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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70화


“알았어. 그럼, 마지막으로 이것 좀 잡아볼래?”

동천은 허리띠를 풀러 운석 부분을 청년에게 내밀었다. 청년은 내심 불안했지만 소전주의 명이었기에 태연한 안색으로 동천이 내민 부분을 잡았다. 그러자 믿을 수 없게도 그의 몸 안에 상주하고 있던 내공이 썰물 빠지듯 손을 타고 허리띠 쪽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헉?”

청년은 경악 어린 시선으로 동천을 바라보며 힘없이 쓰러졌다.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을 보인 청년의 행동에 동천은 음침한 미소를 뿌려주었다.

“이히히! 이놈의 새끼가 감히 나를 속여?”

사람이 쓰러졌으면 가서 살펴보기라도 해야 정상이련만 소연은 오히려 동천의 뒤로 숨어들어 안쓰러운 눈길을 보냈다.

“주인님. 어떻게 된 일이에요?”

동천은 청년에게 다가가 발로 툭툭 건드려 보면서 소연에게 나직이 혀를 찼다.

“쯧쯧. 넌 애가 왜 이렇게 겁이 많냐? 내가 잠시 진실 여부를 확인해본 것뿐이니까 겁먹지 마.”

얼굴을 붉힌 그녀는 개미만 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제가 언제 겁을 먹었다고 그래요.”

소연은 반박을 한다고 한 거였지만 워낙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던 터라 동천은 듣질 못했다. 다만 뒤에서 뭐라고 중얼거렸다는 것만 알아들었을 뿐이었다. 쭈그리고 앉은 동천은 청년의 볼 살을 잡고 한 바퀴를 돌린 뒤 더 이상 돌아가지 않을 때 잡아당겨서 늘어진 살을 다른 손으로 후려치는 극악한 방법을 썼다.

쓰억!

“으윽!”

동천은 무언가 베인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 뒤를 이어 터진 청년의 신음성을 들으며 즐거워했다.

“히히! 내공이 있으면서 감히 약왕전의 소전주님을 속여?”

사내는 어서 급한 불을 꺼보려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혀가 꼬여서 말조차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소전주님. 그, 그게 아니라…”

그 뒤로 희미하게 중얼거리는 것을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들었던 동천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모두 네 잘못이니까 죽여달라고? 히히. 그거야 쉽지.”

청년이 놀라하는 것을 보고 소연이 나섰다.

“주인님. 혹시 잘못 해석하신 거 아니에요?”

동천은 대답 대신 웃으면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소연에겐 그걸로도 충분했다. 그녀는 뒤로 물러서며 자신의 실언(?)을 재빨리 정정했다.

“그러니까. 주인님의 말씀이 지당하시다는… 호호호!”

소연의 일을 마무리 짓고 난 동천은 이제 이놈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을 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좋은 대안이 떠오르지 않자 동천은 마지못해 도연을 부르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에도 수련에 몰두하고 있던 도연은 땀에 절은 모습으로 동천 앞에 당도했다.

“부르셨습니까.”

동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쓰러진 청년을 가리켰다.

“그래. 다름이 아니라 얘를 어떻게 할까 생각 좀 해봐.”

무슨 얘긴지 알지 못했던 도연은 눈대중으로 대충 상황을 파악한 다음 입을 열었다.

“그냥 봐주시지요.”

어이가 없어서 한 대 치려고 했던 동천은 그러고 보니 자신이 자세한 설명을 빠뜨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그냥 봐주고 싶은데 봐주기엔 좀 기분 나쁜 상황이라서 그래 임마. 사실은 아까…”

이제까지의 상황을 불필요할 정도로 자세히 설명해 준 동천은 이제 알아들었으면 제대로 된 대안을 말해보라는 눈초리를 도연에게 보냈다. 듣고 보니 껄끄러운 느낌을 받은 도연은 자신의 눈길을 은근히 피하는 청년을 보고 결심을 내렸다.

“흑마옥(黑魔獄)에 보내는 것이 어떨는지요.”

“흑마옥? 아아, 거기? 히히! 그거 좋은 생각인데?”

처음엔 몰라서 어리둥절했으나 동천이 늘 그렇듯 몰라도 아는 척을 했다. 모두들 낄낄거리는 동천에게 시선이 모인 상황에서도 도연은 눈치껏 청년을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도연이 보았을 때 청년은 곤란한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래서 도연은 청년과 같은 얼굴을 했다.

‘흑마옥을 알면서도 곤란한 얼굴을 하는 게 다란 말인가?’

흑마옥. 흑마옥이 어디 던가? 바로 암흑마교에 지대한 잘못을 짓거나 중요 인사들의 분노를 받은 자들이 들어가 모진 고문을 받는 곳이 아니었던가? 물론, 그곳에 들어갔다고 죽어서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나오긴 나오되 꼭 반 병신이 되어 나오는 오랜 전통(?) 때문이었다. 내공을 소유한 자가 내공을 전부 잃어버리는 것은 예사였고 팔이나 다리 한 짝이 병신 되는 것도 예사인 곳이 바로 흑마옥이었다. 여지까지의 설명을 간추려 말하면 ‘들어가면 나중에 나와서 정상적으로 행동하긴 글렀다’였다. 사실 도연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백이면 백 모두가 주군의 마수에서 벗어나고 싶어 살려달라는 눈빛을 보낼 텐데 상대는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흑마옥을 들먹였건만 상대는 곤란한 얼굴을 하는 게 고작이었다.

‘버팀목이 강한 건가?’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해 보았으나 쉽사리 결론을 못 냈다. 그래서 도연은 마지막 패를 던져보기로 했다.

“그럼, 동마옥과 서마옥 중 어느 곳에 이자를 맡길까요.”

“응? 그게 그러니까… 귀찮으니까 네가 알아서 해 임마! 그런 걸 이 몸께서 일일이 다 지시해야겠냐? 에잉!”

아는 게 없어서 괜히 화를 낸 동천은 더 이상 궁지에 몰리기 전에 씩씩거리며 자리를 떴다. 소연까지 동천을 따라가 혼자 남은 도연은 이제야 불안해진 눈으로 자신을 마주보는 청년에게 조용히 말했다.

“당신에겐 서마옥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 순간 정말로 다급해졌는지 청년은 제법 또렷한 음성으로 도연에게 매달렸다.

“이, 이보시오. 나는 죄가 없소.”

도연은 상대의 애원에도 아랑곳 않고 자신이 해야 할 말만 했다.

“거기다 혼천부(混天府)에 당신의 신분을 자세히 의뢰해 볼 테니 서마옥에서 잠시 머물러 계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마지막 결정타였던 듯 청년의 얼굴을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곧이어 그는 결정을 내린 듯 안면을 바꾸어 살기가 충만한 눈으로 도연을 노려보았다.

“쳇! 어린 자식이 의외로 꼼꼼하구나. 내 신분을 알고 싶으냐? 그렇다면 내 뒤를 따라오려무나! 크크크. 윽! 으그르르르…”

마지막에 가서 독단을 깨문 청년은 죽어가면서도 웃으며 도연을 보았다. 상대의 얼굴가죽은 흉측하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도연은 코를 틀어막고 멀찍이 떨어졌다.

“…….”

도연은 주군에게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할지 난감했다.


침대에 누워서 이류도 아니고 삼류 소설을 읽고 있던 동천은 도연의 보고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뭐? 그 새끼가 죽었어?”

도연은 신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독단(毒丹)을 물고 있다가 자살을 했습니다.”

“독단?”

“그렇습니다.”

도연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어디서 들은 건 있었던지 동천이 자신 있게 질문했다.

“그렇다면 무슨 목적을 띠고 이곳에 잠입했다는 소리야?”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그런 것 같습니다.”

“으음. 어떤 자식이 뭐 볼일이 있다고 이곳에 첩자 비스름한 자식을 침투시킨 거지?”

말을 꺼내놓고 도연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도연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동천은 은근슬쩍 도연의 생각을 물었다.

“넌, 아냐?”

도연은 섣불리 대답을 못했지만 얼마 안 가 말문을 열었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교주 측의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동천은 깜짝 놀라다 곧이어 도연을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교주 측이라고?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도연은 주군이 흑마옥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것 같아 흑마옥의 현 상황을 설명에 집어넣었다.

“아시다시피 흑마옥은 삼백여 년 전부터 두 개로 독립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동마옥과 서마옥이죠. 이유는 당시 열화마가의 추종자였던 옥주(獄主)가 사사건건 자신의 일을 지적해주는 수라마가 측의 부옥주를 못마땅히 생각해 상부에 아예 자신만의 독립된 마옥을 달라고 건의한 것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당시 양파의 경쟁이 심했던 터라 많은 원로들은 그 건의에 대해 만족을 표명했답니다. 즉, 자신들의 생각을 흑마옥이라는 매개점으로 표출한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흑마옥의 영역을 정확히 반으로 나누고 동쪽을 동마옥 서쪽을 서마옥이라 정했습니다. 처음 동쪽에 안주한 자가 열화마가의 측근이었기에 동마옥은 대대로 열화마가 쪽의 인물이 자리했고, 반대로 서마옥은 수라마가의 인물이 옥주를 담당했다고 합니다.”

숨을 죽이며 도연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동천은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던지 바로 질문을 했다.

“야, 부옥주야 자르면 되잖아.”

도연은 약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또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교주가 수라마가 측이었기 때문입니다. 간이 붓지 않고서야 별 잘못도 없는 부옥주를 자를 수는 없는 일이죠.”

듣고 보니 그랬기에 동천은 재빨리 넘어갔다.

“그건 그렇다 치고 어째서 죽은 그놈이 교주의 밑에 것이란 말이야?”

도연은 막힘없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아까 그자는 흑마옥이란 소리에 동요조차 없었습니다. 다만 조금 귀찮은 일을 당하겠구나. 하는 정도의 표정만을 지었을 뿐이었죠. 그래서 저는 그가 흑마옥에 들어가도 별 탈이 없을 거란 말과도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주군께서 가시고 나서 서마옥을 강조하며 그곳에 넣겠다고 말하니 그가 드디어 표정에 변화를 일으키고 저에게 잘못이 없다며 애원을 하더군요. 그것을 제가 거절하고 혼천부에 당신의 신분을 의뢰하겠다고 말하자 그는 독단을 깨물고 자살을 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보면 그는 흑마옥이란 존재는 껄끄럽지 않았으나 서마옥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동마옥에서 잠시 은신을 하다 빠져나오려 했는데 자신의 뜻대로 안 되자 당황했던 겁니다. 더군다나 그는 마교 내의 유일한 중립기관인 혼천부가 조사 착수를 들어가 자신의 신분이 발각된다면 일이 꼬이게 되기 때문에 자살을 했다고 봅니다.”

멍한 얼굴로 도연의 말을 듣고 있던 동천은 도연의 말이 끝을 맺자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모르게 벌리고 있던 입을 다물었다.

“그, 그래? 히히. 어쩌면 내 생각하고 똑같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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