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151화
“주군.”
동천은 곤히 자고 있는데 누군가가 자신을 흔들어대자 짜증을 냈다.
“에이 씨. 언놈이 자는데 깨워? 누구야?”
졸린 눈을 비비는 동천의 귀에 도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접니다.”
“으음. 도연이냐. 근데?”
“도착했습니다.”
한껏 감겨있던 동천의 눈꺼풀이 번쩍 뜨여졌다.
“정말이야? 왔어?”
“직접 나가보시지요.”
니가 나가서 확인해 보라는 소리였다. 그러나 동천은 별생각 없이 들뜬 마음으로 마차 문을 박찼다. 나가보니 주위는 온통 산이었다. 세 명의 약초꾼들은 일렬로 시립해 있었다.
“히히! 여기가 영수산이야?”
동천이 혼자 중얼거린 거였지만 단고대는 얼른 나서서 말해주었다.
“그렇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맹수가 들끓어 위험하오니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동천은 걱정 말라는 듯 도연을 불러 제꼈다.
“야! 그거 가져와!”
마차 안에 있던 도연은 동천이 부르자 어떤 물건을 들고 나왔다. 동천과 딱 알맞는 크기의 작은 도(刀)였다. 그것을 낚아 챈 동천은 히죽 웃었다. 동천은 그것을 휘두르며 약초꾼들의 의사를 물었다.
“어때? 이 정도면 어떤 맹수라도 꼼짝없겠지? 그치?”
꼼짝 못하긴 개뿔… 이런 곳에서 주절거리는 것과는 달리 실제로 맹수와 맞닥뜨리면 장난이 아니게 된다. 그 위압감은 설명하기 힘들 정도인 것이다. 더군다나 이곳 영수산에서 늑대는 장난에 불과했다. 여간해서는 상대하기 어려운 늑대조차 영수산에서는 꼬리를 말며 나돌아다닐 정도인 것이다. 단고대는 내심 불안했지만 어설프게 웃으며 아부를 했다.
“아이구. 이제야 마음이 놓이네요. 하하하.”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따로 가져온 장검을 무의식적으로 쓸어 내렸다. 신이 난 동천은 다시 한번 도를 휘두르며 폼을 잡았다.
“그지? 안심이 되지?”
“예예. 편안하게 산삼을 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천이 자신 있게 물리쳐 준다던 맹수와는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산의 초입에서 자신들 쪽을 노려보는 개새끼 비스므리한 동물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동천이 물었다.
“어? 이곳에 개도 가져다 놨냐?”
도연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개가 아니라 늑대입니다.”
“늑대? 내 눈에는 개새끼 같이 보이는데?”
못 믿겠다는 주군의 말에 도연은 부연설명을 해 주었다.
“원래 늑대는 개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그래? 후후. 저게 개새끼와 비슷하건 말건. 어쨌든 내가 솜씨를 보일 테니 잘 지켜보고 있어.”
동천이 자신 있게 발을 내딛었지만 도연이 얼른 나서서 제지했다.
“위험합니다. 늑대는 순발력이 좋아서 자칫 잘못했다간 허무하게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걱정이 된 도연이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동천은 그를 밀어 제쳤다.
“얌마. 누가 그걸 모를 줄 알어? 히히히. 맘 푸욱~! 놓고 잘 보기나 해. 짜샤.”
사실 동천이 이렇게 자신만만해 하는 것에는 당연히 다 이유가 있었다.
‘큭큭큭. 저 늑대가 지금 숨을 헐떡이고 있단 말야? 히히. 그러니까 다 죽어가는 걸 한칼에 죽여 논 뒤, 그 다음부터는 뒤에 숨어만 있어야지. 랄랄라~! 하늘님. 제가 늑대 한 놈 보내 줄 테니까 맛있게 드세요. 으히히히!’
그때 다시 도연이 동천을 막았다.
“그래도 위험합니다. 늑대는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동물입니다.”
“이씨! 니가 알긴 뭘 안다고 그래? 비켜! 내가 가서….가자.”
동천은 도연의 어깨 너머로 서서히 늘어나는 늑대들을 보고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어느새 자기들의 방어 무기를 꺼내든 약초꾼들은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이쪽을 노려보는 늑대들을 긴장의 눈초리로 살피었다. 맹수의 습성을 익히 알고 있던 단고대는 늑대들을 계속 주시하며 동천에게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소전주님. 절대로 도망치시면 안 됩니다. 알겠… 응? 이보게. 소전주님이 어디에 가셨지?”
옆의 사내가 절망 어린 눈으로 대답해주었다.
“벌써 도망치셨네…”
“뭐, 뭐야?”
“으르르릉…!”
경공을 익히고 있던 동천은 어설프게나마 자리를 피했다. 뒤를 돌아보니 도연이가 기를 쓰며 쫓아오고 있었다. 한 이십여 장을 도망친 동천은 안심을 하곤 멈추었다. 도연이 다가오길 기다린 동천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으스댔다.
“봐. 내가 안심해도 된다고 했지? 히히.”
“잘 하셨습니다.”
어떤 뜻으로 잘 했다는 건지 잘 알 수 없었지만 동천은 깊게 생각할 것 없이 좋은 쪽으로만 머리를 굴렸다.
“으히히! 내가 잘한 건 당연한 거야. 으응? 저 녀석들이 지금에야 도망쳐 오네? 병신들. 오려면 나처럼 일찍이나 올 것이지.”
동천은 허겁지겁 달려오는 단고대 일행을 보고 이죽거렸다. 병신들이라며 약초꾼들을 비웃던 동천은 기묘한 느낌이 전신을 훑고 지나가자 고개를 돌렸다.
“응? 뭐야?”
동천이 고개를 돌린 곳에는 우거진 숲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참을 노려보자 숲의 한 자락이 미약하게 흔들거렸다. 내심 긴장을 한 동천은 사정거리를 벌여 놓았다. 도연은 동천의 옆에서 호위하듯 칼을 쥐고 있었다.
“조심하십시오.”
“너나 조심해 짜샤.”
푸석거리는 소리와 함께 숲의 일렁임이 점점 가까워 졌다. 곧이어 검은 물체가 튀어나왔다.
“엥? 곰 새끼잖아?”
보통 동천이 개를 보며 개새끼라고 하듯 곰을 보고 곰 새끼라 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작고 귀엽게 생긴 곰의 새끼였다. 눈앞에서 직접 곰 새끼를 본 적이 없었던 동천은 신기한 눈으로 작은 곰을 쿡쿡 찔러보았다. 곰은 간지러운지 동천의 손길을 피하며 뒹굴었다.
“히히. 재미있는데? 야. 너도 와서 봐봐. 이 녀석 꽤나 귀여워.”
도연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냐?”
“예.”
동천은 굳이 계속 권하지 않았다. 동천이 곰을 가지고 놀고 있을 때 자신들 대신 마차의 말들을 늑대에게 먹이로 건네주고 온 단고대 일행은 숨을 헐떡이며 도착했다. 그러나 단고대는 진땀을 닦을 새가 없었다. 바로 동천이 데리고 노는 동물 때문이었다.
“소, 소전주님. 그, 그, 곰은….”
단고대가 말을 더듬었지만 동천은 그가 내달렸기 때문에 힘들어서 그런 줄 알았다.
“귀엽지? 이 녀석을 본 김에 내 집으로 데려가서 키워야겠어. 히히.”
침을 꿀떡 삼킨 단고대는 두 약초꾼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이 단고대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단고대는 불안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소전주님. 그 곰을 얼른 떼어 놓으셔야 합니다. 곰 새끼가 있다는 소리는 이 근처에 그 어미도 있다는 소리와 같습니다. 위험하오니 어서 그 곰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시지요.”
늘 그렇듯 자신보다 못한 인간들의 소리는 개소리로밖에 안 들렸다. 동천은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싫어. 얘는 내가 꼭 데려갈 거니까 잔말 말고 묶어.”
“소전주님 제발…”
단고대가 애원을 했지만 동천은 싸대기 한방으로 일을 마무리 지었다. 한방 맞고 주눅이 든 단고대는 밧줄로 곰의 발을 묶었다. 자신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감지한 곰 새끼는 구슬픈 소리로 울어댔다.
“끄어어-엉! 끄엉!”
듣기에 거북한 소리였다. 동천은 단고대에게 말했다.
“야. 시끄럽다. 얘 입 좀 막아라.”
그러자 단고대 대신 이에 답이라도 하듯 건너편 숲에서 우렁찬 괴성이 울려 퍼졌다.
“크어엉! 끄앙!!”
“뭐야? 이게 뭔 소리지?”
동천이 당황해서 묻자 단고대가 소릴 질렀다.
“도망치십시오! 어미입니다!”
그러고는 얼른 도망갔다. 약초꾼들은 알아서 다 도망을 갔지만 무서워진 동천은 오도가도 못하고 자리에 서서 불안한 눈을 굴려댔다. 그런 동천을 이끈 것은 도연이었다. 도연은 동천의 팔을 붙잡고 약초꾼들이 도망친 곳으로 달려갔다.
“주군! 정신차리십시오!”
도연의 호통이 효과를 보았는지 동천은 정신을 차렸다. 한참을 이끌려가던 동천은 도연의 손을 뿌리쳤다.
“됐어 임마. 안 쫓아오잖아. 놔.”
도연은 눈을 부릅뜨며 다시 동천의 팔을 잡았다.
“쫓아옵니다!”
“뭐?”
동천의 의문이 채 효과를 보기도 전에 크고 검은 물체가 튀어나왔다.
“크어엉!”
“으-악!”
동천은 비명을 지르며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갔다. 콰직, 소리와 함께 동천이 서있던 자리가 함몰되었다. 허겁지겁 달리느라 발이 엇갈렸던 동천은 그만 실수로 엎어지고야 말았다.
“윽!”
자신의 손에서 동천의 팔이 떨어져 나가자 도연은 얼른 뒤돌아보았다.
“주군! 괜찮습니까?”
“시끄러 임마!”
동천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며 엉성하게 내달렸다. 엎어진 동천이 다소 시간을 끌었었는지 계속 추격해 온 곰은 그 커다란 그림자로 동천의 몸 전체를 덮어버렸다.
“으헉?”
동천은 급히 상체를 돌렸다. 그러자 내려 찍어오는 날카로운 앞발이 동천의 눈에 투영되었다. 동천은 급히 내공을 끌어올리며 한 손으로 곰의 앞발을 막았다.
퍼-억!
“컥!?”
“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