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139화
무슨 얘기인지 몰랐던 동천은 그저, 생각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예. 그러죠..”
동천은 그들을 문밖까지 배웅해주고 돌아오는 길에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렸다. 방금 칠장로가 나가면서 넌지시 건네준 말이 자꾸만 동천의 머릿속에서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뭔 소리야?”
급기야는 자리에 멈춰 서서 칠장로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헤쳐 보았다.
“고기가 맛있었기는 했다. 음.. 여기 까지는 괜찮고, 다음. 그러나 아쉽게도 가축의 고기더라…. 그래. 여기가 좀 이상해. 그리고 다음에 올 때는 제대로 된 생고기를 처먹고 싶다? 씨발. 누가 지 죽이라고 한데?”
칠장로에게 유감이 많은 모양이었다. 하긴 그 인간 때문에 덜 익은 고기를 먹어서 속이 울렁거리는 동천으로서는 당연한 현상이었다. 잠시 자신의 추리가 딴 곳으로 흐르자 동천은 다시 정신을 추슬렀다.
“에..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그 다리 병신의 말인즉, 가축의 고기가 아닌 다른 것을 먹고 싶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럼, 고기 중에 가축이 아닌 게 있나? 음.. 산짐승을 말하는 건가? 아니면 물고기? 아냐. 그건 피가 흐르는 게 아니니까 넘어가고. 그것들 말고 또 다른 고기가 있나? 에.. 없나? 음음…. 몰라몰라!”
머리가 슬그머니 저려오자 동천은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동천은 그냥 잠이나 자러 돌아갔다. 그 사이 꽤나 멀어져 있었던 두 장로는 느긋하게 가고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그들이 누군지 모르는 듯 무심코 스쳐 지나갔다. 다만 희한한 몰골의 그들을 한 번씩 흘겨보는 게 다였다. 주위의 시선을 무시하며 사형의 의자를 밀어주던 구장로는 자신의 둘째 사형을 내려다보면서 말을 걸었다.
“그 아이. 어떻습디까?”
칠장로는 살풋이 웃었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구장로는 지체 없이 대답했다.
“못 먹는 걸 애는 쓰더이다.”
“허허! 생각은 좀 있는 아이 같아 보이더구나.”
밀던 의자를 잠시 멈춘 구장로는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약간의 반골(叛骨)의 기질이 있더이다. 싹싹한 건 마음에 들지만 아무래도 그게 좀…..”
칠장로는 대답 없었다. 그저 웃음 진 얼굴을 풀지 않을 따름이었다. 사형이 말이 없자 구장로는 다시 의자 끝에 나있는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밀었다. 가는 길에 조그마한 돌길 위을 지나쳤는지 칠장로의 상체가 약간 흔들렸다. 그리고 그것이 칠장로의 침묵을 깨뜨렸다.
“때로는… 반골도 필요한 게지.”
“음.. 그럴까요?”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이런 분위기가 싫었는지 칠장로는 다시 환하게 웃었다.
“허허허! 두고 보세나.”
잠시 후, 그들의 신형은 이내 인파 속으로 묻혀 버렸다.
“주무신다고?”
도연의 물음에 소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까 보니까 심기(心氣)가 굉장히 불편하신 것 같았어. 그러니까 괜히 곤히 주무시는 주인님 깨우지 말고 나중에 다시 와. 주인님 깨시면 내가 불러줄게. 알았지?”
도연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이만 물러나기로 했다. 그러나 물러나더라도 줄 건 줘야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가져온 물건을 소연에게 건네주었다. 중간 크기의 포대 자루를 받아든 소연은 의아해 물어보았다.
“이게 뭐야?”
도연은 턱짓을 하며 말했다.
“풀어봐.”
자신이 할 일은 다 했다는 듯 도연은 대답을 들려주고 그대로 돌아갔다.
“저, 저기? 아.. 가네? 치.. 이게 뭔지는 가르쳐주고나 갈 것이지…”
잠깐 동안 도연이 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소연은 푸념을 뒤로하고 궁금한 마음에 얼른 풀어보았다. 꼼꼼히도 감긴 새끼줄을 어렵사리 풀어낸 소연은 조심스레 주둥이 부분을 열어보았다. 안에서 시큼한 냄새가 풍겨 나왔다.
“휴~! 이게 무슨 냄새야? 썩은 고기라도 가져왔나?”
한 손으로 코를 부여잡고 고개를 뒤로 뺀 소연은 얼굴을 있는 대로 구기며 포대 주둥이를 밑으로 까 내렸다. 그러자 안에서 시커먼 물체가 드러났다. 소연은 깜짝 놀랐다.
“앗? 이건..?”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던 소연은 그것의 정체를 인식하자 다시 다가와 자세히 살폈다. 심하게 찢기고 털이 까진 큰 쥐는 얼었다가 녹아서 그런지 눅눅하게 젖어 있었다. 냄새가 생각 외로 심하자 소연은 도로 물러났다. 소연은 그제서야 동생에게 했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맞아. 그러고 보니. 내가 그때 수련이에게 금방 가지러 간다고 그랬지? 내 정신 좀 봐. 그새 까먹고 있었구나..”
자신의 건망증을 탓하며 머리를 치던 소연은 젖은 쥐를 주인님께 보여드릴 수 없다는 생각에 건조(乾燥)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소연은 포대를 둘둘 말아서 햇볕이 잘 드는 앞마당으로 들고나갔다.
“으차! 휴! 냄새 때문에 혼났네. 뭐, 이만하면 되겠지?”
할 일을 마쳐서 기분 좋게 돌아서던 소연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설마, 누가 저걸 훔쳐 가지는 않겠지? … 그렇겠지?”
자기 혼자 다짐을 받은 소연은 이내 돌아섰다. 좀 께름칙한 마음으로 걸어가던 소연은 도저히 안 되겠는지, 고개를 돌려 바닥에 놓여 있는 쥐를 바라보았다. 잠시 뚫어지게 쥐를 바라보던 소연은 피식! 웃었다.
“그래. 아무도 안 가져갈 거야. 누가 저걸 가져가겠어?”
소연은 생각을 굳히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위로 올라가 편안하게 드러누운 소연은 괜히 나쁜 쪽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괜찮겠지 뭐.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주인님의 물건을 훔쳐가겠어. 그래. 걱정할 필요가 없어.”
오랜만에 편안하게 누워서 그런지 스르르 눈이 감겼다. 눈을 감고 꿈나라로 들어서려던 소연은 어쩔 수 없이 꿈나라 바로 앞에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소연은 눈을 번쩍 떴다.
“근데. 그게 주인님 건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알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난 소연은 지필묵을 들더니 글을 적어 내려갔다.
“와.. 다 됐다. ‘이 쥐는 소전주님의 쥐니까 건드리지 마시오.’ 음… 이만하면 되겠지?”
종이를 들고 서둘러 밖으로 나간 소연은 쥐가 널려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쥐의 근처에 다가서자 심한 노린내가 풍겼다. 소연은 한 손으로 코를 막고 쥐의 앞에다가 종이를 내려놓았다.
“휴우..! 이제 다 됐다. 이젠 정말로 쉬러 가야겠다.”
소연이 기쁜 마음에 느긋하게 몸을 돌릴 때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었다.
-휘이잉….
그 바람에 종이가 휩쓸려 날아가자 소연은 깜짝 놀라서 종이를 쫓아갔다. 그러나 종이는 생각 외로 가벼운 몸을 놀리며 소연에게서 점점 멀어져만 갔다. 소연은 쫓아가면서 종이를 불렀다.
“종이야! 그만 좀 가!”
쓸데없는 잡담이었지만 그런대로 효과가 있었는지 바람이 잠잠해지자 힘을 잃은 종이는 서서히 하강했다. 소연은 쉴 새 없이 뜀박질을 해서 겨우겨우 담쟁이 넝쿨에 걸린 종이 조각을 잡아낼 수 있었다.
“후우..후우. 너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알겠지? 그래. 착하다.”
종이를 쓰다듬어 주듯 자잘한 먼지를 털어낸 소연은 다시 쥐의 앞에 내려놓되 종이 위에 보통 크기의 돌을 올려놓았다. 힘들었기는 했지만 소연은 어느 정도 만족을 했다.
“이제, 진짜~루. 아무 일도 없겠지? 아아.. 피곤하다.”
이미 자신이 한 일에 만족을 했지만 소연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람이 이곳을 지나치기를 기다렸다. 조금 서있자 다리가 아파 오는지 쪼그리고 앉았다. 한 일다경이 지날 때 즈음… 마침내 소연이 있는 곳을 지나치는 젊은 사내가 있었다. 그는 소연이 보이자 생글거리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거 소연이 아냐? 그런데 너 여기서 뭐하고 있니? 혹시, 소전주님께서 널 내쫓았니?”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소연은 세차게 머리를 저었다.
“호호! 그럴 리가요.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 앉아 있었던 거예요.”
소전주라는 인간에 대해서 소문으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청년은 소연의 말을 전적으로 믿으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소연에게 그 문제를 물어보지 않았다. 자신의 일이 아니었기에 더 이상 캐묻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청년은 어디선가 시큼털털한 냄새가 풍기자 코를 킁킁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둘러볼 것도 없이 대번에 보였다.
“어? 이게 뭐야? 우와! 이거 쥐 아냐? 맞지? 이거 쥐지?”
“예. 제법 크죠?”
이렇게 큰 쥐는 난생 처음 보았던 청년은 여전히 놀라하며 말했다.
“제법 정도가 아닌데? 햐~! 가만.. 소연아. 이거 누가 잡은 거니?”
소연은 씨익! 웃더니 손으로 쥐의 오른편에 놓여 있는 종이를 가리켰다. 당연히 청년의 시선은 그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종이의 내용을 잠깐 읽어 본 청년은 갑자기 얼굴을 굳히더니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소연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저기.. 혹시, 이 근처에 소전주님이 계시니?”
“아니요.”
“그, 그래? 하하! 그럼 안녕..!”
소연의 대답에 청년은 반색을 하더니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드디어 확인 작업까지 끝을 맺자 소연은 홀가분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소연은 침대 위로 뛰어들었다. 포근한 이불이 소연의 온몸을 무리 없이 감싸 안았다. 잠시 뭉그적거리던 소연은 몸을 사정없이 굴려대며 소리쳤다.
“와아~! 이제 진짜로 걱정 안 해도 된다! 랄라라…”
이젠 걱정이 없다고 생각한 소연은 긴장이 풀리자 스르르 감기는 눈꺼풀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오늘 자신이 한 행동에 자부심을 느꼈는지 소연은 밀려오는 졸음에 정신을 내맡기면서도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이제 다 끝냈으니… 으음. 글도 써 놨겠다.. 음. 누가 가져가겠어… 고양이면 몰……..”
고양이 부분에서 소연의 중얼거림이 멈추어 버렸다. 그 대신 소연의 얼굴이 서서히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
비몽사몽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소연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며 벌떡 일어났다.
“고양이-이??”
소연은 엄청난 타격을 받은 듯 한동안 움직일 줄을 몰랐다. 소연은 갑자기 고양이들이 미워졌다. 울상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소연은 할 수없이 자신이 나가서 지키는 도리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히잉..! 미워! 미워! 나 피곤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