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165화
“앗, 깜짝이야. 이 할멈이 갑자기 미쳤나? 할멈. 죽고 싶어?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큰소리긴 큰소리야!”
너무나도 분노했는지 감 부인은 상대를 찢어 죽일 듯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이 놈! 약 소전주라는 녀석이 배운 것도 없더냐? 한 문파의 문주님을 마치 제 친구 이름 부르듯이 부르다니, 역천이 그렇게 가르쳤더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니오.”였다. 그러나 동천은 꿇리는 게 싫었다. 죽기보다…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 정도로 싫었다.
“어따 대고 사부님 욕이야! 흥! 그보다 할멈이 뭘 모르나 본데 항광 할아범하고 나하고 어떠한 사이인 줄 알아? 엄밀히 말하면 사제지간(師弟之間)이야. 사제지간!”
“뭐, 뭐라고?”
눈이 동그래져 자신을 바라보는 감 부인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동천은 항광과 자신의 돈독한(?) 관계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어야 하는 필요성을 느꼈다.
“세상 참 좁다. 여기에서 당신들을 만나게 될 줄이야. 당신들의 신분이 확실하기 때문에 내가 그 동안의 얘기를 해줄 테니 잘 들어봐. 그러니까, 그 할아범은 그 당시 당신들하고 떨어져서 간신히 살아남았어. 그 후, 동굴 속에 숨어들어 30년간 이끼와 지나가는 벌레를 먹고 운 좋으면 쥐새끼 한 마리를 건져서 포식하던 그 나날… 아아, 얼마나 불쌍하게 살았는지 알아? 그건 말도 다 못 해.”
동천은 잠시 말을 끊고 곁눈질로 감 부인을 살폈다. 다행히 감 부인은 그대로 믿는 듯 눈시울을 붉혔다. 아마도 동천의 이야기가 눈에 선한 것 같았다. 동천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듯 헛기침을 하는 척하며 재빨리 말을 이었다.
“험험. 내가 내공 수련 차 산에 올라갔을 때 항광 할아범을 만났어. 근 서너 달도 안 되었을 때의 일이었지. 내가 수련 장소를 찾아 걸어가고 있는데 웬 동굴이 보이질 않겠어? 그때 난 예감을 했지. 아? 저곳은 예사로운 곳이 아니구나! 근데 정말로 예사로운 곳이 아니더라. 바로 그곳에 항광 할배가 있었던 거였어. 그곳에서 할배를 만나 그 동안 할배가 살아왔던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할배가 이러더라고.”
-보아하니, 천상의 재질이로다! 내 제자가 되질 않으련?
“으음. 굉장히 유혹적인 제의였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때 위대하신 역천 사부님과 사제의 연을 맺은 후였어. 혹시 알지 모르겠지만 의리! 의리하면 나 동천이야. 어떻게 그 제의를 받아들이겠어. 그래서 내가 정중히 거절을 하자 그 할배가 내 바짓가랑이를 부여잡더니 그렇다면 내 심법과 용독경을 너에게 줄 터이니 제발 거절하지 말아다오! 이러지 않겠어? 히히! 난 워낙 착한 아이라 어쩔 수 없이 그것들을 받아서 여지껏 익히고 있었어. 할멈. 내가 왜 항광 할아범과 무관하지 않은 사이라고 했는지 이젠 좀 알겠어?”
감 부인은 멍청한 얼굴로 동천의 얘기를 듣다 이내 정신을 차렸다.
“미, 믿을 수 없다! 그렇다면 문주님의 만독혼원공(萬毒混元攻)을 운기해 보거라! 그렇다면 내가 너를 인정해 주마!”
그리 어려울 것도 없었다. 운기조식만 하면 저절로 만독혼원공의 기운이 퍼져 나오니까 말이다. 소리를 낮춰 웃고 난 동천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 한다.”
동천은 도연이 뒤로 물러나는 가운데 운기를 했다. 그러자 잠시 후 동천의 주위로 검푸른 운무가 뿜어져 나왔다. 그럴 리가 없다며 동천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감 부인은 한방 먹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30년의 세월동안 암흑마교의 영역권 내에 갇혀있어서 어쩌면 이곳에서 뼈를 묻어야 할지도 몰랐던 상황이었는데 여기에서 문주님의 진전을 이어받은 아이를 만났으니 어찌 놀랍지 않으랴. 감복한 감 부인은 눈물을 흘렸다.
“소문주님을 뵈옵니다.”
순간 동천의 입이 찢어져라 벌려졌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었다. 동천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소문주는 무슨! 난 거절했다니까?”
“아닙니다. 소문주님께서는 아니라고 하셔도 문주님의 진전을 이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동천은 여전히 아니라는 얼굴로 감 부인에게 다가가 그녀의 혈도를 풀어주었다.
“자자, 여기서 이러지 말고. 어서 나가자구. 어서 남편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야지.”
“아? 그렇군요.”
통 속에서 급히 나오던 감 부인은 자신이 가장 중요한 질문을 빠뜨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문주님. 그런데 그 후 문주님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동천은 잠깐 멈칫했지만 곧이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아아, 그거? 그야 잘 빠져나갔지. 내가 누구야. 바로 약왕전의 소전주 아니겠어? 내가 빠져나가는 길을 잘 가르쳐(?) 주어 손쉽게 탈출했으니까 그 문제는 걱정하지 마.”
감 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같이 속으로 한숨을 돌리고 있던 동천은 그새를 못 참고 감 부인을 재촉했다.
“이봐. 어서 나가자니까?”
“예, 알겠습니다.”
다친 다리를 이끌고 서둘러 밖으로 나온 그녀는 남편에게 가서 동천이 어떠한 인간인지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처음에 아이들을 끌고 나와 의아해했던 감송은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한 줄기 눈물을 흘렸다.
“불충한 우리들 때문에 그 오랜 세월 동안 고생을 하셨다니…”
느긋하게 몸을 젖히고 있던 동천은 고생이란 단어가 눈에 거슬렸는지 못마땅한 눈으로 감송을 꼬라보았다.
“할아범. 그동안 내가 고생한 건 생각 안 해?”
감송은 그 소릴 듣고 얼른 고개를 조아렸다.
“아닙니다. 소문주님. 제가 어찌 저의 죄를 모르겠습니까? 제가 소문주님의 신분도 못 알아뵙고 불경을 저지른 죄. 죽음으로 달게 받겠사오니, 부디 저의 충심을 헤아려 주십시오.”
그리고 정말로 자신의 천령개를 찍으려는 남편을 감 부인이 급히 말린 후, 동천에게 빌었다.
“소문주님! 남편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죄라면 이 못난 년에게 죄가 있사오니 바라옵건대 제 남편만은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감송은 봐줄 수 있어도 자신의 피를 쪽쪽 빨아먹은 감 부인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동천은 마음을 먹고 입을 열었다.
“여봐라!”
“엥?”
난데없이 밖에서 들려온 소리에 동천은 뭔 소리냐는 얼굴로 문 쪽을 보았다. 상대를 알아챈 감송은 얼른 동천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소문주님. 제가 미처 말씀을 못 드렸는데 밖에서 부른 자는 소문주님을 찾던 수색대 중 한 명입니다.”
동천은 생각지도 못했던 소리에 깜짝 놀랐다.
“정말이야?”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래? 으히히! 이런 경사가 또 있나!”
도연은 기뻐서 뛰쳐나가려는 동천을 말렸다.
“주군! 옷을 입으셔야죠!”
문고리를 잡고 열려고 했던 동천은 다급히 멈추고 불알을 덜렁거리며 감송에게 되돌아왔다.
“아차차! 이봐! 내 옷과 물건들 어디 있어!”
수색대가 한번 다녀가서 그 사이 증거인멸 차 동천과 도연의 물건들을 보따리에 싸놓았었던 감송은 재빨리 풀어서 나누어주었다. 동천이 옷을 입고 있는 동안 밖으로 나온 감송은 혼자 서있는 상대를 확인하고 푸근히 웃으며 악붕에게 말했다.
“허허, 당신들이 찾고 있던 분은 안에 계시니 잠시 기다리시구려.”
발검을 하려 손을 움직이려던 악붕은 순간 맥이 탁 풀림을 경험해야만 했다. 그는 황당한 모습으로 물었다.
“뭐라고?”
감송은 웃음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다시 설명해주었다.
“못 들었소? 동천이란 분과 도연이란 아이가 방에 있으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소이다.”
악붕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경계를 하며 문 쪽을 보았다. 잠시 후, 정말로 옷을 다 갖춰 입은 동천과 도연이 밖으로 나왔다. 악붕은 황급히 인사를 올렸다.
“소전주님을 뵈옵니다!”
동천은 드디어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꼴에 자신이 소전주라는 것을 인식했는지 뒷짐을 지고 폼을 잡았다.
“왔어?”
악붕은 조금 다른 것을 기대하고 있다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예. 와, 왔습니다.”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던 동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동천은 악붕에게 말했다.
“근데 왜 너 혼자냐?”
“원래는 구장로님과 저와 제 수하 여섯 명이 탐색 중 이곳을 지나쳤었으나 구장로님께서 다시 한번 둘러보라는 명이 있으셔서 제가 수하 셋을 이끌고 왔습니다. 그러나 이곳으로 오던 중 굳이 수하들까지 동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셋은 밖에 대기하고 있는 중입니다.”
구장로라는 소리에 도연은 눈을 반짝였고 동천은 얼굴을 구겼다. 동천의 구겨진 얼굴을 봤는지 감송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어디 아프십니까?”
동천은 얼른 얼굴을 피며 씨익 웃었다.
“아프긴. 히히! 이봐. 네 이름이 뭐지?”
“악붕이라 합니다.”
“좋아. 그럼, 어서 구장로님이 계신 곳으로 안내해.”
살며시 고개를 끄덕인 악붕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동천에게 말했다.
“그런데, 뒤의 사람들은 어찌할까요?”
동천은 감송과 그의 부인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감송이 동천에게 매달렸다.
“소문주님! 제발 저희들도 데려가 주십시오!”
소문주라는 소리에 동천은 간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헉? 이 감똥이 누구 죽일 일 있나? 이게 어디서 소문주야?’
등에서 쉴 새 없이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가운데 동천은 정신을 추스리며 잘못 발음이 된 감송의 말을 고쳐주었다.
“이, 이봐. 누가 소문주야? 나 참. 또 헷갈렸구나? 잘 들어. 소전주야. 소전주.”
다행히 감송은 동천의 뜻을 재빨리 이해했다.
“어이쿠. 제가 가르쳐주셨는데도 자꾸 까먹습니다요. 소전주님. 다시는 헷갈리지 않을 테니 부디 저희 부부도 데려가 주십시오. 이곳의 산 생활은 이제 지겹습니다요.”
동천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도연의 의사를 물었다.
“야. 어떻게 하지?”
도연은 지체 없이 대답했다.
“이들을 거두시면 실보다 득이 많을 거라 생각됩니다.”
맞는 말이었다. 대당주가 얼마나 높은 직책인지 몰라도 항광이 데리고 싸돌아다녔을 정도면 그만큼 인정받는 자들임에는 분명했다. 그러나 동천이 이런 거물들을 쉽사리 맞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나중에 이들이 진실을 알았을 때였다. 그렇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이들은 자신을 죽이려 들지도 몰랐다. 그래서 동천이 망설이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한다? 여기에 쟤들을 놓고 간다 해도 저것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고, 또 데리고 간다고 해도 나중에 방광 문제가 밝혀지면 골치가 아파질 테고… 응? 그러고 보니 저것들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잖아? 으히히! 생각해 보니 그러네? 킥킥! 한마디로 저것들이 만독문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 내가 위험해질 리 없다는 소리였다?’
생각을 마친 동천은 짐짓 폼을 잡으며 목소리를 깔았다.
“설마 짐이 되지는 않겠지?”
감송 부부는 허락의 뜻을 알고 감격에 겨워 굽실거렸다.
“그러면요. 물론입니다요. 감사합니다. 소전주님!”
“히히! 뭘 그런 걸 가지고.”
동천이 감송 부부의 동행을 허락할 때 마당에 서있던 악붕의 눈빛이 찰나간 살기를 띄우다 사그라들었다. 동천이 이상한 느낌을 받고 돌아보았을 때 악붕은 그저 고요한 안색으로 서 있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