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8장 – 열독 (2)
케이건에게 비명을 들려주기 위해 나가들은 의도적으로 그녀를 산 채로 뜯어 먹었다. 나가들이 소리를 이용할 생각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복수심의 증거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나가들의 의도대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것은 고통의 비명이 아니었다. 나가들은 위대한 별비의 정복자가 어떤 여자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3대째에 남은 것이 한 명의 딸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키탈저 사냥꾼들은 죽은 이의 아들을 살아남은 이들 모두의 아들로 받아들여 함께 복수하던 전통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운 의심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모든 키탈저 사냥꾼의 딸이라 주장했고, 결국 가장 완고한 사냥꾼마저도 그 주장을 받아들이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그 지독한 폭풍이 치던 날, 그녀는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는 다른 아들들과 함께 빗속에서 별비의 배를 가르고 김이 무럭무럭 피어나는 대호의 생간을 꺼내어 씹었다. 아무도 그녀가 열두 살밖에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녀의 권리를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별비의 정복자라는 칭호 또한 나눠주었다. 그녀는 그런 여인이었다.
그녀가 마지막까지 내지른 비명은 도망치라는 것이었다.
케이건이 무수한 추억을 떠올리는 데 필요한 시간은 찰나였다. 다시 현실을 보고 듣게 되었을 때 케이건은 거의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륜은 아스화리탈의 목을 더욱 세차게 끌어안으며 외쳤다.
“당신은 되살아날 수도 없는 부인을 위해 목숨을 걸었어요. 하지만 제 누님은 살아날 수 있어요! 나는 누님을 포기할 수 없어요! 부인의 유해도 포기할 수 없었던 당신이라면 누구보다도 제 마음을 잘 알 거 아니에요!”
케이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몇 달 전 마지막 주막에서 비형을 만났던 이후,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케이건은 잊었던 것들을 너무 많이 떠올렸다. 요스비, 케이, 보니. 마침내 그는 800년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갈 것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기억들로 얼룩진 시간이 케이건을 숨 막히게 했고 범람하는 시간의 격류 위를 표류하는 무수한 사상(事象)이 그를 짓눌렀다.
“저는 사모를 살려낼 겁니다.”
“그러면 너는 키보렌으로 돌아갈 유일한 방법을 잃게 된다. 그녀가 원하지 않는 결과일 텐데.”
케이건은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듣는 기분으로 자신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평가하듯 자신을 평가했다. ‘이 녀석은 길잡이군.’ 티나한이나 륜은 케이건의 혼란을 깨닫지 못했다. 륜은 무릎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십시오.”
케이건은 고개를 갸웃했다. 륜은 아스화리탈을 안아들며 말했다.
“누님의 말씀처럼 저는 나가를 배신했습니다. 물론 그 말은 누님이 저를 도발하기 위해 하신 말씀이십니다만, 최소한 살신을 준비하고 있는 자들은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제가 나가의 배신자라고. 상관없습니다. 저는 그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가를 요구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대가?”
“엿새 후라고 했습니까? 좋습니다. 승려들의 요구대로 하겠습니다. 그 대가로 제 누님이 하텐그라쥬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내십시오.”
티나한은 어이가 없었다. 사모 페이는 나가들의 규칙에 의해 쇼자인테쉬크톨의 의무를 지게 되었다. 나가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들이 그 의무를 해소하거나 할 수는 없다. 말도 안 되는 억지라고 생각하며 티나한은 케이건을 돌아보았다. 케이건은 물끄러미 륜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케이건을 향해, 륜은 비늘을 곤두세우며 외쳤다.
“반드시 찾아내십시오!”
그리고 륜은 몸을 돌렸다. 무학당으로 되돌아가는 륜의 뒷모습을 보던 티나한은 난감한 표정으로 아랫부리를 긁적거렸다.
두억시니들이 갑자기 움직였다.
두억시니들은 륜을 둘러싸듯 포위했다. 티나한과 케이건은 깜짝 놀라 무기를 뽑아들었고 아스화리탈은 륜의 품에서 화라락 날아올랐다. 아스화리탈은 두억시니 모두를 경계하듯 륜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륜은 겁먹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마루나래는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듯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티나한과 케이건이 달려들 때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가 외쳤다.
“싸움.”
“아니다.”
티나한은 무슨 개소리냐는 듯 철창을 뒤로 크게 잡아당겼다.
그러나 케이건은 걸음을 멈추었다.
“싸움이 아니라고?”
“싸움.”
“아니다.”
케이건은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두억시니들이 륜을 공격하려 했다면 이미 그럴 시간은 충분했을 것이다. 어쨌든 보름 동안이나 함께 있었으니 이제 와서 륜을 공격할 이유는 없다. 티나한도 조금 늦게 그런 결론에 도달하여 철창 끝을 조금 낮추었다. 륜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건 무슨 짓이지?”
“기다려달라.”
“사모도 기다렸다.”
륜은 ‘사모’라는 말에 놀라 두억시니를 바라보다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는 안심한 표정을 짓고는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억시니들은 륜을 중심으로 원무를 추기 시작했다.
라샤린 선사는 폭언을 내뱉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며 향로를 받아들었다.
“귀한 선물에 감사하오. 그런데 지코마 성주. 이 가벼운 물건을 가져오기 위해 저 많은 사람이 필요하셨소?”
“세상에는 이런 물건을 단지 값진 보물로밖에 보지 않는 무도한 자들도 많으니까요. 그래서 경비병들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선사는 한숨을 내쉬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칼리도의 성주 지코마는 다른 자들보다는 훨씬 예의에 밝은 인물이었다. 무작정 부하들을 이끌고 찾아와서 사원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는 자들이 부지기수인 판국에 ‘귀한 선물을 운송하기 위해 많은 부하를 데리고 왔다’는 핑계를 만들고자 적지 않은 금편을 쓴 지코마 성주의 태도는 오히려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랬기에 선사는 폭언을 참으며 지코마 성주와 그 부하들의 숙소를 내어드리라고 말했다. 지코마 성주는 ‘사원에 이상한 일이 있다던데요’라고 묻지 않을 정도의 조심성까지 발휘하여 선사를 다시 감동하게 한 다음 물러갔다.
선사는 지긋지긋한 얼굴로 조타 중대사를 바라보았다.
“이걸로 끝난 건가?”
“오늘 방문자는 다 만나셨습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선사님이 만나셔야 할 방문자는 다 만나셨다고 해야겠군요.”
라샤린 선사는 신음을 흘렸고 불경스러운 말—교양인들의 자리에서라면 괴짜로 취급될 각오를 하지 않으면 꺼낼 수 없는—까지 몇 마디 중얼거렸다. 조타 중대사는 그 말을 듣지 못한 척하며 말했다.
“큰일입니다. 이 이상 방문자들이 찾아들면 사원에 숙식시킬 방도가 없습니다.”
“행자들을 시켜 그놈들에게 싸움을 걸라고 하게. 소란을 핑계로 모조리 쫓아버리도록.”
“매혹적인 의견입니다.”
중대사는 살짝 웃었다.
“사실,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기도 합니다. 몰려온 방문자들 중에는 유서 깊은 원수지간도 몇몇 있습니다. 세미쿼 추장과 무핀토 추장은 서로의 얼굴을 보자마자 칼을 움켜쥐더군요.”
“맙소사! 어떻게 되었나?”
“다행히 그 추장들은 대사원의 권위를 존중하기로 한 모양입니다. 그들은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속어를 이용해서 서로가 상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한 다음 헤어졌습니다. 그들은 그 속어가 우정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만, 그게 사실이라면 우정을 표현하는 가장 거친 방법이 아닐까 의심스럽습니다.”
“정말 미치겠군. 그 잡놈들 중 한두 놈이 싸움이라도 벌인다면 대사원은 쑥대밭이 될 걸세.”
“하지만 쫓아낼 도리가 없습니다. 한결같이 한 가락 하는 인물들이다 보니 전부들 핑계는 완벽하게 준비해서 왔습니다.”
라샤린 선사는 다시 신음을 토했다.
철혈암에서 벌어진 일은 너무 많은 유학생들에게 목격되었다. 그리고 이 먼 곳까지 보내어진 그 유학생들은 모두 가문의 최고 계승자이거나, 차기 마립간이거나, 당주 후보자이거나, 추장의 둘째 아들(첫째는 보통 전사 수업을 하므로)쯤 되는 똑똑한 인물들이었고, 그중 많은 수가 재빨리 고향에 연락을 취할 만한 기지도 가지고 있었다. ‘대사원에서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 용, 대호, 나가, 두억시니들이 출현. 하늘치를 부리는 괴인도 있는 듯함. 승려들은 이들과 공모하여 뭔가 향후 세계의 판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엄청난 일을 준비 중인 듯함.’이라는 내용의 서신을 품은 비둘기나 전령들이 세계 곳곳으로 떠나갔다. 그 다음 세계 곳곳에서 목에 힘을 잔뜩 줄 수 있으면서도 역사의 급한 물굽이가 벌어지는 장소에 있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파악할 줄 아는 군웅들이 부하를 이끌고 대사원으로 하나둘씩 찾아드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이미 말했던 것이지만 다시 말하겠네. 사제들의 입을 철저히 단속하게. 지금 이곳을 방문한 자들은 모두 교활하고 수완 좋은 것들이야. 수행밖에 모르는 멍청한 산승 한둘쯤은 간단히 찜쪄 먹을 놈들이란 말이지. 특히 비운암에서 작업 중인 행자들은, 필요하다면 그곳에 격리시키도록 하게.”
조타 중대사는 이맛살을 약간 찡그렸다.
“차라리 모두 공개하고 협조를 구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지금 대사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일은 북부의 사람들 개개인의 이해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다면, 뭔가 한몫 잡을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자들은 자신의 땅을 지키러 돌아가는 편이 낫다는 결정을 내릴지도 모릅니다. 가장 우수한 부하들을 골라 뽑아서 직접 왔으니 모두들 자기 땅이 걱정될 겁니다.”
“그 자들이 한몫 볼 일이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로서는 짐작해 낼 수 없어. 중대사. 우리가 생각도 못 해 낼 방도를 궁리해 낼지도 모르니. 뭐 한두 가지 정도는 나도 짐작할 수 있겠군. 그들이 살신 저지 계획에서 아무런 이득을 보지 못한다 해도 그 계획을 수행하는 사람들 자체에선 이득을 찾을 수 있겠지. 일단 용이 있네. 제대로 자라나면 지상에서 그를 상대할 자가 아무도 없는. 제대로 자라나지 않으면 어때? 포자를 뿌릴 때까지만 키우면 엄청난 용근을 얻을 수 있네. 그리고 대호가 있어. 대호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나가가 그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는 생각도 하기 싫군. 그리고 케이건 드라카 님이 있어.”
조타 중대사는 얕은 탄성을 지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저자들이 쉽게 물러나지 않을 거라는 걱정이 더 커지는군요.”
“물러나지 않겠다면 마음대로 산사의 생활을 즐겨보라고 해. 그 성정의 정화에 도움이 될 테니. 하지만 절대로 무학당과 비운암에는 접근할 수 없어. 절대로!”
그때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지 스님! 주지 스님!”
“들어오거라. 무슨 일이냐?”
안으로 들어선 것은 숨이 턱에 닿은 젊은 승려였다. 승려는 황급히 외쳤다.
“코네도 대족장이 무학당에 쳐들어가고 있습니다!”
하인샤 대사원의 주지 라샤린 선사는 또다시 폭언을 내뱉었다. 이번 것은 교양인들의 자리에서 몰매를 맞고 추방당할 만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