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140화
동천은 잠에서 깨어나자 힘찬 기지개를 켰다.
“아자자자자….! 으음. 쩝.”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대낮인 듯 환해 보였다. 동천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배를 쓰다듬는 행위를 했다. 자기 전에는 조금 더부룩했는데 깨고 나니, 소화가 다 됐는지 가뿐했다.
“근데, 도연이 자식은 어떻게 됐을까나…”
감히 사정화에게 따지러 간다던 도연이 소식이 없자 동천은 며칠 동안 도연이 말없이 사라졌을 때보다 더욱 궁금해했다. 이런 류의 일들은 인력으로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기에 동천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적어도 나만큼은 맞아야 할 텐데.. 히히히!”
도연이 터진 얼굴로 돌아오는 것을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동천이었다. 그 몰골을 기다릴 수 없겠는지 동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아무래도 내가 하인을 불러서 확인을 해봐야겠어.”
지나가는 하인을 불러서 일을 시키려던 동천은 이상하게도 주위에 아무도 안 보이자 돌아다니는 것을 그만두었다. 동천은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들이 하라는 일은 안 하고 도대체 어디서 놀고 자빠져 있는 거지? 에이씨… 더 나가봐야 하나?”
급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동천은 짜증을 내면서도 어느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조금 걸어가던 동천은 힘들게 사람들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문을 나서자마자 한곳에 모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라? 뭔 구경이라도 났나?”
궁금해진 동천은 떼거지로 몰려있는 사람들을 걷어차며 길을 넓혀 들어갔다. 동천을 알아본 몇몇 사람들은 얼른 도망을 쳤다. 덕분에 수월하게 안쪽으로 파고들 수 있었던 동천은 한가운데에서 쪼그리고 앉아있는 소연이를 보았다. 저기서 뭐 하는 짓인가 해서 소연을 부르려고 했던 동천은 조금 벌렸던 입을 다물어 버렸다. 소연의 앞에 놓여 있는 검은 물체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더욱 잘 보려고 시력을 집중시키던 동천은 확인 작업이 끝나자 눈을 한껏 치켜들었다.
“계, 계면서(界面鼠)??? 야! 너 그거 어디서 났어!”
소연은 인파 속에서 난데없이 주인님이 뛰쳐나오자 반가운 마음에 동천에게 다가갔다.
“깨어나셨어요?”
동천은 소연의 안부 인사를 듣는 둥, 마는 둥했다. 동천은 소연을 다그쳤다.
“이 계면서. 어디서 난 거야?”
소연은 동천에게서 처음 듣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얼른 물어보았다.
“계면서요? 이 쥐의 이름이 계면서예요?”
“그런 게 있어. 니가 알 건 없고, 이거 어디서 난 거냐니까?”
소연은 자신도 별로 알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그 대신 자신이 고대하던 질문이 마침내 들려오자 소연은 만면에 자랑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그녀는 동천이 주먹을 말아 쥐자, 재빨리 설명해주었다.
“그게 말이죠. 며칠 전에 제가 이 쥐를 잡았는데요. 주인님께 가져가려는 찰나에 주인님이 사정화 아가씨께… 그렇게 되어서 급한 김에 놓고 왔었어요. 오기 전에 이걸 수련이에게 맡겼었는데. 아, 글쎄. 오늘 도연이가 이걸 들고 왔더라구요. 그런데 이게 축축하지 뭐예요? 할 수 없이…..”
“잠깐! 도연이가 뭐?”
소연은 주인님이 이 이야기의 핵심(核心)에서 중요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도연이를 물어오자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예? 도연이요? 지금 도연이를 물어본 거 맞아요?”
-따악!
답변을 꿀밤으로 대신한 소연은 머리를 긁어대며 말했다.
“도연이가 들고 왔어요. 더 뭘 말해요…”
소연이가 자신의 요지를 읽어내지 못하자 동천은 답답한 마음에 언성을 더 높였다.
“좀 더 자세히 말해봐! 걔 올 때 멀쩡하디? 아니면 어디 한 군데가 부러져 있었어? 부러져 있었지? 그치?”
소연은 주인님이 흥분해서 물어보자 좀 걱정이 되었다. 말투를 보아하니 멀쩡해도 부러진 척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래서 소연이 걱정하는 것이었다. 도연이 멀쩡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말하기를 주저하던 소연은 진실은 진실이기에 조심스레 말했다.
“저기.. 괜찮던데요…”
“뭐? 괜찮아?”
역시나, 동천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쫄아 버린 소연은 애꿎은 자신이 맞을까 봐 사정거리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소연의 예상대로 분풀이로 소연을 때리려던 동천은 그녀가 어느새 물러나 있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동천과 소연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자리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무서운 동천의 시선에 얼른 딴청을 피웠다. 동천은 그런 인간들이 갑자기 불쌍해졌다. 예전의 자신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때 세가에서 미미의 눈치를 살피며 얼마나 불쌍하게(?) 살았던가… 그런 이유로 동천은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주위의 사람들을 봐주기로 했다.
‘그래.. 저 새끼들도 살자고 하루를 근근이 버티는데 내가 좀 화가 난다고 팰 수야 없겠지… 좋게 생각하자. 도연이 그 자식. 아마도 겉에만 멀쩡한 걸 거야.’
혼자 고개를 숙이고 끄덕거리던 동천은 히죽! 웃었다. 그 의미 모를 웃음이 불안했는지 주위의 사람들은 슬그머니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낌새를 눈치 못 챌 동천이 아니었다. 한두 놈도 아니고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였으니 동천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 니네들 지금 도망가는 거냐?”
그들은 소전주가 인상을 쓰며 물어오자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했다.
“아닙니다. 잠시 다리 운동을 하느라고 앞뒤로 움직여 본 겁니다. 보십쇼. 으쌰! 으쌰!”
“그렇습니다! 이보게들 이렇게 하니 다리가 시원해지지 않는가?”
“아아.. 이제야 굳었던 다리가 풀리는군요. 역시 운동이 최고야…”
난데없이 운동을 하게 된 사람들은 모두 경쟁이라도 하듯 신중하게 다리 운동을 했다. 장인정신이 우러나올 정도였다. 동천은 모두들 합심해서 같은 행동을 취하니 꼬투리를 잡기가 힘들었다. 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동천이 기분 나빴을 때 걸렸으면 소용이 없는 사항이었다. 그러나 운 좋게도 동천이 봐주기로 마음먹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 거였어? 난 또 뭐라고…”
알겠다는 듯이 웃음을 지으며 수긍을 표한 동천은 죽은 쥐를 발로 툭툭 건드려 보았다. 계면서는 흐물흐물 늘어지며 힘을 받은 쪽으로 일그러졌다. 배때기를 밟으니 쥐의 입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엥? 이게 지 피 많다고 자랑을 하네? 히히!”
재미있어진 동천은 더욱 힘주어 밟았다.
-우둑.. 뚜드-득!
소름 끼치는 소리가 주위에 퍼지자,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언제 자신이 저렇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금 밟히고 있는 쥐가 남의 일 같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누구도 나서지 못하는 이 상황에서 보다 못한 소연이 동천을 말렸다.
“주인님. 그만 하세요. 이거 희귀한 쥐라고 저보고 멀쩡하게 가져오라고 그러셨잖아요…”
갑자기 동천의 움직임이 뚝! 멈추었다.
“아, 맞다. 이거 희귀한 거지? 이씨.. 야! 그런 건 진작에 가르쳐줬어야지! 이게 얼마나 보기 드문 건지 알기나 해?”
“죄송합니다…”
괜히 나섰다가 핀잔만 들은 소연은 시무룩하게 물러섰다. 분위기가 더욱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불안해진 사람들은 어서 빨리 저 소 악마가 쥐새끼를 들고 사라졌으면…. 하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봤는지 동천은 계면서의 밑에 넓게 깔린 포대로 쥐를 감쌌다. 그리고 그 포대를 들어 올리려던 동천은 어떠한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자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에.. 이게 희귀한 거고, 희귀한 거니까 보기 힘든 거겠지? 이런 쥐새끼는 돈주고도 보기 힘들게 분명해. 그런데… 그런데 저것들이 이 계면서를 보고도 아무런 성의 표시가 없다???’
혼자서 말도 안 되는 공식을 성립시킨 동천은 천천히 허리를 펴 올리며 최대한으로 다정다감하게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모두들 자신을 주목하자 동천은 기다렸다는 듯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아아..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아주~ 아주. 귀하고도.. 고결하고도.. 또 아름답기까지 한 이 계면서라는 쥐를 보았습니다. 이 계면서가 도대체 뭐냐!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시는 분들은 개인적으로 저를 찾아오시기 바랍니다.”
이는 찾아오면 알아서 하라는 소리였다. 잠시 동안 사람들이 머리를 굴릴 수 있게 시간을 준 동천은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러실 분이 없으리라 믿고.. 이렇게 제가 여러분들께 나서서까지 하고픈 얘기는 가는 정(情)이 있으면, 당연히 오는 정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부디 이런 제 간청을 거절하지 마시옵고 불쌍한 이 계면서를 위해서 자그마한 무덤이라도 만들어주게 조그마한 성의를 부탁드립니다. 자자.. 소연아. 뭐하니. 어서 돈을 걷어라.”
전직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술술 말을 잘 풀어 나가는 동천이었다. 넋을 놓고 주인님을 바라보던 소연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소연은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에게서 제일 가까운 사내에게 다가갔다.
“저기.. 주세요.”
사내는 군말 않고 돈을 꺼내주었다. 소연의 손에 구리 문 두 냥이 빛을 발하며 떨어져 내리자 그걸 본 동천이 깜빡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여러분. 잠시 여기를 주목해주십시오. 제가 한가지 주의해야 할 사항을 잊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의 주시는 성의는 제가 나름대로 감사히 받을 수 있으나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는 것을 요 근래에 와서 깨달은 저로서는 평등(平等)과 공평(公平).. 이 두 단어의 깊은 뜻을 저버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아아.. 여러분. 다시 한번 이 불쌍한 계면서를 보시고 자신이 그렇게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긴말은 않겠습니다. 성의 표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구리 문 열 냥입니다. 자.. 이제 다 아시리라 믿고…. 이상입니다. 소연아. 뭐하니?”
“예. 알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