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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2화


“내 이럴줄 알았지. 으이그! 잠자는 꼬락서니 하며..”

사정화 보다 먼저 들어온 수련은 동천의 잠버릇이 고약하다는 것을 한눈에 알수 있었다. 동천의 얼굴은 무려 사흘 동안에 벌어진 일들로 해서 나타난 영광(榮光)의 상처들이 수없이 많은 피멍들로 빽빽히(?) 들어서 있었고 물에 불려논 만두처럼 탱탱 불어있는 얼굴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 섰다고 밖에는 달리 할말이 없었다.

그리고 동천의 이불은 침대 아래에서 동천에게서 해방(解放)된 것을 혼자 자축(自祝)하며 따로 자고있었고, 수련이 어제 금창약을 발라준후 오른쪽 다리에 감겨 주었던 붕대는 거의다 풀려버린 상태로 수련에게 보란 듯이 침대옆 가장자리 부근에서 자랑 스럽게도 까딱! 까딱! 하면서 미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사정화는 작가가 위에 열심히 머리를 짜내서 써놓은 모든 상황을 한마디로 일축시켜 말했다.

“한심하군..”

바로 그때 동천은 매우 추운듯 오들오들 몸을 떨더니 수련이 어떻게 대처할 새도없이 곧바로 몸을 최대한으로 구부리며 한 손으로는 주위를 주섬 주섬 쓸어가면서 무언가를 찾는 듯한 행동을 취했다.

수련과 사정화는 동천이 뭐하는 짓인가 하고 바라 보다가 바닥에 떨어진 이불 바로 옆에 있던 사정화가 이불을 걷어차서 동천에게 날려보내 주자 동천은 잠결 에서도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이며 이불을 잡아채고는 얼굴만 빼꼼히 내민채 이불을 뒤집어 쓰고는 오들오들 떨었다.

실로 처절할 정도의 본능(?) 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동천의 행동을 지켜보던 수련은 하마트면 들고있던 쟁반(錚盤)을 떨어뜨릴 뻔했고, 사정화는 표현(表現)을 안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박수(拍手)를 쳐주고 있었다.

추운 듯 떨고 있던 동천은 조금있다가 떨던 몸을 진정시키더니 추위에서 해방된 듯한 표정으로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입을 헤-! 하고 벌렸다. 수련은 그런 동천의 얼굴을 보다가 차마 못볼 것을 봤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고, 사정화는 한 대 치고만 싶은 자신의 욕망(慾望)을 뒤로 한채 야무지게 생긴 손을 꼭 말아쥐고는 주먹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아.. 아돼.. 시러.. 나느.. 나는 이고을… 시러..”

헤벌레-! 하며 웃고 있던 동천은 갑자기 인상을 찡그리더니 알아듣기 힘들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한참을 중얼 거렸다.

“무슨소리지?”

동천이 꿈결에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는데 알아 듣기가 힘든말을 혼자 계속 나불거리자 궁금해진 사정화는 좀더 자세히 듣고 싶어서 동천의 입가에 세치(9Cm)정도의 사이를 두고 오른쪽 귀를 비스듬히 갖다 대었다. 그러나 동천은 사정화가 귀를 기울인 다음부터는 아무말도 안하고 편안해진 얼굴로 숨을 고르게 쉬며 잠을 잤다.

사정화는 자기가 지금 뭐하는 짓인 가 하고 생각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이런 한심한 놈이 무슨말을 하든 자기하고 무슨 상관(相關)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한참 생각 하고있던 사정화는 결국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오기(傲氣).. 다른 말로 하자면 똥 고집(固執) 이었다.

그 것을 알아낸 순간 사정화는 갑자기 눈 앞이 환해 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지금 까지의 자신의 행동에 관한 원인(原因)이 아니라 결과(結果)였다.

“우아악!”

“딱!”

“꺄악-!”

“아씨-!”

“쨍그랑-!”

“아이고, 대가리야!”

여기 까지 생각 하고있던 사정화는 다시 의식이 현실(現實)세계로 돌아오는 것을 느끼며 수련의 목소리를 들을수가 있었다.

“아가씨! 괜찮아요? 아가씨이.. 이를 어째.. 야! 동천! 어떻게좀 해봐!”

수련은 어제 동천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소리없이 빠져나와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다음 내일 아침 사정화와 청목 할머니 에게 차려줄 반찬을 생각하다가 문득, 자신이 여섯 살때 처음 들어와 밥짓고 반찬을 만들며 실수 했던 생각이 새삼스레 떠오르자 이유는 알수 없지만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수련이 이곳에 오기전에 수련의 집은 좀 잘살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아버지도 꽤 인자하신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지금 자신의 기억으로는 그 아버지가 사업(事業)을 하는데 세력을 확장 시키려고 무리를 하다가 아버지의 점포들이 연쇄 적으로 파산(破産)을 하면서 집이 완전히 풍지박살이 난 것으로 기억한다. 집이 망한것도 모자라서 막대한 빚까지 떠맞게된 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피신을 하다가 도망가는 과정(過程)에서 자신을 잃어버렸다.

혼자 떨어져서 엄마와 아버지를 찾으며 울고 헤매던 자신을 지금 수련의 주인 아가씨인 사정화의 어머니 께서 마차를 타고 가시다가 수련의 울음 소리를 듣고, 수련에게 말을걸어 물어본 후 고아(孤兒)라는 사실을 알아 내시고는 지금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것이었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때 청목 할머니는 없었고, 사정화의 식구들과 유모 라고 불리우는 뚱뚱한 아줌마와 빼빼 마른 늙은 남자 하인(둘이 부부인 것 같았다.) 이렇게 수련까지 합쳐서 여섯명 밖에 없었다. 그때에는 사정화가 지금처럼 냉막해 지지는 않았었는데 수련이 온 해(年)에 사정화의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자 점점 말이 없어지더니 일년.. 이년.. 시간이 흐르자 결국에는 지금처럼 속 마음을 갇아놓고, 무공에만 전념하며 하루 하루를 보냈다. 그러면서 성격 또한 조금씩 잔인해 지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사정화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사정화의 아버지인 즉, 수련에게는 주인 어르신인 사비혼도 따로 나가서 살면서 가끔가다 찾아와 사정화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고는 잠깐 동안만 있다가 다시 나가서는 한참동안 안 오다가 무공을 가르키러 다시 찾아 오는 식으로 밖에는 이 집에 오질 않았다.

그래서 인지 몰라도 사정화는 갑자기 어른들이 싫어 졌는지 집에 있던 늙은 아저씨와 뚱뚱한 유모도 같이 나가라고 해서 육개월 전까지만 해도 둘만이 지내고 살다가 청목 할머니와 함께 자기 또래의 남자 아이가 같이 들어와서 살게된 것이었다.

“휴.. 아가씨가 옛날에 환하게 웃을때는 참 아름다웠는데…”

문득 사정화의 웃음짓는 모습을 생각하자 어저께 아가씨한테 죽도록 얻어 맞고, 오늘은 또 청목 할머니에게 얻어 맞아서 자신이 직접 들쳐 업고 방으로 데려다가 뉘어준 후 금창약과 붕대를 감아주었던 동천이 생각 났다. 지금은 하도 얻어 맞아서 처음의 얼굴이 어떠했는지는 잘 생각이 나질 않았지만 처음에 동천이 잠든 모습을 보았을 때 평범한 얼굴 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꽤 호감이 가는 인상이어서 기분이 좋았었다. 어찌됐든지 수련 자신은 못생긴 건 싫었고, 그렇다고 잘생기지는 않았어도 호감이 가는 얼굴이 더 나았기 때문 이었다.

“풋-!”

동천의 얼굴을 생각하던 수련은 살풋이 웃었다. 문득, 장장 삼일 동안에 벌어진 동천의 얼굴 변천사(變遷史)를 생각하자 절로 웃음이 나는 것을 참을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좋았어! 내가 지금 동천 너 때문에 기분이 좋아 졌으니 내일 아침에 특별히 죽순(竹筍)을 ᄋ게 잘라서 쌀과 함께 푹-! 고아서 특별 음식으로 순죽(筍粥)을 아주 맛있게 끓여 주겠어! 기대해도 좋다고…”

그렇게 혼자 신이나서 중얼거리며 잠을 잤던 수련은 지금 자신이 들고 있던 쟁반이 자신의 목소리와 함께 손에서 멀어지는 감각(感覺)을 느끼며 그 감각이 확실하다는 것을 소리를 통해서 검증(檢證) 받았다.

“쨍그랑-!”

‘어째서 이런일이..!’

수련은 이후에 벌어질 일은 상상(想像)도 하기가 힘들었다. 잘못하면 저승 사자가 동천에게 와서 “천당(天堂) 갈래요, 지옥(地獄) 갈래요, 아니면 여기 그냥 남을 래요?”라고 말을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귀하디 귀한 암흑마교 부교주의 외동딸인 사정화의 얼굴에 상처라도 생긴다면 자신 까지도 한 순간에 갈수 있었기 때문 이었다. 수련은 이런 저런 생각들 때문에 울고 싶어 졌지만 꾹! 참고 상황을 어떻게든 좋게 이끌어 나가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 어리고 착하기만한 수련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울먹이다가 간신히 말을 했다.

“아가씨! 괜찮아요? 아가씨이.. 이를 어째.. 야! 동천! 어떻게좀 해봐!”

“너.. 너 이자식.. 도.. 동천!!”

화를 삭히는 건지 아픔을 참는 건지 알수는 없지만 싸늘한 사정화의 시선을 느끼며 동천의 의식은 이미 하늘 나라로 날아가고 있었다.

‘또 맞아야 돼나..?’

다시 한 번 맞아야 한다는 절망감(絶望感)이 온몸을 싸고 돌며 동천의 숨결을 조금씩 조금씩 조이기 시작 했다. 잠시후 시간이 조금 흐르자 동천은 숨쉬기가 곤란해 지는 것을 느꼈다. 생각이 현실로 다가와 동천의 숨통을 조이는 것이었다.

“허.. 윽! 후-! 수.. 숨이.. 후-읍!”

동천의 새파란 얼굴에 수련은 저으기 놀라며 당황해 했다.

“동천! 왜그래? 야! 흑! 흑! 왜그래! 엉! 엉..!”

안절 부절 못하던 수련은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는 고사리만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채 그자리에서 쪼그리고 앉았다.

“꼬르르륵…!”

결국 동천은 입에 개거품을 물더니 눈을 까디집고는 머리를 뒤로 제치며 쓰러졌다.

“앗! 동천!.. 동.. 천!…”

동천은 수련의 외침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그래도 내생각하는건 너밖에 없구나 라고 생각하며 기절했다.

“동천! 흑흑! 야, 동천! 어.. 어떻해..!”

수련은 이런 상황은 처음인지라 울기만 할뿐 아무일도 하질 못했다. 그러나 사정화는 처음엔 잠시 놀란 것 같더니 조금후에 안정을 되찾은 뒤에 차분한 목소리로 수련을 불렀다.

“수련.”

“예?”

울고있던 수련은 사정화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귀영광의(鬼影狂醫)를 불러와.. 어서!!”

수련의 싸늘한 말에 수련은 울먹이면서도 대답했다.

“흑! 흑! 예, 아씨…”

수련은 아직까지 계속 울면서 사정화의 명령대로 귀영광의를 부르러 밖으로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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