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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6화


황룡각의 건너편 쪽에는 하인들이 기거하는 집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 작고 초라한 집에 동천과 다른 서너명의 아이들이 사는 집이 있었다. 지금은 초 저녁인데 아직 잔치가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니들은 멀리서 라도 구경을 하기 위해서 술에 취해 자빠져 있는 동천을 제외 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동천이 누운지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자 차디찬 바닥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던 동천은 문득 잠에서 깨어 나는 것을 느꼈다.

“으음-! 물우-울~.”

아직도 취기(醉氣)가 다 가시지 않았는지 머리가 어질어질 하고 빠개질 듯이 아팠다.

“으-윽. 대가리야.. 그 거지 새끼가 준 독을 마셨더니 아주 죽을 것 같네…”

동천은 독이라는 말을하자 문득 자신이 독에 중독 되고도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어? 약방(藥房)의 고(稿)아저씨가 독은 무서운 거라서 강한 독은 먹으면 그 자리에서 그냥 간다는데.. 나는 왜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 음.. 이거 참 이상하네..?”

그렇게 한참을 혼자 쭈그리고 앉아서 생각을 하던 동천은 끝끝내 그 사실을 알아 내고야 말았다.(물론 자기 생각의 한도 내에서 말이다.) 동천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 서다가 다리에 힘이 빠져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그러나 이 기분을 깨고 싶지는 않은지 이번에는 조심스레 일어서더니 희열(喜悅)에 가득찬 소리로 말을 했다.

“그래! 맞았어! 내가 특이하게 독성(毒性)을 이기는 체질(體質)을 가지고 있었던 거였어! 히히히! 난 역시 특별한 존재인 거야!”

동천은 자기 혼자 히히덕 거리면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밖으로 나서자 시원한 공기가 가슴 속 깊이 폐부로 들어오는 것을 음미 하면서 아직도 취기가 가시질 않은 몸으로 걸어 갈려고 하자 몸이 기우뚱 거렸다. 그러나 동천은 개의치 않고, 팔자 걸음으로 약간 상체을 흔들면서 걸어 나갔다. 그의 얼굴에는 아직까지도 웃음이 걷힐 줄을 몰랐다.

“난 특별한 존재다.. 난 특별한 존재다..”

그렇게 한참을 혼자 중얼 거리며 걸어 가고 있던 동천은 자신이 지금 용연각(龍淵閣)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용연각은 윗분들만 가는 곳으로 자신같은 하인은 들어 가서는 안되는 곳이었다.

“어? 어쩌지? 용연각이네.. 여기에 있는걸 알면 나 맞아 죽을 텐데.. 으음-!…”

한참을 생각하던 동천은 기쁜 듯이 소릴쳤다.

“그래! 나는 특별한 존재니까 여기에 있어도 될거야! 하하하!”

아직 취기가 가시질 않았는지 동천은 평소에는 감히 생각치도 못했던 일들을 자기 혼자 즐기고 있었다.

“으음! 그건 그렇고, 목이 좀 컬컬 한데 어디 물마실 때가 없을까? 에.. 여긴 없고.. 저기도 없고.. 저기가 없었으니까 여기도 없을 테고.. 아까 여기에 없었으니까 저기에도 없을게 뻔하고.. 저기가 없었으니 여기도 없을것이고.. 저기가.. 에이! 지겹다. 그냥 밑에 있는 물이나 떠 먹어야 겠다.”

한참을 횡설수설 하던 동천은 바로 자신의 밑에서 나오는 지하수를 모아 놓는 작은 우물에 동동 떠있던 바가지로 한 가득 떠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끄-윽! 어- 시원하다.. 으-음, 물을 퍼마셨더니 오줌이 매렵네..”

“촤아-악!”

맛이 갈대로 간 동천은 간이 배 밖으로 튀어 나왔는지 지하수를 모아 놓은 작은 우물에 노오란 오줌을 그대로 갈겨 버렸다. 노란 오줌물이 점점 퍼져 나가며 그 색깔이 희미해져 가는 것을 보며 동천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혼자 낄낄! 거리며 즐거워 했다.

“히히히! 마신게 많아서 그런지 나오는 것도 무지 많네!”

오줌을 다 눈후 바지를 추스리던 동천은 용연각의 정문에서 일남일녀(一男一女)가 들어서고 있는 것을 보았다. 기겁을 한 동천은 우선 자세를 낮추고는 누군가 하고 지켜 보았다. 서로 다정하게 쳐다보며 들어오고 있는 남자는 금원 세가의 금장호 였고, 여자는 황룡 미미였다.

‘으-윽! 미미다! 얼른 토끼자!’

미미 공포증도 한 몫을 했지만 진정한 이유는 걸리면 죽는다는 데에서 동천은 자신이 얼른 도망갈 곳을 모색(摸索)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천에게는 불행히도 용연각은 오직 정문 밖에 없었다.

‘어떻하지..? 어떻하지..? 이 씨부랄 년은 왜 하필이면 지금 남자 새끼를 데리고 이리오고 지랄이야!’

잠시 안절부절 하던 동천은 문득 우물 뒷편에 납작 엎드리기만 하면 자신 하나쯤은 숨을수 있을것만 같은 바위가 보였다.

‘저거다! 얼른 기어 가자!’

마침 두 남녀는 동천의 반대편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천은 조심스럽게 기어가서 들키지 않고 숨을수가 있었다.

“호호호!”

“하하하!”

동천이 무사히 숨자마자 때를 맞춘 듯 두 남녀는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웃으면서 중앙에 자리한 커다란 연못을 지나 우물가로 걸어오기 시작 했다.

“아! 마침 목이 마른데 잘됐군요!”

황룡 미미가 갈증을 느낀 듯 물을 마시러 우물가로 천천히 걸어오자 금장호도 긍정의 표정을 하면서 황룡 미미의 뒤를 따라 왔을 때였다. 황룡 미미는 동천이 오줌을 눈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런 꺼리낌도 없이 물을 마셨다.

“아-! 목이 마를 때 마시는 물은 정말 맛있는 것 같아요.”

“그렇소. 불가(佛家)의 말씀 중 같은 물이라도 소가 마시면 젖(乳)이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는 말씀이 있소. 이는 어떤 생각으로 마시느냐에 따라 느끼는 강도(強度)가 다르다는 말이오.”

황룡미미는 그 말에 살풋이 웃으면서 말을 했다.

“풋-! 그럼 저는 소(牛)가 돼겠네요?”

황룡미미의 말에 금장호는 짐짓 당황한 듯 손을 휘휘! 내저으면서 넉살 좋게 말을 했다.

“하하하! 제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호호호! 알고 있어요. 제가 그냥 농담삼아 말했을 뿐이에요.”

동천은 황룡미미의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면서 계집들은 이해못할 종자(種子)라고 생각했다.

‘하하하! 호호호? 좋아 하시네! 내 오줌물을 마신 것을 알면 니네들이 그렇게 웃을수 있을 것 같냐? 그건 그렇고 금가(金家)야.. 니 말이 정답(正答)이다. 미미가 마시면 물이지만 내가 마시면 오줌물 이다.. 응? 이야기가 이상한 곳으로 빠지네? 어쨌든 이것들이 아직 나이도 어리면서 어디와서 연애질이야?’

동천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면서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싱글벙글! 웃으면서 자리를 떠날줄을 몰랐다. 드디어 참을수 있는 한계상황(限界狀況)이 넘어서자 동천은 온몸이 근질 거리는게 꼼지락 거리고 싶어서 안달이 나서 미칠것만 같았다.

‘제발가라. 제발가라. 나 다리져려 죽것다. 이것들아..’

아까는 숨을 때 엎어져만 있으면 안 보일줄 알았는데 막상 숨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렇게 엎어져 있으면 적어도 한척((一尺):30cm) 정도는 넘게 다리가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는수 없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면서 여태껏 버텨 왔었다. 그러나 두 남녀가 이 상태로는 갈 것 같은 기미도 보이질 않자 동천은 다리가 져려서 한다는 짓이 손가락으로 침을 바른 뒤 코 끝에 묻히는 동작을 반복 하는 것이 고작 이었다. 그때 금장호가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황룡 미미를 바라보며 물었다.

“소저는 이번 혼사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금장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황룡 미미는 짐짓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신색을 가다 듬고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제가 비록 지금 나이가 어리나 저도 어느 정도는 사리(私利)를 판단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 합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 가문(家門)과 가문과의 만남.. 이 두가지 중 제가 만약 일반 가문의 여자 였다면 저는 물론 사람과의 만남을 더 중요시 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무가(武家)의 여인.. 어쩔수 없이 가문과의 만남을 더 중요시 하겠지요…”

여기까지 말을 한 황룡 미미는 왠지 슬픈 표정 이었다.

“소저…”

금장호의 미안한 듯한 말에 황룡 미미는 분위기를 일소 시키려는 듯이 살풋이 웃으며 말했다.

“푸훗! 그렇다고 저는 후회하지 않아요! 아니, 제가 어떠한 길을 선택(選擇) 했다면 저는 그 길이 제 스스로가 만족할만 하다고 생각을 했기에 선택을 한거예요. 그리고.. 저와 공자님과의 혼사 문제에 대해서는 공자님만 ᄀ찮으시다면.. 저는.. 저는..”

황룡 미미가 말끝을 흐리면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을 때 하나의 팔이 살며시 미미의 어깨에 언져 졌다. 황룡 미미는 흠ᄍ했지만 잠자코 가만히 있었다. 오히려 금장호의 어깨에 머리를 조심스레 기대기 까지 했다.

“소저.. 저 노을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소?”

“호호! ᄀ시리 낮간지럽 네요..”

“하하하! 내가 말하고도 그렇군요!”

“호호호호!”

이 광경을 지켜 보고 있는 사이에 동천은 어느새 다리가 저리는 것을 느낄수가 없었다. 대신 이번에는 몸을 수도 없이 긁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으-으..! 저 씨부렁탱이들 때문에 닭살이 돋아서 미치겠네…’

동천이 자기 혼자 몸을 벅벅! 긁고 있는 사이에 정문 쪽에서 추연이 살며시 들어오고 있었다. 두 남녀는 추연이 들어오자 황급히 떨어지더니 멋적은 듯이 서로들 딴곳을 보는 척 했지만 얼굴이 쌔빨간게 그 모양이 꼭 잘못을 하다가 들킨 어린애들 같았다.

그제서야 추연은 자신이 때를 잘못 맞춰 들어온 것을 알고는 미안한 듯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면서 걸어 들어왔다.

“험! 험! 무슨 일이지?”

금장호의 어색한 말에 추연은 깜짝 놀라며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예?”

추연이 순간 말을 못하고 멍청히 있을 때 이를 보다 못한 황룡 미미가 나서서 말을 했다.

“무슨일 때문에 왔냐구!”

그제서야 추연은 정신을 가다 듬더니 조그마한 소리로 용기를 내서 말을 했다.

“아.. 예.. 다름이 아니오라 가주님 께서 두 분을 찾으시는 데요..”

추연의 말에 황룡 미미는 눈쌀을 살짝 찌푸리더니 말을 했다.

“아버님 께서? 무슨일로 찾으시는 거지?”

추연은 황룡 미미가 다그치는 듯이 물어보자 어쩔줄 몰라 하면서 기어들어 가는 듯이 말을 했다.

“모.. 모르겠는.. 데요…”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금장호는 추연이 안되 보였는지 다음에 나올 황룡 미미의 말을 가로챘다.

“흠.. 어쨌든 가 봅시다.”

금장호의 말에 황룡 미미는 더 이상 추연에게 묻는 것을 포기 하고는 그의 말을 순순히 따랐다.

“예..”

둘이 천천히 걸어가고 있을 때 추연은 그 뒤를 종종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혹여 소리라도 나서 둘을 방해 하지나 않을까 싶어 조심조심 걸어가는 것이었다. 드디어 동천이 기다리던 시간이 다가오자 다시 다리의 감각이 살아나면서 다리가 저리는 것을 느꼈다.

‘저것들이 가면서도 도움을 안주네! 굼벵이를 삶아 먹었나..’

동천의 속 사정을 무시한체 세 사람이 용연각을 다 빠져 나가자 동천은 바위 뒤에서 다시 한 번 갔나 안갔나 재차 확인을 하더니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자 숙였던 몸을 옆으로 떼굴떼굴 구르면서 소리를 질렀다.

“으악! 다리가 져려서 미치겠다! 으-으..! 건드리면 찌리리 한게 인간 미치게 만드네? 으음..! 아까 그것들이 뭐라고 했더라?”

아까의 닭살로 다리가 저리는 느낌을 모면했던 기억을 되살려 다시한번 미미와 금장호가 이야기를 나누고 행동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에서 되살리고 있던 동천은 드디어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자 온 몸을 벅벅! 긁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동천의 생각이 여지 없이 빗나가고 말았으니, 그나마 가만히만 있었으면 다리만 저리고 끝났을 것을 괜히 쓸데 없는 생각을 하다가 다리의 감각이 사라지기는 커녕 온 몸을 긁으랴(다리만 빼고).. 코 끝에 침을 바르랴.. 정신이 하나도 없자 그 것이 결국에는 반 미치는 상태로 까지 가고야 말았다.

“히히히히! 날.. 나를 죽여라! 히히히! 이히히히!!”

그렇게 한 아이의 곡성(哭聲)은 그칠줄을 모른체 시간은 무심히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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