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110화
동천은 어김없이 깨워주는 이가 있어서 아침 일찍 일어났다. 짜증을 내며 깨우는 이를 쳐다본 동천은 곧이어 짜증을 풀었다.
“하~암! 잘 잤냐? 쪽!”
화정이의 볼에 뽀뽀를 해준 동천은 자신도 그 답례를 받고, 한참 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잠에서 어느 정도 깨어난 동천은 화정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야, 가서 깨워.”
화정이는 미소로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런 그녀를 동천은 다급히 제지했다.
“어? 이 계집애야! 옷은 제대로 입고 가야지! 이리 와!”
그러고 보니, 화정이의 가슴섶은 풀어져 있었고 당연히 그녀의 가슴은 뽀얗게 드러나 있었다. 화정이는 동천의 옆에 다소곳이 앉았다. 동천은 그녀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며 옷을 여며줬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렇게 나가냐? 다음부턴 옷 잘 입고 나가. 알았지?”
화정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동천은 믿지 않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여서 그 다음에 제대로 행동하는 것을 별로 못 봤기 때문이었다. 동천은 이내 나가는 화정이를 바라보며 낮게 혀를 찼다.
“쯧쯧쯧… 커서(?) 뭐가 되려고…. 가만? 야! 돌아와! 그년 없어!”
그제서야 소연이 없다는 것을 상기시킨 동천은 밖으로 나가버린 화정이를 불렀다. 그녀는 곧이어 안으로 들어왔다.
“으으.. 그 계집애 생각하니까 또 열 받네? 끄응.. 운기조식이나 해야겠다.”
허리띠를 풀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동천은 천천히 운공을 시작했다. 동천은 내부에서 내공이 충만하게 퍼지는 것을 느꼈다. 동천이 먹을 것을 대했을 때 빼고, 다음으로 좋아하는 느낌이었다. 사부의 명대로 모든 운기조식을 마친 동천은 밖으로 나가 시녀에게 상을 들여오라 시켰다. 그리고 잠시 후, 어김없이 푸짐한 상이 차려졌다.
“얌, 냠… 으으. 맛 죽인다! 야, 소여….”
소연의 자리를 돌아보니 소연은 없었다.
“쳇.”
맛있게 먹던 동천은 무의식적으로 소연을 부르다가 그녀가 없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밥맛이 떨어짐을 느꼈다. 입맛이 없어진 동천은 두 공기만 먹었다. 적어도 하루에 네 시진은 수련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동천은 아침을 먹은 후 조금 쉬다가 자신의 뒷마당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누가 놓아뒀는지 물통 두 개가 놓여져 있었다.
“으휴.. 저걸 또 들어야 하다니. 으쌰!”
수련을 할 때는 허리띠를 풀러야 했기에 동천은 허리띠를 방에 놓고 왔다. 역시, 내공의 힘이 좋기는 좋았다. 이제는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어느 정도 숙지한 동천은 좀 어설프나마 우물가로 당도했다.
-촤아아악-! 촤악!
물을 푼 동천은 자신이 길을 제대로 찾아왔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졌다.
“히히! 이런 우물가야, 찾는 건 시간문제지.”
사실은 어떻게 동천이 며칠 만에 우물가를 찾겠는가? 여기에는 아주 작은 비리가 있었는데, 어제 동천이 하인을 시켜서 뒷마당부터 우물가까지 작은 홈을 파놓으라고 명을 내렸다. 어느 안전이라고 명을 어기겠는가? 그리하여 동천이 이렇게 쉽게 길을 찾아온 것이었다. 어쨌든 동천은 느긋하게 되돌아갔다. 왜냐하면 이것을 끝으로 놀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이젠 자신에게 수련하라 마라.. 할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신이 났다. 혼자 킥킥.. 거리며 뒷마당에 당도한 동천은 자신의 생각이 여지없이 빗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오~! 제자야. 역시, 내 생각대로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었구나!”
동천은 한순간 윽! 했지만 곧이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의 사부에게 환하게 웃어주었다.
“사부님! 그동안 보고 싶었어요!”
물동이를 내팽개친 동천은 십 년 만에 만나는 부자(夫子)처럼, 역천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역천은 자신의 가슴 한구석이 찡~ 하게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 그동안 이 사부가 그렇게 보고 싶었느냐?”
동천은 역천의 허리에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그럼요. 어제는 사부님이 보고 싶어서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왜 이제야 오셨어요..”
동천의 거짓말에 역천은 자애롭게 웃었다.
“허허.. 그랬구나. 걱정 마라. 내 이제는 매일매일 너를 보러 오마!”
그 말에 동천은 기겁을 했다.
“예? 매일요?”
“왜 그러느냐? 무슨 문제가 있느냐?”
그제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동천은 얼른 표정을 다스렸다. 동천의 바뀐 얼굴에는 대만족! 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뇨! 너무 기뻐서요! 사부니~임!”
잠시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다. 물론, 역천에게만…
“역시, 내 제자로다… 하하하! 이 세상에 내 제자같이 사부를 위하는 제자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어디 나와 봐! 나와! 짜샤! 나와!”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사부가 흥분하며 날뛰자 동천은 자신이 사부를 너무 띄워 줬다고 생각했다. 동천은 이쯤에서 연기를 그만두었다.
“사부님. 근데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어요?”
혼자 먼 산을 보고 삿대질을 해대던 역천은 제자의 물음에 정신을 추슬렀다. 그는 웃음 지은 얼굴로 착하디착한 제자에게 대답해 주었다.
“음.. 다름이 아니라. 너, 커다란 쥐 잡았다며?”
“윽! 쥐…”
심히 언짢은 질문을 받은 동천은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 이에 역천은 의아해 물었다.
“왜? 그 쥐가 무슨 문제가 있냐?”
동천은 자신이 쥐를 먹었다는 것을 밝히고 싶은 마음이 결단코! 없었다. 동천은 재빨리 사부에게 둘러댔다.
“그게 아니라요. 에휴… 제가 사부님께 그 쥐를 보여드리려고, 껍질을 벗긴 뒤, 제 식탁 위에 올려놓았거든요…”
여기서 제자의 말이 잠시 끊기자 역천은 서둘러 물어보았다.
“올려놓았는데?”
그 사이 잠시 생각할 여유를 되찾은 동천은 막힘없이 사부의 질문에 답해 주었다.
“예, 근데요. 요즘 덥기 시작해서 문을 열어 놓았는데, 아 글쎄! 그 망할 놈의 고양이년이 그걸 채갔지 뭡니까?”
저런.. 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던 역천은 응? 하더니 다시 물었다.
“근데, 제자야. 그 고양이가 어떻게 암컷인지 알았느냐?”
“예?”
“아, 그러니까. 네가 방금 고양이년이 물고 갔다며. 내 말은 어떻게 그게 암 고양이인지 알았냐는 말이다.”
무의식(無意識) 중에 소연이를 생각해서 고양이년으로 대답했던 동천은 한순간 말이 막혔다. 하지만 별로 중요한 대목이 아니었기에 대충 얼버무렸다.
“뭐.. 원래 도둑 고양이는 암컷이 많으니까 그냥, 암컷이라고 갖다 붙인 거예요. 헤헤.. !”
정말로 도둑 고양이는 암컷이 많나? 하고, 속으로 머리를 굴리던 역천은 이런 걸 물어봤다가, 제자에게 그것도 모르냐는 시선을 받을까 봐 수긍의 표시를 했다.
“그렇구나.. 크헤헤! 역시, 나의 제자는 똑똑하도다! 그럼! 도둑 고양이하면 거의가 암컷이지! 헤헤헤!”
거짓말로 얼버무린 건데 사부가 맞다고 하자, 동천은 좋은 거 알아냈다고 생각했다. 동천은 따라 웃었다.
“히히! 그래서 지금 남은 건 껍데기밖에 없어요.”
“그래? 음.. 아쉽구나. 그럼, 그거라도 보자.”
역천은 입맛을 다셨다. 동천은 사부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후, 자신의 방으로 냉큼 달려갔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화정이가 종이 쪼가리를 쥐고 방 한구석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동천은 그러려니.. 하고, 관심을 끊었다. 쥐 가죽이 급했기 때문이다.
“가만.. 내가 어디다 뒀더라.. 어디다… 아하?”
어제 갔다 와서 휴지통에 버렸다는 것을 생각해낸 동천은 기쁜 마음으로 휴지통에 갔다. 그런데 동천은 휴지통이 있어야 할 자리에 누군가가 이미 들어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너, 거기서 뭐 하냐..?”
“씨-익!”
동천의 물음에 화정이는 웃었다. 동천은 굳은 얼굴로 화정이의 얼굴 쪽에서 점점 시선을 내려 깔았다. 아무래도 화정이가 휴지통을 깔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에 이상 야릇한 소리가 들렸다.
-쪼르르르-륵….! 뿌-웅!
순간, 동천의 안색이 눈에 띄게 파래졌다.
“이…! 이…. 으아악! 이 미친 계집애가?”
동천은 서둘러 화정이를 밀쳐냈다. 휴지통을 들어보니 찰랑.. 하며, 물기 먹은 소리가 맑게(?) 울려 퍼졌다. 안에는 화정이가 직통으로 쥐가죽 위에 오줌을 눴는지 물먹은 솜마냥 축.. 늘어져 있었다. 동천은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휴지통 안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마도 화정이가 요강과 휴지통의 차이를 잠시 착각해서 실례한 것 같았다.
<으으.. 이걸 어쩌지? 저 더러운 걸 빼가지고 사부에게 보여드릴 수도 없고… 그냥, 좀 씻어서 갖다 드릴까? 그.. 그럴까? 좋아. 그렇게 해서 갖다 드리자. 뭐, 어때? 씻겨만 내면 깨끗할 거야… 그 누가 알겠어? 결정했다!>
생각을 마친 동천은 서둘러 젓가락 한 쌍을 구해왔다. 정신을 차리고 휴지통에 가까이 가니, 찌린 내가 팍팍! 풍겼다.
“어휴, 냄새! 저 계집애… 으으! 때릴 수도 없고.”
동천이 젓가락으로 쥐가죽을 집어내고 있을 때 화정이는 옆에서 동천을 바라보며 황홀한 웃음을 지어주었다. 그녀를 때리려던 동천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여기다가 눈 게 어디냐? 똥까지 쌌으면 어떻게 할 뻔했….”
동천은 불안한 눈길로 화정이를 바라봤다.
“가.. 가만….! 너, 설마..”
화정이는 고개를 약간 기울며 웃었다. 동천은 침 한번 꿀꺽! 삼킨 다음 화정이의 치마를 살짝.. 들어 올렸다.
잠시 후…
“크-허억? 사.. 사람…. 살..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