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137화
허겁지겁 달려가던 동천은 놀랍게도 자신이 가야 할 곳으로 정확히 당도하였다. 우연의 일치인지 하늘의 도우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동천으로서는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동천은 기뻐할 틈도 없이 주방장에게 소리쳤다.
“야! 빨랑 진수성찬으로 음식을 한 상 차려서 접견실로 들고 와! 알겠냐?”
갑작스레 소리치는 소전주를 멀뚱히 바라보던 주방장은 얼른 정신을 차리곤 바삐 몸을 움직였다.
“예. 예.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시지요. 야! 만칠아! 거기 사슴 다리 하나하고, 소고기 안창살. 그리고 참새 열 마리만 가져와라! 빨리빨리!”
야채를 다듬고 있던 만칠이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방 밖을 향해 소리쳤다.
“갑니다! 야! 칠복아! 거기 사슴다리 하나하고, 소고기 안창살. 그리고 참새 열 마리만 가져와라! 빨리!”
밖에서 앉아서 날이 무뎌진 칼을 갈고 있던 칠복이는 안에서 들려오는 소릴 듣고, 짜증 섞인 소리로 반문했다.
“에이씨.. 나 바빠요! 그리고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식사 준비예요? 도대체 언놈이 처먹을 건데 그래요?”
대답은 바로 들려왔다.
“내가 드실 거다. 이 잡놈아…”
“엥?”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칠복이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크아악~!”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주방장은 식은땀을 흘려대며 옆에 있는 만칠이와 마주 보았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짐작하고도 남았던 것이었다. 주방장은 눈짓을 하면서 말했다.
“야… 아무래도 니가 나가서 대신 가져와야겠다.”
그 말에 만칠이는 기겁을 하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제, 제가요? 그러다가 저 맞아 죽으면 어떻하라구요…”
주방장은 겁에 질려있는 만칠이를 한 대 쥐어박았다. 그는 초조한 눈으로 한껏 소리를 낮추며 만칠이를 윽박질렀다.
“이놈아. 그럼 내가 나가리? 너 여기서 짤리고 싶어?”
그때, 밖에 나갔던 동천이 한 손에 칼을 꼬나들고 들어왔다.
“이것들이… 너희들 오늘 칼침 한번 맞아볼래? 빨리빨리 안 움직여? 엉?”
동천이 쥐고 있는 칼을 본 순간 겁에 질린 만칠이는 굽실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동천은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만칠이의 머리통을 한 대 갈긴 다음에 소리쳤다.
“조금만 지체하기만 해봐. 아주 죽여버릴 테다!”
동천은 나자빠졌다가 재빨리 일어나서 달려가는 만칠이를 일별한 후 주방장에게 다가갔다.
“야! 넌, 요리 안 하고 뭐해? 가만히 서 있으면서 띵가띵가하면 갑자기 요리가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한데냐?”
자신에게까지 불똥이 튀기자 깜짝 놀란 주방장은 어설픈 변명을 해댔다.
“저, 그게.. 고기들이 와야지….”
주방장의 변명을 듣고 동천은 눈알을 부라렸다. 동천은 옆에 있는 물통을 걷어차더니 소리쳤다.
“새꺄! 요리가 고기만으로 되디? 각종 양념이나 야채들은 안 들어가? 그것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냐? 쓰발… 빨리 안 움직여?”
동천의 고함에 주방장은 재빨리 몸을 움직이며 야채들을 다듬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동천에게 용서를 구했다.
“예. 예. 시정하겠습니다! 최대한으로 요리를 할 테니 제발 고정하시고 저쪽 자리에 앉아 계시지요. 금방 됩니다요…”
-팍!
들고 있던 식칼을 도마에다 힘차게 내리꽂은 동천은 주방장을 한껏 째려보며 중얼거렸다.
“금방 안되기만 해봐. 이 칼 뽑히면 넌 죽고 난 사는 거야. 알지?”
파랗게 질린 주방장으로서는 오로지 굽실거릴 뿐이었다.
“그럼요. 그럼요.. 야! 만칠아! 빨리 가져와!”
“여기 대령합니다!”
다급히 만칠이가 고기들을 들고 오자 주방장은 심혈을 기울여 고기 가죽과 껍질을 벗겨내었다. 그것들을 서둘러 토막을 낸 주방장은 재빨리 요리에 들어갔다.
-치이이익….
갖은 야채와 양념들을 한 곳에 집어넣고 기름에 튀기자 금세 향긋한 냄새가 주방 안을 진동하기 시작했다. 절로 침이 넘어갈 만한 냄새였다. 그러나 동천은 그것을 음미할 새가 없었다.
“야! 대충 볶아서 끝내! 시간이 없단 말야!”
요리가 다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진정한 요리가 뭔지도 모르는 무식한 꼬마가 자꾸만 채근대자 주방장은 울고만 싶어졌다.
“금방 됩니다요. 금방 되니까 조금만 더 시간을…..”
다급해진 주방장의 머릿속에 갑자기 경종(警鐘)을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정한 요리의 도(道)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더냐?
‘아…? 사부님.’
주방장은 비록 환청이라도 사부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짓을 되짚어보았다. 지금 자신은 소전주의 압력에 다급히 요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는 예전에 자신의 사부가 물어보았을 때 대답해주었던 그 말귀를 생각해보았다. 그때 아마도 그는 이렇게 답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의 혼이 깃든 것을 가리킵니다.
-잘 말했다. 너는 이 사항을 단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사부님.
-그래.. 허허! 내가 말미에 제자 하나는 제대로 두고 가는구나….
주방장의 눈가에 작은 눈망울이 맺혔다.
‘사부……..’
크게 깨달은 주방장은 그 즉시 하던 일을 멈추고 동천을 바라보았다. 동천은 허둥대며 요리를 하고 있던 주방장이 갑자기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을 바라보자 어이가 없었다.
“너, 죽고 싶냐? 빨리 요리 안 해?”
그러나 이미 깨달은 바가 있는 주방장은 동천의 위협에도 한 점의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당당하게 말했다.
“소전주님. 무릇 요리의 도란…”
“퍼억-!”
한 대 얻어맞은 주방장은 군말 없이 다시 요리 기구를 손에 들었다.
-치이이익….
“…….”
주방장의 깨달음은 동천의 한 주먹에 무너진 것이었다. 주방장은 다시 울상을 지었다.
‘사부.. 죄송합니다. 저도 그 도(道)를 지키고 싶은데 상황이 안 따라주는군요. 죄송합니다….’
“야! 처량한 표정을 짓는다고 내가 나중에 봐줄 줄 알아? 넌 이따가 죽~을 줄 알아!”
주방장은 괜히 나섰다고 생각했다.
동천은 요리가 다 끝나자 사람들을 거닐고 접견실로 달려갔다. 다행히도 장로들은 떠나지 않고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동천은 정말로 미안한 표정으로 사죄했다.
“오래 기다리셨죠? 헤헤. 제가 맛있다고 장담을 하고 나갔는데 허술하게 대접(待接) 할 수가 없어서 고심 좀 하느라고 이렇게 늦었습니다.”
구장로는 동천이 그렇게 말했어도 불편한 심기를 거두지 않았으나 칠장로는 허허롭게 웃어주었다.
“괜찮소이다. 원래 맛있는 음식은 기다렸다 들어야 제 맛이니 그런 것은 너무 염려하지 마시오.”
그가 그렇게까지 말해주니 동천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흘려 보냈다. 동천은 이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서둘러 상을 들여왔다. 그런데 동천이 장담한 것과는 다르게 상을 들여온 음식들은 단촐하게만 보였다. 당연히 여지껏 참고 있던 구장로가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이게 뭔가? 고작 두세 종류를 준비한답시고 우리들을 그렇게 기다리게 한 건가?”
‘씨발 놈아. 누군 그러고 싶어서 이렇게 만들어 온 줄 알아? 그리고, 이게 다 지가 처먹고 싶다고 해서 만들어 온 건데 감히 그따위 말을 떠벌려? 으으.. 주먹이 운다.’
주먹이 울면 지가 어찌하겠는가? 마음과는 달리 동천은 그 무슨 소리냐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말씀은 드셔보시고나 하시지요!”
소전주가 의외로 강하게 나오자 구장로는 놀란 눈치를 보였다. 그러나 곧이어 원래대로 표정을 되돌리더니 틱틱 거리며 이야기를 했다.
“좋아. 내 한번 먹어보고 말을 하지. 사형. 드시지요.”
“허허. 그래 볼까나?”
칠장로는 벌겋게 익혀진 고기를 집어들어 한 점 깨물었다.
“응?”
칠장로가 놀라하자 구장로는 궁금한 마음에 자신도 재빨리 음식을 집어먹었다. 그리고 자신의 사형과 같은 표정을 지었다.
“엇? 이건…”
둘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서로 무언의 말을 주고받은 그들은 동천에게 고개를 돌렸다. 동천은 찔리는 게 있는지 다소 떫은 신색을 내비쳤다.
‘제길.. 내 그럴 줄 알았어. 덜 익은 걸 가져왔는데 저 병신들이 못 알아챌 리가 없지… 아우 씨!’
그렇다. 동천은 너무도 급한 김에 덜 익은 음식을 그냥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러나 동천은 미리 준비해 온 변명거리가 있었으므로 아직은 절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