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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91화


소연이 야속한 주인님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이가 있었다. 바로 수련이었다.

“아? 어디 갔다온 거예요?”

소연은 슬픔을 애써 참았다.

“으응. 잠시 바람 좀 쐬고 왔어.”

“그래요? 하여튼 화정이 데리고 빨리 가요. 아가씨께서 찾으신다고요.”

소연은 모든 걸 포기한 듯 동생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그녀는 화정이와 마차에 올라탔다. 수련은 그녀들의 뒤를 이어 탔다. 소연은 마차가 움직이는 동시에 수련에게 말을 걸었다.

“아가씨는 괜찮으셔?”

수련은 혀를 절레 내둘렀다.

“말도 말아요. 제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지금까지 동굴에서 머물렀는데, 도통 말씀이 없으신 거예요. 더군다나 식음까지 전폐하시고, 아주 난리가 아니었다니까요? 그나마 오늘 아침부터 음식을 드시고 말까지 하셔서 한시름 놓았어요.”

동생의 말을 듣고 한껏 겁을 먹은 소연은 딱딱하게 굳어있는 얼굴로 물어보았다.

“근데, 화정이는 왜 또 데려오라 하시는 거야?”

“잘 모르겠어요. 뭐, 가보면 알겠죠. 헤헤.”

소연은 동생이 미안해하는 걸 보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잠시 후 도착지에 당도한 그녀 일행은 쉬지 않고 곧장 동굴로 직행했다. 나흘 만에 아가씨와 다시 대면한 소연은 그녀가 많이 수척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소연은 괜스레 고개를 못 들었다.

“그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사정화의 눈은 화정이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소연이 어정쩡하게 고개를 들 때쯤 간단히 대꾸했다.

“그래.”

썰렁한 분위기를 느낀 수련은 혼자 부산을 떨었다.

“자자, 여기서 이러지들 마시고 저기에 앉도록 해요. 아가씨. 차 드실래요? 언니는요?”

소연은 차 마실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됐어.”

사정화는 소연에게 말했다.

“너도 마셔.”

아가씨의 목소리 하나하나에 신경이 곤두서있던 소연은 깜짝 놀랐다.

“예? 그러죠…”

소연은 창피했던지 얼굴을 붉혔다. 사정화는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그녀는 다음 목표인 동화정으로 시선을 옮겼다.

“씨익.”

화정이는 사정화의 시선을 받고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그때의 싸늘함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정화는 자신도 모르게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거친 소음을 타고 탁자 모서리가 바스러졌다.

‘흑흑. 무서워.’

소연은 분위기에 압도되어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속으로 울먹이기만 했다. 사정화는 자신의 추태를 인식하고 재빨리 힘을 거두었다. 아울러 자신의 평정심을 곧추세웠다. 깊게 호흡을 내쉬니 분노와 좌절의 아픔이 금세 가라앉았다.

“…익히게 했지?”

떨리는 두 손을 마주 잡느라 사정화에게 신경을 못 썼던 소연은 급히 사죄를 올렸다.

“아? 죄, 죄송합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다가 못 들었습니다.”

사정화는 잠시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별다른 말없이 다시 물어보았다.

“어떻게 그 강시에게 무공을 익히게 했냐고 물었어.”

이 질문은 소연에겐 뜨끔한 부분이었다. 사실 그때 화정이가 사정화의 손을 잡았을 때 무공을 사용해서 잡은 것이었다. 문제는 그 무공이 자신도 익히 알고 있는 단금영엽이라는 금나수법이었다. 사부의 진전을 잇는 것은 극비였다. 아는 것은 자신과 주인님 뿐. 소연은 무슨 말로 이 위기를 넘어갈까 고민을 했지만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러니까, 그게…”

사정화는 소연이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한발 물러섰다.

“좋아.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우선 차를 마시고 얘기하자.”

소연은 넘어가지도 않는 마른 침을 삼키고 힘없이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 후, 수련이 차를 가져올 때까지 침묵을 고수하던 그녀들은 조용히 차를 집어 들었다.

“어머머? 호호! 두 분이 차를 똑같이 집어서 똑같은 순간에 드셨네요? 신기하기도 해라.”

신기할 것도 어지간히 없는 여자였다. 하지만 소연은 그 소리를 듣고, 마치 죄라도 지은 듯 급히 차를 내려놓았다. 화정이는 그녀의 옆에 앉아서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차를 바라보았다.

“꿀꺽!”

소연은 또 먹을 것에 반응을 보이는 화정이 때문에 눈치가 보여 민망했다. 생각해보니 화정이는 이 사태의 주범이었다. 소연은 갑자기 화정이가 미워졌다. 그녀는 화정이의 옆구리를 있는 힘껏 꼬집으며 주의를 주었다.

“화정아. 못써.”

화정이는 꼬집힌 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찻잔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사정화는 자신이 마시던 차를 화정이에게 내밀었다.

“마셔.”

깜짝 놀란 소연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제, 제것으로 주겠습니다. 그러니까 아가씨께선 마저 드세요.”

“그래요. 아가씨. 도로 가져가서 드세요.”

수련까지 나서서 권유했지만 이미 결정을 내린 사정화는 번복할 생각이 없었다.

“됐어.”

소연은 찻잔에 손을 가져가는 화정이를 또 꼬집어 준 후 사정화에게 말했다.

“아가씨. 그러시면 제가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니 마저 드세요.”

사정화는 약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됐다고 했잖아.”

소연은 부모에게 야단맞은 아이처럼 풀이 죽은 모습으로 화정이에게 찻잔을 옮겨주었다.

“화정아. 뜨거우니까 천천히 마셔.”

화정이는 작은 주인의 승낙에 기뻐하며 차를 꿀꺽꿀꺽 마셨다. 뜨겁지도 않은가 보다. 사정화는 비록 비웃음일지라도 가볍게 웃었다.

“훗! 마시는 게 동천을 빼다 박았군.”

화정이는 동천의 이름을 듣고 사정화를 응시했다. 잠시 아리송한 표정을 짓던 화정이는 소리 없이 웃었다. 수련은 이쯤에서 자신이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호호! 쟤 웃는 게 참 예쁘지 않아요? 더군다나 몸매도 날씬하고 키도 크고, 후아. 그러고 보니 머리 나쁜 것만 빼고는 나무랄 게 없네?”

소연은 화정이가 둔하다는 소리에 기분이 언짢았지만 아가씨 앞이라 감히 입을 열 수 없었다. 사정화는 수련의 수다가 본격적으로 터지기 전에 그 싹을 미리 잘라버렸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를 다 마셨으면, 화정이 데리고 따라와.”

소연은 재빨리 따라 일어났다. 사정화는 아쉬워하는 수련을 뒤로하고 석실로 들어갔다. 사정화는 소연이 머뭇거리자 그녀를 재촉했다.

“괜찮으니 들어와.”

언니가 화정이와 어정쩡하게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재빨리 뒤따라온 수련은 눈을 반짝이며 물어보았다.

“아가씨. 저는요?”

사정화는 철없는 수련에게 눈짓으로 주의를 주었다. 다행히 수련은 아가씨의 눈짓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호, 호호! 그럼 얘기들 나누세요.”

사정화는 도망치듯 사라지는 수련을 바라보다 석실 문을 닫았다. ‘쿵!’하는 소리가 소연의 가슴을 내리눌렀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사정화는 넓은 연무장 중심부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아마도 궁금할 거야.”

“예…”

사정화는 소연에게 등을 돌렸다.

“그때 너의 강시에게 진 건 확실히 충격이었어.”

소연은 아가씨가 몸을 돌리고 있는 게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소연은 무서워서 덜덜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님 무서워져요. 제게 힘을 주세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던 사정화는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강시에 관한 서적을 뒤져보고 나서야 당연한 결과라는 것을 깨달았어.”

소연은 예상과는 다른 말이 나오자 정신을 집중시키고 아가씨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때 사정화가 자신의 몸을 원위치 시켰다. 그녀는 소연을 똑바로 직시했다.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초혼강시인 네 강시는 기본적으로 2갑자의 내공을 지니고 있어. 나의 내공은 대략 40년. 아무리 초식이 앞선다 해도 압도적인 내공의 차이에는 밀리기 마련이야. 그래서 나는 하나의 목표를 세웠어. 무엇인 줄 알아?”

“아니요.”

사정화는 소연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가락을 쳐들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화정이에게 고정되었다.

“바로 네 강시를 뛰어넘는 것이야.”

소연은 입을 쩍 벌렸다.

“예-에?”

“놀랄 필요는 없어. 나의 최종적 목표는 아버님을 뛰어넘는 것. 네 강시는 내 최종적 목표에 큰 도움을 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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