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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64화


동천이 득의의 웃음을 짓고 있을 그때, 후미에서 악붕과 살수들을 뒤따르던 구장로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악붕은 자신들을 따라오는 구장로의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장로님. 그 집이 마음에 걸리십니까?”

구장로는 고개를 숙이며 달려가다 힐끗 올려다보았다. 대답 대신 무표정한 눈으로 악붕을 바라보던 그는 갑자기 신형을 멈추었다.

“악붕. 혹시, 강호상에 사람의 피를 즐겨 먹는 마두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느냐?”

뜬금없는 물음에 악붕은 난색을 표했다.

“그, 글쎄요. 적어도 백 이상은 되지 않을런지…”

답하는 인간은 자신이 없어 보였지만 질문을 한 인간은 답을 알고 있었는지 곧바로 가르쳐주었다.

“본 장로가 알기론 백이십칠 명이다. 물론, 더 있겠지만 조무래기들은 빼고 셈을 한 거지. 그렇다면 그들 중 부부이거나 남녀가 짝을 지어서 사람의 피를 즐겨 먹는 노마들은 얼마나 되리라 보느냐?”

구장로께서 그렇게까지 자세히 설명해주었는데 은밀대(隱密隊) 소속의 교관인 자신이 그 정도 질문에도 대답을 못한다는 것은 수치였다. 그는 일부러 말을 느리게 하면서 차근차근 설명했다.

“적어도 셋 정도는 되리라 봅니다. 오십 년 전 형산에서 기승을 부리다 보다 못한 형산파와 여러 고인들에게 패퇴해 사라진 음혈쌍마(淫血雙魔). 한때 옥문관 근처에서 상인들만 골라 요리를 해 먹었던 미안옥쌍마(美顔玉雙魔). 그리고 마지막으로 멀리 바다를 건너, 남해에서 새로운 무공을 창안하려다 부부가 나란히 미쳐버려 피를 갈구해 수백의 사람들을 죽였던 남해쌍음마(南海雙陰魔). 제가 알기론 이 정도입니다.”

“내가 아는 바와 같군.”

말을 마치고 뒤를 돌아보는 구장로에게 악붕이 조심스레 물었다.

“아까 그 노부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하지만 그것들과 비슷한 인상의 노마들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군.”

좀 더 새로운 인물이 나올 줄 기대했던 구장로는 실망한 눈치였지만 악붕을 탓하지 않았다. 그때 악붕이 구장로의 고민거리를 후련하게 해결해낼 방도를 일러주었다.

“그럼, 확실히 하기 위해 가서 그 노부부를 해치우는 게 어떨는지요.”

순간 구장로는 흰 눈을 번뜩이며 악붕에게 눈웃음을 쳤다.

“흐흐. 좋은 생각이구나.”

구장로가 긍정을 표하자 악붕은 자신 있게 나섰다.

“제가 직접 처리하게 기회를 주십시오. 만일을 위해 수하 셋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구장로는 흔쾌히 허락했다.

“좋다. 악붕. 일각의 여유를 주마.”

“존명!”


동천은 감 부인이 기절하고 더 이상 진척이 없어 지겨워졌는지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통 속에 집어넣었던 감 부인을 깨우기로 마음먹었다.

“도연아. 저 할멈 좀 깨워라.”

“알겠습니다.”

도연은 주군의 명에 기절해서 아무렇게나 고개를 젖히고 있는 감 부인의 뺨을 좌우로 번갈아 때리며 깨우기 시작했다. 감 부인은 도연이 십 수 번을 때리고 나서야 신음을 흘리며 깨어났다.

“으음…”

그것을 본 동천은 상냥하게 인사를 했다.

“히히! 할멈. 깨어났어?”

감 부인은 침침한 눈으로 초점을 맞추다 말고 동천의 목소리에 격한 숨을 들이켰다. 기절하기 전, 그 목소리의 꼬마에게 직살나게 얻어맞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뒤로 물러서려던 감 부인은 그때 자신의 몸이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저 아이가?’

그녀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어린아이가 점혈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진정을 했다.

“아, 아이야. 네가 직접 점혈을 했느냐?”

자신도 그 사실이 자랑스러웠는지 동천은 가슴을 쑥 내밀며 말했다.

“할멈. 못 움직여서 놀랐지? 나도 처음 해보는 거라서 자신은 없었어. 근데 해보니까 잘 되는 거 있지? 아아, 아무래도 나에게는 천재의 피가 흐르나 봐. 어느 때 보면 내가 나 자신에게 두려움을 느낄 때도 있어. 난 이런 내가 자랑스럽지만 무서운 것 또한 사실이야. 할멈은 이런 내 마음을 알겠어?”

남편과는 달리, 자신의 내공은 미약해서 어이없게도 꼬맹이들에게 붙잡혔지만 조금 후면 남편이 내려올 것이기 때문에 감 부인은 그때까지 만이라도 재수 없게 웃는 꼬마의 비위를 맞춰주기로 했다.

“그래. 내가 모자라긴 하지만 미약하게나마 알 것 같기는 하구나. 보아하니 사부의 귀여움까지도 독차지하고 있을 것 같구나.”

기분 좋은 아부에 동천은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킥킥킥! 나야, 뭐든지 가르쳐주면 천재적으로 흡수하는 분이니 사부께 귀여움을 안 받을래야 안 받을 수 없지. 히히!”

감 부인은 일그러지는 자신의 얼굴을 애써 다잡아야만 했다. 도연은 주군과 할멈의 대화가 자꾸만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고 생각해서 얼른 자신이 나섰다.

“주군과 나의 옷가지들은 어디다 두었습니까.”

감 부인은 그나마 정상적인 아이와 대화를 나누게 되어 기쁘게 말했다.

“그것들은 모두 옷장 밑에 숨겨놓았단다.”

“뭐야? 옷장? 에이 씨. 그럼 그 늙은 영감탱이를 해치우지 않는 이상 그것들을 되찾는 것은 어렵다는 얘기잖아?”

감 부인은 화를 내는 동천의 행동에 지레 겁을 먹었다. 아까 맞았던 것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반응을 한 것이다. 그러나 동천은 화만 내고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저 꼬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주군이 말을 다 마칠 때까지 기다렸던 도연은 다음 질문을 이었다.

“당신들의 정체는 뭡니까. 당신들은 분명히 주군의 신분을 알면서도 해코지를 했습니다. 속일 생각은 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동천은 부연설명 차 나섰다.

“할멈. 속이면 알지? 아마도 다시는 걸어다닐 수 없을 거야. 히히!”

이런 위협을 별로 받아보질 못했던 감 부인은 치를 떨면서도 남편을 믿고 순순히 털어놓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만독문의 육당(六堂)을 관리하고 있던 대당주(大堂主)들이었다. 어느 날, 문주님이신 만독노조께서 ‘내가 연구에 몰두하던 것 중에 중요한 요소가 빠져있다. 그것을 채취하는 것은 내가 아니면 안되니, 너희들은 잠시 일을 미뤄두고 나를 따라와라.’라는 명령을 내리셔서 우리는 기뻐하며 문주님을 모셨다. 그리고 육개월이 지나서 이곳 암흑마교의 영역을 지나칠 때쯤 우리는 복면을 한 의문의 사내들에게 습격을 받게 되었지. 그들은 강력했지만 문주님과 우리 독살단묘(毒殺短猫) 부부에게는 아무래도 상대가 안 되었지. 한데, 전세는 신비하게 나타난 세 명의 흉수들로 인해 역전되고야 말았단다. 우리는 문주님께서 그놈들 중 제일 강한 놈을 맡고 계실 때, 나머지 두 놈들과 맞서 싸웠지만 분하게도 패퇴하고야 말았다. 그때 쫓기면서 문주님과 떨어지게 되었고, 죽이지는 못해도 겨우 한 녀석을 극독에 중독시켜 그 사이 도망을 쳤지. 그때 나도 치명상을 입었지만 멀쩡한 척을 하여 그들에게서 쉽게 빠져나갈 수 있었단다. 우리 부부는 근 일주일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흔적을 지우며 도망치다 결국은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이곳에 숨어들어 정착하게 되었고 나는 치명상을 입고도 무리를 해서 근 이갑자에 머물렀던 내공을 거진 잃어버리게 된 것이란다.”

동천이 할멈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만독노조라는 외호에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분노한 듯한 모습의 도연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확실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암흑마교의 짓이라 생각했다는 겁니까? 그래서 암흑마교 소속인 우리들을 가둬두고 죽이려고 했던 것이고?”

감 부인은 도연의 분노를 비웃는 듯 씨익 웃었다.

“아이야. 그것 때문에 우리 부부가 너희들을 죽이려 한 줄 아느냐?”

“아니란 말이오?”

“당연히 아니란다. 그때 나의 남편이 한 녀석을 극독에 중독시켰을 때 독에 당한 녀석이 다급했는지 이렇게 말했단다.”

-크윽! 공운(空雲)! 천잔산(天殘散)에 중독되었네!

“호호! 그만큼 당황한 것이었지. 공운! 너희들은 그 이름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아느냐?”

당연히 몰랐다. 그래서 동천과 도연은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감 부인은 자신이 말해놓고도 흥분을 했는지 다소 붉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수라마가(修羅魔家)에 사혼대라는 호위대가 있듯 한열마가(寒熱魔家)에도 그에 못지않은 흑혈이살이란 호위대가 있단다. 그중 공운이란 이름은 흑혈이살 중 흑살의 이름이었지. 호호. 이만하면 어째서 내가 암흑마교의 간악한 것들을 미워하는지 알겠느냐?”

흑혈이살이라면 동천도 알았다. 그런데 자신이 아는 흑살은 철소라는 사내였다. 공운이 아니었다. 그래서 의아함을 느낀 동천은 감 부인에게 물어보았다.

“할멈. 내가 알기로 흑살의 이름은 철소인데 어떻게 공운이라는 거지? 혹시, 지금 뻥치는 거 아냐?”

동천이 뭐라고 지껄이는 건지 몰라 눈살을 찌푸리던 그녀는 곧이어 그 의문을 풀고는 어이없어했다.

“암흑마교 약왕전의 소전주가 아직도 그런 것을 모르다니… 아이야. 너는 동시대에 흑혈이살이 둘이나 존재한다는 것도 모른단 말이냐?”

동천은 놀라운 사실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엥? 그럼, 사혼대와 마찬가지로 흑혈이살도 둘이란 말이야?”

“그래도 조금 알긴 아는구나. 그렇단다. 사혼대가 때가 되면 장로로 승격이 되듯 흑혈이살도 때가 되면 장로로 승격이 된단다.”

“오오. 그렇구나.”

좋은 거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던 동천은 조금 후에 자신이 모자란 놈으로 치부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만? 할멈! 지금 나 무시했지! 그렇지? 만독노조 방광 할아범도 나한테 설설 기었는데 감히 쭈그러졌다 조금 펴진 얼굴의 할망구가 독 조금 쓴다고 이 동천님을 무시해? 죽을래? 죽을…”

혼자 흥분해서 감 부인을 죽일 듯이 대들었던 동천은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동천은 곧이어 기뻐하며 자신의 손뼉을 쳤다.

“아하? 히히! 그러고 보니 만독노조가 그 할아범의 외호였구나? 나 참, 이제서야 생각이 나다니. 이 동천도 늙은 것인가? 으응? 그렇다면 할멈이 방광 할아범의 수하란 말이야?”

“바, 방광?”

감 부인은 문주님의 외호를 부르면서 이름은 방광이라 떠벌리는 어린아이의 무례함에 자신이 죄라도 지은 양 새파란 얼굴을 했다. 그에 반해 늘 하던 대로 항광을 방광이라 불렀던 동천은 아마도 할멈이 방광이라 해서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다.

“아아, 내가 방광이라고 해서 이해가 안 되는구나? 항광말이야. 항광(項洸). 이제야 좀 알아듣겠어?”

알아듣기는 했는데 너무 잘 알아들어도 탈이었다. 그녀는 분노의 일갈을 터뜨렸다.

“어린 녀석이 입을 함부로 놀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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