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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41화


소연은 주인님의 명령에 지체없이 달려가 돈을 받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동천의 눈치를 보면서 돈을 내주기에 바빴다. 몇몇 사람들은 돈이 모자라자 돈을 빌리기에 바빴다.

“이.. 이보게. 두 냥만 빌려주게.”

“없네.”

돈이 없는 자들은 아니 꼬아도 쉽사리 화를 내지 못하고 다시 매달렸지만 황오(黃五)는 오늘이 급여를 받은 날이라 그럴 걱정이 없었다. 그는 소매 속의 돈주머니를 은근히 쓰다듬었다. 두둑한 느낌에 절로 마음이 안정되었다.

“아저씨. 주세요.”

어느새 소연이 다가와 손을 내밀자 황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돈 주머니를 꺼내들었다. 그 안에서 정확히 열 냥을 꺼내서 소연에게 돈을 건네준 황오는 소매 속으로 돈주머니를 집어넣다가 그만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것을 급히 주우려고 허리를 숙이는데 그보다 한 박자 빠르게 움직이는 손이 있었다. 고사리만큼 작고 귀여운 손이었다.

“히히! 이거 나 줄려고?”

“예?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동천은 울상을 짓고 있는 황오의 옆구리를 툭툭! 쳐대며 살갑게 웃었다.

“그래, 그래. 내가 네 맘 다 알아. 니가 이것을 나에게 주면 공평과 평등에 어긋나기 때문에 그러는 거지? 그렇지?”

소전주가 의외로 돌파구를 만들어주자 황오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도 그 돈을 뭐냐.. 계에.. 면서? 그것의 장례를 위해 쏟아 붓고 싶지만 그 공평과 평등이 마음에 걸려서….”

동천은 십분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니 마음은 알겠지만 이렇게 좋은 일에 쓰는 데에는 공평과 평등을 무시해도 되는 거야. 알겠지?”

좋은 일로 돈을 써야지 그렇다고 할 것이 아닌가? 뭐라고 항변을 해보려던 황오는 자신의 앞에서. 그러니까 동천의 뒤에서 조용히 수긍을 하라는 친구들의 다급한 수화(手話)를 보고 어쩔 수없이 눈물을 머금어야 했다.

“그럼요. 잘 알겠습니다요. 부디, 저 쥐가 극락에 갈 수 있게 지전(紙錢)을 많이 사다가 뿌려 주십시오.”

동천은 돈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알겠다고 답했다. 소연이 모든 사람들에게서 돈을 다 받아내자 동천은 낄낄거리며,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동전들을 흥얼거리며 다 세어본 동천은 갑자기 자신의 재능이 두려운 나머지 잠깐 동안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천은 옆에 있는 소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말야. 아무래도 상인의 기질이 있는 것 같애..”

소연은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악덕상인…’

그러나 감히 소연의 입에서는 그런 망언(妄言)이 튀어나오지 못했다. 그저 별말 없이 수긍을 하는 게 다였다.

“그래요…”

동천은 흥분해 있었는지 소연의 어감을 느낄 새가 없었다. 두어 번을 더 세어 본 동천은 묵직해진 동전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자신의 서랍 속에 넣었다. 기분 좋게 고개를 돌리던 동천은 소연을 보고 갑자기 다급한 신음을 흘렸다.

“흐윽? 너, 아직도 있었냐?”

“예. 왜요?”

영문을 모르는 소연은 그저 고개를 끄덕여 줄 뿐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소연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동천은 서랍 속에 넣어 두었던 동전 뭉치를 꺼내들더니 소연을 째려보며 말했다.

“야. 나가있어.”

처음에는 몰랐으나 조금 머리를 돌려보자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어이가 없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가 막혀진 소연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동천에게 말했다.

“너무하세요. 지금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

“응.”

자신이 도둑 년으로 취급되자 서러움을 느낀 소연은 울어대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흑흑흑…”

소연이 우는 것에는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다. 동천은 한 손으로 이마를 흠쳤다.

“휴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이젠 아무도 없겠지?”

주위를 둘러보자 있는 거라고는 화정이 밖에 없었다. 화정이는 이곳에 있으나 없으나 아무 상관이 없는 존재이기에 동천은 그냥 넘어갔다. 방문 밖으로 나가서 재차 인기척을 확인해 본 동천은 음충맞게 웃음을 흘리며 돈주머니를 아까 그 서랍에다 도로 갖다 넣었다.

“흐흐흐… 이게 바로 허허실실(虛虛實實)! 그 누가 한 번 노출된 곳에 또다시 이 돈을 넣으리라 생각을 하겠는가? 킬킬킬! 아아.. 너무 똑똑해도 탈이야…”

그곳에 돈이 한 번 들어갔다가 나온 것은 소연만이 알고 있었으므로 소연이 그것을 훔쳐갈 생각만 안 한다면 동천이 세운 모처럼의 계략은 물거품이 되는 상황이었다. 즉, 동천은 애초부터 돈을 숨길 때 소연의 생각만 하고 있었으므로 이런 실수를 하게 된 것이었다. 글세… 과연 쉽게 모은 돈이 무사할는지…..


암흑마교의 인사 이동에서 한번 크게 튀어보려다 한순간의 실수로 좌천(左遷)을 당한 철마도(鐵魔刀) 부성광(附星光)은 안휘성 한 자락을 담당하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만 했다.

“개자식들..”

이는 그가 좌천당한 이후로 심심할 때마다 중얼거려서 이제는 아예 버릇으로 굳어져버린 말투였다. 오늘도 따분한 하루의 일과가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상했다. 그는 밖에다 대고 버럭! 소리쳤다.

“야! 계집년들 좀 불러와!”

이곳에서는 그가 우두머리라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라면 작은 위안이었다. 그러니 어찌 밑에 것들이 그의 명령에 불복할 수 있겠는가? 잠시 후 기녀들이 쫄랑쫄랑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를 한 사내가 무식하게 튀어나왔다.

“당주님!”

“꺄-악!”

기녀들이 좌우로 쓰러졌다. 부성광은 예의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난입 상대의 행동에 진한 살기를 머금었다. 그러나 곧이어 그 상대를 알아보고는 그 살기를 흩날렸다. 자세히 보니 자신이 총애하는 수하였기 때문이었다.

“야. 뭔데 이리도 소란이야?”

부성광의 수하는 다급하게 눈동자를 굴리며 기녀들을 내쫓았다.

“이것들아! 빨리 나가! 나가라고!”

기녀들은 황당한 대우에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움직였다.

“아이 참! 알겠어요. 너무 그러지 마세요.”

이 방안에 그와 부성광. 이렇게 둘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는 두세 차례 재차 확인을 해본 후 품속에서 꼼꼼히도 말아놓은 물건을 부성광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목이 타는 듯 잠깐 침을 삼킨 사내는 흥분과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아주 굉장한 물건입니다. 그게 만약에 사실이라면 당주님께서 암흑마교 본타로 들어가시는 것은 기정 사실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물건입니다. 어서 펴보시지요.”

부성광은 정신이 번쩍 듦을 느꼈다. 이 물건이 어떠한 것이기에 자신의 수하가 그런 엄청난 말까지 늘어놓는 것일까… 궁금해진 부성광은 얼른 보자기 안의 물건을 확인해보았다. 그 안에서는 낡디낡은 종이 조각 하나가 들어 있었다. 부성광은 얼굴을 구겼다.

“이게 뭐야? 고작 이런 것….. 헉?”

부성광은 순간 자신의 모든 기관이 멈춰 버렸다는 착각을 하였다. 숨이 막히고 심장이 쿵쾅! 거리자 그제서야 부성광의 의식이 제대로 돌아왔다. 그는 떨리는 자신의 손길을 애써 진정시키며 앞에서 있는 수하에게 물었다.

“이 일은….”

그가 떨려서 제대로 말을 못 잇자 눈치가 빠른 그의 수하는 얼른 대꾸해주었다.

“옙! 이것을 가지고 있던 상대는 제가 깨끗이 처리했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는 것은 저와 당주님 뿐입니다. 당주님! 기회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괜히 욕심을 부리셨다가는 예전의 동남당주 만추(晩秋)의 꼴이 될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아예 이것을 윗분들께 넘겨주셔서 한몫 단단히 잡으시지요. 아마도 엄청난 부와 그에 따른 무공 기서가 당주님께 돌아올 것입니다.”

이것을 빼돌리려는 생각을 잠시 동안 해보았던 부성광은 수하의 따끔한 충고에 귀를 기울였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 치밀하다던 동남당주조차 허무하게 일생을 마감해야 했다. 그리고 그와 관련이 되었던 주위의 인물들도 같이 처형되었었다. 부성광은 자신의 헛된 욕심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재빨리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엽소(葉消)! 내 당장 본타로 가겠다!”

엽소는 주군의 결정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려운 결정을 하셨습니다.”

대충 챙길 것을 챙긴 후에 밖으로 서둘러 나가던 부성광은 문득 생각나는 게 있는지 자신을 따라오는 엽소를 돌아보았다.

“생각해보니. 이곳의 중추적인 일을 맡을 수 있는 것은 너 외에는 없는 것 같다. 너는 이곳에 남아서 나머지 일들을 처리하기 바란다. 내 일이 잘 되면 너의 공로를 잊지 않으마.”

다른 사람 같았으면 혼자 공로를 독차지하리라 생각을 했겠지만 이 둘의 관계는 어렸을 적의 죽마고우였기 때문에 엽소는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부성광이 좌천을 당했을 때 자의로 따라온 것이 그였고 또 그가 죽을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몸을 던져 그를 구했던 것이 부성광이었기 때문이었다. 엽소는 진심으로 부성광이 잘 되기를 빌었다. 그는 힘차게 다녀오라는 인사를 올렸다.

“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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