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179화
동천은 얼른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솥 안의 밥을 주걱으로 한 공기 꾹꾹 눌러 퍼담은 동천은 전광석화와 같은 손놀림으로 밥을 먹어대기 시작했다.
“와구와구! 쩝쩝. 꿀꺽꿀꺽! 크어-! 잘 먹었다.”
동천은 만약 누군가가 지켜봤다면 인간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순식간에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워버렸다. 그리고 남아있는 밥을 새로 푼 다음 시무룩한 얼굴로 혈귀옹에게 가져갔다. 정좌 자세로 동천을 기다리고 있던 혈귀옹은 수저를 들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어째서 밥이 하나밖에 없느냐.”
동천은 입 싹 닦고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가보니까 그것밖에 없더라고요.”
혈귀옹의 미간에 더욱더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흐음. 이것뿐이라…”
혈귀옹은 다소 난감한 기색으로 밥그릇을 내려다보았다. 동천은 혈귀옹의 눈치를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혈귀옹은 동천에게 시선을 옮겼다.
“먹고 싶으냐?”
동천은 그 무슨 소리냐는 듯 거세게 두 손을 흔들었다.
“아뇨! 저는 됐어요. 어르신이나 많이 드세요.”
혈귀옹도 인간인지라 자신의 욕심을 채우자고 어린놈을 굶길 수 없었다. 그는 동천의 마수에 걸린 줄도 모르고 상을 들이밀었다.
“나는 나가서 먹고 올 터이니, 이걸 먹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청소를 시작하거라.”
“됐어요. 저는 안 먹어도 된다니까요?”
동천이 그렇게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혈귀옹은 말없이 밖으로 나가버렸다. 동천은 혈귀옹을 얼른 쫓아 나갔다.
“어르신! 괜찮다니까요? 어르신! 어르… 가셨네?”
동천은 겉으로 죄송한 표정을 지었지만 정작 속으로는 덩실춤을 추고 있었다.
‘히히! 늙은아. 내가 너보다 한 수 위다. 자, 어디 마저 식사를 해 볼까나? 랄랄라~!’
혼자서 여유 있게 식사를 마친 동천은 반찬까지도 깨끗이 비워버린 후 자리에 드러누웠다.
“끄윽! 좀 모자라긴 하지만 그래도 잘 먹었다.”
밥을 먹고 누워있으니 절로 졸음이 몰려왔다. 평소 같으면 낮잠 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영향 탓인지 금세 동천의 눈이 흐릿해지며 초점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동천은 잠이 들어버렸다.
“쿨. 쿨.”
한식경 정도가 지났을까? 동천은 누군가가 자신을 흔든다고 생각했다. 짜증이 난 동천은 상대를 손으로 밀쳤다. 그렇게 해서 돌아온 것은 곰방대였다.
“아야! 어떤 새끼야! 어떤 새끼가 감히 곤히 잠자는… 헤헤. 오셨어요? 아차! 어서 짐들을 날라야지?”
동천은 싸늘히 자신을 노려보는 혈귀옹을 뒤로한 채 상을 들고 신속히 자리를 피했다. 설거지를 끝내고 창고 안으로 들어간 동천은 가지런히 쌓여있는 상자들 중에 제일 앞에 있는 상자를 집어 올렸다.
“욱! 더럽게도 무겁네.”
동천처럼 어린애가 들기에는 버거운 무게였다. 그러나 동천은 허리띠를 풀지 않고도 그 상자를 들어올릴 수 있었다. 바로 근력만큼은 어른 못지않았기 때문이다. 창고 문 옆에 상자를 내려놓은 동천은 그곳을 기점으로 하나하나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처음에는 할 만했다. 하지만 한 시진 정도가 지나감에 따라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허리띠를 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해서 들켰다간 인생 종칠 수도 있었기에 동천은 이를 악물고 상자를 날랐다.
“헉헉, 제기랄. 벌써 날이 저문단 말인가?”
삼분지 일을 날랐을 즈음, 어느새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동천은 지치고 배도 고프고 해서 발라당 누워버렸다.
“몰라 몰라. 날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하라고 해.”
동천이 힘들어서 똥 배짱을 부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기척을 느낀 동천은 힘겹게 머리를 들어 올렸다.
“어? 한 당주 아냐?”
한심은 누워있는 동천을 발견하곤 놀라며 달려왔다.
“아니? 소전주님이 어째서 여기에 누워 계시는 겁니까? 어서 일어나시지요.”
동천은 더 누워있고 싶었으나 체면도 있고 해서 일어난 후 피곤한 기색을 지웠다. 하지만 무슨 생각에서인지 체면도 다 포기하고 노곤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 왔는가?”
한심은 밖에 놓여진 상자들을 보고 나서야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황당한 기색이었다.
“이럴 수가. 저 철 상자들을 소전주님이 다 옮기신 겁니까? 저 무거운 것들을?”
어쩐지 더럽게 무거웠다고 생각한 동천은 혈귀옹을 저주하면서도 자신이 할 일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래. 어르신의 명으로 내가 좀 치워놨어. 한데, 내가 너무 지쳤거든? 그래서 말인데 나머지는 한 당주가 도와줄 수 없을까?”
한심은 약왕전의 식구로서 그리고 수하의 신분으로서 소전주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만 주십시오! 제가 다 하겠습니다!”
“오오, 고마워! 역시 자네뿐이야.”
“아닙니다! 이런 것쯤이야 저에겐 쉽습니다!”
동천의 칭찬에 더욱 힘이 솟는지 한심은 안으로 들어가 상자를 어깨에 이고 나왔다.
“으쌰! 으쌰!”
한심은 기합 소리를 내며 상자를 날랐다. 그러나 그 기합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기어들었다. 한심은 정말로 그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열 번도 채 나르기 전에 땀방울을 흘려댔다. 그 후, 대여섯 번을 더 왔다 갔다 한 그는 곁눈질로 동천의 눈치를 살피다가 갑자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차! 그러고 보니 아버님께 인사를 못 드렸네? 아버님! 저 왔습니다!”
한심은 동천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재빨리 혈귀옹의 방으로 들어갔다.
‘저런, 개새끼! 싫다면 싫다고 말할 것이지. 쪼잔하게 애비를 핑계로 튀어? 한심한 자식. 그러고도 살고 싶냐?’
동천은 도망을 친 한심을 욕하며 남은 일을 마저 끝마쳤다. 그때까지도 들어가서 깜깜무소식이었던 한심은 놀랍게도 동천의 짐 나르기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밖으로 나왔다. 그는 가지런히 쌓여있는 상자를 보고 얄궂게 말했다.
“에구, 놔두셔도 됐는데. 헤헤.”
주둥이나 닥치고 있었으면 그나마 참을 수 있었지만 방금 한심이 한 말은 동천의 한 가닥 이성을 끊어 놓기에 충분했다. 동천은 주체할 수 없는 살기를 뿜어내며 한심에게 다가갔다.
“히히. 괜찮아. 원래 내가 할 일이었는데 뭐.”
동천이 웃으면서 다가갔기 때문에 살기를 못 느낀 한심은 마음을 놓았다.
“대신 제가 저녁을 해드릴 테니, 들어가서 푹 쉬시지요.”
순간 동천의 움직임이 정지되었다.
“저녁?”
“예. 헤헤. 제가 이래 뵈도 음식을 잘 만들거든요. 아? 그리고 아까 들어갔을 때 아버님께 왜 찾았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버님께서 소전주님이 여기에 계실 동안 음식은 저보고 만들랍니다.”
식사 담당이 한심이라는 소리에 동천은 힘이 쏙 빠져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여기에서 한심을 해치우면 앞으로의 식사가 막막해지기 때문이었다. 동천은 허무한 시선으로 어슴푸레한 하늘을 올려보았다.
‘아아, 이것도 하늘님의 뜻인가? 그런 것인가?’
갈등을 때리던 동천은 결국, 먹을 것에 무릎을 꿇고야 말았다.
“한 당주. 난 자네의 음식 솜씨를 믿겠네. 부디, 맛있게 만들어주게나.”
한심은 방금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사실도 모르고 소전주의 격려에 기분이 째졌다.
“알겠습니다!”
한심은 흥얼거리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한심은 모든 일에 한심했지만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음식 솜씨는 가히 일절이었다. 어떤 마술을 부렸는지 몰라도 점심 때와 똑같은 반찬이었건만 맛은 전혀 딴판이었던 것이다. 밥도 새로 지었기 때문에 동천은 걱정 없이 마구 퍼먹었다. 동천도 만족해하고 한심도 만족해하고 혈귀옹조차 만족해한 저녁 식사는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그리고 동천의 이틀째 밤 또한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