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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05화


“넌 죽었어… 킥킥..!”

마차를 타고 사정화의 집으로 가고있는 동천은 자신이 토해버린 상자를 무슨 보물단지처럼 감싸 안고 즐거워했다.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동천은 생각하는 바가 있는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히히-힝~!

“워. 워..!”

사정화의 집에 도착하자 드디어 마차가 섰다. 마부는 동천의 더러운 성깔을 알기 때문에 급히 마부석에서 내려와 마차의 문을 열어 주었다.

“내리시죠.”

마부를 힐끗 쳐다본 동천은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혼자서 킥킥거렸다. 마부는 동천이 혼자 웃어대자 불길한 생각에 고개를 약간 숙였다. 동천과 눈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이다. 다행히 동천은 그를 무시하고 정원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입구를 지키고 서있던 두 무사들은 동천이 다가오자 조용히 인사를 했다. 실실거리던 동천은 인사를 받자 웃음을 멈추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거만한 자세로 인사를 받은 동천은 그들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말했다.

“니들은 여기에 왜 있냐?”

동천의 질문에 오른쪽에 있던 사내가 대답해 주었다.

“쥐로 인해서 사정화 아가씨의 집이 훼손된다는 보고를 받고 쥐를 잡기 위해 저희를 포함한 스무 명의 인원이 이곳으로 왔습니다.”

쥐 얘기가 나오자 순간적으로 인상을 찡그렸던 동천은 다시 얼굴을 폈다. 동천은 다시 물었다.

“여기 소연이년 들어갔지?”

“예. 얼마 안 됐습니다.”

동천은 입가에 한줄기 미소를 띠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좋아. 보초 잘 서라. 히히!”

동천이 안으로 들어가자 보초를 서던 두 사내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어깨를 으쓱한 후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전방을 주시했다. 동천이 안으로 들어가자 두 사람씩 한 조를 이룬 사람들이 정원을 돌아다니며 막대기로 수풀을 휘젓고 있는 것이 보였다.

동천도 거기에 끼어서 놀고 싶었지만 그것과는 상대도 안 될 만큼 재미있는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동천은 눈물을 머금고 그들을 지나쳤다.

“소연아. 조금만 기다려라… 이 착하디 착하신 주인님이 너를 찾아가고 있단다. 위 깨끗이 씻고 기다려.. 이히히!”

동천은 특유의 경박스런 웃음을 내뿜으며 정화의 집 문 앞에 도착했다. 그곳에도 두 사람이 지키고 있었는데 동천이 문 앞에서 서자 한 사내가 절도 있는 자세로 문을 열어 주었다.

“들어가시지요.”

만족스러운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한 동천은 수련의 방이 있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지금 수련은 일층에서 쉬고 있었지만 동천은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올라간 것이었다. 이층 모서리에서 통로로 이어진 곳으로 걸어가던 동천은 두 사내가 자신 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오다가 동천을 발견하고 움찔하는 것 같았다.

동천은 기이한 느낌에 눈을 가늘게 떴다. 동천이 가만히 서서 두 사내를 주시하자 그들은 어정쩡한 자세로 서둘러 인사를 했다.

“안녕.. 하십니까?”

“약 소문주님을 뵙습니다.”

그들이 동천에게 인사를 했지만, 왠지 기분이 나빠진 동천은 퉁명스레 대답했다.

“니들 눈에는 내가 안녕하게 보이냐?”

“예?”

상대편이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자 동천은 짜증을 냈다.

“귀가 막혔냐? 니들이 보기에 내가 안녕하게 보이냐고… 엉?”

뱀눈의 사내가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마른 사내는 얼른 말을 꺼냈다.

“무슨 안 좋으신 일이 있으신 것 같은데 너그러이 화를 푸시지요.”

잘 좀 무마해보려고 한 얘기였지만 그 말은 오히려 동천에게 기름을 붓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싸가지 없는 자식을 봤나….? 너 같으면 못 먹을 거 먹게 한 계집년을 잡으러 왔는데 별것도 아닌 장작 새끼가 화를 풀라고 하면 ‘그러지 뭐.’ 하고, 화를 풀겠냐? 응? 너 같으면 풀겠냐고!”

말 한마디 잘못 건네서 본전도 못 찾은 사내는 동천 앞에서 즉시 부복했다.

“죽을죄를 졌습니다! 그런 엄청난 사건이 있는 줄도 모르게 제가 그만 실언(失言)을 했습니다. 부디, 넓으신 마음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잘못했다고 설설 기는데 더 나무라기도 뭐해서 동천은 봐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놈은 그렇다 치고… 다른 한 녀석은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고 어정쩡하게 서있자 동천은 뱀눈의 사내에게 시선을 돌렸다.

“야. 근데, 넌 왜 가만히 있어? 얘는 잘못했다고 비는데.”

뱀눈의 사내는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도 동천의 그 한마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는 동천의 눈치를 살피며 빌었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워낙에 눈치가 없어서리…”

동천은 피식! 웃었다. 동천에게 그런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동천의 삐짐을 풀려면 그럴듯한 미사여구를 붙여서 동천을 붕-! 뜨게 만들어야만 하지만 뱀눈의 사내는 그런 끼(?)가 부족했다.

“늦었어 임마. 갖다 대.”

동천은 주먹을 말아 쥐고 뱀눈의 얼굴 앞에 디밀었다. 한마디로 자진 납세(自進納稅)를 하라는 얘기였다. 사내는 잠시 동천의 눈치를 보다가 고것 한 대로 무마시켜 주겠다는 말에 얼른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상체를 뒤로 기울인 뱀눈의 사내는 한 번에 끝내자고 생각했는지 있는 힘껏 동천의 주먹이 있는 곳으로 머리를 박았다. 휙-! 하는 파공음이 들리고, 그의 머리가 동천의 주먹에 거의 다다르는 순간 동천의 주먹이 뒤로 빠졌다. 뱀눈의 사내가 ‘어?’ 하는 사이에 뒤로 빠졌던 동천의 주먹이 상상도 못할 빠른 속도(速度)를 내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곧이어 ‘뻑!’ 하는 격타음(擊打音)이 들렸다.

“크윽!”

뱀눈의 사내는 코를 부여잡고 뒤로 넘어졌다. 옆에서 아무 생각 없이 둘을 지켜보던 마른 사내는 친구가 신음을 내며 뒤로 넘어가자 엉겁결에 그를 붙잡아 주었다. 피는 흘러내렸지만 다행히 그의 코는 무사한 것 같았다.

“이보게. 괜찮나?”

마른 사내의 물음에 뱀눈의 사내는 동천이 앞에 있는지라 코가 으스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 하.. 괘.. 괜찮네.”

남의 고통이 곧 자신의 행복인 동천은 웃음을 참으며 뱀눈의 사내에게 얄미운 말을 건넸다.

“아아.. 미안해. 조준이 잘못됐나 봐. 킥킥!”

여기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면 무사했을 텐데 동천의 성격을 몰랐던 뱀눈의 사내는 쓸데없는 말을 해서 화를 자초하게 된다.

“그, 그럴 수도 있죠. 전 하나도 안 아팠으니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하. 하..”

그 말에 동천의 눈이 순간적으로 빛이 났다.

“호오..! 그게 정말이야? 정말로 안 아팠어?

입을 잘못 놀린 사내는 왠지 불안했지만 방금 괜찮다고 했으니 바꿀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는 흘러내리는 코피를 지혈하며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동천은 만족해하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럼, 한 번 더…”


동천이 이층에 올라갔을 때 소연은 수련이 쉬고 있는 일층 방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방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하도 돌아다니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수련이 보다 못해 말했다.

“언니. 괜찮으니까, 그만 좀 돌아다녀요.”

“응? 아, 그래. 알았어…”

소연은 의자에 앉은 다음 무엇을 생각하는지 초조하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애꿎은 손톱까지 뜯었다. 그러던 중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수련은 소연의 행동이 이상했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보았다.

“언니, 위에 뭐가 있어요?”

소연은 고개를 다시 제자리로 원위치 시키고 동생을 바라보았다.

“수련아. 너, 무슨 소리 못 들었니?”

“난데없이 뭔 소리예요?”

“그게, 위에서 무슨 비명 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그래요?”

수련은 정신을 집중해서 소리를 들어보았다. 그러나 들리는 건 없었다. 수련은 어깨를 으쓱했다.

“난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요? 혹시, 언니가 신경이 예민해져서 잘못 들은 거 아니에요?”

그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에 소연은 수긍을 표했다. 그리곤 한숨을 쉬었다.

“휴… 미치겠다.”

언니가 너무 괴로워하자 수련은 안쓰러운 마음에 위로를 해주었다.

“언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동천도 그거 정도면 만족해했을 거예요.”

소연은 자조적인 웃음을 띠었다.

“그래.. 고마워.”

그때, 위에서 우당탕!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수련도 들을 정도였다. 둘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소연이 말했다.

“들었지?”

소연의 질문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 수련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다.

“혹시, 또 다른 쥐가 나돌아다니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 말이 어느 정도 신빙성 있게 들리자 소연은 약간 흥분 섞인 눈빛으로 수련을 바라보았다. 저게 만약에 쥐라면 그녀에게 또다시 기회가 오는 셈인 것이다.

“수련아. 너 여기 잠깐만 있어. 내가 올라가서 확인하고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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