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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04화


혼천부(混天府)…

암흑마교의 대내 정보를 담당하는 곳. 혼천부의 부주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넘쳐나는 정보들을 손수 분류하느라 바빴다. 오늘따라 그를 괴롭히려는 건지 들어오는 정보는 끊임이 없었다. 물론, 수하를 시켜서 해도 되지만 그런 일은 자신이 용납하질 못했다. 그는 그런 꼼꼼한 성격 때문에 오늘날의 자리를 차지한 만큼 이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으려면 한시도 일에 소홀할 수 없었다.

“똑똑…”

여러 암호표를 대조하며 글을 해석하던 그는 깡마른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큰 눈을 들어 소리가 난 쪽을 힐끔거렸다. 사람이 왔다는 것을 인식한 그는 중요한 서류들 위에 다른 책들을 올려놓고 말을 꺼냈다.

“들어오게..”

그 말을 끝으로 칠 척 거구의 사내가 들어와 깍듯이 인사를 했다. 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만독문(萬毒門)에 관한 소식을 가져왔나?”

그 사내는 앞으로 다가와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일급 주목 대상(一級注目對象)이기 때문에 그간에 얻은 정보를 가져왔습니다.”

만독문은 항광이 그렇게 위협(?)을 주고 떠난 뒤로 암흑마교 내에서 일급 주목 대상으로 떠오른 문파였다. 그리고 방금 들어온 사내는 만독문만을 담당하는 혼천부의 육당주였다.

“그런가?”

사내의 말에 별 소득 없는 정보일 것 같은 느낌이 들자 부주는 다소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종종 사소한 것에서 큰 건을 잡아낼 수도 있기에 예의상 그리 내색은 안 했다. 밀봉된 봉투의 끝부분을 찢어낸 부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어갔다.

잠시 후 그의 눈이 희미하게 빛났다.

“아이들을 모은다고? 그것도 여자아이들만?”

부주의 물음에 사내는 얼른 대답해 주었다.

“예. 나이는 최저 여섯 살에서 최고가 아홉 살이었습니다.”

“조용히 모으던가?”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신중을 기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가린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사내의 말에 그는 다시 자신의 손에 들린 종이의 글을 읽어 보았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고…

“이 일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게.”

“존명!”

부주가 손을 젓자 사내는 간단하게 읍을 하고 사라졌다. 그가 밖으로 나가자 부주는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그는 재차 글을 읽어보았다.

“항광.. 강시에 미쳤다던데, 이젠 어린 강시를 만들어 보려는 속셈이냐… 아니면 무사를 보충하려는 것이냐.”

무사를 보충하는 데 굳이 여자아이들만을 모은다는 것은 좀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만독문은 독을 다루는 만큼 남성적인 면이 강한 문파였다. 한순간 만독 노조가 갑자기 여아를 즐기는 변태적인 장면을 생각해 보았다.

“후훗.. 푸하하하!”

그러나 항광은 천성적으로 여자를 멀리하기에 웃는 것으로 자신의 생각을 무마시켰다. 고개를 좌우로 돌린 그는 다시 자신의 집무에 열중했다.


소홍을 비롯한 여러 아이들은 미부를 따라가서 넓은 실내가 펼쳐진 곳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넓은 실내를 혼자 장악하고 있는 노파를 보았다. 평범하게 생긴 노파였다. 하지만 단 한 군데만은 평범하지 않았다. 가느다란 눈매에 소홍의 한 주먹만한 눈두덩이… 작은 머리에 그 정도의 눈두덩이라면 평범하게 생긴 늙은이치고는 제법 튀어 보이는 생김새였다. 미부가 그 노파를 보고 인사를 하자 죽은 듯이 정좌하고 있던 노파의 입이 마침내 열렸다.

“이 아이들이다인가?”

“예. 요광(妖光)님.”

“그래…?”

요광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소홍을 비롯한 여섯 명의 아이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요광은 아이들을 주시하면서 미부에게 말했다.

“어느 아이가 제일 좋더냐.”

미부는 곧바로 대답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아이가 제일 나았습니다.”

미부의 말에 요광의 시선이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서있는 아이에게 옮겨졌다. 순간적으로 요광의 눈에서 신광(神光)이 폭사되었다. 소홍은 할머니의 눈에서 터져 나온 갑작스런 빛무리에 자신의 몸이 관통되는 듯한 아찔한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야 말았다. 소홍은 자신이 눈을 감고 있을 때 할머니가 나직한 신음을 내뱉었다고 생각했다. 요광은 미부를 직시하며 말했다.

“네가 보았으니 별다른 검사는 필요 없겠지?”

뒤를 이어 미부의 말이 들렸다.

“옛! 틀림없습니다.”

그사이 어느 정도 망막의 시큰함을 떨쳐버린 소홍은 눈을 비빈 후 전방을 주시했다. 미부는 약간 경직되어 있는 것 같았고 그와 반대로 노파는 약간의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좋다. 아이야.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자신에게 물어보는 거라는 것을 안 소홍은 차분한 목소리로 요광의 질문에 답했다.

“소홍이요.”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긴 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약간의 떨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요광도 느꼈는지 그녀는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오너라”

요광이 문 쪽으로 걸어가자 소홍은 삐죽거리며 노파를 따라갔다. 밖으로 나가니 초혼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초혼은 요광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그를 본 소홍은 반가운 마음에 그에게로 달려갔다.

“아저씨.”

초혼은 인사를 하는 와중에 소홍이 자신에게 뛰어오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로 소홍을 반겼다. 요광은 그저 낮게 웃기만 할 뿐 별다른 내색은 비치지 않았다. 잠시 소홍을 안고 있던 초혼은 조금 후에 그녀를 떼어냈다.

“잘 지냈느냐.”

“예.”

소홍의 눈가에 작은 물방울이 맺혔다. 그동안 잘 참아왔는데 오늘 여러 가지 일들을 겪고 나자 그녀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던 것이다. 하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아는 사람을 만나자 안도한 것이다. 그때 요광이 나섰다.

“그만하고 나를 따라오너라.”

요광은 차분하고 여유로운 얼굴로 그들을 이끌었다. 그녀가 움직이자 얼굴에 맺혀있는 눈두덩이들이 위아래로 자그마하게 흔들렸다. 서너 개의 큰 문을 지나고 넓은 광장을 지나서 그들이 간 곳은 의외로 보잘것없는 작은 숲이었다. 손질을 해놓지 않은 듯 여기저기 나있는 잡초들과 배열이 엉망으로 되어있는 나무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왠지 꺼리게끔 하는 장소였다. 그곳을 요광은 아무런 꺼리낌이 없이 들어갔다. 소홍은 잠시 주춤거렸다. 그러자 그녀의 어깨에 굵고 강인한 느낌의 검은 손이 올려졌다.

“어서 가자.”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 손의 임자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냉막한 인상의 초혼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따뜻한 손은 소홍의 어깨를 타고 그녀의 가슴 깊은 곳으로 흘러들었다. 소홍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광은 어느새 열 발자국 이상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요광을 따라잡았다. 길도 없는 작은 숲속을 지나가자 하나의 동굴이 보였다.

그 동굴 앞에서 요광은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동굴 안에서 나직하지만 힘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패를 보여주시오.”

요광은 당연하다는 듯 품속에서 금빛이 감도는 작은 패를 들어 보였다. 정교하게 새겨진 패의 앞 문양에는 독(毒)이란 글자를 용 한 마리가 감싸고도는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안에서 다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확인했소. 들어가시오.”

요광은 고개를 돌려 소홍을 바라보았다.

“따라오너라.”

소홍이 불안한 듯 대답했다.

“저 혼자요?”

“그렇다 아이야.”

소홍은 자신의 옆에 서있는 초혼의 소매를 부여잡았다. 불안함에 그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초혼은 어색하나마 소홍을 보며 웃어주었다.

“아무 일도 없을 거다.”

자신이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홍은 무섭지만 요광에게 다가갔다. 그러면서 자꾸만 뒤돌아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요광은 자신에게 다가온 소홍을 이끌며 순간적으로 뒤를 힐끔 쳐다보았다. 초혼을 보는 것이다. 초혼이 웃는 것은 몇 년에 한 번 보기도 어려웠기에 신기한 나머지 그녀도 모르게 쳐다본 것이었다.

“별일이군…”

나직한 중얼거림을 끝으로 요광과 소홍의 신형은 어두운 동굴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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