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198화
되찾은 자유.
땅! 따-앙!
굵은 망치가 붉게 화기를 머금은 쇳덩어리를 가차 없이 쳐 내렸다. 망치의 임자는 잘 치다가 갑자기 부르르 떨었다.
“찢어 죽이고 말 거야. 말려 죽이고야 말 거야!”
예전에 한창 유행했던 이따위 소리를 누가 지껄이고 있는 걸까?
“으으, 죽일 년! 똥통에 빠트려 죽일 년! 으아악!”
쇠를 제련(製鍊)하고 있던 장인 중 한 사내가 동천이 지껄이는 소리를 듣고 또 발작했나 싶어서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쯧쯧, 저렇게 살고 싶을까?’
이 사람이 성깔 더러운 동천을 동정할 정도라면 그 동안 동천의 고초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리라. 몇 달 전 한심이 그릇을 만드는 장면을 목격해버린 혈귀옹은 이 일의 원흉이었던 동천은 죽어라 패놓고, 설설 기는 동천을 다음 날 곧바로 장인들 사이에 투입시켰다. 말로는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였지만 당하는 동천이 느끼기에는 ‘종놈이 되기를 바란다’였다. 일의 관계가 철저했던 혈귀옹은 초짜로 들어온 동천에게 허드렛일부터 시켰다. 생전 치우지도 않았던 주변정리를 시작해서 방 청소와 밥 짓는 일까지 동천의 몫으로 돌아갔다.
그 덕에 적응을 하느라 두 달을 소비해야만 했던 동천은 그 다음으로 쇠를 달구는 데 필요한 석탄을 짊어지고 나르는 데 한 달을 날려버렸다. 동천이 좀 맛이 가기 시작한 것은 이때쯤이었다. 동천은 풀린 눈으로 중얼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약한 소리였지만 오늘에 이르러서는 아예 대놓고 떠들어대는 실정이었다. 물론, 혈귀옹이 나타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입을 다물었다. 혈귀옹도 동천의 변화를 눈치챈 것 같았으나 무슨 일인지 내색을 않았다.
“크크크! 감히 이 동천님을 가둬? 죽어! 죽어라!”
오늘로써 검의 단련을 맡은 지 보름이 넘어가고 있었다. 동천은 달궈진 쇠를 사정화라 생각하고 죽어라 두들겼다. 덕분에 어깨는 물론이고 손목까지 뻑적지근했다. 검의 모양이 되어야만 하는 쇳덩이는 어느새 일자로 쫙 펴졌다.
“헉헉, 이 정도면 죽었겠지? 히히히!”
이런 말하기엔 뭣하지만 정말 맛이 간 것 같았다. 동천은 넓게 펴진 쇠를 벌겋게 타오르는 석탄 더미에 내던졌다. 이런 걸 혈귀옹에게 들켰다간 몇 대 얻어맞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때맞춰 한심이 숨 가쁘게 달려왔다.
“소전주님! 소전주님!”
동천은 입을 꾹 다물고 한심에게 시선을 돌렸다. 동천은 미쳐가면서 엔간해선 사람들과의 대화를 피했다. 한심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자기가 할 말만을 했다.
“기쁜 소식입니다! 글쎄, 소전주님께서 제대로 된 검이나 도를 만드시면 아버님께서 약왕전에 돌아가시는 걸 허락하시겠답니다!”
웬 개가 짖냐는 식으로 멍하니 한심을 꼬나보던 동천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닫혀있던 의식 속에서 무언가가 뚫고 올라오는 것을 감지했다. 곧이어 우렁찬 천둥소리와 함께 흐리멍텅했던 동천의 눈빛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오오! 그 말이 정말인가?”
동천의 변화를 확연하게 느낀 한심은 덩달아 기뻐했다.
“예! 직접 가셔서 확인해보시지요! 제가 보증합니다! 하하하!”
동천은 목뼈가 부러지도록 끄덕여댔다.
“알겠네! 내 재빨리 가보겠네!”
혈귀옹은 동천이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을 도와 쇠나 단련시킬 것이지 뭐 하러 왔느냐.”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혈귀옹의 태도에 동천은 다소 주춤거렸으나 확인은 해봐야겠기에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오라. 방금 한 당주에게 들은 얘기가 맞는 지 물어보려고 왔는데요.”
혈귀옹은 대뜸 물었다.
“뭐라고 했더냐.”
동천은 혈귀옹이 혹여 딴소리라도 할까 봐 불안해하며 이야기했다.
“예, 한 당주 말이 제가 검하고 도중에 하나를 골라서 제대로 만들면 어르신께서 약왕전에 보내주신다고 했습니다. 헤헤. 맞나요?”
생사람 피 말리게 묵직한 침묵을 고수하던 혈귀옹은 잠시 후 동천이 학수고대하던 말을 꺼냈다.
“맞다. 그 놈이 제대로 얘기했구나.”
신이 난 동천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였다.
“헤헤, 그렇다면 내일 당장이 되어도 됩니까?”
“그렇다. 하지만 그러기에 앞서 몇 가지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그릇 사건으로 당한 적이 있었던 혈귀옹은 그에 대비해 몇 가지 규칙을 정했다. 첫째, 정해진 시간 외에는 만드는 걸 중지한다. 단, 더 하고 싶으면 내가 보는 앞에서 계속한다. 둘째, 쉬는 시간을 제외하곤 쉴 수 없다. 단, 부득이한 부상이나 잡념이 꼬일 때는 잠시 쉬어도 괜찮다. 셋째, 식사와 청소는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이건 예외가 없다.
“할 수 있겠느냐?”
동천은 불타는 의지를 발휘해 무조건 수락했다.
“물론이죠! 하겠습니다! 당장 할까요? 해요?”
혈귀옹은 오랜만에 되살아난 동천을 대하고 기분이 좋았지만 겉으로는 냉랭히 말했다.
“까불지 말고 마당 청소나 해라. 그 후 가서 검을 만들어도 좋다. 모르는 것은 그곳 장인들에게 물어보아라.”
동천은 밖으로 나와서 투덜거렸다.
‘칫! 하여간 지 집 청소는 잊어버리지도 않는다니까?’
투덜거리는 것과는 달리 동천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히히히!”
어느새 낙엽이 쓸쓸히 떨어져 내리는 가을이 찾아왔다. 여름 장마를 무사히 넘긴 작은 생명체들은 겨울나기를 위해서 바삐 준비해야만 하는 계절. 제법 차가운 바람이 예외는 없다는 듯 암흑마교 내부를 휩쓸고 지나가며 도연의 어깨에 아직 파릇파릇한 잎사귀 한 개를 얹혀주고 지나가 버렸다.
휘이이잉!
잎사귀는 또 다른 바람이 불어주기 전까지 도연의 어깨 위에 머물러 있다가 아쉬움을 느끼며 다른 곳으로 휩쓸려 날려갔다. 도연은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리자 한숨을 내쉬며 말을 텄다.
“어려워.”
도연은 고뇌에 찬 음성을 흘렸다. 지금 자신의 처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도연의 눈앞에는 허물어진 담벼락이 버티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허물어진 곳을 뛰어넘어 멀리 보이는 산마루로 향하고 있었다. 도연의 동공은 풀리지 않는 그 무언가를 이해하려는 듯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때 그의 뒤에서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그것을 굳이 알려고 하지 마라. 네가 당장 풀기에는 너무도 벅차니까.”
도연은 급히 몸을 돌리며 육장로에게 인사를 올렸다.
“오셨습니까.”
육장로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인 후, 전신의 기운을 도연에게 흘려보냈다. 움찔한 도연은 뒤로 기울어지려는 상체를 힘들게 버텼다. 그러나 결국에는 뒤로 서너 발자국 물러서야만 했다.
“이것이 태(太)의 한 종류다. 그리고…”
육장로는 눈을 번쩍 뜨며 도연에게 무형의 강기를 줄기차게 보냈다. 도연은 거대한 기운이 자신을 옥죄어오는 고통을 그대로 받아내며 이를 악물었다. 육장로는 그런 도연이 한심했는지 고개를 저어댔다. 그는 눈빛을 거둔 후 말을 이었다.
“이것도 태의 한 종류이다. 무궁무진한 것이 바로 태의 기운. 그래서 뜬구름 같은 묘리기도 하지. 이것이다 싶으면 아니고, 또 저것이다 싶으면 또 다른 그 무언가가 있고. 훗! 좀 더 머리가 크거든 고민해도 늦지 않다.”
도연은 다소 불만이었지만 수긍해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수긍은 수긍이고, 탐구는 탐구니까 말이다.
“노력하겠습니다.”
“마음대로 하거라. 아참? 네 주군은 만검전에서 잘 지내고 있다더냐?”
도연은 간단히 대답했다.
“예.”
너무나도 간단한 대답이기에 육장로가 다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적어도 어떻게 지낸다는 근황을 들을 줄 알았던 것이다.
“허 참!”
육장로는 정말 모를 놈이라고 생각하며 도연을 지나쳐갔다. 도연은 육장로가 사라진 다음에야 고개를 돌려 아까 응시하고 있던 산마루를 바라보았다. 언제 보아도 지겹지가 않았다. 가능한 한 그 너머를 보고 싶었지만 지금만으로도 만족했다.
“…”
저 산마루 너머에는 만검전이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