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148화
난데없이 백년근 산삼이 두 개나 더 불어나자 창고지기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안절부절을 못하며 동천의 눈치를 살폈다.
“저기.. 백년근은 아시다시피 쉬이 구할 수 있는 약재가 아닙니다. 괜히 심마니가 절벽 한가운데서 “심봤다!” 하고 소리를 지르다가 떨어져 죽는 게 아닙니다. 그게 그토록 찾기 어려우며 꼭꼭 숨어있는 것인지라…”
산삼 구하기가 그렇게 어렵다고까지 말해주었지만 동천은 쉬이 믿으려 하질 않았다.
“정말이야? 너 뻥치는 거 아냐?”
“아이구! 제가 어찌 소전주님 앞에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정말입니다요. 믿어주십시오.”
소연도 옆에서 창고지기를 거들어주었다.
“그래요. 주인님. 보아하니 거짓말 같지는 않아요.”
동천은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퉁명스레 물었다.
“얼마나 걸리는데?”
“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달입니다!”
“너.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창고지기는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답했다.
“그럼요! 정말입니다.”
“좋아. 그럼. 만약에 내가 보름 안에 백년근 산삼을 구하면 그땐 어떻게 할 거야.”
창고지기는 소전주의 심중을 몰랐기 때문에 동천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어떻게 구하시려고…”
동천은 손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야, 물론. 내가 산에 올라가서 캐오는 거지. 또 다른 게 있겠냐?”
‘허? 저거 완전히 미친애 아냐?’
창고지기는 내심 실소를 터트렸다. 애새끼의 말이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였다. 어린애가 보름만에. 그것도 직접 찾아서 캔다는 소릴 듣고 웃지 않을 사람이 그 어디에 있으랴. 그렇게 찾아서 나올 거면 산삼이 할 일없이 귀할 리가 없었다. 보름만에 산삼을 캐오면 어쩔 거냐는 물음에 창고지기는 자신이 있었다.
“좋습니다! 소전주님께서 그것을 캐오시면 제가 이 자리를 물러나겠습니다!”
동천이 게슴츠레한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호오? 그렇게 자신있어? 정말 그래도 괜찮겠어?”
창고지기는 정말로 자신 있는 듯했다.
“물론입니다!”
동천은 불쌍한 창고지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었다.
“잘 생각해봐. 후회 없어?”
“없습니다!”
“좋아. 좋아. 히히! 소연아. 가자.”
“예. 주인님. 아저씨. 안녕히 계세요.”
소연은 창고지기에게 인사를 마치고 얼른 동천을 따라 나섰다. 창고지기도 소연을 따라나와 동천에게 잘 가라고 인사를 올렸다. 소연은 먼저 나간 동천을 얼른 따라붙었다.
“주인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물어봐도 돼요?”
동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봐. 누가 말려?”
말리는 사람은 없지만 상대가 동천이니 소연으로서는 조심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어쨌든 소연은 방금 전의 대화를 들으며 궁금했던 사항을 여쭈어보았다.
“제가 알기로도 산삼은… 더군다나 백년근 이상 된 산삼은 찾기가 무지하게 어렵다고 들었거든요?”
“근데?”
“예. 그런데 그걸 어떻게 보름 안에 찾으시겠다고 호언장담을 하셨어요?”
동천은 짐짓, 소연을 안됐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걸로는 자신의 표현 방법이 부족했다고 느꼈는지 어깨까지 으쓱! 거렸다.
“쯧쯧. 그게 바로 머리 나쁜 너와 지식의 샘물인 나의 차이야. 넌 내가 아무런 생각 없이 그런 언어를 구사했다고 생각해?”
“예…. 에 니요.”
소연의 대답에서 발음상의 문제점을 파악한 동천은 버럭 화를 냈다.
“야! 똑바로 말해! ‘예… 에 니요.’ 가 뭐야? 예! 야. 아니요! 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소연은 급히 대답했다.
“아니요. 아니요예요. 어찌 주인님이 생각 없이 그런 말씀을 하셨겠어요. 호호. 다른 깊으신 생각이 있으셨죠?”
깊으신 생각이란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소연의 볼따구만 쥐어 흔들고 말았다. 동천은 아파서 자신의 볼을 쓰다듬는 소연에게 보라는 듯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보라. 이 얼마나 아름답고, 상쾌하고, 웅장하고, 깊이 있고, 장엄함이 느껴지는 하늘인가. 아아. 너와 나는 지금 이 하늘 아래에서 그 고귀한 하늘의 기품을 엿보고 있는 것일지니… 이 한(恨) 많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정도의 행운조차 누리지 못한다면 어찌하여 살아갈 낙이 생길 수 있겠는가. 오오. 나의 자랑스러운 하늘이시여. 그대는 어이하여 저를 이곳에 머물게 하셨나이까. 부디, 저를 당신께서 계시는 그곳으로 인도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하늘이시여!”
소연은 동천이 주절거림을 이렇게 해석했다.
“죽고 싶어요?”
따다다닥!
“으앙..!”
연속타로 꿀밤을 무려, 네 대나 먹인 동천은 엄청 흥분해서 울고 있는 소연에게 삿대질을 해댔다.
“너, 미쳤어? 내가 할 일없이 죽게? 어디서 그따위 말을 배웠어? 엉?”
“흑흑. 잘못했어요. 생각 없이 주인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제 귀에는 그렇게 들리기에… 흑.”
다시 한번 소연을 다그치려던 동천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화를 가라앉혔다.
‘음. 재료(?)가 상하면 안 되니까, 내가 참는다.’
“야. 됐어. 모자란 니가 뭘 알겠냐. 가자.”
“네…”
소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동천을 따라갔다.
“넌 말야. 다 좋은데 너무 생각이 없어. 나를 봐. 얼마나 생각이 깊고, 이해력이 넓은지. 좀 배워라. 배워!”
배울 게 있어야 배우지… 소연은 자신도 모르게 대꾸를 하려다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목격한 동천이 다소 의심하는 눈초리를 보내왔지만 소연이 시치미를 떼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럴게요.”
“그래. 이 문제는 이걸로 마무리 짓고, 요즘 화정이는 얼마큼 진도가 나갔냐? 설마, 아직도 하늘 천, 땅 지. 이따위 글씨를 익히고 있는 건 아니겠지?”
자랑할 만한 물음이 들려오자 소연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럼요. 무려, 칠십여 자를 외웠어요. 뒤늦게 배운 글씨들이 아직은 엉망이긴 하지만 용독경을 보니, 이 정도 기간에 그런 성취는 굉장히 빠르대요.”
동천은 소연에게만 용독경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게 허락해주었다. 화정이를 가리키는 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몫이었기에 강시에 관한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하려면 용독경이 필수였다. 화정이를 가르친 지 근 두 달에 가까워지는 이 시점에서 칠십여 자는 동천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고작?”
소연은 억울한 듯 얼굴을 붉혔다.
“고작이라뇨! 보름 전만 해도 삼십여 자에서 헤매고 있었는데, 지금은 무려 사십여 자를 익힌 거라구요! 너무 하세요!”
동천에게 대드는 것을 보니 정말로 억울하긴 억울한 모양이었다. 동천은 귀가 따가운지 멀찌감치 물러섰다.
“알았어. 알았어. 너 잘났으니까 이제 좀 그만해라.”
“그래도 제 노력을 이렇게 쉽게 생각하시는 건 정말로 못 참겠어요.”
안 그래도 방금 전 운 영향이 남아 있었는지 소연의 눈가에는 작은 물방울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저 계집애는 오늘 울다 판 나려나? 왜 저래?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잘못했기에 저러는 거야? 내가 틀린 말을 했어? 그런 거야?’
속으로는 어이없어하고 있었지만 동천은 소연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아 주었다.
“알았어.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이만 가자. 나, 무지 바쁜 분이야.”
소연은 자신의 우는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지 고개를 숙였다.
“흑흑흑… 다시는 그러지 마세요.”
동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소연의 머리에서 향긋한 풀잎 향이 흘러나왔다. 동천은 자신도 모르게 그 향기를 깊숙이 들이마셨다.
“후아~! 야, 너 오늘 무슨 향료(香料)로 머리를 감았냐? 냄새 죽이는데?”
여자라서 그런지 소연은 울음을 그치며 약간 웃었다.
“목련화를 정제한 가루예요.”
동천은 아예, 소연의 머리에 코를 박고 향기를 맡았다.
“흠흠. 이게 목련화 냄새야?”
“네에…. 앗?”
소연은 갑자기 동천을 밀어젖혔다.
“으갸갹! 뭐, 뭐야?”
그녀는 몸을 한껏 움츠리며 동천을 경계했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난 소연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더듬거렸다.
“저, 저기.. 이상한 생각은 안 하셨죠? 그렇죠?”
화를 내려던 동천은 단박에 소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가 남성 기피증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는데 지금에야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갑자기 장난기가 돌았다.
“히히! 했는데? 너, 오늘따라 예뻐 보인다?”
주인님이 음흉맞은 얼굴로 자신에게 다가오자 새파랗게 질려버린 소연은 떨리는 다리로 한없이 물러서기에 여념이 없었다.
“저. 저는… 저는….”
“저는 뭐? 히히! 준비가 다 돼있다구?”
자신이 말하고도 좀 약했다고 느꼈는지 동천은 평소 강표사 아저씨가 기녀들과 어울리며 자주 쓰던 말을 생각해냈다.
“으흥.. 소연아. 나 그게 서려고 해. 어떻하지? 으응?”
눈을 똥그랗게 뜨며 벌벌 떨고 있던 소연은 느닷없이 표정을 바꾸어 웃음을 흘렸다.
“풋-! 호호!”
동천은 한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얼레? 저게 왜 웃는 거지? 지금 상황이 웃기는 상황인가? 혹시, 저게 극도로 긴장해서 미쳤나?’
아무리 생각해도 소연이 미치지 않고서야 이렇게 갑자기 웃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자신이 잘못 말한 것 같아 기분이 나빠진 동천은 약간 인상을 쓰며 물었다.
“뭐야? 왜 웃어?”
“아, 아니에요… 푸훗! 호호호!”
배꼽을 잡아가며 소연이 웃은 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동천이 자신의 거기가 섰다고 했을 때 갑자기 예전에 보았던 주인님의 작은 고추가 떠올랐던 것이었다. 자신의 새끼손가락보다 약간 큰 동천의 고추가 섰다고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 생각해보라. 뻔데기만 한 고추가 섰을 때의 그 상황을….
“호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