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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36화


동천의 주위가 난장판일 정도로 혼잡해 있었지만 정작 그렇게 만든 동천은 그것만으로도 부족한 것 같았다. 살기 어린 눈빛으로 생각 없이 어슬렁대던 동천은 벽에다가 노상방뇨(路上放尿)를 하고 있는 사내를 목격하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암한문의 모든 것이 동천의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다 오줌을 싸고 있다?

“저런, 좆같은 새끼를 봤나?”

안 그래도 화가 나있던 동천은 재빨리 달려가 신나게 오줌을 누고 있는 사내의 엉덩이를 걷어차 버렸다.

-퍼억!

“으악! 뭐.. 뭐야?”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갑작스러운 타격에 사내는 질겁을 하면서 얼른 바지를 추스렸다. 그러나 맞을 때 조준이 잘못됐는지 사내의 바지에는 오줌 물이 흥건히 젖어 버렸다. 자신의 아랫도리를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사내는 획-! 돌아봤다가 방긋! 웃었다.

“안녕하십니까요. 소전주님. 저.. 날씨 한번 좋죠?”

동천은 날씨 얘기가 나오자 저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기는 맑았다. 한동안 그 푸른 하늘을 멍하니 보고 있던 동천은 그 광대한 하늘에 자신의 마음이 평온(平穩)을 되찾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천은 고개를 내리고 눈을 감았다.

“이런들 어떠하리.. 또, 저런들 어떠하리…. 세상사가 다 그렇고 그런 게 아니겠는가? 이봐. 너 나 알어?”

사내는 소전주가 자신을 불러대자 급히 대답했다.

“그러면 입죠. 위대하신 약왕전의 소전주님이 아니십니까요? 이는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얘깁니다요!”

동천은 눈을 감은 채로 히죽! 웃었다. 간만에 무게 좀 잡아보려고 분위기를 잡았는데 자기를 추켜세우는 이야기를 듣자 본성은 어쩔 수 없는지 좋아서 웃어버린 것이었다. 동천은 눈을 뜨며 말했다.

“음.. 너, 잘도 아는구나. 그건 그거고.. 넌 나를 알겠지만 나는 너를 모른다. 불만 있냐?”

사내는 황급히 두 손을 저었다.

“그럴 리가요! 소전주님이 어떤 분이신데 제가 감히 불만을 가지겠습니까?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요. 헤헤…”

이런 일에는 잔뼈가 굵은 듯 사내의 아부는 매끄럽게 돌아갔다. 그 증거로 동천의 어깨에 은근히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래. 히히… 그야 그렇겠지. 좋아. 원래는 함부로 오줌을 싸대서 반쯤 죽여 놓으려고 했는데 봐줬다. 한 대만 맞아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대니까 이의는 없을 거다.”

사내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원래는 반쯤 죽일려고 했었는데 한 대로 끝낸다니… 사내는 속으로 웃었다.

‘흐흐흐… 이게 바로 관록(貫祿)이라는 거다. 애송이 꼬마야.’

그렇게 웃어대며 사내는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더 때려달라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만을 보일 뿐이었다.

“명을 받듭니다. 저는 준비가 됐으니까 언제든지 치시지요.”

동천은 마음에 들어하는 얼굴을 하더니 사내에게 손을 들어 상체를 조금 낮추라는 시늉을 보였다. 눈치가 있어서 그런지 사내는 얼른 자신의 고개를 숙였다. 곧이어 턱주가리가 힘차게 돌아갔다.

“크읍…”

맞은 쪽으로 비틀거리며 두어 발자국을 물러선 사내는 웬만한 장한의 힘보다 센 소전주의 주먹질에 놀라했다. 그러나 그는 아파할 새도 없이 얼른 아부를 해야 했다.

“이번을 기회로 앞으로는 노상방뇨를 하지 않겠습니다. 이게 다 소전주님의 가르침 덕분이니 소전주님의 가르침은 평생 제 가슴속에 각인(刻印) 시켜놓고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동천은 신이 났는지 만면에 가득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히히! 좋아. 가봐.”

“옛!”

깍듯이 인사를 하고 걸어가는 사내를 기분 좋게 바라보던 동천은 걸어가는 사내의 옆 벽면에 있는 오줌 자국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러자 다시 기분이 더러워졌다.

“야! 거기서!”

소전주의 손에 걸려서 단 한 대만 맞고 무사히 귀가했다는 소식을 여러 친구들에게 자랑할 심산으로 걸어가던 사내는 움찔거리며 멈추었다. 그는 웃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헤헤. 또 무슨 가르침이라도….”

동천은 대답 대신 손가락을 까닥! 거렸다. 이리 오라는 소리였다. 사내는 불안했지만 겉으로는 전혀 그런 내색을 안 하고 얼른 동천에게 다가갔다. 다가온 사내를 빤히 주시하던 동천은 자못 고심하는 척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말야.. 생각을 좀 해보니까. 아무래도 한 대 가지고는 안되겠다. 한 대만 더 맞아라.”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사내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러면요. 저는 올바르게 살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소전주님께서 조금 다르게 생각하신다면 어쩔 수가 없는 일이겠지요. 때리시지요.”

동천은 다시 웃음을 머금었다.

“넌, 정말 착한 놈이야. 내가 그걸 알지.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대하는 거고… 너도 내 맘 알지?”

애새끼가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것을 그가 어찌 알겠는가? 하지만 지금 상황이 몰라도 알아야 하는 상황이라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렇다고 해야만 했다.

“물론입니다! 자! 때리시지요!”

-빠악!

“어이쿠… 두(頭)야!”

이마 정중앙을 얻어맞은 사내는 뒤로 발랑 자빠져 버렸다. 이번을 끝으로 정말 그만 때리려던 동천은 넘어진 사내의 뒤로 오줌 싼 자국이 보이자 또다시 화가 치미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동천은 본색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에이, 씨발. 야! 안되겠다. 거기 넘어진 김에 그냥 원 없이 맞아라. 알겠지? 이의 없지?”

동천의 무시무시한 물음에 겁에 질린 사내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꺼냈다.

“저, 저기… 이의(異議)있는 뎁쇼…..”

이의가 있다는 말에 갑자기 동천의 안색이 험악해졌다.

“어? 이 새끼가 감히 나한테 반기(叛起)를 들어? 이게 죽을려고.. 죽어! 죽어 이 새꺄! 얘들아! 이놈이 감히 나한테 반기를 들었다! 모두 나와서 이 새끼 밟아버려!”

동천이 넘어져있는 사내를 죽어라 밟아대며 모두 나오라고 소리를 질러대자 맞는 사내에게는 불행하게도 정말로 우르르~ 몰려나왔다.

“소전주님! 어느 놈입니까요? 이놈입니까요?”

“우리 모두 소전주님을 도와 이놈을 죽도록 팹시다!”

“옳소! 어서 밟읍시다! 이 새끼! 이 새끼!”

사내는 갑자기 늘어난 발 세례에 비명을 질러댔다.

“크엑! 으악~! 사.. 살려… 커억!”

그러나 정작 동천의 발은 거기에 끼어있지 않았다. 그냥 생각 없이 지껄인 건데 진짜로 인간들이 방안에서 튀어나와서 사내를 때려대자 잠시 어안이 벙벙한 것이었다. 그러나 동천답게 금세 정신을 차렸다.

“저 자식.. 저러다 진짜로 죽는 거 아냐?”

동천의 낮은 목소리가 그 소란에도 들렸는지 사내들은 때리는 것을 멈추었다. 그들 중 한 사내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저.. 그만 때릴까요?”

동천이 곁눈질로 얻어맞은 사내를 흘겨보자 정 말 말이 아닌 꼴로 자빠져 있었다. 보다 세밀하게 말하자면 성한 곳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동천은 눈살을 한껏 찌푸리며 물어온 사내에게 되물었다.

“죽었냐?”

사내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몸가짐을 보여주었다.

“아닙니다. 아직 숨이 붙어 있습니다.”

동천은 내심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겉으로는 여전히 화가 가시지 않는 듯한 얼굴을 했다.

“좀만 때리고 니들이 알아서 갖다 버리든지 해라. 알겠냐? 나는 바쁜 일이 있어…. 으악? 음식! 이런 제기랄!”

그제서야 자신이 밖으로 나왔던 본 이유를 생각해낸 동천은 허겁지겁 달려가기 시작했다. 어린애의 뜀박질치고는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 마침내 동천이 사라지자 남아있던 사내들은 서로들 의논을 주고받았다.

“이 친구. 우리들을 못 봤겠지?”

“음.. 몰라. 하지만 내가 처음에 때릴 때 얼굴 부위를 갈겼으니까 못 봤을 확률이 커.”

“아까 내가 나올 때는 우리와 반대로 누워서 얻어맞고 있었으니까 아마도 못 봤을 걸세.”

그들은 서로들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그들 중 제일 건장한 사내가 의식이 불분명한 사내를 어깨에 걸쳐 맸다. 약전에 데려다주기로 합의를 본 것이었다. 한참을 걸어가던 그들 중 하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소전주께서 우리의 공로를 기억해주실까?”

“음.. 아마도 아니겠지.”

“맞아. 우리야 얼떨결에 나와서 때리고 무사했으니 그걸로 만족하세나 그려.”

이들은 누구인가?

“훗..! 우리네 인생이야 그렇고 그런 게 아니겠는가?”

“음.. 그렇기도 하지.”

“우리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마작을 다시 하세…”

한마디로 마작 패거리들이었다. 이들은 동천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방안에서 마작을 벌이다가 동천이 나오라는 소리에 지레 겁을 먹고 나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오늘따라 마작패가 잘 뜰 거라고 생각하며 약전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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