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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88화


  •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들은 무지의 무지를 거듭해 온전한 육체를 붕괴시키기 시작했다. 당신은 살을 빼고 싶은가? 그렇다면 정신의 위대함을 깨달아야 한다. 한 가지에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몰두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살을 빼는 방법 중 가장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정신이 한곳으로 몰리면 비만을 증가시키는 요소가 채 성장하기도 전에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연자(緣子)여. 정신을 한곳으로 모아라. 특히, 예술에 관련된 분야로 뛰어들어라. 그리하여 그곳에서 정신을 쏟아부어라. 비대한 살이 빠졌을 때 아마도 연자는 그 분야에서 최고의 장인이 되어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살 빼면서 돈 벌기. 즉! 일석이조의 방법이다.

“험! 잘 알아들었나? 이해가 가?”

끄덕 끄덕.

한심은 완전히 매료된 모습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세상에나. 그런 위대한 지침서가 있었다니. 소전주님. 그건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 겁니까? 가르쳐주십시오. 예?”

동천은 한심에게 가르쳐주고 싶어도 가르쳐줄 수 없었다. 이미 짐작은 했겠지만 그 책은 존재하지 않는 책이기 때문이었다.

“음. 안타깝게도 세상에서 단 한 권뿐인 그 책은 3년 전 물난리 때 떠내려가 이제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도 없다네.”

한심은 씹은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런?”

동천은 한심이 괴로워하는 것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조금 더 시간을 끈 다음에 일을 벌이려는 것이었다. 동천은 세상을 다 산 인간처럼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 한심에게 기사회생의 길을 열어주었다.

“허나!”

한심은 눈부신 속도로 동천의 입에 시선을 고정했다.

“허, 허나?”

동천은 득의의 웃음을 지으며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들겼다.

“큭큭! 그 내용은 천재적인 이 몸의 머릿속에 남아있다네.”

“오오-오! 역시, 소전주님은 위대합니다! 만세! 소전주님 만세! 만세!”

사이비 교주가 신도의 열렬한 지지를 받듯 동천 또한 그런 자세로 한심의 만세삼창을 여유 있게 듣고 난 후 본론에 들어갔다.

“내 이제 자네의 그 못된 살덩이들을 없앨 방도를 일러주지. 그 방법은 아까 말했다시피 예술성이 탁월한 그릇 만들기에 온 심혈을 기울여야 하네. 자, 어서 해보게.”

“예! 소전주님!”

한심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물레를 돌리며 그릇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손을 놀렸다. 전혀 어설픔이 없는 진정한 장인의 모습이었다. 찰나였지만 동천은 한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엄한 기운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휴우. 소전주님. 하나를 완성했습니다.”

동천은 자신도 모르게 칭찬을 할 뻔했다. 그만큼 한심의 작품이 뛰어났던 것이다. 허나, 여기에서 일을 망칠 수 없었던 동천은 눈물을 머금고, 한심이 만든 그릇을 가차 없이 뭉개버렸다.

“아직 모자라네! 실력이 형편없어! 안되겠군. 자네는 좀 더 수련이 필요해. 그러니 이제부터는 크기별로 만들어보게.”

첫술에 배부름을 기대했던 한심은 크게 낙담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소전주님. 역시 제게는 무리였나 봅니다. 그만 할게요.”

‘그만둬? 누구 맘대로?’

동천이 그 일을 허락할 리 없었다. 동천은 한심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아, 위대한 예술가가 이렇게 사라지는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한심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눈은 불타고 있었다. 한심은 서서히 손을 움직여 반죽을 시도했다. 지금의 한심은 열정의 화신(火神). 그 자체였다.

“으오오오! 할 수 있다! 아자!”

동천은 한심의 뒤에서 사악한 미소를 흘렸다.

그로부터 한 시진 후, 볼일을 마치고 돌아온 혈귀옹은 눈을 감고 있는 동천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자는 줄 알았으나 자세히 보니, 폼을 잡고 있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뭔가 성과를 이룬 듯싶구나?”

동천은 모든 것을 초월한 미소를 흘려보냈다.

“어르신이 안 계신 사이. 깨달은 바가 있어 반찬 그릇 하나를 완성시켰습니다.”

혈귀옹은 두리번거리며 완성했다는 그 반찬 그릇을 찾았다.

“안 보이는구나. 어디에다 놓았느냐.”

동천은 미소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며 가마를 가리켰다.

“지금 초벌구이를 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조금만 기다리시지요.”

초벌구이라면 대략 세 시진에서 네 시진 정도가 걸렸다. 자신이 나갔다 온 시간이 한 시진. 그렇다면 적어도 두 시진은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였다. 할 일 없이 죽치고 앉아있을 리 만무한 혈귀옹은 방으로 들어갔다가 초벌구이가 다 끝나갈 때쯤 다시 나타났다. 때마침 동천은 돌 벽을 허물고 완성된 그릇을 꺼내고 있는 중이었다. 불이 꺼졌다고 하나 내부는 섭씨 900도에 웃돌았기 때문에 꺼내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정석대로라면 완전히 식은 후 꺼내야 하지만 동천은 빨리 보여주고픈 마음에 그냥 꺼내려는 것이었다. 만약에 금이 간다거나 깨진다면 좋아하는 것은 혈귀옹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동천이 하는 짓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도기의 급격한 온도 변화는 9할 정도의 실패를 초래하지만 운 좋게도 동천의 반찬 그릇은 멀쩡하기만 했다.

“어르신! 드디어 완성되었습니다. 이름하야 대막(大漠)의 회오리 폭풍! 감상해보시죠!”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작품 명 하나는 끝내주게 짓는 놈이었다. 혈귀옹은 따끈하다 못해 데일 것만 같은 그릇을 맨손으로 잡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천천히 감상했다.

“괜찮구나.”

표현은 안 했지만 수상한 냄새가 진득하게 풍겼다. 외출 전까지는 소꿉놀이 수준이었던 놈이 갔다 오니 장인 수준으로 변모한 것을 그 누가 쉬이 믿겠는가.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혈귀옹은 헤벌레 웃고 있는 동천에게 차갑게 말했다.

“한심은 어디에 있느냐.”

이때, 다른 사람 같았으면 약간이라도 당황해하는 기색을 보였겠지만 그 옛날, 세가에서 시치미의 황제라 불리기까지 했던 동천은 그 명성을 자랑하듯 평상시와 똑같이 행동했다.

“한 당주요? 아? 그러고 보니, 아까 잠깐 나타나서 살이 찐 자신이 슬프다고 했던 것 같았어요. 그리고 어디론가 가버렸는데 그 후로는 잘 모르겠네요. 근데, 왜 찾으세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던 동천은 혈귀옹에게 또 물어볼 게 있냐는 시선을 보냈다. 애석하게도 빈틈을 찾아내지 못한 혈귀옹은 이쯤에서 물러서기로 했다.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럼, 내일 또 보기로 하자.”

동천은 돌아서는 혈귀옹에게 잘 가라고 인사를 올렸다.

“헤헤. 안녕히 주무세요.”

동천의 인사를 받으며 걸어가던 혈귀옹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아참?”

동천은 내심 긴장하며 물었다.

“무슨 하명하실 말씀이라도 있나요?”

혈귀옹은 동천을 위아래로 재수 없게 꼬라 보더니(동천이 보기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놈아. 목욕 좀 해라. 아주 코가 썩는다. 에잉! 더러운 놈.”

듣고 보니, 목욕을 안 한 지가 한 달하고도 보름이 넘어가는 상태였다. 아무리 동천이 게을러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천이 목욕의 필요성을 못 느꼈던 건, 몸에서 나는 냄새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라. 지독한 냄새를 몸에 달고 다니는데 그 코가 온전할 리 있겠는가? 이는 거지가 자신의 몸 냄새를 인식 못하는 원리와 같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한심은 참으로 대단한 인간이라 할 수 있었다. 혈귀옹이 나가고 자신의 옷 냄새를 직접 맡아본 동천은 얼굴을 한껏 구기며 말했다.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괜히 지랄이야.”

투덜대는 동천이었지만 자신이 더럽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해야만 했다. 결국, 목욕을 결심한 동천은 근처 냇가로 달려가 옷을 훌러덩 벗고, 몸을 닦았다.

“어허, 시원~하다!”

동천은 대충 몸을 닦고, 단 한 번의 잠수를 끝으로 목욕을 마쳤답시고 밖으로 기어나왔다.

“히야! 역시 목욕을 하니까 살결이 뽀얘졌네?”

동천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인 후, 옷가지들을 손으로 비벼댔다. 동천의 옷가지들은 한 번씩 짤 때마다 새까만 땟국물을 토해냈다. 그 농도가 얼마나 진했는지 탄광 인부의 옷도 저리 갈 정도였다. 짜도 짜도 검은 땟국물은 끝이 없었다.

“에이 씨! 짜증 나!”

짜는 것도 지쳐버린 동천은 결국 포기하고 덜 빨은 옷가지를 입어버렸다. 동천은 자신의 옷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히히! 깨끗하다.”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어이없는 소리였지만 이는 동천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편, 여담이지만 하류의 한 강태공이 유유자적 세월을 낚고 있을 때 상류에서 죽은 물고기 떼가 떠내려왔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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