온 것은 아스화리탈뿐이었다. 그 광경을 보며, 티나한은 누가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 대충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가까이 다가온 륜의 모습은 초췌했다. 인간처럼 땀을 흘린다면 지금쯤 말도 못 할 악취를 풍기고 있었을 것이다. 륜은 힘없이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마루나래가 울기에 누가 온 건 줄 알았습니다.”

“소리에 신경 쓰고 있었나?”

“며칠 전부터.”

“왜?”

“눈이 좀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누님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려고.”

케이건은 륜이 이토록 힘들어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격심한 심적 고통을 당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청각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니 신경이 끊어질 지경일 것이다.

“시력이 이상할 정도라면 뭘 좀 먹고 쉬어야 하지 않겠나.”

“며칠 전 밤에 먹었습니다. 누가 마당에 염소를 가져다 놓았더군요.”

승려들은 마루나래와 륜을 위해 염소 몇 마리를 가져다 놓았다. 승려들은 두억시니들에게도 뭔가를 가져다주고 싶어 했지만 두억시니들은 마루나래가 먹고 남긴 찌꺼기만 주워 먹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했다. 그들의 놀랄 만한 소식(小食)은 사제들을 당황하게 했지만 케이건은 그럴 법도 하다고 생각했다. 유해의 폭포가 생각이 있다면 대식(大食)하는 두억시니를 삼천 마리나 만들어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케이건은 방문 쪽을 흘끔 바라보고 말했다.

“사모는 어떤가.”

“상처는 다 아물었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일어나지 않는다고?”

“여전히 가사 상태입니다.”

케이건은 냉정한 눈으로 륜을 바라보았다. 결국 케이건은 흉중의 말을 꺼내 놓았다.

“그녀가 그걸 원하는 것 아닐까. 륜.”

륜은 비늘을 부딪치며 케이건을 쏘아보았다. 살기 어린 눈빛이었고, 그래서 케이건은 륜 또한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륜은 질문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녀는 처음부터 죽을 생각으로 쉬크톨을 받았을 거다. 그리고 믿기 어려운 집념과 실행력으로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어. 네 손에 쓰러지는 것.”

륜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케이건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쇼자인테쉬크톨이 완수되었지. 그녀에게 진심으로 찬사를 보내고 싶다. 너에게 죽여 달라고 요구한 적조차 없으니 어떤 나가도 꼬투리를 잡을 수 없는 완벽한 형태로 완성되었다. 륜 페이. 그녀가 왜 눈을 떠서 자신이 이룩한 이 놀라운 위업의 결말을 스스로 망쳐야 하지? 그녀는 그러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사모의 의지는 확고하다. 더운 방에 눕히든, 상처가 다 낫든, 네가 옆에 앉아 죄책감으로 몸부림치는 그녀에겐 무의미할 거야. 그녀는 절대로 깨어나지 않을 거다. 네가 그녀의 목을 자를 때까지.”

륜은 케이건의 멱살을 와락 움켜쥐었다.

티나한이 놀라 다가섰고 아스화리탈의 비행은 빨라졌다. 아스화리탈은 륜과 케이건의 머리 위를 정신없이 돌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격분을 참지 못해 케이건의 옷깃을 움켜쥐기는 했지만 그것은 륜의 성격에 어울리는 일이라곤 할 수 없었다. 륜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의 손과 케이건의 턱을 번갈아 바라보던 륜은 겨우 한마디를 꺼내 놓았다.

“제게, 제게 그런 걸 요구하지 마요!”

케이건은 천천히 손을 올려 륜의 손을 덮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래로 밀어내렸다. 잠시 저항할까 하던 륜은 곧 그것을 포기했다. 륜의 손을 밀어낸 케이건은 륜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말했다.

“내가 요구한 것이 아니라 사모 페이가 요구한 거다. 륜.”

륜은 무릎을 꿇었다.

아스화리탈이 당황하여 날아들었다. 아스화리탈은 륜의 어깨에 앉으려 했지만 그것은 여의치 못했다. 륜의 옆, 땅바닥에 앉는 아스화리탈을 보며 티나한은 용이 확실히 자랐음을 깨달았다.

아스화리탈은 륜의 어깨에 머리를 비볐다. 그것을 내버려 둔 채 륜은 힘겹게 말했다.

“저는 그럴 수 없어요. 케이건.”

“..·하텐그라쥬에서 연락이 왔다.”

륜은 고개를 조금 들어 케이건을 올려다보았다.

“사어를 통해 온 연락이었다. 그들은 준비가 되었는지 알고 싶어 하더군. 우리는 뱀을 단지 안에 한 마리씩 집어넣거나 넣지 않는 방식을 통해 긍정이나 부정을 표시할 수 있었고, 그래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엿새 후에 다시 연락하겠다더군. 서둘러 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긍정과 부정만 가능한 겁니까?”

“그래.”

“그렇다면 더욱 누님은 살아나셔야 합니다. 저는 제가 하려는 일에 대해 정확히 알기 전에는 시도할 수 없어요. 수호자들의 확언을 들어야 해요. 그걸 물어보려면 누님이 필요합니다.”

“너는 지금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고 있다. 륜. 너는 이미 필요한 정보는 거의 다 가지고 있다. 굳이 정보가 부족하다면 네 신부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너는 사모를 살려낼 빌미를 원하고 있을 뿐이야. 하지만 억지로 살려낸다고 해봐야 네 누나를 더 괴롭게 하는 일이다. 네 누나는 자신이 바라던 것과 조금도 일치하지 않는 상황을 보고 또다시 네 손을 이용한 자살을 시도하겠지. 그녀에게 같은 고통을 두 번 주는 일이 될 거다. 륜.”

“저는 두 번 다시 그녀를 공격하지 않을 겁니다!”

“네가 그럴 결심인 것을 알 테니 네 누나도 절대로 깨어나지 않을 거다.”

륜은 견딜 수 없다는 듯 처연한 표정으로 케이건을 올려다보았다. 아스화리탈의 목을 끌어안은 륜은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그러면 제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케이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륜이 이미 대답을 알기 때문이다. 사모의 목을 자르는 수밖에 없다. 머지않아 사모는 굶어 죽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녀의 입을 통해 억지로 동물을 우겨넣으며 시간을 연장시킬 수도 있겠지만, 본인이 살아나려 하지 않는 이상 그것은 무익한 헛수고가 될 뿐이리라.

케이건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의 목을 잘라라. 륜. 그녀가 원하는 것이……”

“당신의 부인이 원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케이건의 얼굴이 굳었다. 티나한은 놀란 표정으로 케이건과 륜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차마 눈을 들어 케이건을 볼 용기가 없었던 륜은 땅을 바라보며 외쳤다.

“당신의 부인이 무엇을 원했겠습니까? 썩어 없어질 시체를 되찾기 위해 당신이 서른 명의 나가를 공격하길 원했겠습니까? 당신이 목숨을 걸고 그렇게 해주기를 원했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죠. 그럴 리가 없어요! 그분은 당신이 그러지 말기를 원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어떻게 했습니까?”

케이건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그 귀 아래에는 굵은 주름들이 드러났다. 어금니가 바스러지도록 깨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륜의 지적은, 가혹하리만큼 사실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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