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8장 – 열독 (7)
의논이 끝난 다음 오레놀과 케이건, 그리고 티나한은 대선사의 방을 나왔다. 오레놀은 륜에게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먼저 떠났다. 케이건은 마당에 선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시 서 있었다. 파름 산의 산봉우리에 걸쳐진 오후의 하늘은 케이건으로 하여금 먼 옛날의 어떤 하늘을 떠올리게 하고 있었다.
티나한이 그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케이건. 물어볼 것이 있는데.”
“뭐요?”
“네게 나가를 멸종시킬 권리가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이야? 누구에게도 그런 권리는 없어. 저 나가들이 우리 레콘들을 그렇게 만들 권리가 없는 것처럼.”
케이건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마당에 누워 있는 티나한의 그림자를 향해 말했다.
“알고 싶소?”
“그래. 알고 싶군.”
케이건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던 케이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언젠가 나가들은 나에게 어떤 제안을 한 적이 있소. 그 제안 자체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소. 나 또한 바라마지 않던 제안이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지. 다행히도 내겐 당장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정도의 분별력이 남아 있었소. 나는 그것이 사실이냐고 물었소. 그들은 모든 나가의 생명을 걸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보장했소.”
“그렇다면…….”
“그 제안은 속임수였소. 나는 그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소. 아니, 한 가지는 얻었다고 할 수 있겠군. 내게는 모든 나가의 생명을 좌우할 권리가 생겼소.”
티나한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나 케이건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다음, 모든 것을 잃은 나에게 한 여인이 다가왔소. 그녀를 사랑했소. 그 무엇보다도 더. 그녀는 내 생에 의미를 돌려주었소. 그녀는 내게 생명을 되돌려준 것이나 마찬가지였소. 그러나 그녀는 나에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주려 했소. 이미 나를 부활시킨 거나 다름없는데도, 그녀는 더 주길 원했던 거요. 나는 그녀가 주려 했던 것의 백분의 일도 주지 못했는데, 결국 그녀는 나가의 제안을 받게 되었소.”
“제안이라고?”
“그렇소. 내가 그토록 원했던 제안, 그러나 결국 나를 파멸시키고 말았던 그 제안이 그녀에게 건네어졌던 거요. 그녀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소. 두 가지 이유에서지. 첫 번째 이유는 내가 그것을 원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오. 두 번째 이유는 보다 흥미로우면서도…… 참신하지는 않은 거요. 나가들은 그녀에게 모든 나가의 생명을 걸고 그 제안의 사실성을 보장했소.”
티나한의 벼슬이 꼿꼿하게 곤두섰다. 케이건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젖기 시작했다.
“그 이유 때문에 그녀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소. 그녀는 나에게 말하지 않고 홀로 나가들에게 갔고……, 기다리고 있던 나가들은 그녀를 잡아먹었소. 사려 깊게도 그들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내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 다음 내 눈앞에서 그녀를 찢었소. 그렇소. 그들은 나를 유인하기 위해 그녀를 유인한 거였소. 그녀의 죄는 나를 사랑했던 것, 그리고 나가를 신뢰했던 것뿐이었소. 그녀는 그 죄가 그렇게 큰 것인 줄 몰랐지.”
티나한은 가슴 한구석이 무섭도록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케이건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든 그 후로 나는 이미 가지고 있던 권리를 종신으로 연장받게 된 셈이오.”
티나한은 더 이상 케이건에게 나가를 멸망시킬 권리가 없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흑사자와 용의 이름을 가진 그 사내는 그 이름 그대로의 사내였다.
“티나한.”
티나한은 대답하지 못했다. 케이건 또한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이런 것이 충고가 될 수는 없을 거요. 지극히 당연한 말이니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해두고 싶소. 신부들을 찾게 되면 그녀들을 아끼고 사랑하시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사랑하려 애쓰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사랑하려 마음먹으시오.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너무도 짧소. 그리고 그녀의 무덤에 바칠 일만 송이의 꽃은 그녀의 작은 미소보다 무가치하오.”
티나한은 가슴에 손을 얹었다. 부리가 잘 열리지 않았고, 그것을 몇 번을 부딪쳤다. 그때 케이건이 발걸음을 뗐다. 티나한은 갑작스레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디로 가는 거지?”
“원추리를 꺾으러 가오.”
“원추리를?”
“더 이상 아내의 미소를 볼 수 없는 남편은, 그것이 무의미한 줄 알면서도, 아내가 사랑하던 꽃 속에서 그녀의 얼굴을 찾아보려 애쓸 수밖에 없소. 티나한.”
티나한은 더 말할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