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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201화


<팔장(八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나는 대답을 원하지만 그는 죽은 자이다.

어떤 면에서 나도 죽은 자.

그러나 나는 죽은 자이면서도 생각한다.

육신이 없는 자. 틀을 고정한 자.

그것이 바로 나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어떤 면에서 나도 죽은 자.

지금, 그 틀을 깨고 육신을 얻으려 한다.

나는 또다시 부활을 꿈꾸는 자.


<변화(2)>

기억이 난다. 아주 희미하지만 기억이 난다. 아늑한 집이 보이고, 그 속에 내가있다. 나는 누워있다. 파리한 안색에 힘없는 눈동자를 하고 있다.

-쿨럭!

한번의 기침.

-헉, 헉. 쿨럭!

잠시 숨결을 고른 후 또 한번의 기침. 가슴이 아프다. 누군가가 나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상대를 확인할 새가없다. 그러기에는 나의 고통이 너무도 크다. 다시 한번의 기침 후 나의 입에서는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내 옆에서 극진히 나를 보살펴주던 사람이 다소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여, 여보. 어떻게 하죠? 정말로 이 애는 가능성이 없는 건가요?

목소리를 들어보니, 사십대 중반의 여인이었다. 주의를 기울이자 내 곁에 있는 사람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나는 흐릿해진 눈으로 상대를 찾는다. 그러나 힘들다. 그때 누군가가 따스한 손길로 나의 마른손을 잡아주었다.

-아가야. 힘을 내거라.

따스한 손길만큼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음울함이 가득 차 있는 목소리라는 것. 왠지 없었던 힘이 용솟음치지만 이상하게도 나의 숨결이 점차 가늘어진다. 무섭다. 나는 나의 죽음을 예견한다. 나는 발악이라도 해보고픈 심정으로 쥐어짜듯 말한다.

-어, 어머니! 난 죽고싶지. 죽고싶지…….

어머니였던가? 내 손을 꼭 쥐고있던 손이 떨어져나갔다. 대신 그 손은 나의 몸을 흔들어댔다. 무어라고 소리친다. 애석하다. 들리지 않는다. 한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보였다. 두 사람이 보였다. 모두들 눈물로 범벅이 된 모습들이었다. 나는 마지막 힘으로 손을 든다. 어머니가 급히 나의 손을 잡는다.

-얘야! 아직, 아직이야! 네 나이가 몇인데!

그러고 보니 궁금하다. 내 나이가 몇일까? 17살? 18살? 아니면 20살? 기억이 날 듯도 하건만 떠오르는 그 무언가가 없다. 어찌된 일인지 솟아올랐던 힘이 허물어지듯 스러진다. 의식이 혼미해진다. 그 와중에도 내 귓가엔 아우성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여러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누구시죠?

-다, 당신들은 누구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당황해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서걱! 푸하학!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진한 혈향이 내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설마, 설마 부모님이 어떻게 된 건가? 아까 와는 달리 차가운 손이 나의 목 언저리를 누른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군. 데려가자.

-존명!

한 사내가 나를 들쳐업는다. 반항이라도 해보고 싶지만 힘이 없다. 바닥이 보인다. 피가 보인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목이 잘린 채로…….

-…….

며칠동안 정신을 잃었는지 몰랐다. 다만 힘겹게 눈을 뜨니 한 사내가 부드러운 인상의 사내에게 아부를 하고있는 것이 보였다.

-말씀하신 대로 데려왔습니다. 헤헤.

나를 데려온 자였다. 허나, 목소리는 같지만 나를 데려올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간사한 목소리였다. 보고를 받는 자의 눈이 나에게 향했다. 어느새 내가 깨어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짓고 나를 데려온 사내에게 말했다.

-저 아이를 데려올 때 흔적은 잘 처리했겠지?

사내가 얼른 고개를 숙인다.

-예, 비밀을 위해 저와 동행한 자들까지 깨끗이 해치웠으니 안심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보고를 받는 자가 감탄 섞인 음색을 끄집어냈다.

-호오? 거기까지 손을 봐뒀는가?

-예!

나를 데려온 사내의 짧은 대답에 희열의 떨림이 전해져온다. 이제 출세를 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갑자기 눈물이 치솟아 오른다. 부모님의 죽음 때문이다. 혀를 깨물고 죽고도 싶었으나 지금 나에게는 혀를 깨물 힘조차 남아있질 않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곳에 끌려왔는지 모르겠다. 나는 눈을 감고 눈물을 흘려보냈다. 그제야 상대가 바로 보인다.

-그럼, 이 아이의 병에 관해서는 나와 저네만 아는 게 되는군.

여전히 미소를 짓고있지만 왠지 섬뜩해 보인다. 나를 데려온 사내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 듯 열심히 조아리기에 여념이 없다.

-헤헤, 전주님께서 앞으로 다른 임무를 맡겨주셔도 이와 같이 깨끗이 처리하겠습니다.

전주라는 사내에게서 살기가 피어오른다. 상대는 모르는 것 같지만 제 삼자의 입장에 선 나는 이상하게도 그것을 느낀다. 숨이 막힌다. 휘몰아치는 살기에 목이 조이는 것 같다.

-콜록! 콜록콜록!

-아니? 깨어났나 봅니다.

나를 데려온 사내가 흠칫하는 눈치다. 기침으로 인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그새 전주라는 사내는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그렇군. 이제 자네도 좀 쉬게나.

-감사합니다. 다른 명…령을 내려주…때까…….

나를 데려온 사내는 자신의 목이 떨어지는 것도 못 느끼는 것 같았다. 그의 목은 바닥을 구르고서야 말을 멈추었다. 그자의 목은 바닥을 굴러 내게로 다가왔다. 웃고있는 얼굴이었다. 목이 다가온다. 웃고 있다. 나의 몸은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심하게 떨린다. 마침내 나는 혼신의 힘으로 비명을 질러본다.

“꺄아아아아!”

“으아악! 뭐, 뭐야?”

동천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비명소리 때문에 콩알만해진 가슴을 진정시키며 벌떡 일어났다. 화정이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계속 비명을 질러댔다.

“꺄악! 꺄아아아!”

그제야 비명의 주인공을 깨달은 동천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다 발광을 하는 화정이의 상체를 내리눌렀다.

“꺄아! 꺄악!”

소용이 없어 보였다. 안되겠다고 생각한 동천은 화정이의 뺨을 좌우로 번갈아 휘갈겼다.

찰싹! 찰싹!

“이, 이년아! 정신차려!”

화정이는 동천에게 뺨을 맞는 순간 거짓말처럼 뚝 멈추어버렸다.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다 곧이어 동천에게 헤픈 웃음을 흘려주었다.

“헤에. 헤헤.”

그녀의 웃음에서 무언가를 직감한 동천은 흠칫하더니 튕기듯 튀어 올라 문가로 물러났다. 화정이는 툴툴거리듯 헤헤거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살며시 문을 열어 재낀 동천은 어느 순간 후다닥 도망쳤다.

“미쳤어! 저년이 미쳤다고! 우째 이런 일이!”

그때 동천을 가로막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바로 문이었다. 동천이 신법을 발휘해 도망치려고 하는데 비명소리를 들은 소연이 문을 열고 나왔던 것이다. 그녀는 급정지를 하느라 버둥거리다 엉덩방아를 찧은 주인님을 발견했다.

“아? 주인님도 방금 그 소리를 듣고 나오신 계여요?”

소연은 얼른 동천에게 다가가 일으켜주고 그의 옆에 바싹 붙었다. 야심한 밤중에 소름끼치는 비명소리를 들어서 무서웠던 것이다. 한편 동천은 잠시 어안이 벙벙해 있다가 자신을 팔을 꼬옥 붙잡고있는 소연 때문에 비로소 정신을 되찾았다.

“참나, 그것 때문에 놀란 거야? 너 진짜 간땡이가 작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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