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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8장 – 열독 (3)


지러쿼터 산맥과 라호친 사이에 자리 잡은 발케네 지방은 강인한 사내의 전통으로 이름이 높다. 이것은 발케네 사람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발케네 지방 이외의 사람들은 그곳을 도둑놈의 소굴로서 유서 깊다고 말한다. 물론 언제나 그러하듯 이런 현격한 시각의 차이를 불러온 것은 사소한 가치관의 차이다. 발케네의 사내들은 타인의 소유물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손에 넣는 행위를 사내의 대담함의 증거로 여긴다. 물건의 소유자에게 구타당하거나 심지어 살해당할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기 때문이라는 것이 보다 정상적인 사람들을 한숨짓게 만드는 발케네 사내들의 대답이다. 그러나 이들을 구제 불능의 도둑놈으로 보는 자들도 발케네 사내들의 용맹무쌍함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코네도 빌파는 발케네의 군소 부족들의 족장 중 최고의 위치에 오른 자다. 그가 그 위치에 오르기 위해 참살한 족장의 수를 세려면 두 손으로도 부족할 판국이다. 코네도 빌파는 적의 집에 불을 지르고 상대방의 우물에 독을 풀고 항의하러 온 적수의 아들의 혀를 뽑아 돌려보내는 등의 ‘사내다움’을 보여주었고 그에 감동한 발케네의 족장들은 코네도의 머리에 대족장의 뿔관을 얹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족장들은, 따라서 코네도가 자신의 둘째 아들 토카리를 하인샤 대사원에 보내어 공부를 시키겠다는 결심을 말했을 때 몹시 놀랐다. 족장들은 ‘자식 교육에 대해 참견하고 싶지는 않지만 둘째 아들을 완전히 못 쓰게 만들어 놓을 작정인가’라며 대족장에게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코네도를 보다 잘 아는, 그러니까 코네도에게 가장 많은 물건을 도둑질당한 친구들은 코네도가 정말 엄청난 도둑질을 준비 중임을 직감했다. 코네도 빌파는, 그러니까 일종의 제왕병자였다. 그가 다른 제왕병자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의 아들 대에 왕이 나오길 바란다는 점이었다. 코네도는 왕으로 점찍고 있는 첫째 아들 그룸을 몸소 가르쳤지만, 왕에게는 폭넓은 유대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둘째 아들 토카리를 유력자의 자손들이 모이는 곳에 보냈다. 코네도 빌파는 자신의 두 아들을 이용하여 세상을 도둑질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토카리는 아버지를 만족시킬 만큼 영리하고 민첩했다. 둘째 아들의 급보를 받자마자 코네도는 그룸을 대동한 채 하인샤 대사원으로 달려왔다. 하인샤 대사원과 발케네는 도보로 두 달이 걸리는 거리였지만 코네도는 말을 가차 없이 죽여가며 여드레 만에 도착했다. 그리고 도착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승려들에겐 들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 중요한 인물들이 무학당에 있다는 것, 그리고 승려들이 그들을 무학당에 보내주지 않을 작정이라는 것을 파악하고는 실력 행사를 시작했다.

무턱대고 무학당을 향해 걸어가는 코네도와 그의 부하들을 가로막으며 승려들은 분개하여 외쳤다.

“이러지 마십시오. 대족장님. 이곳은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사원을 방문하셨으면 사원의 규칙을 지켜주십시오!”

코네도는 큰 사슴의 뿔로 만들어진 자신의 뿔을 가리켰다.

“이봐, 민머리. 뿔은 들이받으라고 있는 거다.”

“지금 협박하시는 겁니까?”

코네도는 모피 망토를 옆으로 확 치우며 허리에 찬 큰 검을 붙잡았고 그의 전사들 또한 눈을 치켜뜨며 살벌한 병기들을 앞으로 내밀었다. 승려들은 사색이 되었다. 다행히 코네도의 둘째 아들 토카리가 긴장한 대족장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싸우자는 말이 아닙니다. 아버님.”

“아니라고?”

“아닙니다.”

그리고 토카리는 앞을 가로막은 승려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제님들. 발케네 사람들 앞에서 함부로 협박이니 경고니 하는 말을 사용해선 안 됩니다. 칼이 날아옵니다.”

승려들은 어이가 없었다. 그들은 보다 말이 통하는 것 같은 토카리를 향해 애원했다.

“토카리. 춘부장께 말씀 좀 드려주십시오. 이곳에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승려들의 실수였다. 다른 때라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토카리는 아버지와 형이 보는 가운데 ‘나약한’ 민머리 중들과 친한 척할 수가 없었다. 토카리는 친하게 지내던 승려들이 당황할 만큼 무서운 얼굴을 하며 외쳤다.

“누가 발케네의 대족장이 가는 길을 막는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당신들의 보물을 빼앗거나 하겠다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당신들이 무학당에 모시고 있는 손님들을 만나 이야기 좀 나누겠다는 거 아닙니까! 당장 비키지 않는다면, 나 또한 발케네 사내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코네도는 만족한 듯 토카리를 바라보았고 그룸의 경우엔 형답게 ‘발케네의 명예를 잊지 않는 것은 장하지만 동문수학하던 자들을 그렇게 겁줄 필요는 없다’고 동생을 달랬다. 코네도는 기가 막혀 말을 잃은 승려들을 무시하며 그 옆을 지나쳤다.

그러나 코네도는 승려들의 경고를 받아들이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무학당으로 돌아 들어가는 오솔길로 들어섰을 때 코네도와 그의 전사들은 길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을 발견했다. 정확히 7미터짜리 장애물이었다.

티나한은 철창을 움켜쥔 채 발케네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뭐냐?”

코네도는 잠시 기가 막히다는 듯이 철창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거 창이오, 기둥이오?”

티나한은 부리를 딱 부딪쳤다.

“화살이다. 너무 멀리 쏴서 주우러 온 거지.”

티나한은 농담을 한 것이었고 발케네 사람들 또한 그것이 농담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중에는 ‘그런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자들도 있었다. 토카리를 잠시 돌아본 코네도 대족장은 둘째 아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는 웃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발케네의 대족장 코네도 빌파요. 이 사원을 방문 중인데, 무학당에 계신 손님들의 소문을 듣고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욕망을 참을 수 없어서 이렇게 왔소.”

“나는 티나한이다. 미안하지만 지금 좀 바빠서 안 되겠는데.”

코네도는 얼굴을 찡그렸다. 물론 레콘을 자극하지 않을 정도로.

“잠시도 안 되겠단 말이오?”

“어렵겠군. 하지만 오늘 저녁에 염화당에서 오레놀 대덕의 설법이 있는데, 나는 거기에 참석할 생각이다. 그곳에서 만나면 되지 않을까? 훌륭한 설법이 될 것 같은데, 너도 참석하면 좋을 거야.”

코네도 대족장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를 놓고 짧게 고민했다. 하지만 레콘을 화나게 하는 것과 레콘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중 어느 것이 현명한 처사인지는 처음부터 자명했다.

“좋은 설법도 듣고 귀인도 만나게 된다면 참으로 좋은 일이겠군. 나도 그곳에 참석하겠소.”

코네도와 그의 전사들은 몸을 돌렸다. 그들이 오솔길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티나한은 부리를 한 번 부딪친 다음 무학당으로 돌아왔다. 무학당의 마당 입구에는 오레놀이 기다리고 있었다. 티나한은 수염볏을 쓸어만지며 말했다.

“시킨 대로 말했어. 그런데 뭣하러 그런 걸 시킨 거야?”

“무조건 막기만 하면 우리들과 저 방문자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사소한 충돌이라도 일어난다면 흉한 일이 많을 테지요. 하지만 여러분들이 얼굴을 조금씩 보여준다면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소문이 퍼진다면 다른 자들도 일단 오늘 밤까지 참아줄 테지요.”

“하지만 놈들이 꼬치꼬치 캐물으면?”

“특별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는군요. 할 수 없지요. 제가 설법을 좀 길게 할 테니 졸리다는 핑계를 대고 돌아와 버리십시오.”

티나한은 한숨을 내쉬며 무학당의 마당을 바라보았다.

륜은 땅바닥에 앉아 있었다. 사모의 흑사자 모피를 걸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잖았다면 오래전에 기절했을 것이다. 두억시니는 속도를 조금도 바꾸지 않은 채 계속 그 주위를 돌았다. 겉으로 보기에 그토록 무의미해 보이는 모습도 드문 동작이었지만, 그 진지함 또한 보기 드문 것이라는 점 또한 마찬가지였다. 누구라도 그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랬기에 륜은, 그리고 티나한도 그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 원무를 보며 티나한은 수염볏을 긁적거렸다.

“그렇잖아도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은데 별 파리들이 다 꼬이니 귀찮아 죽겠군.”

티나한과 같은 방향을 보던 오레놀이 달래듯 말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해결되지 않았습니까? 륜이 드디어 결심을 했으니까.”

“음. 그건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케이건은 어디로 가신 겁니까?”

“륜의 요구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고 말하고 어디로 가 버렸어. 아, 참. 그러고 보니 케이건에 대해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예? 뭡니까?”

티나한은 진지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질문했다.

“케이건이 부자냐?”

웃음을 터뜨릴 수 있을 만한 질문이었지만 오레놀은 그러지 않았다. 대신 오레놀은 차분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티나한은 실망했다.

“아니야?”

“예. 그분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분입니다.”

티나한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오레놀을 바라보다가 그 말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오레놀은 설법 준비를 해야겠다는 핑계를 대며 총총히 걸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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