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145화
“우걱, 우걱! 내가 그래서 말이야! 물 속에서 이새끼야! 니가 내 사형이면 다야? 죽을래? 이러면서 내가 그 귀신 새끼의 아가리를 후려쳤거든? 그러니까 그 새끼가 어떻게 됐는 줄 알아?”
어떻게 되고 지랄이고 다 좋은데, 자꾸만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밥풀과 씹다 만 찌꺼기 때문에 소연은 본의 아니게 곤욕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한 손으로 밥그릇을 가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조그마한 채소 무침을 가리면서 열심히 듣는 척을 해야만 했다. 눈이 있는 동천이 그것을 못 볼 리가 없었다.
“야. 너 뭐 하는 짓이야..”
짐짓 싸늘해진 주인님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소연은 괜한 짓을 해서 또 혼난다고 내심 후회했다. 어차피 온전한 반찬을 못 먹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데 쓸데없는 행동을 한 것이었다.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온 찌꺼기들을 더럽다고 가리는 소연의 행동은(당연한 행동이지만) 주인인 동천의 입장에서는 심히 불쾌할 것이 뻔했다. 소연이 대뜸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해하자 확실하다고 생각한 동천은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지 혼자만 처먹겠다고 그걸 가려?”
“예?”
순간 사고가 마비된 소연에게 동천이 다시 말했다.
“이씨..! 빨리 손 안 치워?”
소연은 얼른 손을 치웠다. 동천은 눈을 부라리며 소연이 가리던 것을 집어먹었다.
“뭐야? 맛도 없잖아? 쳇! 너 다 먹어라.”
소연은 이 일이 무사히 넘어가자 내심 가슴을 쓸어 내렸다. 동천이 밥을 다 먹고 시녀들이 상을 내갈 때 한 인간이 굽실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헤헤. 맛있게 드셨는지요.”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던 동천은 쑤시다 말고, 그것을 입에 물었다.
“넌, 뭐냐?”
좀 얍삽하게 생긴 사내는 당황함이 없이 대답해주었다.
“왜, 한 열흘 전에 계면서라는 것을 주셨지 않았습니까요. 그때 약방에 있던 의원이 접니다.”
동천은 자신의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아아! 그게 너였어? 어째 그때보다 더 삭아 보여서 몰랐다. 그래.. 그거 잘 말렸어?”
의원은 과하다 할 정도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예. 예. 그럼요.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잘못 말렸겠습니까.”
이 의원이 이렇게 찾아온 것은 대충 들어서 짐작했겠지만 계면서 때문이었다. 그때 계면서를 자신의 방으로 들고 온 동천은 항광의 용독경이 생각나서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었다. 청뇨로명단(淸尿露命丹)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것은 계면서의 간과 심장이었는데 둘 다 말려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좀 문제가 있었다. 심장은 그렇다 치고 계면서의 간은 청뇨로명단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생성 물질을 해독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필수 성분인 간을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계면서의 간은 네 번의 정제(精製) 과정이 필요했다. 그것은 다분히 까다롭고 귀찮은 문제였기 때문에 당연히 동천이 그것을 도맡아 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동천이 생각해 낸 게 다른 놈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에야 끝을 맺게 된 것이었다.
“믿어도 돼?”
“예. 예. 물론입니다.”
“정말?”
“예. 예. 물론입니다.”
“근데 그거 어딨냐?”
의원은 소매 속에서 하얀 봉지를 꺼내들었다. 그 봉지를 받은 동천이 펴보자 안에서 또다시 두 개의 봉지가 나왔다. 하나는 파란색이었고, 다른 하나는 붉은색이었다. 동천이 그것을 보고 의아해할 때 눈치가 있는 의원은 재빨리 대답해주었다.
“다 아시겠지만 붉은 봉지는 심장을 말려 놓은 가루이고…”
나올 말이 다 나오자 동천이 짜증을 내며 나섰다.
“나도 알아 임마! 푸른 봉지는 간을 말려 놓은 거잖아! 누굴 바보로 알아?”
의원은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섰다가 괜히 손해만 보았다.
“그, 그렇습니다. 제가 미천하여 그만 주제넘게 나섰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그 의원이 불쌍해 보였는지 소연이 동천에게 다가와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요. 저 의원 아저씨. 한 번만 봐주세요.”
홱! 하고 고개를 돌려 소연을 한껏 째려보던 동천은 무슨 이유에선지 돌연 환하게 웃었다.
“히히. 니가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내가 봐주지 않을 수야 없지. 야. 넌 소연이 때문에 살은 줄 알아.”
“감사합니다.”
의원은 소연을 향해 눈짓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한편, 소연은 주인님의 예상 밖의 행동에 놀라하고 있었다.
‘와.. 주인님이 이런 면도 있으셨구나…’
소연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동천은 어깨를 으쓱! 거리며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인간은 말야. 한자리에 머무르는 족속이 아니야. 나를 예전의 나로 보아주지 않았으면 한다. 히히!”
소연은 주인님의 이야기에서 마지막에 ‘히히!’ 만 빼면 딱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짐짓 달라진 주인님을 본 김에 다시 한번 용감하게 나서보기로 했다.
“저어… 그러면, 그 히히. 하는 것도 바꿔주실 수는 없어요?”
자신의 언사(言辭) 문제가 거론되자 동천의 눈썹이 역 팔자로 크게 휘어졌다. 그러나 그 눈썹은 얼마 안 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흐음.. 그래? 니가 그렇다면 야… 좋아. 고쳐보기로 할게.”
소연은 너무나도 감격했다.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다니… 자신의 감정을 주체 못한 소연은 약간의 눈물까지 내비쳤다. 동천은 소연이 감격해 한다는 것을 알았다. 우쭐해진 동천은 기분 좋게 웃었다.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마. 그럼, 내가 부담을 느끼잖아. 킬킬킬…”
“…….”
소연은 괜히 눈물을 흘렸다고 생각했다.
“뭐야? 불만 있어?”
소연은 황급히 두 손을 저었다.
“아니요. 아니에요. 불만이라뇨. 전 그런 거 없어요. 얘, 화정아. 나가자.”
동천은 소연이 화정이를 데리고 나가자 재빨리 몸을 움직여 서가 맨 아래에서 용독경을 꺼내들었다. 그것을 들고 탁자 위로 가져온 동천은 단환 편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에 동천의 손가락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여기 있다. 히히! 지가 그러면 그렇지. 어디 도망가 있을라고. 어디 보자…. 우선 필요 품목 중 두 개는 모였고, 또 무엇을 모아야 하는 거지?”
아무래도 동천은 그 단환을 만들어 보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긴.. 단환 하나에 무려, 십여 년의 공력이 늘어나니 동천의 입장에서는 더러워도 한 번 시도해 볼 만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도연에게 묘한 경쟁심을 가지고 있던 동천으로서는 더욱 그러했다.
“에.. 백년근 산삼 3뿌리? 흐음.. 첫째로 모아야 할게 그거란 말이지? 좋았어. 까짓 거. 구하지 뭐.”
동천은 그게 얼마나 귀한 것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때 신성 종가진이 선물로 준 것처럼 말만 하면 생기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었다. 생각을 마친 동천은 용독경을 다시 제자리에다 꽂아 넣고 밖으로 나갔다.
“소연아!”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화정이하고 인형 놀이를 하고 있던 소연이는 다급히 인형들을 치우고 동천에게 달려갔다.
“부르셨어요?”
동천은 소연이 나오자 대뜸 물었다.
“약제실(藥劑室)이 어디냐?”
그녀라고 이곳 지리를 다 아는 것은 아니었다.
“약제실이요? 글쎄요..”
“몰라?”
“예에… 잘 모르겠는데요.”
죄송스러운 얼굴로 서 있는 소연에게 동천은 더 이상 바라지 않았다. 대신 혼자 가기 싫었는지 이 일에 소연을 끌어들였다.
“알았어. 앞장서.”
소연은 앞장서라는 주인님의 명령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저.. 모른다니까요.”
동천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그걸 모른대? 이 기회에 너도 그 길을 알아야 할 거 아냐. 그럼, 평생 모르고 있을려고 그랬어?”
막혔던 부분이 풀리자 소연은 밝게 웃었다.
“아아…! 예. 알겠어요.”
둘은 나란히 보조를 맞추며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하녀 하나가 물동이를 이고 자신 쪽으로 걸어오자 동천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너 혹시, 약제실이 어디 있는지 알아?”
최대한으로 눈을 내려 깔고 걸어가던 하녀는 어설프게 고개를 들며 소전주의 질문에 답했다.
“그.. 글쎄요. 호호.”
동천은 그녀를 잠시 쏘아보다가 말을 했다.
“어쩔 수 없지 뭐. 일 봐.”
“예. 그럼..”
동천은 자신의 옆으로 조심스레 비켜가는 하녀의 발을 걸었다.
“꺄아-악!”
-와장창창!
동천은 지가 다리를 걸어놓고 안 됐다는 듯 혀를 나직이 찼다.
“에이그.. 쯧쯧. 잘 좀 걸어가지. 히히! 소연아.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