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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63화


구장로는 감송을 빤히 노려보며 진실 여부를 확인하려 들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후 마침내 구장로의 입이 열렸다.

“한데, 그 피 냄새는 뭐였지?”

난데없는 소리에 감송과 감 부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로 마주 보던 그들 부부는 엉뚱한 소리에 감을 못 잡은 듯했다. 감 부인은 부들부들 떨며 구장로를 보다가 눈이 마주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영락없이 겁에 질린 노파의 모습이었다. 감송은 부인이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자신이 나섰다.

“나리. 피 냄새라면 저희가 방금 흘렸던…”

구장로는 입꼬리를 묘하게 비틀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것 말고. 너희들이 방에서 나왔을 때부터 풍기고 있던 피 냄새 말이야. 좀 더 자세히 말해줄까? 네놈 부인에게서 나던 피 냄새는 뭐지?”

순간 고개를 떨구고 있던 감 부인은 경직되어 가는 자신의 몸에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재수 없게도 피 냄새에 민감한 구장로에게 걸린 것이었다. 감송도 부인의 처지와 다를 바 없었으나 그는 침착하게 숨을 골랐다. 한때나마 만독문에서 한자리를 꿰어차고 있던 자답게 말이다.

“그것은 아마도 제 부인이 제가 잡아온 동물을 다듬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지…”

구장로는 아까 자신에게 대답을 했던 살수에게 눈을 돌렸다. 그러나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던 살수는 당황한 나머지 재빠르게 부엌에서 확인을 마치고 돌아와 죄라도 지은 양 부복을 했다.

“안에는 분명 사슴고기가 썰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허무하게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살수를 뒤로하고 구장로는 눈살을 찌푸렸다.

“사슴고기? 분명히 사람의 피 냄새였는데?”

구장로는 의문을 표하면서도 은근히 감송 부부의 얼굴을 살폈다. 그들은 찔끔한 표정을 지었을 뿐 그 외에 별다른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그들의 심정이 어떠할지 짐작이 가리라. 감송은 역시, 만만히 볼 영감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나, 나리. 억지십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남편의 목소리에 용기를 얻은 듯 감 부인도 나섰다.

“나리. 살려주세요. 흑흑!”

다시 한번 그들을 살펴보던 구장로는 결론을 내린 듯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렸다.

“가자.”

“옛!”

악붕의 대답을 선두로 나머지 살수들이 몸을 날렸다. 그들이 사라지고도 한참 동안 부둥켜안고 울고 있던 그들은 재차 확인 후 눈물을 멈추었다. 그들이 떠났음에도 감 부인은 여전히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남편에게 말했다.

“여, 여보. 어떻게 하지요?”

“그보다 먼저 다리부터 봅시다.”

부인의 다리를 살펴본 감송은 손가락 크기의 상처를 보고 혀를 찼다. 다행히 근맥은 다치지 않았으나 구장로의 지풍이 다리를 관통한 것이었다.

“상처가 심하오. 아무래도 백록활근액에 상처를 담가야겠소.”

감 부인은 백록활근액이란 소리에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남은 것은 없잖아요.”

감송은 음침하게 웃으며 부엌 쪽을 바라봤다.

“흐흐. 왜 없겠소?”

그제야 감 부인도 알아챈 듯 환하게 웃었다.

“아아, 그렇군요. 어서 내려가요. 다리가 아파서 죽겠어요.”

“알겠소. 조금만 참으시오.”

그들이 지하로 내려갔을 때 다행히 동천과 도연은 통 속에 들어가 있었다. 자신도 어깨를 다쳤건만 아내를 안아 들고 내려온 감송은 동천과 도연을 번갈아 노려보다 결정을 내린 듯 도연을 꺼내서 동천의 통 속에 같이 넣었다. 이미 효과가 사라진 동천의 통을 고르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감 부인을 도연이 있던 통에 내려놓은 그는 고통스러워하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부인. 참으시오. 당신도 알겠지만 백록활근액은 고통이 심한 반면 그만큼 상처 치료에는 탁월하다오.”

감 부인은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애써 웃으려했다. 지금 보면 도저히 피를 즐기는 흡혈녀 같이 보이질 않았다.

“저는 괜찮으니, 어서 나가봐요. 혹시나 그들이 다시 왔을 때 둘 다 없으면 곤란할 테니까요.”

감송은 망설이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 혼자만 있어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일 텐데…”

남편의 망설임에 그녀는 그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당신은 복화술(複話術)에 능하니, 혼자 그들을 상대하면서도 충분히 따돌릴 수 있을 거예요.”

감송은 거기까지 미처 생각을 못했다는 듯 자신의 머리를 툭 쳤다.

“오오. 그렇구려. 그럼, 내 밖으로 나갈 테니 여기서 조리를 잘하시구려.”

“알겠어요. 당신도 조심하세요. 그 자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어요.”

부인의 걱정에 감송은 희미하게 웃었다.

“알겠소. 걱정 마시오.”

마치 보통 부부들처럼 서로를 위하며 헤어지는 그들을 보고 동천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놀고있네…’

눈알을 부라리며 못마땅한 눈으로 그들을 째려보던 동천은 감송이 나가고 나서야 도연을 상기시켰다. 도연이 자신의 다리 위에 앉아있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 도연의 자세는 마치 동천의 품에 안겨있는 자세였다. 기분이 우라질 나게 나빴던 동천은 손가락으로 도연의 옆구리를 세게 찔렀다. 긴장을 하고 있던 도연은 생각도 못했던 찌르기에 움찔했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고 소리 죽여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불편해 짜샤.”

“참으십시오.”

아주 간단하게 대답해서 화가 난 동천은 계집애도 아니면서 도연의 등어리를 꼬집었다.

“욱?”

고통을 참지 못해 도연이 신음성을 발하자 고통을 참으며 이를 악물고 있던 감 부인이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자애로운(?) 미소를 뿌리며 도연에게 말했다.

“왜 그러니. 어디가 아프니?”

안면을 씰룩거린 도연은 차디차게 대꾸했다.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오.”

감 부인은 낮게 웃었다.

“호호호. 어째서지?”

도연이 입을 열려는 찰나 동천이 먼저 그 말을 가로챘다.

“이 미친년아! 알고 싶냐? 히히! 그럼 내 똥꼬나 핥아봐라! 그럼, 이 위대한 동천님께서 네 년에게 친히 그 이유를 가르쳐주마! 이히히히!”

감 부인이 다쳐있고 또 자신들의 몸이 자유로워져 간땡이가 부어버린 동천은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감 부인을 도발시켰다. 과연 동천이 지껄여서 그런지 상대는 손쉽게 그 도발에 넘어왔다.

“아아, 어린것이 벌써부터 그런 험한 말을 하다니. 아마도 여기에 갇혀있어 심성이 변한 게로구나.”

동천은 가증스럽게도 슬픈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감 부인에게 대뜸 소리쳤다.

“저년이? 어디에서 그 따위 눈으로 나를 꼬라봐! 네 애비 애미가 그따위로 가르치든? 확! 눈깔을 뽑아버릴까 보다.”

마침내 감 부인도 화가 치밀었는지 통 속에서 벌떡 일어섰다. 자신의 아버님과 어머님을 들먹이며 욕을 해대는 까닭에 치료고 뭐고, 우선 저 싸가지 없는 애새끼의 버릇을 고쳐주려는 것이었다. 그녀는 동천을 싸늘히 노려보며 한 소리 했다.

“발칙한 것!”

그녀가 무섭게 노려봤지만 동천은 전혀 쫄지 않았다. 오히려 히죽 웃었다.

“킥킥! 왜? 또 피 빨아먹으려고?”

피라는 소리에 감 부인은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화를 풀어버렸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혀로 입술을 축이고는 절름거리며 다가왔다.

“아가야. 꿀꺽. 아아, 아가야. 네 목은 다 나았니?”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한 동천은 긴장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내색을 안 했다. 동천은 미친년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면서도 도연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도연은 알겠다는 듯 갑자기 기합음을 터뜨렸다.

“합!”

감 부인은 생각도 안 했던 도연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그걸 본 동천이 한마디 안 할 리 없었다.

“이히히! 이년아, 그거 가지고 쫄았냐?”

감 부인은 쪽팔려서 얼굴을 붉히면서도 동천의 말을 부인했다.

“호호. 아이야, 그 무슨 소리더냐. 자자, 그러지 말고 어서…”

그녀는 도연의 얼굴을 밀치며 그 뒤에 있는 동천의 어깨를 짚었다. 기분 나쁜 것은 어쩔 수 없었던지 동천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상대의 떨림이 자신의 손을 타고 전해져 극히 만족의 웃음을 흘리던 감 부인은 동천의 목 부근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상대가 알아챘다고 생각한 동천은 재빨리 소리쳤다.

“도연아! 지금이다!”

감 부인이 놀라서 몸을 뒤로 빼내려 할 때 전 내공이 실려 있는 도연의 주먹이 그녀의 복부를 거세게 강타했다.

퍼-억!

그녀는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아흑!”

생각지도 못했던 고통으로 인해 그녀의 고개가 한껏 숙여지자 때를 기다리고 있던 동천은 머리를 한껏 뒤로 당겼다가 마빡으로 그녀의 안면을 냅다 들이받았다.

“죽어라 이년아!”

뻐억!

“아아-악!”

동천은 통에서 얼른 빠져나와 벌렁 나자빠진 감 부인에게 달려들어 마구 걷어찼다.

“죽어! 죽어 이 씨발년아!”

“아악! 살려줘!”

감 부인이 고통에 겨워 소리치자 동천은 멈추는 듯하더니, 더욱 거세게 후려쳐댔다.

“미친년이 지랄하고 자빠졌네! 내가 당한 게 얼마인데 고작 이 정도로 끝나? 아주 죽여버릴 테다! 죽어버려! 죽어!”

“아윽! 끄윽. 끄르르르.”

다친 다리를 집중적으로 밟아대는 통에 견디다 못한 감 부인은 마침내 거품을 물며 기절을 했다. 혹시, 거짓으로 기절했나 싶어 옆구리를 걷어차 본 동천은 정말로 기절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 멈추었다.

“히히! 속이 다 시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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