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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38화


“어떻습니까? 아주 색다른 맛이지요?”

두 장로는 대답 대신 다시 한 점을 집어먹었다. 그들은 천천히 고기를 씹으면서 살며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칠장로가 다시 한 점을 집어먹으며 물었다.

“소전주. 이 음식을 누가 만든 겁니까.”

동천은 이들이 의외로 담담한 표정을 짓자 희한해 했다.

‘얼레? 그런대로 괜찮나벼?’

속으로 별꼴을 다 본다고 생각한 동천은 지체 없이 말했다.

“이거요? 그야. 당연히 명령은 제가 하고 음식은 제 식사를 담당하는 주방장이 했죠. 그런데.. 마음에 드세요?”

동천은 못 미더워 다시 물어보았다. 구장로가 하얀 눈을 번뜩여대며 이야기했다.

“흐흐.. 자네. 뭘 좀 아는군.”

‘알어? 뭘? 도대체 뭐를 안다는 거지? 아휴. 답답해. 이 눈깔 병신아! 말을 해주려면 다 해줘야 이 평범한 천재소년이 알아들을 거 아냐!’

지가 혼자 지껄이는 것은 상관없지만 상대가 자신에게 대답을 요하는 이야기를 하자 동천은 바삐 대가리를 굴리면서 다음 말을 준비해야만 했다.

“헤헤.. 그야. 저도 듣는 귀가 있으니까요…..”

“흐흐. 사형. 어떻소? 이 고기를 대하니 새삼스레 옛일이 떠오르지 않소? 그때 먹을 거는 없고, 심신은 지칠 대로 지치고…”

칠장로는 수긍을 표했다.

“그렇군. 생고기라…. 허허.”

그는 아련한 눈빛으로 자신의 앞에 놓여진 음식을 내려다보았다. 붉은 고추기름이 칠장로의 눈에는 핏물같이 보였다. 한동안 시선을 떼지 않던 칠장로는 살며시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소전주를 보니, 소전주는 음식을 먹지 않고 있었다.

“허허. 소전주. 맛은 없을 테지만 들어보시오. 이렇게 손님만 먹어대니 무안하외다.”

갑자기 주객(主客)이 전도된 듯했다. 당연한 거지만 덜 익은 음식을 먹기 싫었던 동천은 한 손을 들어서 휘휘~ 저었다.

“괜찮아요. 저는 생각이 없네요. 그냥, 장로님들이나 맛있게 드세요.”

동천이 예의 바르게 거절을 했지만 칠장로는 약간 껄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구장로는 옆에서 둘이 뭐라 하던 말건. 음식을 먹어대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구장로의 몫으로 나온 음식은 어느새 바닥을 드러냈다. 구장로는 음식이 다 떨어지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옆에 있는 사형의 음식을 잠시 흘겨본 구장로는 미련 없이 고개를 돌리고 동천 쪽을 바라보았다.

“자네, 그거 먹을 건가?”

먹기 싫어서 깨작거리고 있던 동천은 상대가 알아서 처먹어 준다는 소리에 환하게 웃어대며 말했다.

“아닙니다. 더 드시고 싶으시면 제것을 드시지요.”

“그럼, 사양 않고 먹겠네.”

구장로는 약간 일어나서 동천의 앞에 놓여진 그릇들을 자신 쪽으로 모두 옮겨 버렸다. 그나마 예의가 있었는지 음식 하나는 남겨놓고 모두 쓸어버렸다. 그때 칠장로가 자신의 사제를 조용히 불렀다.

“사제…”

도로 갖다 놓으라는 무언의 명령이었다. 잠시 끄응..하고, 신음성을 터뜨린 구장로는 그릇과 접시들을 아무렇게나 쳐대며 동천에게 날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것들은 흐트러지지 않고 정확하게 동천의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신기에 가까운 솜씨가 바로 자신의 앞에서 벌어지자 동천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햐~! 저 눈깔 병신… 곡마단(曲馬團)에 들어가면 인기 좀 끌겠는걸? 아깝다.. 저 늙은이가 장로만 아니라면 내가 어떻게 좀 했을 텐데… 정말 아깝다.’

여기서 어떻게 란 곡마단에 팔아서 돈을 챙긴다는 깊은 뜻(?)이었다. 동천은 실현도 안될 것을 알기에 더욱 아쉬워했다. 이는 눈앞의 떡이 더욱 맛있어 보이는 이치와 같았다. 알아서 자신의 생각을 접은 동천은 다시 돌아온 음식들을 구장로에게 도로 돌려주며 이야기를 꺼냈다.

“저야. 이런 건 매일 먹을 수도 있겠지만 장로님들이야 어찌 즐겨 드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그냥 제것을 드시지요. 헤헤..”

구장로는 사형의 눈치를 보았다. 그는 자신의 사형이 아무런 행동도 않자 천천히 음식들을 자신에게로 끌어왔다. 그리고 한 번 더 사형을 보았다. 역시 말이 없자 그제서야 가져온 동천의 음식들을 먹어댔다. 동천은 구장로가 너무나도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잘도 처먹네? 음.. 저게 그렇게 맛있나? 어디.. 나도 한 입 먹어봐야겠다.’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젓가락으로 덜 익은 고기를 집어든 동천은 입에 넣고 씹어보았다.

“웁!”

동천이 갑자기 구역질을 하자, 두 장로의 시선이 동천에게로 모아졌다. 고기에서 비릿한 핏물이 넘쳐흘러서 다급히 뱉으려고 했던 동천은 그들의 시선에 자기도 모르게 꿀꺽! 삼켜 버렸다. 좀 거북한 얼굴로 고개를 약간 비틀던 동천은 쩌금쩌금 입맛을 다시며 입을 열었다.

“역쉬~! 이 맛이야!”

구장로는 음식물을 한 아름 씹어대며 미소를 흘렸다.

“흐흐.. 자네. 마음에 드는군. 쩝쩝…”

마치 악귀(惡鬼) 같아 보였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지금 동천의 위장은 왜 이따위 것을 들여보내는 거냐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우웩… 저. 저… 미친놈들…. 그럼, 여태까지 이따위 것을 처먹으면서 좋다고 히죽거렸던 거야? 어으.. 비린내 때문에 숨쉬기도 곤란하네.’

바로 이 맛이라고 소리쳤던 장본인이 한 번만 먹고 더 이상 먹을 생각을 안 하자 칠장로가 더 먹기를 권했다.

“허허. 무릇 모든 음식은 식으면 맛이 없는 것이오. 어서 드시오.”

동천은 이제, 구장로보다는 칠장로가 더욱 무서워졌다. 가만히 보니까 모든 일에는 저 늙은이가 시발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 하.. 그럼요. 먹어야지요. 이렇게 맛있는 것을 식게 내버려두다니요. 먹습니다. 먹어요.”

동천은 미약하게나마 떨리는 손을 애써 다잡고 다시 한 점을 집어먹었다. 그러자 동천의 몸이 한순간 돌처럼 굳어버렸다. 다시 고개를 약간 모로 비틀던 동천은 낮은 신음성을 흘렸다.

“으음…”

동천이 하는 짓을 곁눈질로 바라보던 구장로는 대소하며 즐거워했다.

“크하하! 아무리 맛있어도 그렇지! 맛있다는 표현을 그렇게 하나? 좋아! 좋아! 자네, 아주 마음에 들어!”

‘개, 개새끼! 지금 장난하나. 으어어… 혀. 혀가 마비됐나 보다.’

도로 튀어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삼켜버린 동천은 생전 처음으로 음식에 대해서 공포를 느껴야만 했다. 그러나 동천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이건 내가 좋아하는 고기다. 음식이다! 약간 덜 익었을 뿐 다른 이상한 것은 없다. 먹자. 먹어.. 단 한 번에 먹…. 응? 한 번에..?’

동천은 갑자기 머릿속이 환해짐을 느꼈다. 동천은 무슨 결심을 굳힌 듯 그릇에 담겨진 고기들을 한가운데로 모았다. 당연하게도 칠장로와 구장로의 시선이, 동천의 손짓을 따라 같이 움직였다. 마침내 모든 작업이 끝나자 깊게 심호흡을 한 동천은 섬전처럼 두 손을 놀렸다.

“으랏차차! 우걱, 우걱, 우걱!”

대번 고함을 지르고 바쁘게 손을 놀린 동천은 효과를 봤는지 모든 고기를 집어먹을 수 있었다. 덕분에 위가 쩌릿쩌릿해지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지만 일은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가 있었다. 동천은 상대가 자신에게 설명을 요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동안 시간적인 여유를 둔 동천은 핏발이 곤두선 두 눈을 번뜩이며 껄끄러운 목소리를 내었다.

“이것이… 이것이 진정한 식도(食道)라 할 수 있지요….”

“오…!”

구장로는 감탄한 듯했다. 그는 어디 나도.. 하더니 동천과 같이 한입에 모든 고기를 담아 씹어 삼켰다. 굵직굵직한 것들이 식도를 때리며 넘어가자 묘한 쾌감이 전해져왔다. 구장로는 한껏 웃었다.

“하하하! 내 생전에 이런 느낌은 처음 이로구나!”

사제의 행동을 감히 따라 할 정도로 무식하지 않았던 칠장로는 그저 옅은 미소를 흘리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진정한 식도라… 허허.”

처음에는 굳은 분위기였으나 나중에 가서는 동천의 식도(食道)의 가르침(?) 때문에 구장로가 흥겨워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끝을 맺을 수가 있었다. 동천은 드디어 고대하던 식사가 끝나자 진실로 웃어대며 그들을 배웅했다.

“안녕히 가세요. 다시 놀러오시면 제가 또 식사를 대접해 드릴 테니 또 놀러 오세요.”

칠장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고, 구장로는 친히 동천의 어깨를 집어주며 연신 웃어댔다.

“흐흐.. 그러면. 내 자네의 그 식도를 마저 배우기 위해서라도 또 오겠네. 크큭!”

동천은 속으로 욕을 해댔지만 어쩔 수 없이 웃어야만 했다.

“그럼요. 저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헤헤헤…”

그렇게 동천의 배웅을 받으며 의자에 앉아서 가던 칠장로는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고개를 돌려 말했다.

“오늘 고기가 맛이 있었긴 했지만 아쉽게도 가축의 고기더군요. 다음에 올 때는 제대로 된 생고기를 맛보길 기대하겠소이다.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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