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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52화


도연은 눈을 부릅뜨며 칼을 꺼내 등을 돌리고 있는 곰의 허벅지를 깊숙이 찔렀다. 살집 부위를 찔렀는지 무리 없이 파고들었다.

“크어어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른 곰은 날카로운 두 팔을 마구 휘둘러댔다. 도연은 칼을 빼낸 후 얼른 사정권에서 떨어졌다. 칼이 빠진 상처 부위에서 핏물이 사방으로 튀겨져 나갔다. 곰은 번뜩이는 눈으로 자신을 찌른 상대에게 몸을 돌렸다. 엄청난 거구의 곰과 마주 대하자 숨이 콱 막혔다. 아무리 도연이 심지가 굳어도 아직 어린애일 뿐인 것이다. 도연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그에 따라 어미 곰도 한 발을 내딛었다. 검의 손잡이는 어느새 땀에 절어 있었다. 다시 뒤로 물러서던 도연은 작은 나뭇가지를 밟았다.

따닥!

그의 고개가 무의식적으로 돌아갔다.

“크어엉!”

그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검은 곰은 엄청난 기세로 도연과의 거리를 좁혔다. 통나무 만한 곰의 팔뚝이 공기를 가르며 휘둘러졌다. 도연은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몸을 날려 바닥을 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풍압에 도연의 머리카락이 곰의 팔뚝이 지나간 공간을 뒤따라갔다. 그러나 곧이어 한계를 느끼고는 밑으로 사그러들었다. 곰은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몸을 돌렸다. 당연히 도연이 구른 쪽이었다. 이번에는 이내 덮쳐 들어왔다.

콰-앙!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가운데 도연은 다시 몸을 굴려 피한 뒤 후다닥 일어났다. 이번에는 충분히 생각을 하고 동천 쪽으로 방향을 잡고 굴렀기 때문에 동천에게 다가가는 것은 한결 쉬었다.

“주군! 괜찮습니까? 주군!”

도연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동천에게 달려갔다. 그만큼 다급했던 것이다. 동천이 누운 자리는 푹 꺼져있었다. 보이는 것은 동천의 다리뿐이었고 상체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주군!”

마침내 구덩이(?) 속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끄러. 이 씨필아….”

그제야 도연의 안색이 펴졌다.

“일어서실 수 있습니까?”

밍기적거리며 동천이 구덩이를 기어 나왔다. 한쪽 팔만 쓰며 나오는 것을 보니 다른 한쪽 팔에 이상이 있는 듯했다. 그 사이에 다가온 도연은 바로 뒤에서 느껴지는 거친 숨소리에 몸을 날려 동천을 안고 바닥을 굴렀다.

“끄엑! 내 팔! 나, 나 죽어!”

구를 때 이상이 있는 팔이 접질렸는지 동천이 고통을 호소했지만 만약 도연이 동천을 안고 구르지 않았더라면 동천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그러나 이를 알 리 없었던 동천은 오직 통증만을 호소할 따름이었다. 이 상황에서 주군의 팔에 관심을 기울였다가는 둘 다 죽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던 도연은 일어나면서 주군을 숲 속으로 밀쳐냈다. 동천은 힘없이 굴러 자빠졌다.

“으윽! 파, 팔. 내 팔…”

엄살 아닌 엄살을 부리는 동천에게 도연이 소리치며 사라졌다.

“주군. 제가 저 곰의 시선을 끌 테니 가만히 계십시오!”

가라고 해도 동천에게 갈 힘이 없었다. 몸을 새우처럼 구부리고 아픈 오른쪽 팔을 부여잡는 게 다였다. 아프고 두려운 마음에 동천은 눈물을 흘렸다.

“흑흑. 하늘님. 아파요… 살려줘요.”

정말로 아프자 쓸데없는 잡담도 생각나질 않았다. 온몸이 욱신거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곳에 올 때 맹수들이 많은 영수산에 온다고 허리띠를 끌렀다는 것이었다. 아까 곰이 그 무지막지한 손을 휘둘렀을 때 내공을 한껏 일으키지 않았다면 아마도 동천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운이 좋았던 건 동천이 쓰러졌던 지대가 딱딱하지 않고 물렁거리는 곳이었다는데 있었다. 그래서 무른 지대가 충격파를 사분지일이나 흡수해 주었다. 이런저런 복합적인 요소로 인하여 살아나게 된 동천은 무의식적으로 허리를 쓰다듬었다. 둘둘 말아진 그 무언가가 느껴졌다. 운석이 담긴 허리띠인 것이다. 운석이 담긴 허리띠는 따로 떼어놨다가 잃어버릴까 봐 둘둘 말아서 구멍에 천을 끼워 허리에 찼었는데 혹여나 해서 쓰다듬어 본 것이었다.

“개 같은 곰 새끼. 흑흑. 내가 살아가기만 해봐라. 가죽을 벗겨서 똥칠을 한 다음 고기는 토막을 내고 하나하나씩 꼬챙이로 꽂아서 북망산(北邙山) 무덤에 널리 뿌려 댈 테다. 으으. 아파.”

역시나 시간이 흐르자 동천의 입이 슬슬 살아나기 시작했다. 생각 같아서는 이대로 누워서 도연이나 기다리고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렇게 있을 때 다른 맹수가 나타나면 어떻게 하겠는가?

동천은 이를 악물고 일어나 앉았다. 그런데 앉은 폼이 어쩐지 익숙했다. 바로 운기조식의 자세인 것이다. 죽기는 싫었던지 본능적으로 자세를 잡은 모양이었다. 동천은 얼른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곧이어 시원하고 청량한 기운이 단전에서 피어나 서서히 위로 퍼져 올라갔다. 그에 따라 푸른 운무가 동천의 모공에서 퍼져 나왔다.

치이익–.

주위의 식물들이 매캐한 냄새를 뿌려대며 급격히 녹아 들어갔다. 심신의 고통이 조금씩 수그러 들어감에 따라 동천의 안색도 환해졌다. 오주천을 지날 때 즈음 이상한 느낌이 자신의 감각을 자극하자 동천은 얼른 눈을 떴다. 오랜만에 감지력이 발휘한 것이었다. 미리 겁을 먹고 눈을 뜬 동천은 이내 실소를 머금었다.

‘뭐야? 살쾡이잖아?’

노란색에 검은 줄무늬의 살쾡이는 동천의 독무가 뿌려진 자리 밖에서 작은 발을 놀리기만 할 뿐 쉽사리 들어오질 못했다. 당연한 것이었다. 본능에 강한 동물인 만큼 신기해하기는 하지만 들어오지는 않는 것이다.

운공 중에는 다른 이가 자신을 건드리면 위험하기 때문에 내심 조마조마해했던 동천은 살쾡이가 주위에서 맴돌기만 하자 안심을 하고 마저 운공을 마쳤다.

“으아. 살겄다.”

뻐지근했던 몸이 상쾌해지니 정말로 살 것 같았다. 빈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동천은 다친 팔을 슬그머니 흔들어보았다.

“윽! 제기랄. 이건 아직도 안 나았네? 혹시, 이거 부러진 거 아냐?”

거의 부러진 게 맞았지만 확신이 서지 못한 까닭에 동천은 미적거렸다. 그래도 확실히 하자는 생각에 사부가 가르쳐 준 대로 굵은 나뭇가지를 팔의 좌우로 고정시키고 옷가지를 찢어서 부목(副木)을 했다.

“끼야옹.”

고양이 소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개소리도 아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의 근원지가 어디인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동천은 힐끔 쳐다보기만 할 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부목을 마친 팔을 흔들어 보았다. 참을 만 했다.

“좋았어. 히히. 난 역시 의술에 타고났다니까?”

팔만 빼고 몸의 모든 기능이 거의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신이 난 동천은 어서 이곳을 떠야겠다고 생각했다. 신중하게 주위를 둘러보던 동천은 주위에 맹수가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후 자리를 옮겼다.

“꺄오옹.”

동천은 신경질적인 눈으로 아직도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살쾡이를 노려보았다.

“이게 죽으려고 환장했나? 어디서 주둥이를 나불거려?”

동천은 살쾡이의 울음소리에 다른 맹수들이 꼬일까 봐 살쾡이의 옆구리를 냉큼 걷어찼다. 난데없이 걷어차인 살쾡이는 떼굴떼굴 구르더니 절룩거리며 도망쳤다.

“까불고 있어.”

아까 도연이 피했던 방향과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던 동천은 문득 무언가가 허전하다고 느꼈다. 허전한 그 무언가의 정체는 금방 밝혀졌다.

“이런 제기랄. 내가 가져온 도가 사라졌잖아? 어디서 잃어버렸지?”

이런 곳에서 생명과 직결되는 무기를 잃어버린 것은 정말로 중대한 실수에 속했다. 더군다나 어린놈이 팔까지 다쳐서 빌빌거리니 이건 ‘나 잡수쇼.’ 하는 짓꺼리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한결 나아졌던 동천의 마음에는 서서히 먹구름이 끼여갔다.

“설마. 또 무슨 일이야 일어나겠어? 그럼. 위에서 하늘님이 지켜보시고 계신데… 히히. 좋게 생각하자. 이것도 다 하늘님의 뜻이고, 또 생각이 있으셔서 그러신 거겠지 뭐.”

동천이 애써 좋게 생각하며 걸어갈 때 작은 고양이만 한 동물이 부스럭대며 동천을 지나쳐갔다. 동천은 그 동물이 어떤 동물인지 알 수 있었다.

“히히. 오늘따라 살쾡이만 보이네? 랄라랄라. 이게 다 하늘님의 가호 덕분인가?”

신나하며 걸어가던 동천은 불현듯 스치는 생각에 걸음을 멈추었다. 절로 굳어진 동천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금세 솟아올랐다. 동천은 방금 살쾡이가 지나간 자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저게 살쾡이면 아까 보았던 살쾡이는 뭐지?”

그렇다. 처음에 걷어찼던 살쾡이와 방금 지나쳐간 살쾡이가 판이하게 달랐던 것이다. 다르면 다른 거였지만 문제는 지금 보았던 살쾡이가 자신이 알고 있던 살쾡이가 맞다는 것이었다.

그럼, 맹수가 득실거리는 이 산중에 자신이 잘못 보았던 살쾡이는 어떤 종자일까? 지금 생각해보니 새끼 같기도 했다.

“뭐지? 뭐지? 에이 씨발.”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한참 동안 골머리를 싸매며 머리를 굴리던 동천은 이미 흐려진 기억 저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사냥꾼 전씨의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었다.

-잘 들어. 니가 만약에 깊은 산중에 들어갔다면 피해야 할 색깔이 있어. 바로 노란색에 검은 줄무늬야. 알았어? 그 색깔이 언뜻 숲 속을 지나쳐갔다 싶으면 바로 튀어. 그게 놈들의 습성이니까. 그놈들은 우선 먹잇감의 주위를 어슬렁거리다가 바로 달려들어 대가리를 치거나 목줄기를 물어뜯어서 한 방에 즉사시키는 무자비한 놈이야.

-후아. 정말 그런 놈이 있어요? 근데 그 동물의 이름이 뭐예요?

-바로 맹수지왕(猛獸之王)이라 일컫는….

“호, 호랑이?”

마침내 아까 그 노란색에 검은 줄무늬의 종자를 알아낸 동천은 황급히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주위에는 아무런 일렁임도 없었다. 조용하기만 했다.

“칫! 괜히 겁먹었잖아?”

불안하면서도 꿀리는 게 싫었던지 동천은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뒷골이 땡기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 느낌이 무엇을 말하는지 동천은 알고 있었다.

뒤에 무언가가 있다고 해서 그게 호랑이일 리 없었다. 때문에 잠시 머뭇거리던 동천은 용기를 내어 돌아보았다. 작은 소음이 일어난 가운데 동천의 시야에 어떤 물체가 잡혔다 이내 사라져 버렸다.

“꿀꺽.”

동천은 그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곧이어 사시나무 떨어대듯 온몸을 떨어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노란색에 검은 줄무늬였어. 노란색에 검은….’

동천은 울고만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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