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103화
소홍은 근 이 주일간 마차를 타고 갔다. 이 주일이 지나자 소홍은 마침내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주일이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여태껏 초혼과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았던 소홍은 그와 어느 정도 편안하게 말을 나눌 수 있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말이 많아진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소홍이 워낙 말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신이 가야 하는 곳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었던 소홍은 거의 다 왔다는 소리에 그동안 궁금해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저.. 제가 가는 곳은 좋은 곳인가요?”
“글쎄…”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말꼬리를 흐리던 초혼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자 그제서야 말을 이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좋은 곳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의 애매모호한 말에 소홍은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그 후로 삼일이 더 지나자 소홍은 마침내 알 수 없었던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 마차가 잠깐 멈추더니 밖에서 두런대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확인을 하는 것 같았다.
“지나가시오.”
그 말이 떨어지자 마차는 자신이 가야 할 곳으로 다시 움직였다.
“이제 내릴 준비를 하거라.”
“네..”
그동안 아침, 점심, 저녁을 한 번도 거스르지 않고 챙겨 먹었던 소홍은 예전에 비해서 약간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다. 옷도 좋은 소재의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그동안 이곳으로 오면서 샀던 장신구나 자잘한 물건들을 자신의 품속에 갈무리한 후, 마차가 멈춰서길 기다렸다.
마침내 마차가 멈춰섰다. 마부가 문을 열어주자 초혼이 손짓으로 먼저 나가라는 시늉을 했다. 소홍은 두려움 반, 흥분 반으로 문밖을 나섰다. 그 뒤로 초혼이 나왔다. 밖에는 여러 명의 무사 차림의 사내들이 좌우로 정렬해 있는 것이 보였다. 그중 검은 옷을 입고 한쪽 눈에 검상을 입은 사내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초혼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먼 길을 다녀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초혼은 약간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인사를 받았다.
“그동안 별일은 없었겠지?”
“옛!”
초혼은 별일이 없다는 말에 소홍을 이끌고 걸어갔다. 그가 지나가자 다른 무사들이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갑작스런 그들의 행동에 소홍은 깜짝 놀랐지만 몸을 잠깐 움츠렸을 뿐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여러 개의 문을 지나가면서 그녀는 수많은 무사들을 보았다. 다소 무서웠지만 초혼이 손을 잡아주자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꼈다. 다시 하나의 문을 통과하자 시녀인 듯한 소녀가 쫄랑쫄랑 다가와 초혼에게 인사를 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초혼은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목욕을 소홀히했다. 데리고 가서 잘 닦아주어라.”
“예. 알겠습니다.”
시녀는 초혼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아닐지 몰라도 소홍의 눈에는 그렇게 비춰졌다.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초혼이 말했다.
“이제부터 일주일간은 저 아이가 너를 돌봐줄 거다. 말을 잘 들어라.”
“네…”
소홍은 가지 말라고 하고 싶었으나 그녀의 대답은 그렇지가 않았다. 초혼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듣자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초혼의 앞에서 쩔쩔매던 시녀는 그가 나가자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시녀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자, 나를 따라와.”
소홍은 그녀가 이끄는 대로 조용히 따라갔다. 여러 개의 방들 중 한 곳에 들어가게 된 소홍은 비교적 넓고 깨끗한 실내의 환경에 놀라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어렵게 자라온 그녀가 이런 곳을 봤을 리 만무했으니 놀라워하는 것이었다.
“이곳이.. 제가 일주일간 머물 곳인가요?”
시녀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래. 이 안에 있는 물건들을 마음대로 써도 좋아.”
소홍이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자 시녀는 한쪽에 놓여진 옷가지들을 집어서 소홍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목욕을 할 테니까, 그 옷 벗어놓고 이 옷으로 갈아입어. 알았지?”
소홍은 약간 얼이 빠진 얼굴로 대답했다.
“예.”
그 후로 일주일간 소홍은 생각지도 못했던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소홍은 자신의 시중을 들어주는 시녀가 열 살의 아이는 자신이 처음이라고 그녀의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을 얼핏 들었다. 소홍은 이곳에서 밥 잘 먹고 편안한 생활을 누려서 그런지 이곳에 마차로 오기 전보다 훨씬 보기 좋게 살이 올라 있었다.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그녀는 시녀의 손에 한 곳으로 이끌려갔다. 그곳에는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여아들이 북적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신기하게도 모두 여자아이들이었다. 그녀는 모두들 자신보다 어리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소홍은 이 생활이 편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었는지 그 아이는 시종일관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소홍은 언니답게 그 아이에게 다가가 위로해주려고 했지만 곧이어 들어온 날카로운 눈매의 중년 미부 때문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무서운 얼굴의 아저씨들 몇 명이 따라 들어왔다.
미부의 눈빛은 모든 아이들을 압도했다. 개중에는 울먹이며 훌쩍거리는 아이도 있었다. 그녀는 냉막한 인상에 걸맞게 차갑고 음산한 목소리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너희들은 팔려왔다.”
그 소리에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들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홍도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필연적으로 개중에 겁 많은 인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아까 소홍이 위로해주려던 아이가 드디어 울음을 터트렸다.
“우-앙…!”
그러자 군중심리인지 여기저기서 호응이 잇따랐다.
“으앙…”
“엄마아… 흑흑!”
이젠 거의 모든 아이들이 울어 제꼈다. 그러나 소홍은 울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속엔 눈물이라는 단어는 지워진 지 오래였다.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과 구박. 그리고 배고픔은 어느새 그녀에게 눈물을 빼앗아 버렸다. 순간 그녀는 미부가 자신을 주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눈길에 소홍은 반발 없이 마주쳤다. 미부는 놀라워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그만!”
“아-흑! 아악!”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고통의 신음소리를 발하였다. 소홍은 자신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았다. 귓속에서 수많은 벌들이 왱왱.. 거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울던 아이들이 분위기에 압도된 나머지 찔끔! 거리기만 할 뿐 감히 울먹이는 아이들이 없었다. 그녀는 눈을 들어 미부를 보았다. 미부는 웃고 있었다. 소홍도 웃었다. 왜 웃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순간 미부의 웃음이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는 소홍을 바라보지 않았다. 미부는 아이들에게 손짓으로 벽 쪽에 나있는 문을 가리켰다.
“이제부터 차례로 열 명씩 들어와라.”
그리고는 자신의 앞에 있는 아이들 열 명을 손수 찍어 데리고 들어갔다. 찍힌 아이들은 겁먹어 하면서도 반항 없이 순순히 따라갔다. 잠시 후 열 명의 아이들이 전부 나왔다. 그 아이들은 한쪽으로 물러서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들어간 아이와 들어갈 아이를 구분하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몇 번 동안은 열 명 모두 나왔지만 가끔 가다 아홉.. 아니면 여덟이 나올 때도 있었다. 소홍은 들어갔다 나온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무섭게 생긴 아저씨들의 눈초리에 다가갈 수가 없었다. 마침내 자신의 차례가 다가왔다. 안에는 미부 혼자밖에 없었다.
“모두 벗어라.”
그녀들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들려온 소리였다. 물론, 미부의 목소리였다. 나이 어린 아이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얼른 옷을 벗었다. 몇몇 머뭇거리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미부의 시선에 부딪히자 겁을 먹고는 재빠르게 옷을 벗었다. 소홍도 부끄러웠지만 상대가 여자라는 사실과 다른 아이들도 여자라는 사실에 조심스레 옷을 벗었다.
미부는 처음의 아이부터 꼼꼼히 몸을 살폈다. 가끔가다가 팔과 다리를 들어 꾹꾹! 눌러 보았다. 여섯 번째의 아이를 살피던 미부는 희미하게 웃었다.
“저기 휘장으로 들어가거라.”
그 아이는 벌벌 떨면서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본 소홍은 구석에 새하얀 휘장이 쳐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휘장 밑으로 조그마한 발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들어갔다가 나오지 않았던 아이들이 저기에 다 있는 것이다. 그녀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에 어느새 자신의 차례가 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홍의 앞으로 다가온 그녀는 기분 나쁜 웃음을 짓더니 다른 아이들보다 더욱 꼼꼼하게 소홍의 몸을 살폈다. 자신의 몸을 스치는 미부의 숨결은 온몸에 소름이 돋치게 하였다. 미부는 희미한 탄성을 내뿜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네가 될 것 같구나….”
소홍은 무슨 얘긴지 몰랐지만 미부의 음색에서 자신에게 그리 나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너도 들어가거라.”
미부의 명령에 휘장 안으로 들어간 소홍은 다섯 명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불안한 눈으로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그런지 알몸으로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중요한 부위를 가릴 생각은 안 했다. 그러고 보니 손으로 몸을 가리고 있는 것은 자기 하나뿐이었다. 소홍도 곧이어 손을 내렸다. 그 후, 몇 번 동안 아이들이 더 들락거렸다. 더 이상 아이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없었다.
촤르르륵-!
휘장이 걷히자 겁에 질린 아이들은 서로의 몸을 꼭 끌어안으며 휘장을 연 상대를 여린 눈망울로 바라보았다. 휘장을 연 사람은 당연히 냉막한 인상의 미부였다. 그녀의 한쪽 팔에는 옷 무더기가 걸쳐져 있었다. 미부는 그 옷가지들을 아이들 앞에 내던지며 말했다.
“입어라.”
아이들이 자기들의 옷을 찾아가며 우왕좌왕할 때 소홍은 가만히 있었다. 그녀의 행동에 미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무섭게 노려보았다.
“너는 왜 옷을 입지 않느냐!”
미부가 앙칼지게 소리치자 옷을 찾아 입던 아이들은 자기한테 소리친 게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벌벌 떨었다. 소홍은 겁을 먹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마지막에 남는 것이 제 거라고 생각해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에요.”
소홍은 미부의 눈꼬리가 바르르 떨리는 것을 보았다. 미부도 그것을 느꼈음인지 고개를 돌렸다. 마침내 소홍을 비롯한 모든 아이들이 옷을 다 입자 미부가 말했다.
“조용히 나를 따라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