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8장 – 열독 (11)
마당 가운데 앉아 있는 륜을 보던 티나한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행자 하나가 무학당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행자는 쥬타기 대선사의 옆에 도달해서는 잠시 호흡을 골랐다. 대선사가 질문했다.
“어떻게 되고 있느냐?”
“일주문 근처까지 내려갔습니다.”
“누가 다치지는 않았고?”
“예. 여전히 호각지세입니다. 케이건 님도 대단하시지만 괄하이드 변경백께서는 그 연세에 어떻게 그런 용력을 발휘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구경하는 자들이 모두 혀를 내두르고 있습니다.”
케이건은 괄하이드를 상대하며 천천히 하인샤 대사원을 내려가고 있었다. 지금껏 한 시간이 훨씬 넘는 시간 동안 싸우고 있는 셈이다. 오레놀은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쩌자고 그런 무모한 방법을 선택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티나한? 당신이 내려가서 양자가 다치지 않도록 말리면 안 되겠습니까?”
티나한 또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티나한은 고개를 세로젓지 않았다.
“케이건은 나에게 여기를 지키고 있으라고 했어. 혹 자신이 실패해서 사람들이 여기로 몰려오게 되면 내가 그들을 막으라고 했어.”
“하지만 이대로 두면 두 사람 중 한 명은 크게 다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이런 방법을 쓰려고 그렇게 말한 것 같아.”
“예?”
“케이건은 그놈들을 바쁘게 만들어 주겠지만 자신 또한 꽤 바빠질 생각이라고 했어. 시간이 남게 되면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발자국 없는 여신을 죽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 같은 거 말이야.”
오레놀은 신음했다. 티나한은 미간을 찡그렸다.
“내 생각에, 지금 다른 자들을 막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케이건을 막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 지금 내려가서 싸움을 말리면 케이건은 이곳으로 올라올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 물론 그 친구가 여신을 죽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그래도 만약의 경우라는 것을 무시하지 못하겠어.”
오레놀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 말은 꺼내지 못했다. 어떤 승려가 숨 막힌 목소리로 외쳤기 때문이다.
“시작되었습니다!”
오레놀과 티나한, 그리고 쥬타기 대선사는 륜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정말로 뭔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싸움이 시작된 이후로 거의 두 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케이건과 괄하이드의 몸은 땀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내지르는 공격의 신속함은 두 시간 전과 마찬가지였다.
괄하이드 규리하는 이미 최초의 분노를 잊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두려움에 자신을 내어 주지는 않았다. 두 시간째 적에게 아무런 상처도 주지 못했으니 두려워해야 마땅하지만 괄하이드는 공포를 느낄 수 없었다. 공포를 느낄 겨를도 없을 정도로 바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케이건의 검이 춤추는 모습이 그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 또한 중요한 이유였다.
변경백은 그 투박하고 괴상한 검이 그토록이나 우아하고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괄하이드가 찌를 것이라고 예측했을 때 베어 들어오고 벨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때 찔러 들어오는 모습은 그에게 거의 환희에 가까운 놀라움을 선사했다. 그것은 거장의 묘기를 목도하게 된 애호가의 환희였다. 괄하이드는 기대감 속에서 다음에는 어떤 의외의 공격이 들어올지 기다렸고 케이건은 매번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목숨이 걸려 있으니 흥분은 더욱 진했다. 괄하이드 변경백은 케이건을 왕으로 받아들여도 괜찮다는 기분마저 느꼈다. 물론 산에게 부동심을 가르칠 수 있다는 평을 받는 노무사는 좋은 칼솜씨는 칼잡이의 자질이지 왕의 자질이 아니라고 자신을 꾸짖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느새 그들은 일주문을 내려가고 있었다.
변경백의 부하들이 횃불을 가져왔고 다른 구경꾼들 또한 손에 횃불이나 등롱을 든 채 그들을 따라 오솔길을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진한 흥분감을 맛보고 있는 것은 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어떤 자도 그렇게 싸울 수 없다. 케이건과 괄하이드가 사용하는 병기는 가벼운 것도 아니었다. 무기에 꽤 익숙하다 자부하는 자라도 쉰 번 휘두르기 힘들 거병(巨兵)을 수백 번 이상 휘두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육신을 망가뜨리는 일에 가깝다.
하지만 두 사내의 몸이 망가지는 기색은 어디에도 없었다. 망가진다면, 그것은 무기였다.
사람들은 차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혹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의 무기를 바라보았다. 케이건의 쌍신검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었다. 하지만 괄하이드의 대도에는 섬뜩한 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칼날 하나만의 중량과 두께를 따진다면 괄하이드의 대도 쪽이 훨씬 무겁고 두꺼울 것이다. 하지만 부딪힐 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파편을 떨어뜨리고 마는 것은 괄하이드의 대도였다. 사람들은, 그리고 괄하이드는 케이건의 쌍신검이 그 모양만 특이한 검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 하나하나의 날은 저 전설적인 쉬크톨에 버금갈 만큼 예리하고 단단했다. 괄하이드가 사용하는 무기가 폭이 넓은 대도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잖았다면 괄하이드는 이미 오래전에 무기를 잃었을 것이다.
다시 호된 부딪힘이 일어난 다음 두 검사는 약 5미터 정도 떨어져서 서로를 응시했다. 두 시간 만에 처음으로 괄하이드가 입을 열었다. 먼저 입을 여는 쪽이 자신의 피로감을 드러내는 것이 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군. 케이건 드라카.”
“그쪽이야말로. 20년 전에 만났다면 어땠을지 상상하기 무섭소.”
“아마도 20년 정도 경험이 부족한 무사를 만났을 거요.”
사람들은 노무사의 자존심이 멋지게 표현된 하이드의 말에 미소 지었다.
하지만 케이건은 아무런 감동도 받지 않았다. 괄하이드에게 건넨 말은 그저 예의를 위한 것일 뿐, 케이건은 두 시간 동안 싸운 상대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케이건이 원한 것은 두 가지였다. 모든 방문자들의 이목을 이곳에 집중시키는 것, 그리고 자신조차도 이곳에 매이게 될 것. 괄하이드는 그런 케이건의 목적에 부합하는 상대였다. 두 시간 동안 모든 실력을 쏟아내어 상대한 적수에 대한 평가로는 지독한 모욕이 되겠지만 케이건이 괄하이드에게 느끼는 감정은 고작 그 정도였다.
‘잘 골랐군.’
그런 케이건의 속마음을 짐작할 리 없는 괄하이드는 다시 진중하게 말했다.
“하인샤 대사원에서 당신을 왕의 재목으로 골랐다면, 적어도 아무나 고른 거라는 평은 면할 수 있겠군. 하지만 나는 아직 당신을 왕으로 인정할 수 없소.”
“당신이 만난 지 두 시간도 되지 않은 자를 왕으로 인정한다면 나는 당신에 대한 세평을 비웃었을 거요. 이해하오.”
“정말 당신은 왕이 될 생각이오?”
그런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다고 말하는 대신 케이건은 무학당이 있는 쪽의 하늘을 잠시 바라보았다. 쥬타기 대선사와 오레놀은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 짐작할 수 없다’고 말했고 케이건 또한 그것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건은 그쪽의 하늘을 보았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광선이나 신비한 깃털옷을 걸친 미녀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케이건은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