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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06화


수련은 그 큰 쥐를 생각하자 오한이 들었는지 한번 몸서리를 친 후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와요..”

“알았어. 갔다 올게.”

만일을 위해 대빗자루를 가지고 이층으로 올라간 소연은 아까 쥐 고기를 굽던 사람 중에 한 명인 뱀눈의 사내가 얼굴에 피칠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놀라서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소연은 불안한 듯 주위를 여러 번 둘러보았다. 그녀는 그 와중에 멀쩡한 사내에게 물어보았다.

“저기.. 어떻게 된 거예요? 그거, 쥐가 그랬나요?”

마른 사내는 친구를 등에 업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약 소문주님께서 이렇게 만들었단다.”

“예? 우.. 우리, 주인님이요?”

사내는 말을 더듬는 소연에게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소연이 바라보고 있는 쪽으로 손을 들었다.

“그래. 방금 저쪽으로 들어가셨단다.”

“그.. 그… 그게….!”

소연이 풍에 걸린 사람처럼 오들오들 떨고 있을 때 수련의 방으로 들어간 동천은 아무도 없자 다시 밖으로 나왔다.

“에이, 씨발. 없잖아? 고년 찾기도 더럽게 힘들… 지 않네? 야! 이 계집애야! 너, 여태껏 어디에 있었어!”

소연을 발견한 동천은 고함을 지르며 소연에게 달려왔다. 반면 동천의 발악하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소연은 울먹이며 일층으로 도망갔다. 그냥 도망가는 게 아니라 빌면서 도망갔다.

“잉잉~! 잘못했어요.. 한 번만 봐주세요…”

“봐줄 테니까 멈춰, 이 계집애야!”

말을 그 따위로 하는데 그 누가 믿겠는가? 더군다나 악을 쓰면서 욕지거리를 하는데.. 소연은 아무래도 봐줄 것 같지가 않자, 동천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눈앞의 먹잇감을 놓쳐버릴 수 없기에 동천은 소연을 쫓아가려고 내달렸다. 그런데 기절한 사내를 들쳐업은 마른 사내가 동천이 지나치는 길을 약간 막아서자 동천은 그를 신경질적으로 쳐냈다.

“비켜 임마!”

어찌나 힘이 거셌던지. 마른 사내의 몸이 약간 뒤로 날아오를 정도였다. 순간 힘없이 업혀있던 뱀눈의 사내가 마른 사내의 등에서 이탈을 하였다. 마른 사내는 깜짝 놀라서 뒤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눈을 부릅! 떴다. 자신의 뒤편에 아름다운 붉은 저녁놀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저녁놀이 아름다워서 놀란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통상적으로 밖이 보이려면 뚫려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밖이 보였다는 것은 그의 뒤편은 뻥, 뚫려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얘기였다. 한데 그곳으로 기절한 그의 친구가 튕겨져 나갔으니… 기겁을 한 그는 팔을 돌려 뒤로 튕겨져 나가는 뱀눈의 사내를 잡아챘다.

-찌이이-익!

간신히 옷자락을 잡기는 했지만 곧이어 허무하게 찢어져 버렸다. 여기는 이층이긴 하지만 층마다 보통 건물보다 약간 높게 지어서 거의 삼층 높이와 맞먹었다. 순간적으로 얼어버린 그는, 평생 하지도 않던 말을 뇌까렸다.

“사.. 삼가 명복을….”


-부우우-웅! 찌이이-익!

뱀눈의 사내는 무언가가 찢어지는 소리에 깨어났다. 하지만 완전히 깨어난 것이 아니라 잠결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하늘을 날고 있는 기분이 들자 몽롱한 미소를 띠우며 생각했다.

-꿈인가..? 나는 날고 있는 것인가?

사내는 주위의 모든 것이 자신을 감싸준다고 생각했다. 문득, 자신의 옛 소망이 생각났다.

-그래, 나는 하늘을 날고 싶었어…

그리고 꿈에서 그 바람을 이루었다.

-아..! 이대로 죽어도 원이 없겠다…

그리고…

“쿵!”

“끄에-에엑!!!”


“야! 이 계집애야! 거기 안 서?”

“으앙! 봐주세요!”

소연이 거리상의 이점을 취하며 도망쳤지만 그 거리는 촌각도 못 돼서 압축되었다. 소연에게 거의 다다른 동천은 히죽! 웃었다. 말 그대로 독 안에 든 쥐였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소연을 다 따라잡은 동천은 소연의 치마 자락을 사정없이 밟아 버렸다.

“아-앗? 아야야…”

철푸덕, 거리며 바닥에 엎어진 소연은 손목을 접질렸는지 오른쪽 손목을 잡고 괴로워했다. 동천은 이제야 먹잇감을 잡았다는 생각에 득의양양해 했다.

“야, 엄살 피우지 마. 히히히..!”

동천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소연은 공포에 물든 얼굴로 뒤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작은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 사악하게 웃고 있는 주인이 보였다.

“주.. 주인님…”

동천은 웃음을 그쳤다.

“야, 어서 일어나.”

소연은 엉거주춤하며 일어섰다. 손목이 시큰거려 건드려보자 찡~ 하는 통증이 밀려왔다. 그것을 본 동천은 소연의 손목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자신이 들고 있던 상자를 옆에 내려놓고 소연의 다친 팔을 잡았다.

“많이 아프냐?”

“앗.. 아야…! 조, 조금… 이 아니라, 너무 아파요..오.”

별로 안 아프다고 말하려던 소연은 재빨리 말을 바꿨다. 그렇게 말하면 덜 혼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동천은 한 손으로는 소연의 팔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손을 쥐어 잡았다. 접질린 부위가 흔들리자 그 부위가 쑤셨다. 소연은 인상을 찡그렸지만 소리 내어 표현하지는 않았다. 동천도 소연이 움찔거리는 것을 느꼈는지 소연의 얼굴 표정을 쓱.. 한번 살펴보았다.

“좀 참아.”

그리고는 팔을 고정시키고 손목을 잡아 뺐다.

-으드..득!

“아-윽!”

동천은 손을 놓고 부드럽게 말했다.

“이제 손목을 움직여봐. 괜찮은지 보자.”

예상치 못한 자상한 행동에 감명(感銘)을 받은 소연은 눈물이 핑 도는 것을 참으며 다친 손목을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처음에는 약간의 통증이 있었으나 곧이어 그 통증은 사라져 버렸다. 소연은 기쁜 마음에 소리쳤다.

“와! 주인님, 대단해요! 이제 하나도 안 아파요!”

소연의 칭찬을 받은 동천은 그 정도 가지고…라는 표정으로 은근히 자신을 뽐냈다. 사실 그가 제대로 해낼지는 미지수였는데 며칠 전 화정이가 하인들의 다리를 부러트릴 때, 관절을 잇는 법을 눈대중으로 보아두었기 때문에 한번 시도해 본 것이었다. 만약에 일이 잘못되면 약왕전에 데려갈 생각으로 시도한 사악한(?) 치료였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고.. 소연은 마냥 감사해했다. 동천은 소연의 감사 말을 끝까지 들은 후, 손을 들어 제지하는 척을 했다.

“좋아, 이제 그 문제는 해결됐고…”

동천은 바닥에 놓아둔 상자를 다시 집어 들었다. 소연은 그 상자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동천은 소연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 한 번 웃어 보인 후 고갯짓을 하였다.

“따라와, 계집애야.”

“예에…”

소연은 주인님이 자신의 이름을 안 부르고 계집애라고 하자, 왠지 모를 거리감을 느꼈다. 자기 이름 외의 호칭은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쥐에 관한 일로 빌려고 해도 어색한 마음에 그러지도 못했다. 동천은 아무 말 없이 주방으로 걸어갔다. 그곳에서 사기 그릇을 집어든 동천은 그 그릇이 마음에 드는 듯했다. 그릇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린 동천은 한 자(30Cm) 정도에 폭이 네 치(12Cm) 정도인 대나무 통을 집어 들었다. 대나무 통이 한쪽만 뚫려있고, 다른 한쪽은 막혀있자 동천은 의자 모서리 부분에 막힌 바닥 쪽을 내려쳤다.

-콰-직!

“좋았어. 히히…”

동천은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두 가지 물건을 식탁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은 동천은 불안해하며 서있는 소연을 손짓으로 여유롭게 불렀다.

“야, 이리 와 앉아.”

“알겠습니다…”

소연은 죄지은 사람인 양, 쭈뼛거리며 동천의 맞은편에 앉았다. 소연이 앉자 동천은 말했다.

“골라봐.”

소연은 뭐라는 소리인지 못 알아들었다.

“예?”

다른 때 같으면 한 번에 못 알아듣는다고 구박을 했을 텐데 의외로 동천은 화를 내지 않았다. 동천은 더욱더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사기그릇과 대나무 통을 하나하나 가리켰다.

“후후.. 둘 중에 마음에 드는 것으로 하나를 고르라는 소리야.”

불안감이 점점 고조되는 가운데 소연은 나직히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릇을 지적했다.

“이걸로… 할게요.”

동천은 만족해하며 박수를 쳤다.

-짝짝짝!

“오오.. 좋았어. 그래. 알았어.”

동천이 너무 좋아하자 소연은 본능적(?)으로 그릇에서 대나무 통으로 급히 바꿨다.

“아니요! 그.. 그게 아니라 이 대나무 통으로 바꿀게요!”

그런데 이게 웬일? 소연이 대나무 통을 지적하자 이번에는 동천이 아예 일어서서 박수를 치는 게 아닌가…!

-짝짝짝-짝!

“오오-오..! 그것도 좋지! 그래, 잘 생각했어!”

알 수 없는 주인의 행동에 소연은 울고만 싶어졌다.

“저.. 저… 다시, 바꾸면 안 될까요?”

또 바꾼다는 소연의 말에 드디어 동천의 인내심(忍耐心)이 다했는지 인상을 팍! 구겼다.

“뭐? 또 바꿔? 너 지금 나하고 장난하자는 거냐? 이씨…!”

“죄. 죄송해요.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봐주세요…”

소연이 울음기 섞인 말로 애원하자 동천은 자신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모든 것을 용서하기로 했다.

‘아아.. 난 역시, 너무 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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