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183화
연습 상대.
“오늘은 이만 하자꾸나.”
사부가 그만하자는 소리에 소연은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민소희는 사랑스러운 눈으로 어린 제자를 응시했다.
“가서도 연습하는 걸 잊지 말고.”
“예.”
조용히 밖으로 나온 소연은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있는 감송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사공(師公)님. 저 때문에 항상 죄송합니다. 이제 들어가셔도 됩니다.”
감송은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허허, 죄송해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앉아서 밤하늘을 감상하는 것도 꽤 즐겁단다. 그리고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는가? 빠르기도 하군.”
감송은 뒷짐을 지고 안으로 들어갔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시립해 있었던 소연은 감송이 방문을 닫자 그제야 자신의 거처로 갔다. 안에는 화정이가 식탁에 앉아 있었는데 무언가를 주섬주섬 집어먹고 있었다. 그걸 본 소연은 재빨리 달려가 먹을 것들을 옆으로 치웠다.
“아휴! 화정아. 그만 좀 먹으라니까? 너 주인님이 없다고, 나한테 반항하는 거야?”
화정이는 시무룩한 얼굴로 소연의 꾸지람을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소연이 방심한 사이에 치워진 과일 중 하나를 잽싸게 잡아채서 껍질도 안 벗기고 아작아작 씹어먹었다.
“아앗? 화정아 무슨 짓이야! 얼른 이리 내! 빨리!”
화정이는 저만치 도망쳐서 계속 씹어먹었다. 화가 난 소연은 두 팔을 걷어붙이고, 신법을 발휘해 화정이에게 달려갔다.
“좋아, 누가 이기나 해보자.”
순식간에 몸을 날린 소연은 금나수법을 사용해 반도 채 안 남은 화정이의 과일을 빼앗았다.
“호호호! 어때? 놀랐지? 이 무공이 바로 사부님께 꾸중을 제일 많이 들으며 익혔던 금나수법이야. 이름은 단금영엽(短禁影葉)인데, 발음이 좀 어렵지? 그건 그렇고 이제 나의 실력을 알았으면 빨리 자.”
화정이는 눈을 반짝이며 소연의 손을 응시했다. 아마도 빠르게 움직인 작은 주인의 손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그런 작은 주인의 손놀림을 다시 보고 싶었다. 화정이는 소연의 말을 고분고분 듣는 척하다 급격히 방향을 틀어 과일 쪽으로 달려갔다.
“화정아!”
소연이 뒤늦게 움직였지만 도달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화정이는 과일을 드는 순간 맥도 못 추고 소연에게 빼앗겼다.
“아이 참! 잘 때 먹으면 살이 찐다니까?”
화정이는 씨익 웃더니 다시 과일을 집었다. 소연은 눈살을 찌푸린 채로 화정이의 손을 교묘히 비틀어 과일을 빼왔다. 마침내 화가 난 소연은 무서운 눈으로 화정이를 혼냈다.
“너 정말 이러기야? 가서 안 자? 빨리 자!”
작은 주인의 꾸지람에 서운함을 느낀 화정이는 큰 주인의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화정이가 가서 잘 자는지 눈으로 확인한 소연은 고된 한숨을 내쉬고 자기 방으로 되돌아왔다.
“아휴, 힘들어. 도대체 화정이가 왜 저러는 거지? 으음. 아, 맞다. 왜 그런지는 용독경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연은 소리를 죽이며 동천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등장에 화정이가 자다 말고 고개를 쳐들었지만 소연은 간단하게 “자!”라고 말한 뒤 용독경을 빼왔다.
“어디 보자. 강시 편. 쭉 내려가서… 이건가?”
소연은 변화의 장을 읽었다.
“강시가 변화를 꾀하는 때는 몇 가지를 들 수 있으나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동기는 불안했을 때이다. 강시는 고립된 곳을 좋아하나 넓게 트인 곳은 꺼려하는 편이다. 강시의 주인이 이 사실을 모르는 것은 표현력이 떨어지는 하급 강시를 부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대의 기록을 살펴보면 불사강시의 경우에는 트인 곳보다 비좁은 관이 좋다고 의사표시를 했다고 한다. 허나, 그것은 인식의 문제이기 때문에 방 안에서만 지속적으로 생활하게 한다면 강시는 그곳을 자신의 둥지라 여기고 적응을 하게 된다. 또 다른 불안은 자신의 주인과의 단절이다. 강시는 깨어난 상태에서 주인과 삼일 이상 단절되었을 시 심한 불안감을 느낀다. 그것의 정도는 지능이 높을수록 더 확연한데 이는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가 칭얼대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잠시 동면(冬眠)을 시켜두는 것이 좋다. 강시는 영양을 충분히 섭취한 상태에서 최대 육 개월까지 동면이 가능하다. 물론, 특수 약물에 담가 동면을 시키면 영구보존이 가능하나 불사강시가 아니면 그 방법은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다… 중얼중얼.”
그제야 의문이 풀린 소연은 요 근래 화정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소연은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흐음. 동면? 그거 내가 해도 될까?”
화정이에게 갈까 말까, 고심하던 소연은 좀 더 지켜보기로 하고 그만두었다.
“아? 맞다. 사부님께서 연습을 하라고 하셨지?”
소연은 하루에 두 번. 그러니까 아침과 늦은 밤에 민소희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정확한 시간대는 없고 그때의 상황에 따라 소연이 찾아가면 그때가 수련 시간이었다. 아침은 이론을, 저녁은 실기였다. 지금까지 소연이 민소희에게 가르침을 받은 무공은 신법과 내공심법. 그리고 금나술 뿐이었다. 그나마 그것들도 한참 모자랐지만 민소희는 어린 제자에게 항상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유는 소연이 꾸중을 들었을 때보다 칭찬을 들었을 때 무공을 더 빨리 습득했기 때문이었다. 뭘 좀 아는 민소희였다.
동천이 만검전에 간지도 어언 두 달이 다 되어갔다. 소연과 도연은 소식이 두절된 듯하여 만검전에 찾아가려 했으나 가지 말라는 전주님의 엄명이 계셔서 지금은 동천이 빨리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화정이는 그 후로도 가끔 안 하던 짓을 했지만 그때마다 소연이 따끔하게 혼내는 방법을 써서 그런 대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먹을 것에 집착하는 것만큼은 고쳐지지가 않았는데 그동안 얼마나 먹어댔는지 체질적으로 살이 안 찌는 화정이가 지금은 약간 살이 찐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아침 수련을 마치고 나서, 행여 주인님의 방에 먼지라도 쌓일까 봐 열심히 가구들을 닦고 있던 소연은 화정이가 자신을 잡아끌어 의아해했지만 순순히 따라갔다.
“왜 그래? 뭔가 문제가 있어?”
어느새 붓과 화선지를 준비해놓은 화정이는 화선지 위에 어설프지만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음. 그러니까, 이게… 주인(主人)? 아아! 주인님. 너 지금 주인님이 왜 안 돌아오시는 거냐고 물어보는 거야?”
화정이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두어 달 정도면 주인님이 돌아온다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소연은 그걸 기억하고 물어보는 화정이 때문에 놀라 하는 한편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느라 시간을 좀 지체했다.
“으응. 주인님이 왜 아직 안 돌아오시는 거냐하면, 바로 너 때문이야.”
“???”
화정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연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호호호! 눈 좀 봐. 화정아 너무 놀라지는 마. 호호, 무슨 이야기냐 하면 주인님께서 너에게 선물을 주려고 준비하시느라 늦으시는 거니까.”
화정이는 선물의 의미를 몰랐다. 그래서 그녀는 말똥히 소연의 보충 설명을 기다렸다. 다행히도 소연은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아아, 선물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다고? 음. 선물이란 어떠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주고 싶은 물건을 건네주는 게 선물이야. 여기에는 공적인 선물과 사적인 선물이 있는데, 공적인 선물은 별로 친하지 않는 사람이 주는 것과 친해도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이 주는 것과 친하지만 공적인 관계가 되어… 우웅! 몰라 몰라. 어쨌든 주인님이 너에게 주고 싶어서 어떠한 물건을 주는 게 선물이야. 이해가 가?”
도리도리.
“뭐? 이해가 안 간다고? 하아! 그럼,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이게 내 머리의 한계인데.”
옆에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화정이 때문에 때아닌 두통을 호소하던 소연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아? 맞다! 수련이한테 물어보면 어쩌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연은 사부님이나 그 외의 사람들에게 선물의 의미를 물어보는 것이 쪽팔렸다. 그래서 뽑힌 것이 바로 수련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동생이니 그런 것쯤은 창피를 당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화정아. 지금 내 동생에게 갈 거거든? 그동안 방 안에만 있어서 심심했을 테니까 너도 같이 가자.”
화정이는 좀 망설이는 듯한 행동을 보였지만 이내 허락의 뜻을 비추었다. 소연은 오랜만에 동생을 찾아간다고 생각하니 절로 힘이 솟았다. 그녀는 들고 있던 걸레를 내던지고 화정이를 이끌었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