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동천(冬天) – 109화


한편, 무사히 밖으로 빠져나온 동천은 우선 가슴을 쓸어 내렸다.

“휴우.. 간 떨어질 뻔했네. 그나저나 저 년은 어떻게 폐관수련하다가 나온 거지? 에이! 참을성도 없는 년! 저 굴속에서 한 칠십 년 정도 썩다가 빌빌.. 거리며 나올 것이지… 으으! 천하의 동천이 다 잡은 먹잇감을 눈앞에 두고 돌아가야 하다니…”

분을 풀지 못해 열 받아 하던 동천은 마침 흑의 사내가 눈에 띄자 그를 불러 세웠다.

“야!”

그 사내는 동천이 화를 내며 부르자 얼떨떨해하며 그에게 다가왔다. 물론, 재빠르게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동천은 그가 극도로 조심스럽게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그래, 새꺄! 엎드려 뻗쳐!”

“예?”

동천은 그 사내의 허벅지를 걷어찼다.

“이 씹새야! 내가 뻗치라면 뻗치지 말이 많아!”

퍽, 소리와 함께 낮은 신음을 질렀던 사내는 소전주의 각력(脚力)의 힘에 놀라면서도 순순히 엎드려 뻗쳤다. 아직도 씩씩거리며 주위를 둘러본 동천은 찾는 게 보이지 않는지 다시 사내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사내의 옆구리에 검이 보이자 그의 옆구리에서 검집 채 빼냈다. 동천은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좋아..”

뭐가 좋다는 말인가? 심히 불안을 느낀 사내는 침을 꿀꺽! 삼키며 동천에게 물었다.

“그.. 그걸로 무엇을 하실려고….”

“시끄러 임마!”

동천은 그 사내의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

“큭!”

사내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얼굴까지 때린 게 미안(?)했던지 동천은 사내의 질문에 대답해줬다.

“음.. 본 약소전주가 지금 심히.. 아주~ 심히, 기분이 나쁘다. 그래서 이 화를 풀기 위해 너를 때린다. 알겠냐?”

화풀이 감으로 자신을 때린다는 소리에 사내는 두려움에 치를 떨었다. 방금 다리로 맞아 봤는데 그 아픔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개기면 죽는다는 것을 알기에 사내는 이 위기를 벗어나고자 모든 것을 포기했다. 순순히 맞는 것이 살길이기 때문이었다.

“뜻대로 하소서…”

동천은 그의 어감이 재미있었는지 웃으며 중얼거렸다.

“뜻대로 하소서? 으히히! 너 가만히 보니 재미있는 놈이구나? 좋아. 내가 봐줬다. 다른 놈 데려와.”

생각지도 못했던 행운에 사내는 정신이 번쩍! 뜨였다. 그는 머리를 굴리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명령을 받듭니다!”

후다닥-! 거리며 재빠른 몸놀림을 구사한 흑의 사내는 얼마 안 가 먹잇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보게.”

막대로 수풀을 휘젓던 곰보 사내는 자신의 동료가 부르자 하던 일을 멈추었다.

“뭔가?”

흑의 사내는 좀 미안했던지 그가 짜증의 표정을 지어도 화내지 않고 말했다.

“약소전주님이 자네를 부르시네.”

약소전주라는 소리에 곰보 사내의 안색이 눈에 띄게 변했다.

“응? 그. 그분께서?”

흑의 사내는 진지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렇다네. 어서 가보시게나. 출입구 쪽에 계시네.”

약소전주는 자신이 불렀을 때 늦게 오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는 소문이 자자했기에 곰보 사내는 들고 있던 막대를 내팽개치고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력으로 달려갔다. 흑의 사내는 그를 불쌍하게 쳐다봤다.

“휴우.. 미안하오. 아차? 나도 같이 가봐야겠군.”

괜히 안 갔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던 사내는 곰보 사내를 쫓아갔다. 먼저 움직인 곰보 사내는 출입구 쪽에 다다르니 소전주가 허리를 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재빠르게 동천의 앞에서 부복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명을 듣고 대령했사옵니다!”

그를 보고, 이어 뒤따라온 흑의 사내를 일별한 동천은 히죽! 웃었다.

“좋아.. 좋아. 생긴 걸 보니, 패도 내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것 같군. 야, 엎드려.”

“명을 받듭니다!”

곰보 사내는 되물어보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동천은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동천은 흑의 사내에게 말했다.

“야, 지금부터 내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백 대만 때릴 테니까, 숫자 잘 세라.”

“옛! 알겠습니다!”

“좋아. 좋아.. 자. 간다!”

동천은 검집이 꽂혀 있는 검으로 곰보 사내의 허벅지를 내리쳤다.

-퍽!

“하나요!”

‘어-억!’

곰보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쳐들었다. 상상외로 통증이 느껴졌던 것이다.

-퍽!

“둘이요!”

‘흐어-억? 이.. 꼬마 자식이… !’

곰보는 입을 악다물었다.

-퍽!

“셋이요!”


-퍽.. 퍽.. 퍽.. 퍽…!

몇 대를 맞았는지 몰랐다. 한 서른까지 기억을 하는데 그 이상으로는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허벅지의 감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때 그의 가물거리는 의식 속으로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소리가 파고들었다.

“저.. 소전주님.. 카.. 칼집이 조금씩 빠지는데요?”

“괜찮아, 임마. 숫자나 세!”

-퍽!

“쉬… 쉰여섯 대요!”

‘크-억! 저.. 저 미친 꼬마가, 나를 죽이려고 작정했나?’

곰보 사내는 극도로 전율을 느끼며, 죽어 있는 감각이 되살아나는 것을 실감했다. 온몸에 땀들이 샘솟듯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다시 십여 대를 더 맞자 경악(驚愕)에 찬 흑의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앗?”

그 소리에 곰보 사내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있는 힘을 다 짜내 고개를 들었다.

‘왜.. 왜 저러는….?’

곰보 사내는 아예 심장이 멎는 것을 느꼈다. 얼굴에 땀 범벅인 소전주가 번들거리는 새하얀 물체를 내려치려고 자세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설마… 하고 있을 때 그의 얼굴 옆으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툭… 데굴..

‘허-억? 거… 검집? 부.. 부처니-이임!!’

-쩍!

“크-억!”

소리부터 달랐다. 퍽! 과 쩍! 의 차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여지껏 가만히 있던 곰보 사내가 소리를 지르자 동천은 깜짝 놀라서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헉.. 헉.. 에이. 씹새끼. 놀랐잖아… 헉헉. 야, 몇 대야?”

동천도 많이 지친 것 같았다. 내공을 일으키면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지만 사부와의 약속 때문에 허리띠를 풀지 못해서 기본 체력만으로 버텨야 했기 때문에 숨이 차오르는 것이었다. 흑의 사내는 재빠르게 대답해줬다.

“일흔두 대입니다.”

검을 지팡이 삼아 한숨을 돌리던 동천은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그으래? 헥.. 헥. 좋아. 다시 간다!”

그때 흑의 사내가 다급히 그를 제지했다.

“자.. 잠깐만요! 소전주님! 그 칼을 잘못 세우셨습니다! 그.. 그렇게 내리치시면 짤립니다요!”

“엉? 어.. 그렇군. 알았어. 이거야원.. 어두워서 뭐가 보여야지…”

-주르르르륵.. 주르륵….

곰보 사내의 얼굴을 타고 떨어져 내리는 땀방울들의 소리였다. 그는 저 소악마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으으.. 그래.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거야. 맞아.. 나는 꿈을 꾸고.. 컥!’

“일흔세 대요!”

동천은 이제 때리기도 지겨웠다. 그러나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그런 내색을 비치지 않았다. 벌써 팔십 대를 넘어가고 있었다. 팔은 심하게 떨렸다. 하기 싫은 일을 하다 보면 종종 일을 잘못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동천은 자신의 몸이 약간 옆으로 기운다는 것을 느꼈다.

-서걱(?)!

“끄아아-악!!!!”

“엑? 뭐.. 뭐야?”

동천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앞을 보니, 맞고 있던 자식의 허벅지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다행히 잘린 정도는 아니고 약간(?) 베인 정도였다. 그래도 피는 샘솟듯이 솟아났다. 동천은 두려운 마음에 검을 떨어뜨리고, 어색하게 웃었다.

“하.. 하. 하…”

그러나 옆에서 지켜보던 흑의 사내의 눈에는 동천이 지금 즐긴다고 생각했다. 사내는 치를 떨었다. 눈을 까뒤집고 기절한 사내를 바라보던 흑의 사내는 그래도 자신에게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느꼈는지 죽음을 무릅쓰고 동천에게 다가갔다.

“저.. 치료해 줄까요?”

경황이 없던 동천은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쭈구리고 앉아서 상처를 들여다보니, 그리 깊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동천은 다시 일어섰다.

“에이.. 기분만 잡쳤네. 네가 알아서 해라. 난 갈 테니까.”

“존명!”

동천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걸어갔지만 실상, 그의 가슴은 아직도 쿵쾅! 거렸다.

‘휴… 깜짝 놀랐네.’

동천은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밖으로 나섰다. 동천은 마차를 타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이 일로 해서 하급 무사들 사이에 동천의 악명은 더욱더 찬란하게(?) 빛이 났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