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168화
난데없는 소리에 동천은 놀란 얼굴을 했다.
“예? 교주님이요?”
“그래.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열화마가를 뜻하네. 어떻게 생각하는가?”
교주 측인 열화마가는 자신이 섬기는 곳이 아니었다. 이곳 약왕전은 대대로 수라마가를 섬겨왔다. 그건 눈앞의 사형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열화마가에 대해 물어보는 사형의 의도를 동천으로서는 도통 알 수 없었다. 동천은 사형의 눈치를 살피며 물어보았다.
“왜요?”
왜 자신에게 그따위 질문을 하냐는 소리였다. 사제가 선뜻 대답을 못하는 것을 보고 공영수는 조금 더 부드럽게 대화를 이끌었다.
“사제도 알다시피 우리 약왕전은 수라마가를 따르고 있네. 그러나 그래서는 우리 암흑마교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이 사형은 오래전부터 한 식구끼리 세력을 나누어 경쟁을 하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았네. 더군다나 우리 약왕전은 생명을 중시하는 곳으로서 더더욱 한곳에 치중해서 있어서는 안 되는 곳이라네. 그래서 이 사형은 생각을 굳혔네. 내 대에서부터는 중립을 선언하자고…”
어이가 없었던지 동천은 다시 되물었다.
“중립이요?”
“그렇다네. 사실 암흑마교가 생겨난 이래 이번만큼 그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었던 때는 없었다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중립이네.”
동천은 사형이라는 인간이 전혀 알아듣지도 못하는 소리를 지껄여대서 머리가 다 아파왔다.
“사형.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면 안 될까요?”
공영수는 어린 사제의 물음에 흔쾌히 설명해주었다.
“암흑마교는 하나의 조직이지만 실제로는 두 파로 나뉘어 서로의 경쟁을 이점으로 성장해왔지. 그러나 서서히 시간이 흐르고 지금 대에 이르러서는 그게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소리네. 즉, 서로 간의 경쟁이 이제는 지겨워진 것이네. 지금 암흑마교 내부는 조용하지만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위험한 상태인데 아마도 이런 상태로 몇십 년이 흐른다면 암흑마교는 분쟁에 휩쓸릴 게 뻔하네. 그렇게 된다면 우리 교의 세력은 분명히 몇십 년 전으로 퇴보하고 말 게야. 이 사형이 걱정하는 것은 교의 분쟁이 아니라 바로 분쟁 후일세.”
또 몰라서 가르쳐달라고 하면 모자란 놈 취급을 받을까 봐 동천은 생각하는 척을 하면서 안색을 어둡게 했다.
“분쟁 후라…”
공영수는 의외로 어린 사제가 진지하게 생각을 머금자 눈을 번뜩였다. 찰나지간이었지만 동천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 자신에게 그런 눈빛을 보냈을까? 동천은 결코 좋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음. 갑자기 저 앉은뱅이 사형이 재수 없게 꼬아보네? 왜지? 왜 저 자식이 나같이 착하고 순진한 천재 소년을 좋지 않게 꼬라 본 거지? 내가 뭐 실수한 거라도 있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한참 후에야 생각에서 빠져나온 동천은 사형이 자신을 빤히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헤헤. 제가 잠시 다른 생각을 했네요. 마저 말씀해주세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공영수는 참았다. 그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두 세력이 피를 흘리면 어느 세력이 승리를 하든 그들이 입은 피해는 실로 대단한 것일세. 더군다나 두 세력이 오십보백보라면 더더욱 그렇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어? 설마?”
동천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물론, 모르면서 말이다. 공영수는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마음은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사제가 생각하는 대로일세. 어부지리(漁父之利). 바로 다른 세력이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교를 습격해서 흡수해 버릴 것이 뻔하네. 아마도 마교나 환마교겠지.”
동천은 놀라운 소리에 진심 어린 소리로 말했다.
“정말 그렇게 되면 큰일이네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공영수는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여지껏 다 알고 있는 듯 행동을 했으면서 막상 자신이 결론을 이끌어내자 당황해하는 사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첫째는 모르는데 아는 척을 했다가 놀라운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당황해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이 은근히 사제를 경계하는 것을 눈치채고 일부러 허술함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공영수는 자신의 첫 번째 가정이 맞기를 바라며 한가지 실험을 하였다.
“그렇지. 그래서 몇십 년 후의 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 약왕전이 솔선수범을 해서 중립을 선언하는 것이라네. 그렇게 된다면 열화마가와 수라마가의 대립은 잠시나마 주춤할 것일세. 그 사이 좀 더 나은 해결책을 찾자는 게 이 사형의 생각인데 사제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 사형보다 더 좋은 생각이 있는가?”
없었다. 아니 없을 수밖에 없었다. 분쟁 후의 일도 모르는 동천이 어떻게 분쟁을 막을 방도를 생각해낼 수 있다는 말인가.
“헤헤. 제게 어찌 그런 생각이 있겠어요. 잘은 모르겠지만 사형의 생각에 저는 전적으로 찬성이에요.”
왠지 빼는 느낌을 받은 공영수는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여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아닐세. 생각의 전환은 많으면 많을수록 도움이 되는 것이니, 기탄 없이 말해보게나.”
‘에이 씨발. 이 새끼가 왜 자꾸만 말해보라고 재촉하는 거지? 도대체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짜증이 나도 티를 낼 수 없었던 동천은 정말로 떠오르는 생각이 없어서 난색을 표했다.
“그래도…”
동천이 칭찬에 약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공영수는 그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하하. 수줍어하기는. 이 사형이 놀리지 않을 터이니 어서 말해보게. 이 사형은 약왕전에서 수재(秀才)로 소문이 난 사제의 고견을 듣고 싶을 따름이라네.”
공영수의 방법은 보기 좋게 성공을 했다. 동천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긴 머리를 뒤로 넘기며 으스댔다.
“아아, 물론 제가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어떻게 이런 중요한 문제를 쉽사리 떠올릴 수 있겠어요.”
“알겠네. 내 얼마든지 기다려 줄 터이니 천천히 생각해 보게.”
기분이 좋아져 머리 회전이 빨라진 동천은 곧이어 그 방도를 떠올릴 수 있었다.
“아? 이런 방법은 어때요? 어차피 마교는 힘의 원리가 중시되는 곳이잖아요? 그리고 또 우리 약왕전이 수라마가를 따르니까 굳이 열화마가와 타협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수뇌부를 단번에 싹 쓸어버리는 거예요.”
공영수는 순진한 어린애의 생각에 어이가 없었지만 사제를 예의 주시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하지만 말이야 쉽지. 어떻게 그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릴 수 있겠나.”
동천은 그에 따른 대책이 있는 듯 자신 있게 말했다.
“히히, 그건 문제가 아니죠. 혹시, 만루묘화(滿淚猫花)라고 아세요?”
공영수는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는 사제의 지식에 놀랐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알고 있네. 그것은 남만(南蠻)에서만 서식하는 특이종으로서 서식지가 불분명하고 꼭 만월이 뜰 때만 꽃을 피우며 꽃이 핀 그 모양새가 고양이 발톱과 흡사하여 불리어지는 꽃의 이름이 아닌가? 헌데 그것은 왜 물어보는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형의 설명에 동천은 만족의 웃음을 흘렸다.
“잘 아시네요. 하지만 한가지 설명이 부족했어요.”
자신이 아는 것을 다 대답했던 공영수는 또 무엇이 빠졌나 싶어 물어보았다.
“응? 무엇이 말인가?”
우쭐해진 동천은 쉽사리 가르쳐 줄 생각을 안 했다.
“왜 그 꽃의 이름에 눈물 루(淚)자가 끼어있겠어요. 심심해서? 히히. 당연히 아니죠. 자 과연 왜 루자가 끼어있을까요.”
“답답하구만. 어서 말해보게나. 사제.”
동천은 좀 더 끌면서 놀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사형의 심기가 불편해질 수 있어서 그만두기로 했다.
“헤헤. 바로 그 만루묘화가 만월의 정기를 받고 새벽녘에 꽃 봉우리를 닫을 때 말 그대로 눈물을 흘리기 때문이에요.”
공영수는 동천의 지식에 놀람을 떠나 약왕전 이 공자의 본분을 살려 정말로 가르침을 받는 태도를 보였다.
“흐음. 내 사제 덕분에 새로운 것을 알았구만. 그런데 그것이 이번 일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동천은 가자미눈을 뜨고 씨익 웃었다.
“히히, 당연히 있죠. 제 이야기의 중점은 바로 그 눈물의 효능이에요.”
“효능?”
동천은 신이 나 고개를 끄덕였다.
“예. 효능이요. 바로 그 눈물이 아시겠지만 피를 맑게 해주는 효능이 있거든요.”
공영수는 도대체 무슨 말이냐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그것은 약화(藥花)가 아닌가? 그런데 그것을 어찌 그들 수뇌부에게 투입한다는 말인가.”
동천은 생각 없이 나서는 사형을 비웃으며 손을 저었다.
“아이 참. 끝까지 잘 들으셔야죠. 그런데 말이죠. 그 만루묘화는 다른 한가지와 섞이게 되면 곧바로 그 성분이 돌변해 극독이 돼 버려요. 바로 그것이 무엇이냐?”
공영수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무, 무엇인가?”
사형의 시선이 자신의 입술로 고정된 가운데 마침내 동천의 입술이 찬찬히 열렸다.
“바로…”
“주인님.”
“주인님이라는… 엥?”
헛소리를 해서 동천은 깜짝 놀랐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밖을 향해 점잖게 말했다.
“소연이냐?”
“예. 주인님.”
상대를 확인한 동천은 이따가 혼내주기로 하고, 계속 품위 있게 행동했다.
“무슨 일이지?”
주인님이 평소와는 다르게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물어오자 소연은 더욱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기, 송 할아버지가 바쁘시지 않다면 좀 뵙자는데요.”
송 할아버지라면 감송을 뜻하는 거였다. 동천은 은근히 사형인 공영수를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나 바쁜데…”
공영수는 그 뒷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으나 기회는 앞으로 널렸으므로 이만 자중하기로 했다.
“하하. 사제. 이 사형은 괜찮으니 그건 나중에 말해주게나. 내 다시 들를 터이니 그때마저 얘길 하지.”
정말로 반가운 소리였다. 하지만 동천은 아쉬움에 가득 찬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되겠어요? 쩝. 그러시면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사형.”
공영수는 인자하게 웃어주었다.
“그러도록 하게나.”
동천은 꾸벅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공영수의 안색은 굳어졌다. 그는 쥐어져 있던 자신의 손을 펴보았다. 땀이 흥건했다. 그만큼 긴장을 했다는 소리였다. 공영수는 피식 웃었다. 어린놈 때문에 자신이 이렇게나 긴장을 했다니…
“흐음. 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엄청난 소득을 올렸군.”
어느새 식어버린 차를 단숨에 들이킨 공영수는 의자를 밀어내며 묵묵히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